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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프 "그라운드에서 승부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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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프 "그라운드에서 승부가리자"

이라크전 놓고 촉발된 양국 감정, 축구로 이어져

백년전쟁부터 유럽연합의 주도권 다툼까지 역사적으로 외나무 다리에서 숱하게 맞부딪혔던 영국과 프랑스가 최근 이라크 전쟁의 찬반을 놓고 또 한번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러시아, 중국 등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반전’을 주도해왔던 반면, 영국은 비록 토니 블레어 총리의 독단적 결정이기는 하나 전쟁찬성론을 부르짖으며 미국과의 공조체제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국 언론들은 여러 모로 블레어총리 편에 서서 반전을 주도하는 프랑스를 매도해왔다. 영국의 대표적인 옐로우 페이퍼인 <더 선>지의 인터넷판은 13일(현지시간)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시라크 대통령이 후세인으로 변해가는 모습의 원색적인 사진과 함께 시라크 대통령에게 ‘벌레(Le Worm)’라는 별명을 붙여 맹렬히 비난했다. 영국의 BBC방송조차 최근 시라크의 섹스 스캔들을 특집방송했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이라크전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오랜 경쟁자인 프랑스가 세계의 반전 여론을 주도하는 데 대한 반발이 뒤엉킨 '묘한 이중심리'의 발현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양상은 비단 외교문제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잉글랜드 프레미어리그 1,2위를 다투는 아스날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Utd)의 대결에서도 영국과 프랑스의 자존심 싸움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로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아스날과 아르센 웽거 감독의 열렬한 팬이라 이번 시즌 잉글랜드 프레미어리그의 선두경쟁은 축구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됐다.

***웽거는 잔 다르크, 퍼거슨은 넬슨**

앙리, 비에이라, 피레, 윌토르 등 프랑스 선수들이 주축이 된 아스날과 영국적인 색채가 강하게 베어있는 맨체스터 Utd는 두 팀의 감독 때문에 더욱 라이벌 의식이 강해졌다.

맨체스터 Utd와 아스날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알렉스 퍼거슨과 아르센 웽거는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가진 감독들이다. 섬세하고 치밀한 작전구사를 즐기는 아스날의 아르센 웽거 감독은 잔 다르크로, 강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선수들의 투지를 불러 일으키는 퍼거슨은 넬슨 제독으로 비유될 수 있다.

올 시즌 현재 승점 5점차로 맨체스터 Utd를 앞서고 있는 아스날의 감독은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 잘 알려진 아르센 웽거이다. 프랑스의 AS 모나코와 일본 J리그 팀 나고야 그램퍼스를 거쳐 아스날에 부임한 웽거는 아스날에서 일대 개혁을 단행했다.

아스날 선수들에게 아르센 웽거 감독은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웽거는 선수들의 식사메뉴를 스테이크에서 브로콜리와 생선으로 바꿨고 술도 맥주대신 와인으로 교체했다. 웽거의 개혁은 선수들의 체질개선과 컨디션 유지에 큰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또한 웽거는 다른 프레미어리그 감독들 처럼 선수들에게 고함을 치는 대신 선수들을 잘 다독거리며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했다. 쉽게 말해 웽거 감독은 아스날 선수들을 어린애가 아닌 성인으로 대해 줬던 것이다.

최근 맨체스터 Utd의 간판스타 데이빗 베컴과 말다툼 끝에 축구화를 걷어차 베컴에게 부상을 입혀 화제가 됐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웽거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지도자이다.

글래스고우市 프로테스탄트 노동자계급에서 태어난 퍼거슨은 한 상점의 우두머리로 있으면서 봉급 문제로 종업원들에게 워크 아웃을 지시했을 정도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런 그의 성격은 감독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잘못을 저지른 선수들에게 즉시 고함을 치며 그들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다혈질 감독이었다.

97~98 시즌부터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 웽거와 퍼거슨의 맞대결은 영국프로축구의 최대 이슈였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Utd는 97~98 시즌 아스날에게 패권을 넘겨줘 자존심을 구겼지만 이후 프레미어리그 3연패를 차지했고 아스날은 그때마다 2위에 만족해야 했다.

***‘퍼거슨은 맨체스터 식, 웽거는 아스날 식’**

맨체스터 Utd와 아스날이 프레미어리그를 양분하는 동안 두 감독간의 감정대립은 깊어만 갔고 웽거의 퍼거슨의 설전은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됐다.

퍼거슨 감독은 “프레미어리그 감독 중 웽거만이 경기 후 나와 술을 마시기 원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더욱이 맨체스터 Utd가 아스날을 이기면 그는 나와 악수조차 하지 않는다”고 웽거에게 화살을 쏘았다. 한편 웽거는 기자들로부터 퍼거슨은 와인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내가 퍼거슨에게 위스키 한 병을 사주겠다”고 맞대응했다.

전술과 팀 운영에 관해서도 두 감독은 상대방을 공격했다. 아르센 웽거는 “슈마이헬 골키퍼가 떠난 이후 마크 보스니치를 데려온 것은 맨체스터 Utd의 실수였다”고 공격했다. 웽거는 또한 “네덜란드의 골잡이 니스텔루이와 아르헨티나의 플레이메이커 후안 베론을 데려오는데 쓸데없이 너무 많은 돈을 썼다”며 맨체스터 Utd와 퍼거슨 감독의 실책을 꼬집었다.

반면 퍼거슨 감독은 아르센 웽거의 지도로 이뤄진 아스날의 공격 스타일을 날카롭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웽거는 “퍼거슨은 맨체스터 식으로 하는 게 최선이고 나는 아스날 식으로 하는 게 가장 좋다”며 퍼거슨의 발언을 일축했다.

하지만 2001~2002 시즌 아스날은 스트라이커 티에리 앙리의 스피드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빠른 숏 패스 위주의 경기로 맨체스터 Utd와의 경기에서 두 번다 승리했다. 퍼거슨 감독이 비난했던 아스날 식 공격법에 맨체스터 Utd가 한방 먹은 것이었다. 결국 아스날은 이 여세를 몰아 파트릭 륭베리, 파트릭 비에이라, 로베르 피레, 실뱅 윌토르 등을 앞세운 ‘스피드 축구’로 프레미어리그 정상에 올라섰다.

***영국 텃밭에서 프랑스혁명 재연될까?**

2000~2001 시즌 FA 컵과 UEFA 컵을 거머쥔 리버풀의 프랑스 출신 감독 제라르 울리에는 “내가 올해의 감독상을 못받은 이유는 외국인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영국의 텃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프랑스 감독의 대표주자는 단연 아스날의 아르센 웽거일 것이다. 웽거로서는 영국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퍼거슨 경(卿)’을 다시 한번 이겨보고 싶은 게 당연할 것이다.

현재 아스날은 승점 5점차로 맨체스터 Utd를 앞서고 있어 다소 유리한 상황이다. 다만 아스날은 영-프 관계가 계속 악화되어 혹시나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두 팀의 선두경쟁은 4월 15일(현지시간) 아스날의 홈구장 하이베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맞대결에서 절정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시라크와 블레어가 벌이고 있는 ‘외교 전쟁’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는 막바지 잉글랜드 프레미어리그에서 두 팀 가운데 어느 쪽이 ‘최후의 승자’로 남을 지 자못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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