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특위(위원장 김충조)는 20일 고건 총리 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어 고 지명자의 국정 운영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검증에 착수했다.
이날 청문회에선 ▲고 지명자 본인 및 차남의 병역면제 ▲79년 10.26 직후 청와대 정무2수석 비서관, 80년 5.17 비상계엄확대 당시 정무수석 비서관, 87년 6월 항쟁 당시 내무장관으로서 행적 ▲역대정권에서 요직에 중용된 배경 ▲88년 서울시장 재직 당시 수서택지분양 사업에서의 역할 등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됐다. 이밖에 대북송금 사건, 북핵문제 대처 방안, 대구 지하철 참사 등 현안에 대한 질의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청문회는 대구 지하철 참사의 여파로 그리 열띤 분위기를 이어가지는 못했으며, 총리 지명 직후 언론에서 언급된 의혹 이외에 새롭게 제기된 의혹은 거의 없었다.
특위는 21일에는 노재현 전 국방장관과 김유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 증인과 참고인 22명을 상대로 주요 쟁점과 의혹에 대한 진술을 들은 뒤 청문회를 마친다. 그리고 오는 25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이 끝난 직후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고 지명자에 대한 인준안을 표결할 예정이다.
***10.26, 5.17, 6.10 행적 문제 논란**
이날 청문회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의 정치적 '무소신'과 불투명한 행적 등이었다.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은 "79년 10.26 당시 청와대에서 당직을 섰던 장관과 비서관이 고 지명자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고 지명자는 박근혜 의원의 지시를 받아 장례차를 준비했다고 했는데 박 의원은 '당시 내외귀빈들과 인사를 해야 할 입장이어서 고 지명자와 상의할 입장이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고 지명자는 홍성철 전 보사부 장관이 보내온 사실확인서를 보이며 "당시 저를 본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장례절차와 관련, 당시 김종필 공화당 부총재가 중요사항을 결정했고 김 부총재가 버스 개조 장례차를 그린 메모를 제가 받아 총무처에 넘겼다"고 해명했다.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80년 5.17 당시 20일간 무단결근했는데 사표를 냈다고 하더라도 청와대 고위공직자로서 당당하지 못한 처신이 아니냐"며 "모시던 최규하 대통령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대립했던 신군부에는 3개월 뒤 참여했는데 이것도 헌정에 참여한 것이냐"고 추궁했다.
고 지명자는 "당시 탱크가 중앙청을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사표를 내서는 사의를 관철하기 어렵다고 판단, 그해 5월 17일 오후 9시쯤 이송용 비서관에게 사표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 민주당 이호웅 의원이 "80년 5월 당시 비상계엄을 미리 통보받았다는 심증이 있고 신군부에 협조하기로 하고 내각에 들어간 게 아니냐"고 묻자 고 지명자는 "고명승 장군을 통해 국보위에 참여하라는 얘기를 받았지만 고사했다"면서 "신군부에 협조할 것이면 사표를 왜 냈겠느냐"고 반문했다. 고 지명자는 "5.17때 사표를 안 냈으면 겸직 국보위 위원으로서 참여, 독려, 지원해야 했을 것"이라며 "지금 생각해도 참여안 한 것은 옳았다"고 항변했다.
87년 6월 항쟁 당시 위수령 발동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은 당시 강태홍 부산시장과 전두환 대통령의 증언을 근거로 "강태홍 부산시장은 위수령 발동을 건의한 적도 없고 당시 대통령은 정권을 잘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에 '위'자도 못 꺼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 지명자는 "그것은 역사책에도 나와 있다"며 "분명히 부산기관장 대책회의에서 위수령을 결정해 보고했는데 내가 중지시켰다"고 맞섰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고 지명자가 87년 6월 항쟁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원 의원은 당시 고 지명자가 법무장관과 함께 시위대를 '반체제세력'으로 규정한 담화문을 발표한 것을 지적하며 "지명자는 6.10 시위진압 책임자였던 반면 노무현 당선자는 국민운동본부 부산집행위원장으로 시위의 선두에 있었다"면서 "서면답변에서 6.10 항쟁을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는데 견해가 바뀐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이에 고 지명자는 "당시 치안질서 유지의 주무장관으로서 실정법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정치적, 역사적으로 봤을 때 6.10 항쟁은 6.29 민주화선언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기였다"며 "당시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상당한 시위대도 치료를 해주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은 "안정형 총리로 고 지명자 카드를 선택한 것은 인정하지만 꼭 필요한 시점에 단호하게 노(NO) 라고 얘기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있다"면서 "5공 후반기인 12대 민정당 국회의원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시국사건이 빈발했지만 내무위에서 단 한마디도 언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 지명자는 "당시 지방자치제를 새로 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제가 말해야할 처지에 처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오 의원은 다시 "이상재 안영화 구용상 의원 등 관료나 군출신 의원도 모두 가슴 아파했다"면서 "침묵하면 편하지만 그게 반복되면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게 된다"면서 "필요할 경우 자리를 걸고 노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국민이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회창은 아들 병역 때문에 대선서 두 번 떨어졌는데..."**
또 다른 쟁점은 고 지명자와 차남 등 가족의 병역 면제 의혹이었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이회창 전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이 대선패배의 한 요인이 됐다며 '불공평성'을 집중 제기했다.
한나라당 임인배 의원은 "총리 후보자 뿐만 아니라 형제와 차남은 면제, 나머지 두 아들은 복무기간 단축 등 누구하나 현역으로 군 생활을 한 사람이 없다"며 "이회창 후보는 본인도 아니고 자식이 군에 가지 않은 이유로 두 번이나 대선에서 낙선했는데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추궁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차남인 고휘씨는 84년 최초 신검에서는 1급 판정을 받았고 '정신과' 항목에서도 정상으로 판정되었는데 3년 후인 87년에는 5급 징집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지적하고 "87년 당시에는 병무비리가 심했던 시절"이라며 면제판정의 근거제시를 요구했다.
자민련 송광호 의원은 "고 지명자는 대학교를 졸업한 60년 3월부터 70년 12월에 면제되기까지 10년 동안 언제쯤 군대를 가게될 지 궁금해 하거나, 입대를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면서 "고 지명자의 첫 근무지인 내무부 행정과와 지방병무청이 관계가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고 지명자는 "60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영장을 기다렸으나 당시 병역기피자 45만명이 우선 입대, 징집자원이 넘치는 바람에 영장이 안나왔고 이후 62년 병역법이 개정돼 안갔다"고 해명했다.
또 "5.16 직후 '병역미필자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돼 병역미필 공직자들에 대한 해면조치가 단행되어 군복무를 필하지 않고는 공무원 생활을 할 수 없었던 만큼 62년 공직에 임용된 것은 결코 병역을 기피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반박했다.
차남의 병역 면제 의혹에 대해서는 "차남은 심각한 질환으로 2차례에 걸쳐 서울대병원에 11개월간 입원했으며, 퇴원후 학업을 계속한 것은 병이 완쾌돼서가 아니라 질병치료를 위해 학업을 계속하는 게 좋겠다는 주치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차남이 병역면제를 받은 것은 87년 5월2일인 반면 제가 내무장관에 취임한 것은 87년 5월26일"이라고 밝혔다.
***"헌법에 충실한 총리제 확신"**
한편 고건 총리 지명자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정책적 차이를 인정하면서 인준받을 경우 총리 권한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주목된다.
고 지명자는 '노 당선자와 정책적 방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큰 정책방향에 대해선 일치한다고 보나 구체적인 표현이나 정책수단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노 당선자와 토론으로 조정하고 의견을 수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 지명자는 또 "노 당선자와 만났을 때 여러 말이 있어 헌법규정에 충실한 총리제를 확신한다"고 말해 총리 권한 강화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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