국가정보원 도청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국정원과 한나라당을 바짝 긴장케 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국정원에 대대적 숙정이 단행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동시에, 그동안 국정원 정보를 앞세워 폭로정치를 주도해온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등에 대한 사법조치가 뒤따르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국정원 전.현직 직원 3명 긴급체포**
노무현 대통령이 17일 도청의혹에 대한 엄정수사를 언급한 직후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2부(황교안 부장검사)는 18일 새벽 국정원 내부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국정원 전, 현직 직원 3명을 긴급체포,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검찰에 체포된 국정원 직원 중에는 국정원 현직 3급 직원 1명이 포함돼 있으며, 나머지 2명은 전직 직원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의 내부정보를 유출한 의혹이 있는 2~3명을 오늘 새벽 긴급체포해 조사중"이라며 "내부정보 유출이 도청과 관련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도청문건'의 작성 및 유출 경위 등을 집중조사한 뒤 유출 사실이 드러나면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 등으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이번 사건과 관련해 맞고소, 고발한 정치인들을 조사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중이다. 검찰은 관련 정치인들이 계속 조사를 거부하고 있어 방문조사나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조사중인 사안으로 상황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며 "그러나 수일내에 수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사실상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했다.
검찰 수사 행보가 빨라짐에 따라 도청의혹의 3가지 쟁점 중 국정원 내부문건 유출 및 한나라당 유입경위에 대한 조사가 급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휴대폰 도청의 기술적 가능성 여부, 국정원 불법도청 진위 여부 등 나머지 쟁점에 대한 수사에도 시전이 집중된다.
***한나라, 지난해 5차례 도청의혹 제기**
도청 논란은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총 5차례에 걸쳐 의혹을 제기하면서 쟁점화됐다.
특히 국정원 출신의 정형근 의원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한화의 대생 인수과정에 노무현 후보와 한화갑 대표의 청탁이 있었고, 박지원 비서실장도 개입했다"는 주장을 제기해 도청 논란에 불을 당겼다.
정 의원은 또 국정원 도청자료라며 ▲9월 25일에는 한화 김승연 회장과 청와대 1급 비서관의 통화 내용을 ▲ 10월 4일에는 "현대의 대북사업은 박지원 비서실장이 총괄한 사업"이라며 박실장과 일본인 요시다 다케시씨간에 오간 대화 내용을 ▲10월 22일에는 "한광옥 의원이 '4억 달러 대북지원 의혹'과 관련,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검찰에 축소수사를 요구했다"는 주장을 잇따라 제기했다.
이어 11월 말에는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 언론사 사장들과 정치부 기자 등 30여명의 이름이 등장한 문건을 국정원 내부자료라며 공개했다. 그러나 김 총장은 이달초 "대선 직전에 공개한 도청 문건은 국정원 공식 내부문건이 아니라 국정원 도청을 들은 직원이 이를 메모해뒀다가 외부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한발 뺐었다.
***정형근 의원 조사여부가 최대 관심사**
도청의혹 조사와 관련,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그동안 국정원 정보를 이용해 저격수로 활동해온 정형근 의원의 거취다. 정 의원의 경우 지난해 대선 과정에 국정원 도청자료라며 폭로전을 주도했고, 이전에도 여러 차례 국정원 자료임을 앞세워 DJ 저격수로 맹위를 떨쳐왔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지난해 10월 박지원-요시다 간 통화 내용을 폭로할 당시 관련 자료를 "국정원 고위간부가 나라를 걱정해 제 3자를 통해 전달해 왔다"고 주장했었다.
정 의원은 그러나 지난 대선막판에 김영일 사무총장 등이 주장한 정치인 도청의혹과 관련해서는 자신과 무관하다며 도리어 당시 그는 자료를 공개하지 말자는 쪽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정 의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도청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정원 전.현직 직원 3명이 검찰에 체포됨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정형근 의원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그동안 숱한 폭로에도 불구하고 법망에 걸려들지 않았던 정의원의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 "철저한 진상규명", 한나라 "야당 탄압 아니냐"**
이처럼 도청의혹 수사가 급류를 타자 민주당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은 "야당 압박용이 아니냐"고 크게 긴장하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장전형 부대변인은 18일 "이는 법과 원칙을 세우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밝힌 것으로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국민불안을 해소하고 국가정보기관 신뢰회복의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청의혹 사건은 한나라당이 3대의혹 사건으로 규정하여 정치공세를 폈던 사안"이라며 "도청이 있었다면 당사자가 처벌받아야 하고, 한나라당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면 무책임한 폭로정치로 단죄받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한나라당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김영일 사무총장은 18일 "검찰이 사실관계를 밝혀내지 못한 사건에 대해 도청을 하지 않았는 데도 도청을 했다고 주장했다면 처벌해야 한다고 언급한 배경이 의문"이라며 "이는 도청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수사를 통한 진실규명보다 의혹을 제기한 야당쪽에 대한 수사주문 메시지로 보여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김 총장은 "사건의 본질은 정부기관이 실정법을 위반해가며 정치적 목적으로 정.재.관.언론계를 상대로 불법도청을 했는지 여부"라며 "국민적 의혹사건의 진상규명이라는 본질은 외면하고 야당을 압박, 정계개편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종희 대변인도 논평에서 "검찰 등 사직당국이 제대로 수사할 자세와 의지를 보인다면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나 행여 야당 때려잡기식 편파수사를 기도한다면 국회 국정조사나 특검제를 통해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정원은 신임 국정원장 내정이 임박한 가운데 검찰의 국정원 도청의혹 수사가 본격화하자, 이번 수사결과가 신임 국정원장 취임과 맞물려 국정원에 대한 대대적 숙정작업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긴장하는 분위기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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