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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몽헌 기자회견후 여야갈등 심화

3억달러 조성경위 등 핵심의혹 침묵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16일 대북송금에 관해 직접 해명했으나 지난 14일 김대중 대통령의 발표내용과 큰 차이가 없어 대북송금의 전모 파악에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김 대통령과 정 회장의 해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17일 일단 법사위에 특검법안을 상정하고 25, 26일 양일간의 본회의에서 반드시 이를 통과시킨다는 방침이어서 특검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심화될 전망이다.

***“5억불 송금,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기여”**

정 회장은 이날 금강산 육로 시범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콘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북 7대 사업의 대가로 북한에 5억달러를 송금했다"면서 "이것이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이어 "대북경협사업은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정부 당국의 깊은 이해와 협조가 불가피했다"고 밝혀 대북송금과 경협사업 추진 과정에 정부가 깊숙이 개입했음을 시사했다.

정 회장은 또 "5억달러라는 송금 규모는 북쪽과 최종 합의한 것"이라면서 "북쪽에서 정식합의서 체결에 앞서 송금해줄 것을 요구했고, 북쪽과 사업할 때는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미리 송금했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이밖에 "정상회담이 남북경협 외에 남북간 긴장해소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생각해 정부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북측에 (정상회담) 의사를 타진했다"면서 "지난 98년과 99년에는 남북 당국간의 대화 채널이 열려 있지 않아 우리가 제의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현대가 북한에 송금한 5억달러가 대북사업 대가인 것은 분명하지만 남북정상회담과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송금이 늦어져 정상회담이 연기됐다"는 항간의 ‘직접 대가설’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정 회장은 5억달러 규모도 현대와 북쪽이 최종 합의한 것으로, 우리 정부가 송금 규모에 대해서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이어 "북측에서도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공감해 2000년 3월8일 박지원 실장과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의 첫번째 만남을 (현대가) 주선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이와 함께 "7대 대북사업 독점권을 외국기업이 아닌 현대가 확보함에 따라 향후 남측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면서 "그동안 합의서를 공개하지 못한 것은 대북사업에 관심을 보여온 일본, 독일 등과의 불필요한 경쟁과 마찰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 회장은 또 “2000년 3월8일 박지원 실장과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의 첫 싱가포르 만남을 주선했으며, 이 자리에는 양측 인사 소개차 정 회장과 당시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이 배석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그러나 현대 측에서 먼저 자발적으로 정상회담 가능성을 북한에 타진했다고 설명하면서도 "현 정부가 출범 이후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여러번 언급했다"는 말을 더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3억불 조성경위, 산은 대출배경 등엔 침묵**

정 회장은 이날 ▲5억달러 중 나머지 3억 달러의 조성 경위 ▲구체적인 송금 시점과 방법 ▲국정원 편의제공 내용 ▲산업은행 대출 배경 및 경위 등 핵심 의문점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피해 여전히 많은 의혹을 남겼다.

정 회장의 해명에선 5억달러 가운데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송금된 2억달러 외의 나머지 3억달러에 대해서는 자금 조달 과정 및 송금시기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2억달러의 송금 시기를 놓고도 2000년 6월9일(임동원 특보)과 6월10일(한나라당)로 엇갈리는 주장이 나오고 있이 이 또한 명확한 해명과 입증이 필요한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문제의 3억달러와 관련, 한나라당에서는 현대건설이 2000년 5월 싱가포르지사를 통해 1억5천만달러를, 또 다른 해외법인을 통해 4천800만달러를 각각 북한에 송금했고,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가 2000년 6월 현대건설을 통해 1억달러를 북한에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가 5억달러 이외에 추가로 자금을 제공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남북 정상회담이 열흘도 남지 않은 시점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대출을 신청, 통상적인 대출관행을 어기고 대출된 돈을 허둥지둥 북한에 송금한 경위도 분명한 해명이 필요한 대목으로 꼽히고 있다.

또 정 회장은 "북한이 계약서 공개를 꺼리는 데다 대북사업에 관심을 보여온 일본 등 제3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사업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일각에서는 북한의 대외정책 관행 등을 들며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 “사실관계 밝혀진 셈” 한나라 “억지스러운 면피용 변명”**

한편 정치권은 정 회장의 해명을 놓고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은 "사실관계의 골격이 밝혀진 셈"이라며 국회에서 관련 당사자들을 불러 추가적인 사실확인을 거친뒤 사건을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은 "청와대와 입을 맞춘 변명으로 의혹만 증폭시켰다"며 특검제 도입과 핵심관계자의 출국금지 조치, 책임자 처벌을 거듭 요구했다.

민주당 정세균 정책위의장은 "사실관계의 골격이 거의 밝혀졌고, 이제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국회에서 관계자들을 불러 확인하고 지혜롭게 마감해야 하며, 야당이 협조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재정 의원은 "현대가 5억달러를 북한에 지원했다면 남북간 신뢰관계 구축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며, 앞으로도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강화해야 한다"며 "특검의 수사대상으로 삼는 것이 앞으로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야 하며,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은 "청와대에서 밝힌 범위내에서 말을 맞춘 것인데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것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일 국민이 어디 있느냐"면서 "자금의 전달경로와 구체적인 시기 등 전후사정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규택 총무도 "현대가 북측과 경협합의서를 작성한 것은 8월인데 아무런 보장도 없이 6월에 천문학적인 돈을 송금했겠느냐"면서 "청와대와 북한 당국간에 이면합의서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박종희 대변인은 16일 논평을 내고 “억지스러운 겉치레 면피용 변명만 늘어놨을 뿐”이라고 비난했다. 박 대변인은 “청와대와 국정원, 현대 모두가 생떼 쓰기로 책임회피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에 비춰 서로 짜고 입을 맞춘 것이 분명하다”며 “특검제로 추악한 정경유착의 실상을 파헤치고 실정법 위반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하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대북송금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을 거듭 요구하며, 특검법안의 단독처리 불사라는 강경카드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장 17일 본회의에서 특검법안을 처리하는 데는 적잖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반대하는 가운데 무리한 법안 처리에 뒤따를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규택 총무는 “특검법안은 17일 법사위에 상정할 방침이나 처리 일정에 여야 합의가 안될 경우 25일 또는 26일 국회 처리를 관철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25일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취임한 뒤 고건 국무총리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어서 26일 처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26일 본회의 개최 자체를 반대하고 있어 25일에 강행 처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보낸 돈은 없다”**

한편 청와대는 정 회장의 발표에 대해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정 회장이 `대북사업의 대가로 북한에 5억달러를 송금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 "정부가 돈을 준 것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또 `대북송금이 남북정상회담 성사에도 일정부분 기여했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15일 대국민담화에서 `현대측의 협력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현대상선이 북한에 송금한 2억 달러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과 관련이 없으며,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보낸 돈은 없다는 그동안의 설명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 대통령이 이미 대국민담화를 통해 입장을 밝힌 만큼 더 할 말이 없다"면서 "다만 정 회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정부가 돈을 준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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