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들의 기수를 크게 낮추는 인사안을 마련해 6일 검찰에 통보하자 검찰 간부들이 집단 반발하며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검찰들이 법무장관의 인사권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벌인 것은 초유의 항명사태다.
특히 이번 인사안을 계기로 강금실 법무부 장관 임명 등을 둘러싼 검찰의 불만이 폭발해 새 정부와 검찰이 정면 충돌하는 최악의 '검란(檢亂)'사태로 비화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어 귀추가 주목된다.
대검 간부들은 이날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검찰인사를 협의해 온 오랜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며 서열을 중시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문을 작성했으며, 김 총장은 강 장관에게 이를 전달했다. 일부 간부들은 사시 17회인 정상명 검사장의 법무차관 내정까지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금실 법무장관과 김각영 검찰총장은 7일 오전 9시부터 다시 만나 인사 문제를 협의중이나, 강 장관이 항명을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고 청와대도 검찰항명을 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하는 강경입장이어서 앞으로 파문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고검장에 사시 14~16회 발탁**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이날 오전 사시 12회 고검장 세 명의 사퇴로 공석이 될 네 자리의 고검장(대전고검장은 공석)에 사시 14~16회 간부들을 발탁, 임명하는 인사안을 김각영 검찰총장에게 통보했다. 발탁 대상자는 정홍원(사시 14회)부산지검장, 김종빈(15회)대검 중수보장, 서영제(16회)청주지검장, 임내현(16회)전주지검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당초 14회 출신 검사장 중심으로 승진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것으로, 사시 17회인 정상명 차관 내정자보다 위 기수인 검사장급 이상 간부 31명 중 과반수인 17명 정도가 퇴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검찰을 받아들이고 있다.
강 장관은 이들 네 사람을 제외한 동기 또는 선배 기수 간부들에게 퇴진 여부를 묻도록 김총장에게 통보했고, 서울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 등에도 사시 16회 또는 17회를 임명하는 안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역없는 수사하자"**
검찰은 이에 따라 이날 오후 5시께 김총장 주재로 대검 간부회의를 소집, 검찰 차원의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대검 간부들은 파격 인선의 문제점을 담은 '총장님께 드리는 글'이란 건의문을 김 총장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간부회의에서는 "법무부가 검찰과 한 차례 협의도 없이, 지휘부 기수를 대폭 낮추는 방법으로 인위적인 인적 물갈이를 시도하면서 조직의 안정성을 해치고 있다"며 인사안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정상명 법무차관(사시 17회) 내정자에 대해서도 "사시 17회 차관 내정 문제는 검찰 전체에 대한 인사 파격을 예고하는 것으로 내부 분위기상 용납하기 힘들다"며 검찰총장에게 차관 내정을 취소토록 건의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검찰 간부들은 서열을 중시해 달라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검찰 일각에서는 집단 사표를 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현재 검찰이 개혁대상 1호로 지적된 데에는 검찰 자체 책임도 크나 검찰을 '정치검찰'로 만든 정치권 책임도 그 못지 않다"며 "앞으로는 그동안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태도를 보여온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성역없는 조사를 하자"는 의견도 제시된 것으로 알려져, 향후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김각영 총장은 6일 밤 강금실 법무장관을 만나 이같은 분위기를 전달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해, 7일 오전 9시부터 다시 만나 협의중이다. 강금실 법무장관은 그러나 이같은 검찰의 집단행동을 인사권 도전으로 해석하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새로운 타협안이 나올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청와대, "대통령에 대한 도전"**
청와대는 이날 검찰 인사안에 대한 파장이 크게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사태 추이를 주시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특히 검찰이 정상명 법무차관 내정을 철회할 것을 강 장관에게 건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자 이를 새 정부에 대한 '조직적 항명'으로 해석하며 격노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만약 검찰의 내정철회 요구가 행동으로 옮겨질 경우, 이는 강 장관이 아니라 인사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 엄중 대응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이날 검찰의 집단 반발과 관련 "인사권자가 한 인사에 대해 반발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대통령이 사법시험 17회 출신을 차관으로 임명한 마당에 16회 출신에서 고검장이 나온다고 검찰이 반발한다면 인사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문 수석은 또 "검찰에 대한 최종 인사권자는 대통령이지만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검찰 인사를 지시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도 "강 장관의 인사방침엔 대통령의 신뢰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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