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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의 정체를 밝힌 호주의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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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의 정체를 밝힌 호주의 과학자들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39> 2005 노벨생리의학상 1

▲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의 주인공들. 왼쪽이 로빈 워렌 박사, 오른쪽이 베리 마셜 박사.

개천절 저녁, 세계가 기다리던 소식이 멀리 스웨덴에서 날아왔습니다. 2005년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것이죠. 노벨 생리의학상을 선정하는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의대 연구소는 현지시간으로 3일, 위염과 소화기의 궤양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균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호주의 배리 마셜 박사(NHMRC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연구소)와 로빈 워렌 박사(로열퍼스 병원)에게 올해의 영광을 돌렸습니다.

노벨상은 생리의학상이 가장 빨리 발표한다는 원칙에 따라, 3일 생리의학상, 4일 물리학상, 5일 화학상, 6일 문학상, 7일 평화상, 10일 경제학상의 순서대로 발표됩니다. 카롤린스카 의대 연구소는 두 박사가 지난 1982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발견해 현대인들의 고질병인 위염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등의 원인을 밝혀낸 공을 인정해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두 박사에게는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라는 영예와 함께, 거부 노벨이 남긴 재산에서 들어오는 수익금의 일부인 1000만 스웨덴 크로네(128만 달러, 한화 약 13억 원)의 상금이 기다리고 있지요. (자세한 내용은 http://almaz.com/ 참조)

마셜 박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람입니다. 몇 해 전, 한 유산균음료 광고에 출연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확실히 각인시켜준 적이 있으니까요. 그러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이하 헬리코박터)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지요.

***위 속에 세균이 산다고?**

1979년, 그 때에도 호주의 로열퍼스 병원에서 병리학자로 일하던 워렌 박사는 위염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등 소화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조직을 검사한 결과, 이들 중 상당수의 환자들의 조직 속에서 처음 보는 형태의 박테리아를 관찰했습니다. 더불어 박테리아가 번식한 곳 주변에는 항상 염증이나 궤양 등의 이상이 있다는 것도 더불어 눈치 챘지요. 그러나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발견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위는 강산성의 위액이 분비되기 때문에 미생물은 절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 그 때까지의 통념이었으니까요.

▲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현미경 사진 ⓒ

제 경험상으로도 미생물들은 종류에 따라 적정 ph 범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ph 7~8의 중성 혹은 약한 알칼리성일 때 잘 자랍니다. 사람은 염산이 든 위액을 하루에 2~2.5리터씩 분비합니다. 이로 인해 위장 내부의 ph는 1~3 정도의 강산성을 띠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낮은 ph는 위에서 작용하는 단백질 분해효소 펩신을 활성화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따라서 위 내부는 ph도 낮은 데다가 펩신까지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음식물과 함께 삼킨 미생물들은 대부분 위에서 죽어버리기 때문에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는 것이 통념이었죠. 물론 워렌 박사도 그런 통념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이 미생물들의 존재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워렌 박사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위 속에 염증을 일으키는 세균이 서식할지도 모른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말을 무시했고, 때로는 거짓말장이로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위 속에서는 세균이 살 수 없다는 믿음이 강했기 때문이었지요. 사실 아직까지도 헬리코박터를 제외한 미생물이 위장 내에서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헬리코박터는 유일한 예외였던 것이죠. 그러나 이런 워렌 박사를 믿고 그와 함께 연구했던 사람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노벨상 공동수상자인 배리 마셜 박사입니다. 1981년 만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드디어 1983년 위장 속에 사는 세균의 배양에 성공해 여기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들의 연구결과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합니다(참고로 '헬리코'는 나선 모양, '박터'는 세균, '파일로리'는 위의 유문 부위를 뜻하는 말로, 풀이하자면 위장에 사는 나선 모양의 세균이라는 뜻이 됩니다).

헬리코박터는 발견에서 인공배양에 이르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까다로운 세균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이들의 보고를 믿지 않으려고 했었지요. 그래서 이들의 헬리코박터 증명 실험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 헬리코박터의 확대 사진. 위의 사진을 더욱 확대하면 편모가 보입니다. ⓒ

그 첫번째가 헬리코박터의 인공배양 성공입니다. 마셜 박사는 워렌 박사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몸에서 떼어낸 조직 샘플에서는 헬리코박터를 관찰했지만, 이 균을 인공적으로 배양하는 것에서는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아무리 위 속과 같은 조건을 맞추어 주어도 헬리코박터는 자라지 않아, 마셜 박사는 실험을 접고 휴가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실수로 헬리코박터 배양에 쓴 배양접시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인큐베이터에 넣어두고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인큐베이터 안에서는 그렇게 신경을 써 줘도 자라지 않던 헬리코박터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고 하지요. 헬리코박터는 산소 2-8%, 이산화탄소 10%, 온도 37℃에서 3-5일 이상 배양해야 겨우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기 중에서는 실온에서 6시간 이내에 모두 사멸하기 때문에 배양하기가 까다로워 전통적인 세균학적 방법으로 연구하기가 어려운 세균이었기 때문에 배양이 그토록 힘들었던 것이죠.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헬리코박터의 배양에 성공했지만, 그래도 의심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헬리코박터의 존재와 소화기 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셜 박사는 스스로 헬리코박터 배양액을 마시고, 급성 위궤양에 걸림으로써 자신의 연구결과를 증명하는 다소 엽기적인(!) 짓도 서슴지 않았지요. 헬리코박터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까지는 참으로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했답니다.

***헬리코박터, 너의 정체를 밝혀라**

헬리코박터는 크기 2~7㎛ 크기의 작은 세균으로, 나선형 몸통과 편모를 가지고 있어 액체 속에서 헤엄칠 수 있습니다.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등 소화기 질환에 주요 인자로 꼽히고 있으며,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헬리코박터를 위암의 유발인자로 발표했을 만큼 소화기 질환과 연관관계가 많은 세균입니다. 헬리코박터에 의한 감염률은 30대에 30% 정도였다가 나이 한 살마다 1%씩 증가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물 음식을 나눠먹는 식사 방식과 위장에 자극을 주는 맵고 짠 음식을 즐기는 식습관 때문에 헬리코박터의 서식률이 높은 편입니다. 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사람들의 65%는 위염에 걸려 있고, 이들 중 10∼20%가 소화성 궤양을 앓게 됩니다. 또한 위궤양 환자의 80%, 십이지장궤양 환자의 95%가 이 균에 감염되어 있는 것이 밝혀져 소화기 질환에 주요 원인이 된다는 확신을 굳히고 있지요.

▲ 출혈성 위궤양 환자의 환부 모습 ⓒ

그러나 헬리코박터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모두 위장병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확률이 높아질 뿐이지요. 또한 헬리코박터균의 위점막 세포에 대한 흡착력, 균의 독성 정도, 감염자의 저항력, 감염 당시의 연령, 위산의 정도 등에 따라서 유병율이 달라집니다. 특히 위험한 것은 어릴 때 감염되는 것인데, 어린아기일 때 감염되면 헬리코박터의 위 속 서식 기간이 오래되어 어른이 되었을 때 대부분 심한 위축성 위염을 갖게 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위궤양과 위암의 발생율도 높지요. 따라서 위장 질환에 자주 시달린다면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재발율을 상당히 떨어뜨릴 수 있다 하니 의심이 되시는 분들은 가까운 병원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지요.

올해 노벨상 수상위원회가 워렌 박사와 마셜 박사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한 이유 역시, 이들이 헬리코박터를 찾아냄으로써 유병율이 높고 또한 재발까지 자주 해 매우 불편한 질환인 위장 질환의 원인 중 하나를 밝혀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의학적 성과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지요.

이는 작년에 인간 후각의 매커니즘을 밝힌 리처드 액설 박사와 린다 벅 박사에게 노벨상을 주어 기초 연구의 중요성을 인정했던 것과 대비되는 선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의 심사위원단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줄 수 있었던 의학적 성과에 더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죠.

▲ 헬리코박터 파이로리의 사멸과 위장 질환의 관계(사진 : 한겨레신문) ⓒ

이는 헬리코박터에 대한 상반된 실험결과가 보고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헬리코박터를 없애면 철분 결핍성 빈혈이 완화되고, 만성 두드러기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등 위장질환의 치료 외에도 여러 가지 이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반해 헬리코박터를 완전히 없애면 오히려 역류성 식도염 등 식도 질환이 증가하고 설사를 일으키며 살이 찌는 등의 부작용도 있다는 보고도 있어서, 헬리코박터가 '나쁜 균'이 아니라 인간의 진화와 함께 우리 몸 속에서 적응해 왔던 존재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장균 같은 것이죠. 대장균은 우리 몸 속에 자연스레 존재하는 균이고, 평소에는 아무런 이상을 일으키지 않지만, 외부에서 대량으로 들어온다거나 독성이 있는 변종이 유입되는 경우에만 병을 일으키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헬리코박터 역시 이처럼 반드시 없애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런데 노벨상 수상위원회에서는 헬리코박터를 발견해 위장질환을 해결하는 단초를 제시했다는 이유로 워렌과 마셜 박사를 수상자로 선정해서, 이들의 의견에 무게감을 실어주었지요. (그간의 보고와 논란들에 관심이 있다면 http://bric.postech.ac.kr/biotrend/search_list.php 를 참조하세요)

▲ 헬리코박터를 모방해 만든 인형. 의외로 귀여운(?) 모습을 자랑하는군요 ⓒ

헬리코박터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거리가 남아 있고, 헬리코박터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위장질환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 소화에 별 장애가 없다면 마음 편히 사셔도 됩니다. 다만, 자주 재발하는 위염이나 위궤양 등에 시달리신다면 헬리코박터 감염 여부를 검사받고 이를 없애는 것이 위장질환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 때 헬리코박터의 치료는 단순히 유산균 음료를 마시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강산성인 염산의 바다에서도 견디는 녀석들이니 유산균 음료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헬리코박터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세균이기에 고용량의 항생제를 2~3종 섞어서 사용해야만 완전히 박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발도 잘 되는 편이니 평소에도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겠지요.

어쨌든 오늘은 헬리코박터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헬리코박터가 어떻게 위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다음 시간으로 미루고, 오늘은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 두 박사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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