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도곡동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삼성 타워팰리스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삼성물산의 특혜분양 의혹 때문만은 아니다. 세간의 주목을 끌만한 점들이 많아서이다. 특히 이 곳에 입주해 사는 신흥 상류층의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이 크다.
'강남속 강남'이라 불리는 타워팰리스는 과연 어떤 곳인가? 그 곳에 들어가 봤다.
<사진1>뉴욕인가, 서울인가
***철저한 출입통제 시스템**
타워팰리스는 그 외관부터 대단한 위압감을 준다.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 7개 동이 우뚝 서있는 까닭이다. 타워팰리스는 주변의 다른 고층 주상복합아파트들과 어우러져 마치 이곳이 뉴욕 맨허튼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입구에 서면 자동센서 회전문이 방문객을 맞는다. 그 회전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다시 경비실과 터치스크린 방식의 도어폰이 기다린다. 입주자라면 카드키를 대고 들어가면 되나, 방문객은 도어폰을 통해서 '신분확인'을 받아야 한다. 매일같이 들락거리는 신문, 우유 배달원들은 '출입증'을 받아야만 출입할 수 있다.
자칫 단지 내에서 어리둥절한 채 헤맨다면 젊고 훤칠한 경비가 다가와 무슨 용무로 왔는지 친절히 캐묻는다. 절대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한 표정을 유지해야만 낭패를 보지 않는다.
도어폰으로 집주인과 통화를 하면 유리자동문이 열리고, 안에 들어가면 다시 로비가 나온다. 바닥은 대리석이고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결려 있으며 벽에는 미술품이 걸려있다. 야자나무, 안락한 소파 등이 갖춰져 어느 호텔 로비 부럽지 않게 꾸며 놨다.
초고층 빌딩에서나 볼 수 있는 고속엘리베이터도 잘 갖춰져 있다. 4기는 저층용이고, 4기는 30층 이상의 고층용이다. 고층용 엘리베이터를 타면 50층까지 가는데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 타는 동안의 지루함을 덜게 하기 위해 안에는 뉴스와 생활정보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푹신한 양탄자가 깔린 넓직한 복도가 나온다. 복도를 따라 원하는 집에 도달한다. 문 옆에는 지문인식 장치가 설치돼 있다.
타워팰리스는 호텔같은 바깥 이미지와 달리 집 내부에 들어서면 일반 아파트보다 실평수가 작게 느껴진다. 워낙 공유면적이 많이 잡아먹기 때문이다. 68평 입주자 한 사람은 "전에 살던 60평 아파트는 여기에 비하면 운동장이다"고 말했다.
***"내가 세상의 꼭대기에 올라 성공했다는 느낌이 들더라"**
1차 입주 2개월이 지나자, 타워팰리스는 높은 세간의 관심만큼 입주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첫 방문객에게는 약간 답답하다는 느낌도 든다. 초고층건물인 까닭에 10cm 통유리로 둘러싸여 창문을 열 수 없어 집안에서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입주자는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환기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지금은 익숙해졌다"고 한다. 맨 꼭대기층의 1백24평 팬트하우스의 입주자는 "서울의 쾨쾨한 스모그가 싫어 꼭대기 층으로 이사 왔으며 이 곳에 살다 보니 쾌적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여러 번의 출입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에 대해, 한 주부는 "밖에서 장을 봐서 들어올 때, 통과해야 하는 문이 하도 많아 장본 물건을 손에 들고 다니기 불편해 손으로 끌고 다니는 카트를 하나 구입했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단독주택에 살다가 이사 왔다는 입주자는 그러나"단독주택에 살 때는 보안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여기에 와서는 전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며 "드나드는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보안문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고 했다.
고층 입주자들은 타워팰리스의 최대 장점으로 '멋진 야경'을 꼽는다. 실제로 주변의 고층 주상복합아파트들이 이룬 마천루는 사무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이 곳에 사는 한 젊은 기업가는 "집에 들어와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창밖으로 아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으면, 내가 세상의 꼭대기에 올라 성공했다는 느낌과 함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2> 타워팰리스 내부에서 본 야경
어떤 입주자는 "내가 내 집에 사는 것인지, 출장 와서 호텔에 장기 투숙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며 "한번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만취 상태로 택시를 타고 돌아왔는데, 입구에서 택시기사가 호텔에 내려놓고 간 줄 알고 다시 택시를 잡으러 나간 적이 있다"고 해프닝을 토로하기도 했다.
***신흥상류층이 입주자의 대부분**
타워팰리스 입주자들이 공통적으로 만족해하는 대목은 '프라이버시 보호'다.
타워팰리스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철저히 존중되는 '익명의 공간'이다. 철통같은 보안시스템을 통해 외부로 노출이 되지 않고, '검증 받은' 입주자들도 서로의 사생활을 최대한 존중해준다.
이같은 철저한 보호에도 불구하고 타워팰리스는 '신흥 상류층'의 거주지로 알려지고 있다.
입주자들 대부분은 전문직종사자, 자영업자, 기업임원, 금융인 등이다. 1차 입주단지인 1천4백99가구의 집주인 가운데는 기업인이 42%로 가장 많다. 다음은 의료인(8.3%), 학계(3.9%), 법조인(3.7%), 금융인(3.2%) 순이다.
유명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 등 대중스타도 상당수 끼었다. 김석수 총리를 비롯해 30대 그룹 총수 2명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신흥 상류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이아 반지와 버버리 핸드백이 경품**
주변 생활환경에 대한 입주민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불편함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갑자기 3천여 세대의 복합단지가 생기자 식당, 체육시설, 교통, 상점 등의 생활편의 시설이용 불편이 제기되고 있다.
음식점이 모자라 점심때 밥을 먹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또 최근 개장한 단지내 슈퍼는 일제 국수, 빵가루 등 외제품이 주류일 뿐만 아니라 일반 할인점보다 50%가량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인근에 새로 개장한 패밀리 레스토랑은 경품으로 다이아 반지와 버버리 핸드백을 내놓았을 정도다.
교통문제도 만만치 않다. 지금은 아직 입주가 완료되지 않아 나은 편이지만 3천가구가 들어서게 되면 출근시간에 지하주차장에서 빠져 나오느라 전쟁을 치를 것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사인 삼성물산측은 효율적인 차량 이동 동선을 배치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진3>분리된 차량 출입통로
주변의 기존 주거자들의 눈초리도 그리 곱지만은 않다. 이들 또한 상당한 상류층임에도 불구하고, 타워팰리스 입주자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타워팰리스 이전에 지어진 아크로빌의 한 거주자는 "타워팰리스가 생긴 뒤 자꾸 비교가 돼, 괜히 기가 죽고 우울해졌고 나도 모르게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며 "옮기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주변의 일반 아파트 거주자들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위화감 조성과 교통문제 등을 들어 타워팰리스의 건축을 상당히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도 한국사회에서는 '제법 산다'는 사람들이다. 제법 산다는 사람들도 타워팰리스에는 위화감을 느낀다.
***교육여건에 대만족**
이런저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양재천에 조성된 생태공원같은 주변 자연환경과 교육환경에 대해서는 입주자 모두가 예외없이 크게 만족하고 있다. 특히 강남 8학군으로 일컬어지는 교육 여건에 대한 만족도는 대단히 높다.
<사진4>양재천 생태공원
그 결과 강남에서 분당 등지의 고급빌라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자녀교육을 고려해 다시 돌아온 회귀 현상도 다수 목격된다.
분당의 1백평짜리 빌라에 살다 타워팰리스에 입주했다는 40대 주부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이 돼서 교육 여건과 주거환경을 고려해 타워팰리스에 입주했다"고 했다.
강남, 그 중에서도 특히 이곳 타워팰리스의 분양가가 전국 최고치를 기록하는 데에는 교육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임을 재차 실감할 수 있었다.
***평당가격 3천만원 되는 신흥 부유층의 상징**
2003년 한국 사회에서 타워팰리스는 어떤 상징성을 지니는가?
우선 강남이라는 지역에 대한 약간의 통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부유층의 상징은 단독주택이나 빌라였다. 성북동 · 평창동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부유층의 주거공간은 실체를 좀처럼 드러내 보이지 않는 높은 담으로 둘러쳐 있다. 자신이 소유한 부를 바깥에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숨기려는 것이다. 그들은 단단하고 견고한 부촌을 형성했다. 그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어야 한다.
반면 성북동 등의 전통적 부유층 내부에 진입하기 어려운 신흥 상류층들은 주로 강남에 몰렸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일부가 타워팰리스로 옮겨갔다. 기존의 아파트로 대표되는 이들의 공간이 대중적으로 보편화 되면서 이제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만으로는 계층을 부각시키고 남들과 자신을 구별 짓는 데 한계를 느낀 것이다.
70년대 서울의 팽창에 따른 강남 개발 붐과 함께 아파트는 새로운 주거형태로 떠올랐다. 그리고 80년대 고속 성장을 이루면서 새롭게 등장한 기업관료와 변호사 의사 등의 전문가 집단이 강남의 현대적 주거형태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부를 축적하면서 강북의 전통적 부자들과는 달리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정점에 서 있던 곳은 압구정동 등의 아파트단지였다. 그러나 수도권에 주거중심의 신도시가 생기고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면서, 아파트는 어느새 일반적인 국민들의 보통주거형태가 됐다. 더 이상 아파트는 계층적 상징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저층 아파트는 저소득층의 주거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도심 공동화 현상을 막고, 공공 공간의 확보와 도시 미관 개발 계획에 의해 짓기 시작된 주상복합아파트는 한국에서 새로운 주거형태로 90년대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초창기 주상복합아파트는 주로 기능성 위주로 지어졌다. 오피스텔 건설 붐과 함께 여의도 등의 오피스 지역과 인접해 30~40대 고소득 직장인의 편의 제공이 중심이었다.
1994년을 기점으로 주상복합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주상복합건물의 주거비율이 50% 미만으로 바뀌면서 분양가와 평형제한을 피할 수 있는 주상복합이 부유층에게 인기를 끌어 시그마타워(잠실) 나산스위트(보라매공원) 등은 분양가가 평당 6백만원을 웃돌 정도로 당시로서는 상당한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률이 5대 1을 넘었다. 하지만 50%를 넘는 상가부분 분양에 실패하면서 주상복합의 열풍이 다시 시들해졌다.
<사진5>타워팰리스 주변의 주상복합건물
이에 정부는 IMF사태가 터진 97년 경기부양 차원에서 주택건설촉진법을 개정해 주거비율을 90%까지 높일 수 있게 했다. 타워팰리스 인근의 도곡동 우성캐릭터빌이나 대림아크로빌 등이 3세대 상품으로 꼽힌다. 상가 부분이 오피스텔로 바뀐 게 특징이며, 30층 이상 초고층에 철골구조로 지어진 점도 눈길을 끈다.
그 중에서 타워팰리스는 고급주거 형태의 정점을 이룬다. 타워팰리스는 현재 1평당 가격이 평균 3천만원으로, 64평형 중간형 집값이 20억원에 육박한다. 맨 꼭대기의 1백24평형 팬트하우스는 거래가가 35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타워팰리스야말로 한국 신부유층의 상징인 것이다.
<사진6>타워팰리스 로고
***타워팰리스가 상징하는 한국의 두 얼굴**
타워팰리스에 친척 집들이에 왔다는 한 직장인은 둘러본 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업을 하는 매형이 전에는 60평짜리 개포동 현대아파트에 살았다. 거기도 집값이 10억을 넘었는데, 거기 살 때는 막연하게 '잘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여기 이사 온 후 집들이를 한다고 해서 와 보니 들어서면서부터 사람 기를 팍 죽여 놓더라. 여기에 와보니 매형이 얼마나 잘 사는지 피부속 깊숙이 느낄 수 있었다."
IMF사태 직후 한 전직 경제각료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 몇년 두고 봐라. 상류층들만 모여사는 초고층 아파트가 인기를 끌 게 분명하다. IMF사태를 겪으면서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져, 주거환경에서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절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가 되면 미국처럼 상류층들만 모여사는 철통같은 보안 안전지대가 생길 것이고, 집값도 다른 곳보다 몇배나 비싸질 것이다."
타워팰리스를 빈부격차 확산의 산물로만 보기에는 무리다. 나름대로 전문분야에서 성공한 프로패셔널들이 입주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워팰리스 밖에서 이곳을 쳐다보는 이들의 시선에는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이 짙게 배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타워팰리스가 상징하는 한국의 두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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