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협상 과정에서 북한을 비판한 내용을 국내에 소개하지는 않았다. 국내적으로는 민족화해라는 큰 물결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 협상보다는 북한을 비판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으로 보인다. 북한을 비판하고 협상을 결렬시키면 국내 지지기반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크게 보지 못한 단견이다.
유리한 입지에서 출발한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호전시키면서도 지지층을 확대해나가기에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도 이탈리아 통일과정이나 독일통일과정에서 진보정권이 시작한 일을 보수정권이 마무리한 경우가 흔하게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협상에 대한 기본전략부터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 지난 7월 15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당국 간 3차 실무회담에서 김기웅(오른쪽) 남측 수석대표와 박철수 북측 수석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회담장에 입장하고 있다. ⓒ개성공동취재단 |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북한 핵문제는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이란 다름 아닌 대화와 협상이다. 남북한은 분단 이후 수십 년 동안 군사적으로 대립하며 갈등해왔다. 남북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합의한 길은 평화적 통일이다. 평화적 통일의 수단은 '협상'이다. 즉 평화통일은 다른 말로 '협상통일'인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협상의 법칙'에서 허브코헨은 이 사실만 제외하면 모든 것은 다 협상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거대한 협상 테이블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들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협상을 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첫울음을 터뜨릴 때부터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협상한다. 협상은 동물들 가운데 인간만의 고유한 활동이고, 실제로 모든 인간활동의 주요 부분이다. 두 사람 이상 모이면 우리는 대개 무엇인가를 놓고 의견의 일치를 꾀하는데 이 과정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것이다.
윈윈협상은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
허브코헨에 따르면 "협상은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원하는 상대로부터 당신에 대한 호의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얻어내는 일"이다. 그것이 명성이든, 자유이든 아니면 돈이나 정의 또는 사랑, 사회적 지위, 신체적 안전 등 무엇이든 간에 누리고자 하는 온갖 것들을 협상을 통해 얻어낼 수 있다.
'YES를 이끌어내는 협상법'의 저자인 로저 피쉬와 윌리엄 유리는 "협상은 당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기본적인 수단이다."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협상이란 당신이 상대방과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상반된 이해관계에 처했을 때 합의를 보기 위해 밀고 당기는 대화"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협상은 처세술로서가 아니라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기술로서 더욱 중요하다. 갈등해결의 방법으로 폭력적인 방법, 강제적인 방법, 자발적이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협상은 자발적인 방법의 대표적인 수단이다.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강압적 봉쇄정책이나 무시정책 보다는 협상이 남북의 갈등을 해결하는 유효한 수단이 된다.
최근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성공적인 협상법은 윈윈협상(win-win)이다. 윈윈협상의 필요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서부터 제시되고 있다. 인간의 뇌간은 파충류의 뇌로서, 먹고 싸우고 도망치고 성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감정의 원천이다. 이 도마뱀 뇌는 이성적인 뇌를 쉽사리 지배해버린다. 인간이 체면을 구길 때마다 도마뱀 뇌가 전면에 나선다. 도마뱀 뇌의 사고에서 구겨진 체면에 대한 반응은 오직 복수 한 가지밖에 없다. 협상 과정에서 패자는 체면을 구기고 구겨진 체면은 도마뱀 뇌를 발동시킨다. 체면을 건드리면 그 결과는 죽음이다.
즉 상대의 체면을 살려주기에서부터 윈윈협상이 출발하는 것이다. 체면 세우기는 인간의 개별적인 관계에서 필요로 하는 것만이 아니다. 역사상 있었던 체면 세우기와 협상의 사례를 본다면 체면 세우기는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전한 승리의 추구가 히틀러를 출현시켜
베르사유조약은 역사상 패자를 응징하고 승자가 전과를 거둔 대표적인 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차대전의 책임을 물어 독일에 대해 과대하게 배상금을 요구함으로써 독일은 실업과 가난에 노출되었다. 이런 혼돈 속에서 히틀러는 "내가 베르사유조약을 찢어 없애겠습니다"고 제안하자, 독일국민들은 "아돌프, 당신이 최고입니다!"고 응답한다. 그 후 몇 년 사이에 히틀러는 베르사유조약이 빼앗아간 모든 것을 독일인에게 돌려주었다. 유럽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전쟁터가 되었다. 완벽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 상대의 체면마저 무시했다가 도리어 큰 손해를 본 것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는 단호하게 핵전쟁 최후통첩을 하였다. 케네디는 영웅이 되었고, 후루시초프는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케네디의 조치는 "인간의 사건들 속에는 '그 후에 영원히 행복하게'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사건이 되었다.
쿠바 미사일 사태 이후 후루시초프는 해임되고 브레즈네프가 실권을 장악하였다. 브레즈네프는 소련을 군사 강국으로 만들어서 그 이전에 미국에 제한적인 위협밖에 되지 않던 소련이 10년 만에 지구상 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게 만들었다. 미국시민들은 브레즈네프가 건설한 군사력의 위협에 의해 불안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눈앞의 승리가 호쾌했지만 상대의 체면마저 무시하여 결국 장기간 위협에 시달리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지금까지 북한은 강경한 협상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강경한 협상은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고 오래 버텨서 승리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상대의 강경대응을 유도하고 자신의 재원을 소진시키며 상대방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게 된다. 특히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강경 대응은 남한국민들과 국제사회의 여론을 악화시킨다. 북한이 대표적으로 구사했던 강경한 협상법은 성공한 협상법이 아니라는 것을 북한이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
북한이 실패한 소비에트 스타일을 박근혜 정부가
허브코헨은 강경한 협상유형을 '소비에트 스타일'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전사들의 협상법을 뜻한다. 만약 양쪽이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라면 이런 협상의 결과는 당사자들 미래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비에트 스타일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극단적인 초기 입장이다. 항상 상대의 기대치를 무너뜨릴 만한 심한 요구나 어처구니없는 요구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둘째는 협상 대표들의 제한된 권한이다. 협상을 하지만 패표들에게는 권한이 없으므로 항상 배후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셋째는 감정전술이다. 회담장에 들어서면서 악수도 안 하고 때로는 분개한 듯 회담장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넷째는 상대방의 양보는 약함의 표시로 인정한다. 상대가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물러나 무엇인가를 양보한다 해도 그들은 거의 답례를 하지 않는다. 다섯째는 양보에 인색하다. 어떤 종류든 양보하는 것을 미루며 양보한다 해도 그때는 이미 그들의 입장이 약간 변했을 때이다. 여섯째로 최종기한을 무시한다. 시간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듯 끈질기게 행동하는 경향이다.
안타깝게도 북한이 사용했던 이런 소비에트 스타일을 박근혜 정부도 선호하고 있는 듯하다. 허브코헨이 지적한 소비에트 협상 스타일의 여섯 가지를 박근혜 정부의 협상에 적용해보면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윈윈협상을 해야 하는 이유는 거래 후에도 상대방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은 끊임없이 복수를 하게 된다면 그 결과 양쪽이 모두 실패자가 된다. 이것은 윈-루즈(win-lose) 협상이다.
윈윈협상의 핵심적인 책략은 "높게 시작해서 슬쩍 물러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이다. 첫 제안을 할 때 확고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정직한 일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융통성 없고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으로 인식한다. 또 제안이라기보다는 최후통첩으로 보인다.
이제 윈윈협상으로 돌입해야
윈윈협상에서는 상대방에게 어떤 수준의 첫 제안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높게 시작해서 슬쩍 물러나는 것"이다. 윈윈협상을 위해서는 언제 양보하고, 얼마나 양보하며, 어떻게 양보하고,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상대방의 양보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에 대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박근혜 정부가 윈윈협상법을 가다듬어야 할 때가 되었다.
소비에트 스타일의 첫 단계는 극단적인 초기입장이다. 윈윈협상의 첫 단계는 높게 시작하는 것이다. 소비에트 스타일과 윈윈협상이 다른 점은 전자는 초기의 입장을 끈질기게 관철하려 하다가 다 잃는다는 것이고, 후자는 슬쩍 물러나는 전략을 통해서 상대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나의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협상스타일이 소비에트 스타일인지 윈윈협상인지 이제부터 가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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