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巨惡'과의 전쟁, 도쿄지검 특수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巨惡'과의 전쟁, 도쿄지검 특수부

3대 전쟁, 록히드ㆍ리쿠르트ㆍ사가와규빈 사건

일본의 도쿄지검 특수부를 두고 흔히 일본의 금권정치를 가로막는 최후의 보루라 한다. 이는 도쿄지검 특수부가 주로 비리 고위 공직자, 정경유착 관련자, 검은 돈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부정 정치인과 악덕 기업인 등 이른바 '거악(巨惡)'과 싸워왔기 때문이다.

1947년 출범한 이래 '권력과 맞서 싸우는 검찰상'을 확립해 일본 국민들로부터 높은 신망을 받고 있는 도쿄지검 특수부. 그야말로 '법대로' 수사하고, 비리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불문, 법정에 내세우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도쿄지검 특수부는 오늘날 '일본 검찰의 꽃'으로 불린다.

***일본검찰은 패전후 20년간은 권력의 시녀였다**

추상같은 법집행으로 유명한 도쿄지검 특수부의 신화가 처음부터 이뤄진 것은 아니다. 2차대전 패전후 20여년간 일본 국민들의 눈에 검찰은 소위 '권력의 시녀'에 다름 아니었다.

1954년 조선업계에 대한 국가 보조금을 둘러싸고 정계 수뇌부와 재계가 뇌물로 야합한 이른바 '조선의혹 사건'이 대표적 사례. 당시 사토 에이사쿠 자유당 간사장의 구속 직전까지 갔던 검찰 수사는 그러나 요시타 수상이 이끌던 내각의 압력에 굴복해 검찰총장이 지휘권을 발동, 불구속 기소에 그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지휘권이 발동되던 날, 많은 일본 검사들은 "오늘은 검찰 치욕의 날"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 후 일본 검찰은 '거악'과의 전쟁에 더욱 이를 악물었고, 이같은 검찰의 와신상담은 22년 후인 1976년 '록히드 뇌물사건'에서 당시 정계 실세였던 다나카 전 총리를 구속함으로써 비로소 빛을 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력에 눌려있던 검찰의 위상은 급반전됐으며, 일본 검찰의 추상같은 법 집행 전통은 80년대 다케시타 정권의 붕괴를 가져온 '리쿠르트 사건', 90년대 가네마루 자민당 부총재를 구속시켜 30여년간의 자민당 장기집권에 막을 내리게 한 '사가와규빈' 사건 등 이른바 '거악과의 3대 전쟁'으로 면면히 이어졌다.

다음 글은 마이니치 신문의 야마모토 유지 기자가 쓴 <동경지검특수부>(21세기 북스) 등의 도움을 얻어 정리했다.

***추상같은 검찰권의 확립, '록히드 사건'**

록히드 사건은 미국의 세계적인 항공기 제작 판매회사인 록히드사가 항공기 판촉을 위해 일본 정부의 고관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준 사건이다.

일본 현대사에 희대의 게이트로 기록된 이 사건은 1976년 2월 미 상원 외교위원회의 다국적기업 소위의 공청회가 발단이 됐다. 미 항공기 제작사인 록히드의 회계담당자가 신형 '트라이스타-L1011형'의 판촉을 위해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총액 1천6백만 달러의 뇌물을 제공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당연히 일본에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여론이 불같이 일어났고 도쿄지검 특수부는 전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하던 정치권은 직간접적 압력을 검찰에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세 다케시 당시 검찰총장은 수사검사들에게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사표 쓸 걱정은 하지 말라"며 정치권 외압에 바람막이가 돼 주었다.

이에 힘입어 검찰은 미국 검찰, 연방증권거래위원회 등과 사법공조를 통해 증거확보에 나섰다. 태평양을 오가며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뇌물수수 당시 록히드 부사장, 일본지사장, 동경사무소장 등으로부터 진술조서를 받아내는데 성공, 일본 권력 핵심에 엄청난 금액의 로비자금이 유입됐음을 확인했다. 특히 당시 집권 자민당내 최대 파벌의 영수로 막후에서 정계를 주무르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는 뇌물사건의 '몸통'으로 떠올랐다.

다나카 전 총리가 수사선상에 포착되면서 정치권의 압력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젊은 검사들로 구성된 수사팀은 수사개시 6개월 만에 일본 정계의 거물 다나카의 두 손에 수갑을 채우고야 말았다.

검찰은 다나카 전 총리가 총리 재직 중이던 1972년 자택에서 일본 항공사인 젠니쿠(全日空)가 록히드 비행기를 선정해 구입토록 운수상에게 지시했고, 그 성공 보수로 현금 5억엔을 약속받았다는 점을 들어 76년 7월 그를 기소했다. 이후 보강수사를 통해 76년 8월 16일에는 다나카 전 총리가 비서를 시켜 4차례에 걸쳐 록히드측으로부터 5억엔을 건네받았다는 사실을 확인, 수뢰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은 또 하시모토 도미사부로 전운수성장관, 사토 다카유키 전운수성 정무차관을 차례로 구속, 기소했다. 뇌물 수수를 중개한 로비스트 고타마와 기업 관계자들도 위증죄 및 탈세 등의 혐의로 일망타진됐다.

이 사건은 수사 착수 6개월 만에 정권 실세의 구속이라는 개가를 올렸으나, 사건의 재판은 무려 19년을 끌었다. 다나카 전 총리는 1, 2심에서 징역 4년, 추징금 5억엔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후 1995년 2월에서야 최고재판소에서 확정판결이 내려져 다나카 전 총리 등 11명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다나카 전 총리는 그러나 상고 중인 93년 사망했다.

록히드 사건은 권력의 전방위적인 압력과 회유를 극복하고 권력비리를 파헤쳐 결국 정권 실세를 법정에 세운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일본 검찰 역사에 기록됐다. 이 사건으로 일본 검찰은 전후 내내 시달려온 '정치권의 시녀'라는 오명을 씻고 추상같은 검찰권을 쟁취했다.

***검찰의 집념과 수사력의 개가, '리쿠르트 사건'**

89년 일본 다케시타 정권의 붕괴를 불러온 리크루트 사건은 한 지방 공무원의 수뢰사건이 발단이 됐다.

88년 6월 가와사키시 간부가 리크루트 코스모스사의 상장 전 주식을 증여받은 사실이 아사히 신문에 보도됐다. 주식은 이 회사가 추진하던 가와사키역 앞 재개발사업에 편의를 봐달라는 명목의 뇌물이었다.

처음에 사건은 단순 독직 뇌물사건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검찰은 리크루트사 임직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당 액수의 상장 전 주식이 정.관계에도 뿌려졌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리쿠르트사의 에조에 히로마사 회장이 80년대 중반 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미공개 주식을 자민당 등 일본 정부의 고위 각료와 여권 실력자들에게 대량으로 제공한 뒤 시세 조작을 통해 거액의 이익을 안겨주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사건이 대형 권력 비리로 비화되자 당황한 정치권은 갖가지 통로를 통해 검찰 수사에 압력을 행사하려 했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는 정권의 압력을 뿌리치고 철저 수사를 지시했고 사건을 이어받은 도쿄지검 특수부는 수사의 칼날을 권력 중심부로 겨누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일본 정계를 주무르는 거물 정치인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총리, 유력한 총리후보이던 아베 신타로 자민당 간사장, 미야자와 기이치 전 대장성장관, 와타나베 미치오 자민당 정조회장 등 자민당 내 최고위급 인사들이 수천만엔에 달하는 뇌물과 주식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여당 뿐만 아니라 사회, 공명, 민사당 등 야당 국회의원의 연루사실도 드러났다.

그 와중에 다케시타 총리의 '금고지기'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던 전비서는 다케시타와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11개월여 동안 진행된 검찰의 치밀한 수사는 결국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리쿠르트사가 정치권, 문부성, 노동성 등의 루트를 통해 각종 사업 청탁과 함께 회사의 미공개 주식을 각계 실력자들에게 싼 값에 제공했고, 이들은 리쿠르트사의 각종 사업과 관련된 지원을 해 준 것이다.

결국 에조에 회장을 비롯한 12명이 기소, 대부분이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다케시타 총리는 89년 4월 25일 자금 수수 사실을 인정한 가운데 국민들 앞에 나서 자신의 퇴진 성명을 낭독해야 했다. 70년대 록히드 사건에 이어 검찰의 집념과 수사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며 일본 검찰을 성역 없는 수사기관의 반석에 올린 또 한번의 개가였다.

이후 이 사건은 당시 장기집권하고 있던 일본 자민당의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히면서 일본 사회의 뿌리깊은 정경유착에 대한 국민들의 반성과 자각을 일깨운 계기를 제공했다.

특히 일본 중·고교 사회교과서에 이 사건이 기록돼 정치윤리를 되새기는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30년 자민당 장기집권을 끝낸 '사가와규빈 사건'**

90년대 들어 자민당을 암중에서 쥐락펴락하던 '암장군(暗將軍)' 가네마루 신 부총재를 정치헌금 스캔들과 관련해 탈세혐의로 구속시킨 '사가와규빈' 사건도 일본 검찰의 빼놓을 수 없는 개가다.

92년 6월 도쿄지검 특수부는 유통기업 '사가와규빈'이 정치인 10여명에게 최소한 21억5천만엔을 뿌렸다는 단서를 포착했다. 수사 과정에서 당시 정계실세였던 가네마루 부총재의 비리혐의가 떠올랐다. 가네마루 부총재는 다나카의 뒤를 이은 나카소네 정권이후, 다케시타, 우노, 가이후, 미야자와 총리에 이르기까지 킹 메이커 역할을 일임해온 일본 정계 최고의 거물이었다.

언론에 사건이 보도되자 자신의 권력을 믿은 가네마루 부총재는 그해 8월 기자회견을 열고 "'사가와규빈'으로부터 5억엔을 헌금으로 받아 90년 총선당시 소속의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밝히고 부총재직을 사퇴했다. 정치자금에 대한 개인적 유용은 없었다는 주장이었으며, 들끓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당 부총재직만 일단 내놓고 추후에 다시 정치를 시작하려는 계획이었다.

검찰도 같은 내용의 상신서를 바탕으로 가네마루 부총재에게 20만엔의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에 그침으로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일본국민들은 엄정하고 추상같은 수사로 유명한 도쿄지검 특수부의 이같은 사건마무리에 실망과 분노를 표시했으며 거센 항의시위를 벌였다. 검찰청 현판은 시민들의 페인트 세례를 받았고 아오시마 의원은 단식을 시작했다. 서슬퍼런 권력에 굴하지 않고 록히드 사건과 리쿠르트 사건을 수사하던 도쿄지검 특수부의 기백은 어디로 갔느냐는 항의였다.

특히 사이토 미치오 삿포로 검사장이 약식기소 다음날 아사히 신문에 기고한 글은 여론을 결정적으로 결집시켰다. '검찰관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사이토 검사장은 검찰의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검찰은 국민에 대신해 국민이 알고 싶은 사안을 조사한다. 개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검찰은 권력에 굴하지 않았고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법세계에서 특정인을 특별 취급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역대 검사총장은 철저한 진상규명, 엄정공평을 소리높이 외쳐왔다."(아사히 신문 92년 9월 29일자)

가네마루 부총재에 대한 약식기소에 반대하는 여론이 이처럼 들끓자 도쿄지검은 가네마루 부총재와 그의 비서 하이바라의 87년부터 91년까지의 소득세를 추적하는 등 전면적인 수사를 벌였다.

결국 가네마루 부총재가 정치자금으로 거둬들인 자금의 일부를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한 것이 밝혀져 마침내 일본정계의 대부로 통하던 가네마루 부총재는 소득세법 위반의 탈세 혐의로 전격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사가와규빈' 사건은 중간의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당대 최고의 거물정객을 단지 몇 년간의 소득세 탈세 혐의만으로도 구속시킨 일본 사직당국의 추상같은 법집행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됐다.

***"매의 눈으로 거악을 감시하라"**

도쿄지검 특수부 출신으로 1980년대에 검찰총장을 지낸 이토 시게키는 록히드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던 당시 검찰의 자세에 관해 이런 명언을 남겼다.

"검찰은 늘 배 고프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사회를 감시하는 날카로운 눈을 잃어서는 안된다. 국민의 마음에서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회의 움직임, 경제의 흐름 등을 응시할 때에 검찰이 맞붙어 싸워야 할 거악의 희미한 윤곽이 떠오를 것이다."

이같은 도쿄지검 특수부의 기개는 아직까지 국민으로부터 신망보다는 불신이, 애정보다는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한국 검찰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말이다. 흔한 말이지만 위기는 기회다.

한국 검찰이 오늘의 '수난시대'를 극복하고 '거악의 감시자'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