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는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해왔다. 특히 작년 중의원 선거에 이어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아베 정권은 올해 내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의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아베 정권은 1차 집권 시절이었던 2006년 9월-2007년 9월에 네 가지 상황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여기에는 미국으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요격, 공해 상에서 미국 함선 보호,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하는 타국 군대에 대한 경호 및 후방 지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본 내각의 법제국이 난색을 표하는 등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돼 왔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7월 21일 열린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참의원 당선자 이름 옆에 빨간 꽃을 붙이고 있다. 이날 선거에서 자민당은 선거 대상 의석인 121석 중 역대 최대인 65석의 의석을 획득했다. ⓒAP=연합뉴스 |
방위계획대강에 집단적 자위권 반영 목표
아베 신조의 집단적 자위권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총리 자문기구인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을 위한 간담회'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한 헌법 해석 재검토를 맡겼다. 이 간담회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유형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을 것이 확실시된다.
아베 정권은 이 간담회에서 내놓을 의견을 구체화하기 위해 소위원회도 구성키로 했다. 소위원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헌법 해석 변경 논의를 가속화하기 위해 설치되었다는 것이 일본 언론들의 평가이다.
이와 동시에 아베 총리는 내각 법제국 장관도 교체했다. 집단적 자위권 찬성파로 알려진 고마쓰 이치로(小松一郞) 주프랑스 대사를 기용해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일본 정부 내의 입장부터 통일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아베 정권은 연말까지 새로 작성할 예정인 방위계획대강에 집단적 자위권을 반영하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은 8월 4일 총리 자문기구가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 해석 재검토 결과를 내놓으면 방위계획대강에 반영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현재 상태로는 일본 방위를 위해 파견된 미국 함선이 공해상에서 공격을 받아도 자위대가 방어에 나설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미·일동맹이 아주 이상하게 된다"며 집단적 자위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겨레>가 전했다.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전범 국가였던, 그래서 패전 이후 전쟁 포기를 헌법에 명시했던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변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일본 우파의 집착도 대단하다. 이에 따라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희생양이었던 한국으로는 이러한 움직임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오늘날에도 일본 정부가 역사 인식, 교과서, 독도, 위안부 문제 등에 있어서 사사건건 도발을 일삼고 있다는 점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일본의 우경화 행보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미 최첨단 무기체계를 중심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날개마저 달게 되면 군비증강과 군사적 역할 확대는 불 보듯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하면 공대지, 함대지 미사일 등 공격용 무기 확보와 선제공격 독트린 채택의 길도 열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제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일본 자체나 한일, 중·일 관계 차원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및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이 이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미사일방어체제(MD)를 비롯한 미·일 동맹 강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올해 8월 2일에 작성된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미·일 관계 보고서에 담긴 아래 내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과 일본이 점차적으로 MD 협력을 통합하고 있는 반면에, 집단적 자위권이 금지되고 있는 현실은 일본 사령관들로 하여금 피격 당사자가 미군인지, 일본인지를 판단하는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현행 헌법 해석에 따르면, 미국이 공격받더라도 일본군은 대응할 수 없다."
정리하자면, 한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이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이는 자칫 한국이 한미관계와 한일관계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일 간에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
그런데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한국의 정서적 거부감과는 달리, 실질적으로는 한국이 미·일 동맹의 집단적 자위권 구조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MB 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도 미국 주도의 한-미-일 3자 MD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집단적 자위권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한-미-일 MD 체제에 따라 한국이 일본으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정보를 미·일 동맹에 제공하거나 요격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이 일본에 대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거꾸로 일본이 한국으로 향하는 미사일 정보를 제공하거나 요격을 시도하는 것 역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필자가 줄곧 'MD는 한-미-일 3각 동맹에 대한 한국인의 거부감을 무력화하는 트로이의 목마'라고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본 군국주의 및 냉전의 최대 피해자이자 신냉전 출현 시 가장 큰 잠재적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현명한 대처가 절실히 요구된다. 현명한 대처의 핵심은 일본의 우경화 및 한-미-일 MD의 최대 구실이 되고 있는 '북한위협론'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있다. 동시에 중국의 부상을 지역 질서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해 동북아 평화안보체제에도 능동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6자회담이다. 6자회담은 북한 위협을 관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틀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구축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개성공단을 살려 남북관계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이를 토대로 6자회담의 문도 열어야 하는 전략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6자회담이야말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포함한 우경화 행보를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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