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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건, 개혁성은 의심스러워"

참여연대 등, "청문회후 찬반 입장 밝힐 것"

고건 총리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가운데 참여연대가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에 비추어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개혁성을 평가하기 어려운 고건씨를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20일 국회 인사청문특위에 제출한 고건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인사의견서를 통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민주성ㆍ개혁성 불합격"**

이 인사의견서에 따르면, 고 지명자는 국정수행 및 통합 조정 능력 면에선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또 도덕성과 신뢰성 측면에서는 본인 및 차남의 병역 면제 과정, 1990년 수서아파트 택지 개발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 등이 문제로 제기됐으나, 재산축적과정에 의혹이 제기됐던 장상, 장대환, 김석수 총리지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민주성과 개혁성이란 평가 기준에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연대는 "집권초의 첫 국무총리는 대통령 당선자의 통치철학과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통령이 단행하는 각 분야의 개혁정책을 안팎으로 보좌할 수 있는 인사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정권이 이양되는 민감한 시기에도 매번 주요한 공직을 수행했다는 것이 고건 지명자의 공직수행 능력을 높이 평가할 만한 지점이 되기도 하지만, 반면 정치적 소신이 불투명하고 기회주의적 처신에 능하며, 민주주의와 개혁에 대한 입장이 무원칙했던 게 아니냐는 의문을 낳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1979년 10.26 당시 3일 동안의 행방 ▲1980년 5.17 당시 비상계엄 확대 반대 사표제출 건 ▲1987년 6월 항쟁 당시 내무부 장관으로 강경진압을 건의했다는 의혹 등에 대해 청문회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참여연대는 지적했다.

***참여연대ㆍ경실련 "인준 찬반 입장 밝힌 것"**

참여연대 이지현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20~21일 국회 총리 인사청문회를 모니터한 뒤 총리 인준에 대한 찬반 입장을 24일께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김대중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인 장상, 장대환, 김석수 총리 지명자 인준 과정에도 평가서를 발표, 모두 인준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경실련 신철영 사무총장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고건 지명자의 경우에는 냉엄하게 지켜보고 종합하면서 여러 가지 사항을 보고, 청문회도 지켜본 후에 최종적인 의견을 낼 것"이라면서 인준 찬반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지난번 장상, 장대환 지명자의 총리인준 실패에는 시민단체들의 인준 반대가 큰 작용을 했다. 과연 이번 고건 지명자에게는 어떤 최종 평가가 나올지, 각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음은 참여연대가 이날 국회에 제출한 인사의견서 중 고 지명자에 대한 평가 부분이다.

***1.국정수행 및 통합 조정 능력**

○ 40여 년의 공직 경력과 업무스타일

- 고 지명자는 6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내무부 수습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하여 지난 40여 년 동안 과거 각각의 정부 하에서 단절 없이 고위공직 생활을 해 온 인물로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와 '무사안일의 표본'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 고 지명자는 공직 재임기간 업무 스타일 때문에 엇갈린 평을 받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책결정은 본인이 직접 하지 않고 위원회나 일회성 심사단을 구성하여 결정하였다. 서울시장 재직시절 서울시 내에 50여 개의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것에서도 이는 드러난다. 고 지명자의 이런 업무스타일에 대해 민주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결단력이 부족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서는 자기관리를 위해 책임회피를 한다라는 지적도 있다.

○ 1997년 IMF 환란 당시 국무총리로 재직했다는 점

- 고 지명자는 97년 김영삼 정부 임기 말기 국무총리 재직시절, 외환위기에 대해 사전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 후보자는 이에 대해 국무총리가 내각을 통할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주요 경제정책 과정에 참여하지 못해 왔다는 관행을 들어 사전 예방에 나서지 못한 점을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 각 부처의 업무를 조정, 총괄하고, 국정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하는 국무총리의 책임 있는 해명이라 볼 수 없고, 또 같은 역할에 지명된 공직 후보자의 자질로도 역시 적절한 해명이라 하기 어렵다.

***2.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개혁성**

○ 1979. 10. 26 청와대 정무2수석비서관 시 3일 동안의 행방

- 당시 대통령 정무2수석비서관이었던 고 지명자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직후 국상 기간이던 3일간 잠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본인은 큰 딸 박근혜씨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 본관에 마련된 빈소에서 사흘밤을 꼬박 새우며 국장을 준비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본인의 해명과는 달리 당시 청와대 관련자들과 박근혜 의원 측은 상반된 증언을 하고 있다.

○ 1980. 5. 17 비상계엄 확대 시 비상계엄 확대 반대 사표제출 건

- 80년 5. 17 비상계엄확대 당시 고 지명자의 행적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고 지명자는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비상계엄이 확대되면서 군정에 참여할 수 없어 운전기사를 통해 이송용(작고) 비서관에게 사표를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군정에 반대하여 사표를 내고 칩거했다는 고 지명자가 5개월 후 전두환 정권하에서 장관이 되고, 민정당 의원까지 지낸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력이다. 고 지명자는 이에 대해 '국보위의 군정체제가 끝나고 헌정체제로 돌아왔으니 본연의 전문분야(행정)로 복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이 역시 민주주의와 정치적 소신에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1987. 6. 10 항쟁 시 내무부장관으로서 강경진압을 건의했다는 설

- 고 지명자는 87년 내무부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6․10 민주화 항쟁 당시 명동성당 시위에 대해 강경진압을 건의하였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87년 6월8일 내무 법무부장관 합동담화를 통해 고 지명자가 '6․10 대회는 불법대회이며 야당, 일부 종교인들, 좌경불순세력이 결합한 집회로 대부분의 국민은 원치 않는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이 바로 논란의 핵심이다. 그러나 고 지명자는 이에 대해 "담화는 내무부장관으로서 정부의 입장을 대변했을 뿐"이며 본인은 오히려 평화적 해결을 건의하였고 본인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명동성당 사태가 일어난 지 닷새만에 명동성당 사태는 대화로써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87년 6월은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이룩하려는 국민들의 열망이 분출되었던 때로, 지명자가 당시 내무부장관으로써 이에 대한 어떠한 입장과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는 지명자의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을 검증할 주요한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의 거짓 없는 증언과 본인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서울시장 재직 시절

- 고 지명자는 김영삼 정부 임기 말기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총리를 그만두고는 곧바로 국민회의에 입당하여 김대중 정부의 서울시장 후보로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고 지명자의 이러한 정치적 행보에 대해 '양지를 쫓는 기회주의적 처신'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고 지명자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98-2002년) 참여연대가 '서울시장 판공비내역 공개사업'을 추진할 당시 고 지명자는 시장의 판공비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서울시의 공개 범위와 수준은 매우 미흡하였다. 판공비의 일부만을 축소 보고하고, 그나마도 세부 내역은 공개하지 않아 판공비 전면 공개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참여연대는 현재 '서울시장의 판공비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판공비는 국민의 혈세로 편성․집행되는 예산인 만큼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 지명자가 이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았던 점은 실망스럽다.

- 그러나 고 지명자는 서울시장 재직 시절 복마전이라 불리었던 서울시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반부패 투명행정 시스템', 행정서비스 시민평가제를 도입하는 등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특히 본인이 어떠한 부패사건에도 연루되지 않았던 점과 서울시의 부정부패를 원천봉쇄하고, 투명한 행정을 위해 인․허가 처리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행정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평가할 만 하다.

- 고 지명자는 민선 서울시장 재직시절 50여 개의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위원회 시장'으로 불려왔다. 이는 다양하고 민주적인 의견수렴이란 긍정적 측면도 가지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상반된 입장이 명확한 사건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지명자 특유의 업무스타일이라는 지적도 있다.

***3.도덕성과 신뢰성**

1) 재산문제

- 고 지명자는 본인과 배우자, 부친, 세 아들 부부를 포함해 모두 35억6100만 여 원의 재산을 신고하였다. 현재 고 지명자 부부의 재산은 13억9015만원으로 지난해 6월 서울시장 퇴임 당시 신고한 재산 12억 800여만원보다 1억 8178만원 (공시지가 인상분으로 해명 등)이 늘어난 분이다. 전반적으로 지명자는 불법, 편법적인 방식으로의 재산증식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 병역문제

도덕성과 신뢰성의 부분에서는 이번에도 역시 병역문제가 검증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다. 병역문제는 이미 앞서 수 차례 공직 후보자의 인사청문 과정에서도 불거져 공직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반복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일례이다. 고 지명자 일가의 병역문제도 청문회 과정에서 철저히 규명하여 공직자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혐오를 불식시켜야 하겠다.

○ 본인과 차남의 병역 문제

- 고 지명자는 58년 대학재학 시절 최우선 현역 입영 대상 판정을 받았으나 '재학 중 입영연기'를 하던 중 62년 병역법이 개정되면서 보충역으로 편입되었고, 71년에 고령 (당시 32세)면제처분을 받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보충역으로 편입된 이후 최종 입영면제를 받은 71년까지 영장이 나오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어 고의적인 회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고 지명자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차남의 경우, 84년 대학재학시절 신체검사에서 1급 현역판정을 받았으나 대학원 재학 중인 86년 병을 얻어 11개 월간 입원치료를 받고 87년 5월 재신검에서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질병으로 징집면제 판정을 받은 해에 차남은 여전히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고, 다음해 무리 없이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공직자 인사검증에 있어 고의적인 병역면제 의혹은 이제 빠질 수 없는 단골 검증사유가 되었다. 고 지명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본인과 차남의 병역면제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 의혹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3) 1990년 한보수서사건 처리 논란

-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90년 한보그룹에 수서택지를 특혜분양하는 과정에서 당시 고 시장이 청와대 눈치만 살피다가 당정회의, 건설부 질의, 국회 청원 등으로 시간을 끌면서 한보 로비의 불길을 잡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고 지명자는 이에 대해 본인은 '무주택 서민에게 돌아갈 택지를 특정업자에게 특혜분양할 수 없다'며 분양불가 방침을 통보하고도 이후 두 차례나 같은 결정을 하며 외압을 거부하다가 타의로 시장직을 물러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경유착과 정치인 부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는 수서사건의 처리과정은 고 지명자의 공직자로서의 자질 검증의 충분한 기준이 될 것이다. 고 지명자는 청문회 과정에서 수서아파트 택지개발 인허가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투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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