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주식시장 안정을 위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연금제도가 노동계과 노동부의 거센 반발을 사, 도입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노동계와 노동부, 한 목소리로 반대**
민주노총은 13일 성명을 내 “기업연금제 도입방침은 한마디로 노동자퇴직금을 희생해 폭락하고 있는 주식시장을 떠받치자는 것”이라며 “노동자의 노후 생계수단인 퇴직금을 증시안정자금으로 쓰려는 기업연금제를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노총도 이에 앞서 11일 성명을 통해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기업연금으로 포장해 노동자들의 노후를 담보로 주식시장을 부양하려는 도박적 발상”이라며 “증시안정 위한 편법적 기업연금제 도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노동부도 재경부 주도의 기업연금제의 도입추진에 불만감을 나타냈다. 권기홍 노동부장관은 13일 “기업연금제 도입을 근로자들이 환영하지 않으면 도입 자체도 되지 않을뿐더러 의미도 반감될 것”이라며 국무회의 등에서 적극 대처하겠다고 했다.
***재경부, "기업연금제 도입해야 증시 발전"**
기업연금제도란 노동자의 노후보장을 위해 기업이 단독으로 또는 노동자와 공동으로 조성한 돈을 투신사나 보험사 등 금융기관에 위탁해 목돈을 만든 뒤 근로자가 퇴직할 때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기업연금제도가 도입될 경우 기업은 직원들의 퇴직금을 매월 적립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고, 노동자는 회사가 부도나더라도 제3의 금융기관으로부터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또 재경부가 ‘증시안정’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연금을 위탁받은 금융기관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고려한 투자를 하게 돼, 증권시장의 중장기적 수요기반이 확충에 도움이 된다. 재경부는 오래 전부터 현재 주식투자액의 1%에 불과한 연기금 투자를 미국, 영국처럼 20~30%로 끌어올려야만 증시가 외풍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기업연금제는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는 보편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제도로 우리나라도 DJ정부 시절부터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기업연금제 도입을 논의해 왔으나, 사용자와 노동자의 입장이 엇갈리며 도입하지 못해 왔다. 그러던 차에 새 정부 출범과 맞춰 재경부는 이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증시만 불안해지면 기업연금제 도입하자니..."**
노동계도 기업연금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현금 연금제도에 비해 많은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연금제는 ‘노후보장’이라는 제도의 근본적 취지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도입돼야 한다는 게 노동계 주장이다.
노동계는 그러나 현재 증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의 기업연금제 도입은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담보로 제출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의혹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부는 주식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기업연금제 도입을 발표했고, 정부안이 최초로 공식 제출된 지난해 10월 11일도 주가가 폭락하던 와중의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였다”며 “또다시 주식폭락, 외환금융시장위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퇴직금으로 뻔히 폭락할 주식을 사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투기장시로 유명한 우리나라 증시가 외국의 초국적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에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유가폭등, 환율하락의 압박 등으로 주식시장이 최악의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연금을 도입하여 주식시장을 부양하겠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했다.
또 기업연금의 조성과 운용방식에대한 논란도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 현재 재경부는 ‘확정급부형’과 ‘확정갹출형’ 모두 도입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용자측에서는 기금운용의 손실에 책임을 지지 않는 ‘확정갹출형’ 제도를 선호할 것을 보인다.
***'확정갹출형' 대 '확정급부형' 논란**
이에 노동계는 ‘확정갹출형’ 연금제도는 노동자의 노후를 보장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확정갹출형은 급여의 일정 비율을 연금보험료로 정하고 노동자가 받는 연금액은 운용 수익률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연기금은 철저한 관리와 안정적인 투자에 최우선을 두지만, 최악의 경우 연기금이 모두 날아갈 수 있다.
민주노총은 “확정갹출형 연금제도인 401K를 도입하고 있던 미국이 ‘엔론’의 주가폭락으로 노동자 연금이 완전히 휴지조각이 돼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을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미국, 영국 등이 하고 있다고 무조건 따라가는 식이 되서는 곤란하다는 반론이다.
한국노총은 “확정갹출형은 반쪽짜리 기업연금제도며 미래의 임금 기준이 아닌 현재의 임금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현행 퇴직금 제도보다 노동자 부담이 45%나 늘어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노동계는 노동자가 나중에 받을 연금액을 미리 정한 뒤 기업이 내는 비율을 수시로 조정하는 ‘확정급부형’을 내세우고 있다. 프랑스는 현재 ‘확정급부형’을 법으로 규정해 강제하고 있다.
양대노총은 기업연금제 도입 철회를 촉구하며 강력한 투쟁도 불사할 것을 경고하고 있어, 불안한 증시상황과 함께 기업연금제를 둘러싼 논란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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