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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동네철새들은 왜 받아들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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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온갖 동네철새들은 왜 받아들였는지"

<최병렬 의원 인터뷰> '내각제 총선공약' 반대ㆍ당권도전 시사

한나라당 북핵특위 위원장이자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로 손꼽히는 최병렬 의원. 프레시안은 16일 전면적 쇄신을 요구하는 한나라당 개혁파들까지 이른바 '합리적 보수'로 평가하는 최 의원을 만나 현 정치상황과 대미관계 등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대선 이후 가급적 언론 접촉을 꺼려온 최 의원은 1시간30분가량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의 패인을 적나라하게 분석한 뒤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대미 신뢰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지적하고, 전환기에 처한 한국 정치 현실에서 '보수'의 선택과 역할에 대한 견해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온갖 동네 철새들은 왜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인터뷰 초반, 최 의원은 "제대로 한 번 할 수 있었는데…"라며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패한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넉넉한 자금 사정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한 선거전에 둔감했고 선거전략이 지나치게 네거티브에 치우쳤다"는 게 최 의원이 분석하는 대선 패배의 일차적 요인이다.

그는 또 "젊은 사람들 싫어하는 온갖 동네 철새들은 왜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라고 이회창 후보의 구시대 철새 정치인 영입을 비판하며 "이런 것들이 복합돼서 우리는 마치 구닥다리 아날로그 전쟁을 하고 저쪽은 디지털 전쟁을 하는 듯 했다"고 솔직히 패인을 분석했다.

또다른 패인은, 이회창 후보의 "법을 통한 개혁"이 기득권층에 대한 국민들의 누적된 불만을 잠재우기에 역부족이었다는 것. 우리사회 기득권층을 겨냥한 노무현 당선자의 "시스템 개혁"이 국민들의 최종 선택을 받은 이유였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기득권층의 문제점으로 부패한 점과 부의 분배가 공평하지 못했던 점을 꼽기도 했다.

***"국내 분위기와 미국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최 의원은 그러나 북핵 문제가 난제로 등장한 지금 상황은 "노무현씨보다는 이회창씨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이 국가를 위해 좋았을 것"이라며 노 당선자의 대미관을 우려했다.

그는 한반도 안보의 기초로 "한미동맹의 틀"을 강조하고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듯한 (노 당선자의) 언동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게 할 말은 당당하게 해야" 하나 기본은 한미공조의 틀 속에서 제기돼야 하며, 한미관계의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논리다.

같은 맥락에서 최 의원은 "지금 김대중 정부와 미국 사이에는 북한 문제를 놓고 신뢰가 깨졌다. 백악관이 현 정부와는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 안한지 꽤 오래됐다.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는 믿음이 없다"고 DJ를 비판했으며, 북핵문제 해결의 관건도 "미국과의 신뢰 회복"에 맞췄다.

최 의원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관련해서도 "국내 분위기와 미국 분위기는 너무 다르다"며 "현재는 우리 군사력에 주한미군을 플러스해야 전쟁 억지력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북핵특위 위원장으로서 최 의원은 "노무현 당선자가 원하면 우리 방미단이 가서 들은 얘기를 그대로 설명할 용의가 있다"며, 반미감정에 대한 미국측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여야간의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처럼 나이 어린 재벌들이 몇천억씩 갖고 있는 나라가 어디 있나"**

최 의원은 대선후 정치 상황과 관련해선, "우리 정치현장에도 지역정치나 패거리 정치가 극복될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됐다고 본다"며 "정치집단간 정책대결 구도로의 재편이 불가피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대선을 통해) 한나라당이 중도우파로의 정체성이 정립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우리가 (내년 총선에서) 노무현 쪽에서 새로 만들 당과 붙어서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고정표를 확보하고 추가로 지지를 얻으려면 정책적으로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노무현 당선자의 개혁 노선에 대해서도 일부 견해를 같이 하며 도울 것은 도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노무현 정권에서 얘기하는 것 중에 같은 것은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예컨대 대한민국처럼 나이 어린 재벌들이 몇천억씩 가지고 있는 나라가 어디 있나. 이런 건 잘못됐다. 재벌가의 증여상속에 포괄적 과세를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나는 대한민국의 의사결정에 재벌이 자꾸 관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외이사를 많이 집어 넣어라 해서 재벌의 의사결정에 간섭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벌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 방법중에 가장 좋은 것은 노조 대표가 재벌 이사회에 참석하게 하는 것이다. 의사결정과정에 개입하게 하면 안되겠지만 그 자리에 들어가서 보도록 하는 것은 기업의 투명성을 위해서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고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요컨대 노무현 정권의 '개혁 드라이브'에 대해 같이 할 것은 같이 하되 "그 대신 대비되는 다른 것을 골라서 국민들에게 노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을 추스를 기회가 주어지면 해보고 싶다"**

최 의원은 당내개혁 과제로 ▲돈 정치 청산 ▲정쟁 해소 ▲지도체제 개편 ▲정책적 구분(Distinction) 등 4가지를 지적하고, 그 가운데에서도"국민들에게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정책적 구분의 문제"라며 여당과 대비되는 정책과 정치철학을 강조했다.

최 의원은 "나는 대권에는 관심도 없다. 그러나 선거에 지고 당이 이 지경이 됐으니 나에게 기회를 주면 당을 추스려서 17대 총선에서 총대 메고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며 당권도전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기도 했다.

개헌론과 관련해선 "우리 정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순수한 4년제 대통령 중임제로 가느냐, 내각제로 가느냐, 아니면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느냐"라며 "분권형 대통령제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느냐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당내의 일부 구주류들이 제기하고 있는 내각제 개헌론에 대해선 "우리 당에서 내각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총선에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대했고, 지금의 개헌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다.

다음은 16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최병렬 의원과 정관용 상임편집위원간 인터뷰 전문.

***최병렬 의원 인터뷰**

프레시안 : 대선 패인을 어떻게 분석하나.
최병렬 : 참 아쉽다.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졌다. 막판에 노무현씨와 양자 대결 국면에 접어들면서 실제로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은 모두 궐기했다. 아들딸은 말할 것 없고, 조카까지 밥 사주면서 설득했고, 군대 있는 자식들에게까지 편지한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우리 당이 움직인 것보다 효과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한번 해볼만 하다고 봤는데….

되돌아보면 이회창 후보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었고 우리 당의 선거운동에도 문제가 있었다. 선거는 전쟁이다. 고도로 정밀한 지혜가 동원돼서 민심과 부대끼는 전쟁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굉장히 둔감했다. 드러난 것만 봐도 신문광고, TV광고, 찬조연설 등 미디어 선거에서 능력발휘를 못했다. 그리고 과거에 비해 했다고는 하지만, 질에 있어서나 양에 있어서나 인터넷을 통한 대응도 역부족이었다.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은 (민주당에 비해) 10분의 1도 안됐다고 보더라.

전반적으로는 선거전략 차원에서 밀렸고, 지나치게 네거티브(Negative) 톤이었다. 국민들, 특히 젊은 사람들 싫어하는 온갖 동네 철새들은 왜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이런 것들이 복합돼서 우리는 마치 구닥다리 아날로그 전쟁을 하고 저쪽은 디지털 전쟁을 하는 듯 했다.

사실 우리가 이번에 자금사정이 괜찮았다. 후원금이 많이 들어왔고 국고에서도 꽤 들어왔다. 제대로 한 번 할 수 있었는데…, 참 아쉽다.

프레시안 : 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구조가 문제 아니었나.
최병렬 : 선거 끝난 뒤에 후보를 만났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이 아팠겠지만 나는 당신과 경선을 했던 사람으로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선거 전반에 관해 후보에게 하고싶은 얘기들이 있었지만 경선을 한 사람으로서 그게 잘 안되더라", 그런 얘기들을 했다.

마지막 열흘가량 남겨두고 당에서 연락이 와서 몇 번 나가봤다. 하지만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정권을 내준 데다 당은 당대로 기둥뿌리가 하나 빠지고 나니까 당이 흔들리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에 어떤 모임에 갔더니 총리까지 지낸 정계 원로가 선거 결과를 놓고 여러사람들의 견해를 듣고 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지역이니 세대니, 빈부, 학력, 이념이 어떻고 등 얘기가 많다. 해방후 우리가 나라를 만들어오는 과정에서 기득권층과 기득권이 아닌 층이 대칭이 돼있다. 기득권층에는 관료, 기업, 정치인 등 과거 혹은 현재 한자리 했던 사람들이 포함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기득권층이 아닌 쪽이다. 여기서 굉장히 불행한 것은 우리사회 부의 분배가 정의롭지 않았다는 것이고, 기득권층이 부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패했는지를 떠나서 기득권층이 아닌 사람들은 부패했다고 본다. 이번 대선에서 이회창씨는 법을 통한 개혁을 주장했지만 이 나라 국민들은 법 가지고 되겠냐는 생각을 했고 결국 노무현씨가 주장한 시스템 개혁을 선택한 것이다. 법이 아니라 시스템 개혁이고, 공격의 대상은 기득권층이었다."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여하튼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고비에 와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시각에서 볼 때는 지금 이 상황은 노무현씨보다는 이회창씨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이 국가를 위해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 가지 걱정이 실제로 많이 된다. 북핵 문제도 그렇고, 반미문제, 미국내 반한무드, 주한미군 문제, 그리고 인수위에서 하는 모습들이 그렇다. 개혁을 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진보 보수를 넘어서 모두 찬성한다. 그러나 어떤 철학으로 개혁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인수위에서 하는 모습은 상당히 포퓰리스틱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용어라 조심스럽지만 우리가 볼 때는 약간 왼쪽이다. 선진국 정치현장에서 진보 보수 좌우의 어느 한 쪽이 나쁜 것이 아니다. 저마다 자기주장이 있고 철학이 있고 메리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해방 후에 좌우익 갈등과 민족 분단 과정을 거치면서 좌를 빨갱이와 등치시킨다. 그런 인식이 남아있어서 좌익을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반대로 보수는 수구와 사촌처럼 인식된다.

이런 컨셉에서의 구분이 아니라 선진국에서의 개념으로 보면 분명히 좌라고 할 수 있다. 좌가 모두 포퓰리스틱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수위 관련 기사를 보면서 느낀 바로는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 현실에서 효율을 생각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우리가 믿는 철학에 따르면 과연 이것이 한국 현실에 맞는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한반도 안보의 기초는 한미공조관계"**

프레시안 : 북핵 대표단이 미국에 다녀온 이후 상당히 걱정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요즘 조금 미국의 태도가 바뀌는 것 같은데.
최병렬 : 핵 관계는 그렇게 보인다. 우리가 볼 때 문제는 핵과 함께 주한미군 문제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붙어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다.

핵 관계부터 보면, 미국은 처음 이 문제가 터졌을 때 북한이 핵에서 손털고 국제적 검증을 통해 클리어하게 하지 않으면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대화는 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화를 하면 파격적인 경제 원조를 하겠다든지, 문서로 불가침을 약속하겠다든지 하는 몇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점은 미국은 원칙에 있어서는 아무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다. 표현의 선후가 다를 뿐이지 핵을 포기하고 신뢰할만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동원하는 수단이 복잡해졌을 뿐이지 미국의 원칙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이것은 우리가 미국 가서도 확인했고 켈리특사가 방문해서 여야의원들과 조찬을 했을 때도 원칙은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었다.

내가 볼 때는 북한의 핵개발에는 두 가지 목표가 결합돼 있다. 하나는 그야말로 '벼랑끝 전술'이다. 김정일 체제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점을 담보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원조를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북한이 노리는 목표는 궁극적으로 핵 보유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핵 보유국으로 등장하면 NPT도 관계가 없어진다. 핵을 손에 넣는 값싼 방법으로 국가안보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전자라면 해결이 어렵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만 협조해주면 외교적 수단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 생각이다. 중유공급 끊어진 후에 북한의 화력발전소는 다 멈췄다. 식량도 모자란다.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중국만 뒷문을 닫아버리면 북한은 갈 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해결이 쉽다.

그러나 만약 북한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핵을 손에 넣겠다는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가 북한의 목표가 여기에 있다고 단정할만한 판단 자료는 손에 없다. 미국에서 만난 전문가들도 단정해서 얘기하지 않고 두 가지가 혼합돼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러 가지로 우려되는 일이다. 우선 미국 공화당 정권의 입장에서는 9.11 사태 이후 알카에다 같은 미국을 위협할만한 국제적 집단에 대량살상무기가 공급될 위험을 차단하겠다는 데 국가적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렇게 보면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여기에 북한이 핵까지 손에 쥐게 되면 그쪽하고 어떤 식으로든 접촉하게 돼 있다고 미국은 보는 것이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용납하지 않는다.

다른 한면으로 보면,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해서 중국이나 러시아가 절대로 찬성하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당장 일본이 핵무장 할 것으로 본다. 중국에게는 상당한 위협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보유를 반대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상황이 어디로 갈지 가정해서 생각할 수 없고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국가안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나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 큰 원칙 하나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본다. 철저하게 한미공조 틀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금 넓히면 한미일 공조, 더 넓히면 UN 안보리와의 협조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안보는 한미동맹의 틀 위에 서있다. 그런데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 한 언동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동맹은 한편이라는 얘기다. 우리 안보와 관련된 핵 문제가 벌어졌는데, 어떻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재자 입장에 나설 수 있나.

또한 우리 동맹국인 미국 정부의 특사가 오기로 한 일정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외무부 고위관료를 북경에 독자적으로 보낼 수 있나. 지혜롭지 못한 처사다. 세상에 민족적 자존심 없는 나라가 어디 있나. 그러나 안보를 혼자 해결하는 나라는 또 몇 나라나 되나. 안보는 서로 어깨동무 해서 해결하는 것이 오늘날 국제사회에서의 안보다.

프레시안 : 북한을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적으로 보는 것인가.
최병렬 :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위협하게 될 핵을 보는 것이다. 핵은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것이다. 핵과 관계없이 당장 북한이 쳐들어 올 것 같아서 내가 안보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핵을 갖게되면 우리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게 되고,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 함께 위협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인가.
최병렬 : 당연한 얘기다. 그런 입장에서 나는 노무현 당선자의 인식이 요 며칠 사이 바뀌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본다.
한번은 서울포럼에 노 당선자가 가서 민족공조와 한미공조에 관해 "나는 민족공조와 한미공조 중간쯤에 위치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 듣기에는 기분 좋게 들릴 것이다. 미국에게도 할말 하는 것이 얼마나 모양나나. 그러나 그런 소리가 야기할 부작용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미국에 박치기를 하든, 다리를 잡든, 설득을 하든, 한미 공조 틀 속에서 할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서 따로 노는 것은 현명치 않다.

이번에 켈리가 왔을 때는 다행이 노 당선자가 한미안보 틀을 굉장히 강조했다. 나는 그런 것이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동안 한미공조가 흘러온 과정을 보면 말은 한미공조이지만 사실상 미국의 대북정책에 우리가 끌려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따라서 이번 북핵문제에서 미국의 일방적 입장에 끌려가기보다는 우리도 할말은 하겠다는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보면 최 의원이 말하는 한미공조의 틀 속에서 할말을 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지 않나.
최병렬 : 테크닉의 문제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얼마든지 요구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통로가 있다. 한미간에는 한미국방장관 회담이 있고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 통로를 통해 우리 외교관들이 설득력 있게 미국을 승복시키고 우리 주장을 관철시켜야 한다. 그게 잘 안된다고 해서 밖에서 딴 소리 하면 동맹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프레시안 : 실제로 김대중 정부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최병렬 : 믿음, 신뢰의 문제다. 우리가 틀 속에서 성실하게 설득을 했는데도 어쩔 수 없었다면 할 수 없는 문제다. 힘이 딸리는 나라의 한계라면 한계이지만 그래서 대통령의 소신이나 외교관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설혹 우리주장대로 안되더라도 틀 안에서의 신뢰가 반드시 전제가 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김대중 정부와 미국 사이에는 북한 문제를 놓고 신뢰가 깨졌다. 그것이 중요한 문제다. 백악관이 현 정부와는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 안한지 꽤 오래됐다.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는 믿음이 없다.

이제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됐다. 미국은 노무현씨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동맹관계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해 할말은 하겠다"라든지 미국 특사가 오기로 한 마당에 느닷없이 북경, 모스크바에 사람을 보낸 것 등은 현명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면 신뢰가 깨진다.

노무현 당선자가 물론 미국과 할 얘기는 다 해야 한다. 못하면 바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로 안된다고 부시와 만나서 당당하게 얘기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능력이다. 여기에는 믿음이 깔려있어야 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믿음이 중요하다.

어쨌든 요 며칠 노 당선자의 생각이 많이 바뀌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한미연합사에도 방문했다고 들었다. 주한미군 필요하다고 했다던데 나는 매우 잘한 것이라고 본다. 정치에는 제스츄어도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한 뒤에 취임 후 워싱턴 가서 부시를 만나든, 국방장관을 만나든 자기 할 얘기를 다 해야 한다. 직접 설득하고 인간관계를 만들어서 믿음을 구축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안보에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 한미간에는 그런 믿음이 과거같지 않다.

***"美, 주한미군 언제든지 철수시킬 수 있다"**

프레시안 : 미국이 북핵 문제와 함께 주한미군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가.
최병렬 : 그동안 한국 젊은이들의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감정은 어제오늘의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그러나 특히 최근에 북핵 문제가 불거지고, 그 와중에 여중생이 희생된 사고가 벌어지면서 한국에서의 반미 분위기가 미국에 굉장히 전달이 됐다. 최근 미국 신문에 주한미군 관련 기사가 단골 메뉴가 됐다. 뉴욕타임스에는 주한미군들이 그동안 어떤 모멸을 겪었는지에 대해 한페이지 반이나 났다. 물건 사러 갔다가 쫒겨난 얘기, 지나가는데 침 뱉은 얘기 등 아주 모욕적인 얘기, 성조기 불태운 얘기들이다. 신문 칼럼으로 나간 것 외에도 한국에서의 반미 감정이 TV, 라디오 토크쇼 단골 메뉴다.

또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다. 국내 모 호텔에 묶었는데, 그 사람이 체크아웃을 하러 갔더니 많은 한국 사람들이 체크아웃을 다 할때까지 세워두고 맨 마지막으로 처리해줬다고 한다. 본인은 그것을 상당히 섭섭하게 생각하고 그 문제를 미국에 가서 얘기를 한 모양이다. 상원의원까지 이런 대접을 했다는 것이 미국 의회에 퍼져있다고 한다.

교포들도 불안해하고 있다. 대미수출 업체들도 혹여 불매운동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의회에도 편지가 많이 쏟아진다고 한다. TV나 라디오 프로그램 보고 왜 그런 나라에 우리 병사들을 주둔시켜야 하냐,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워싱턴에서 우리나라 여야 의원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관계 세미나가 있었다. 참석한 우리당 의원들에게 들은 바로는 세미나 중 상하 양원 외교위원회 보좌관들과 만난 시간이 있었는데 처음부터 그쪽 보좌관들의 반응이 너무나 시니컬해서 진지한 대화가 안될 정도였다고 한다.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면 언제든지 철수시킬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주한미군이 중국의 세계전략을 견제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대 아시아 전략에서 필리핀이 얼마나 중요한 기지였는데 필리핀 사람들이 나가라 그래서 하루아침에 빼지 않았느냐. 원하면 얘기하라" 이런 투의 얘기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우리 대표단이 보고 온 바를 종합해 보면 당장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정도로 급박한 위기라고 보지는 않는 듯 하다. 그러나 상황이 자칫 잘못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의회가 주한미군 철수를 통과시켜 실제로 철수하면 우리 안보만 문제가 되겠나. 경제는 또 어떻게 되겠나. 국익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반미 구호를 외치는 사람 중에 대부분은 우리가 이렇게 한다 하더라도 진짜로 주한미군이 철수하겠냐는 생각을 마음속에 깔고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이 미국의 세계전략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나.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이 내린 결론은 결국 현 정부와 노 당선자의 상황인식이 너무 안이하게 보고있다는 것인가.
최병렬 : 핵 문제나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서 국내 분위기와 미국 분위기는 너무 다르다. 지금 워싱턴에서는 한국의 반미감정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얘기가 식탁의 주요 화제라고 한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이 현 정부와 노 당선자에 대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은 무엇인가.
최병렬 : 하고 싶은 얘기를 하더라도 한미 공조틀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신뢰관계를 확실히 하라는 것이다. 그 틀 속에서 북한 핵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위험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정부 혼자 나서서는 될 일이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김정일 설득하는 일은 좀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문제의 원천을 해결하는데 국제적 역할을 보면 우리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다. 따라서 미국과 철저히 공조해서 이 문제에 접근해가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느끼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우리도 함께 느껴야 한다는 말인가.
최병렬 : 북한 핵문제에 있어서는 인식을 같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주한미군 문제는 미국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같이 공유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다만 이 문제는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한다. 더 이상 CNN이나 폭스TV를 통해 한국 사람들이 주한미군을 원치 않는다고 각인시켜서는 안된다.

프레시안 : 중장기적으로 볼 때는 당초부터 단계적 철수 구상이 있었던 것 아닌가.
최병렬 : 주한미군이 백년 있겠나. 나가기는 하는 것인데, 두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첫 번째로는 북한이 변해서 재래식 무기를 줄이고 남북간의 평화적 구조가 만들어지면 된다. 그 상황에서는 주한미군이 나간다 하더라도 우리 안보에 영향을 미칠 리 없고 외국 투자자들이 보따리 쌀 일도 없지 않나. 그것이 제일 좋은 상황이다.
두 번째는 우리 국방력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고 안보체제를 튼튼하게 구축해서 주한미군이 없어도 북한이 함부로 덤벼들 수 없을 정도가 된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는 우리 군사력에 주한미군을 플러스해야 전쟁 억지력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미군이 빠지면 휴전선 이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우리는 알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장님이다.
국가를 유지 관리하는 것은 내 성질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통일된 독일이 누구로부터 공격받을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런데도 독일땅에 나토동맹이라는 틀 속에 미군이 얼마나 있나. 프랑크푸르트에 갔더니 어마어마한 공군기지를 미군이 독점적으로 쓰고 있더라. 독일 사람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패전국이기 때문에 미군 주둔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해서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 북핵특위 차원에서는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최병렬 : 당에 보고를 하면서 이 문제는 초당적으로 다루자고 했다. 당직자 회의에 가서 나는 노무현 당선자가 원하면 우리 방미단이 가서 들은 얘기를 그대로 설명하자고 했다.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자실에 가서도 같은 말을 했고 기사도 났는데 그쪽에서 아무 연락이 없어서 못했다.

내가 요구하는 것은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서 여야가 함께 결의안을 내서 미국 의회에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주한미군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역할을 해줘야 하고,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민족의 자존심과 관련된 것이지 결코 주한미군에 대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고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등의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아마도 정부가 하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나는 우리당도 대표단을 만들자고 한다. 서청원 대표가 대표단을 끌고 가서 정부와 같은 입장, 초당적 입장에서 설명을 하자는 것이다. 외교관계 위원장들도 만나고 필요하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 가서 연설도 하자고 제안했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 독자적 의원단인가 여야 합동 의원단인가.
최병렬 : 여야 합동 대표단은 그대로 가기로 돼 있다. 그 중에 나도 중국 대표단 단장으로 포함돼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하고 우리당도 우리당대로 노력을 하겠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한 것이다. 북핵 문제는 위험하고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한미 공조틀 속에서 이 문제를 다뤄나가야 한다고 정부와 노 당선자에게 요구를 하자고 했다.

그런 와중에 요 며칠 노 당선자가 많이 변했다. 그것은 추측컨대 임성준 특사가 미국에 가서 많은 것을 느끼고 왔을 것이다. TCOG에 갔던 대표단들도 여기서 모르던 많은 내용들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노무현 당선자에게 입력이 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긍정적인 변화다.

***"정책적 정체성으로 승부해야…"**

프레시안 : 대선 이후 전개되는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최병렬 :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고 노무현 당선자 쪽으로 관심이 몰리면서 우리 정치 현장에도 지역정치나 패거리 정치가 극복될 수 있는 계기는 마련 됐다고 본다.

그러나 보수든 진보든 이름이 뭐가 되든지 정당은 서로 정책의 차이로 경쟁해야 한다. 노무현씨는 경상도 사람이면서 전라도 베이스로 당선이 됐다. 게다가 생각이 왼쪽이다.

그러다보니 한나라당의 위상은 자연히 노무현씨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후보를 찍었던 사람들의 여망을 받드는 중도우파의 정책노선으로 정비가 되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영국에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있다. 서로 중간지점으로 모아지면서도 분명한 선이 있다. 미국도 공화당과 민주당을 보면 하나는 성장위주고 하나는 분배위주다. 우리도 그런 정도의 구획은 돼야 한다고 본다.

그동안 지역적으로, 혹은 보스를 중심으로 묶여있던 것이 근본적으로는 몰라도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보완 수정과정이 불가피하게 전개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그런 보완수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큰 틀의 정계개편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고 보나.
최병렬 : 큰 틀의 정계개편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부분적인 수정은 있을 것으로 본다. 선거를 한두번 거치면서 좀 더 국민들이 느껴질 정도로 자리잡힐 것으로 본다. 하루아침에 헤쳐모여식으로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의원 한사람 한사람의 당선 가능성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우리당 개혁특위 사람들에게 나는 다음 총선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노무현 쪽에서 새로 만드는 당과 붙어서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고정표를 확보하고 추가로 지지를 얻으려면 정책적으로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노무현 정권에서 얘기하는 것 중에 같은 것은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예컨대 재벌가의 증여상속에 포괄적 과세를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나는 대한민국의 의사결정에 재벌이 자꾸 관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본다.

프레시안 : 완전포괄주의에 한나라당은 반대하지 않았나.
최병렬 :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재벌정책 가운데 사외이사를 많이 집어 넣어라 해서 재벌의 의사결정에 갑섭하는 것은 반대한다. 그 대신에 재벌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 방법중에 가장 좋은 것은 노조 대표가 재벌 이사회에 참석하게 하는 것이다. 의사결정과정에 개입하게 하면 안되겠지만 그 자리에 들어가서 보도록 하는 것은 기업의 투명성을 위해서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또 대한민국처럼 나이어린 재벌들이 몇천억씩 가지고 있는 나라가 어디있나. 이런 건 잘못됐다. 그러나 재벌이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있고 용기있는 결심을 하도록 뒷받침 해줘야 한다. 전부 시비 걸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대신 투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레시안 : 그런 식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찬성한다고 하자는 말인가.
최병렬 : 그쪽에서 앞장섰다고 해서 우리가 피할 일이 아니다. 같이 해야 한다. 그 대신 다른 것을 골라서 대비해 국민들에게 노출시키자는 것이다.

대북정책을 예로 들자면 우리는 대북 현금지원을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그쪽과 다른 것을 골라내면 수십가지 골라낼 수 있다. 결국 정책적으로 대비하자는 얘기다. 말로 우리는 중도개혁이고 누구는 헛소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개혁을 할 것이면 무엇을 가지고 할 것이며, 우리가 저쪽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정책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분명히 얘기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이념적 분화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해서 우리도 점진적으로 선진국형의 정치 틀이 마련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본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 개혁의 핵심은 정책적 정체성을 명확히 하자는 것인가.
최병렬 : 우리당의 개혁은 4가지가 있다. 그 중 국민들이 우리 정치를 혐오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돈 문제다. 국회의원들이 이권을 행사한다는 것, 선거때 돈 많이 쓴다는 것, 그래서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쟁이다. 눈만 뜨면 헐뜯고 싸우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혐오하는 가장 큰 포인트다. 그것을 고쳐야 한다.
세 번째는 지도체제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다. 이것은 우리 내부의 문제다.
네 번째는 정책적 구분의 문제다. 나는 이 부분에 더 의미를 둔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우리당과 민주당 간의 아이디어 경쟁이다. 중앙당을 어떻게 슬림화하느냐, 어떻게 하는 것이 정쟁을 극복하는가 하는 얘기다. 이것은 철학적인 구분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시스템을 고친다고 해서 국민들이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실천이다. 운영을 통해서 그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돈 안드는 정치를 한다고 제도 하나 고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매달린다고 해봐야 아이디어 경쟁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지도체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당의 여건이 작용하겠지만 이것도 아이디어 차원이다. 한번 제도 개선하고 나면 그만 아닌가.

따라서 생명력 있게 우리가 발전시켜 나가서 국민들에게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바로 정책적 구분의 문제라고 본다.

프레시안 : 혹시 당명 개정과 관련해서는 어떤가.
최병렬 : 그것은 해도 좋고 안해도 그만이다.

***"당 추스르는 일이라면 총대메고 해보고 싶다"**

프레시안 : 당권 도전은 생각 있는 것인가.
최병렬 : 그 부분과 관련해 신문에 자꾸 나는데, 실제로 나는 아주 가까운 5~6명의 사람과 얘기 나눈 것 외에는 없다. 그들과 이런 얘기는 했다.

"나는 나이로 보나 뭘로 보나 앞으로 대권은 이제 관심도 없다. 이미 내 스스로 접은지 오래다. 그러나 다만 선거에 지고 당이 이 지경이 됐으니 나에게 기회를 주면 당을 추슬러서 17대 총선에서 우리가 선방해 내는 일이라면 총대 메고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이념으로 뭉쳐서 정치를 하는 기반도 닦고 총선도 잘 치러서 차기 대통령감을 키우면 되는 것 아니냐. 그것이 확실한 길이지 지금 당장 다음 대통령 될 사람이 당을 맡아서 나서면 너무 위험 부담이 크지 않겠느냐. 여당에 의해서 상처투성이가 될 수도 있다. 가령 이번에 나섰다가 총선이 잘못되면 박살나는 것 아닌가.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지금은 다음 대권을 염두에 둔 사람들이 나설 때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지금은 그런 것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 구당적 차원에서 나서서 변화를 정착시키는 가교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은 내가 맡아서 한번 해봤으면 하는 생각은 있다"는 얘기는 가까운 사람들과 한 적이 있다.

그것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얘기가 나오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내가 구체적으로 움직이지는 않고 있다. 왜냐. 전당대회가 언제인지도 모를뿐더러 더욱 중요한 것은 지도체제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전혀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나서서 총재를 하겠다느니 할 필요가 있나.

프레시안 : 개혁특위에서 결정되는 바를 지켜보고 있다는 말인가.
최병렬 : 그렇다. 가까운 내 친구 몇몇 사람들하고만 했던 얘기다. 기자들에게 말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내 진심이다.

프레시안 : 이번 대선결과를 보면 97년 지역구도 상황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않냐는 분석이 있다.
최병렬 : 사실은 경상도도 타 지역 사람들을 빼고 나면 90%다.

프레시안 : 그런 논거를 들어서, 극심한 사회변화,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이런 구도가 내년 총선에도 유지되면 별 걱정 없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노무현 당선자가 1년동안 정말 잘하면 내년 총선에서는 다선의원부터 떨어뜨리자는 바람이 불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다. 어떻게 보나.
최병렬 : 둘 다 맞다.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 안정을 원하는 세력이 많다. 수도권이건 경상도건 그런 측면이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세대교체 하자는 바람도 상당히 세게 불 것이다. 두가지가 어우러질 것이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도 그러한 세대교체 바람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최병렬 : 선거에는 공천이 제일 중요하다. 선거에는 후보가 누구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15대때 수도권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김현철 작품이다. 파격적으로 공천해서 이긴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교훈이다.

우리당이나 민주당이나 공천은 상향식으로 하기로 바뀌었다. 지구당에서 올라오는 것을 그대로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상향식으로 한다는 것과 상향식으로 선택된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있느냐는 같을 수도 있지만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다. 당선 가능성이 어느정도 있으면 상향식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선거는 상대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만약에 후보에 문제가 있다면 당은 당선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것이 당의 리더십이다.

프레시안 : 내각제 문제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최병렬 : 하도 답답하니까 얘기하는 측면이 있다. 어제 우리 개혁특위에서도 내각제 얘기를 하지않기로 결론을 냈다는데, 나는 아직 우리 풍토에서 내각제가 그리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본다. 개헌이라는 것은 국민이 일정정도 뒷받침을 해 줘야 가능한데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프레시안 : 과거 인터뷰에서는 다음 대통령이 나오고 나면 내각제 논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소신을 밝힌바 있는데.
최병렬 : 대권당권 분리만으로는 권력의 분산 해결되기 어렵고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각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보면 노무현씨가 청와대에 들어가도 과거처럼 강력한 권한을 전횡적으로 휘두르기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 뜻에서 지금은 꼭 내각제로 가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지 않나 싶다.

프레시안 : 내각제를 거론하는 측에서는 노무현 당선자에 대한 부담감일 수도 있고 소외감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의회발(發) 쿠데타 음모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최병렬 : 그런 저런 것이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왜 없겠나. 그러나 이론적으로만 보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3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5년제 대통령 선거는 그만하자는 것이 컨센서스 아닌가. 대게 4년 중임제로 가자는 얘기인 것 같다. 이회창 후보도 2006년에 개헌을 하겠다고 했다. 2007년말 대통령선거와 2008년 봄 총선이 시기가 비슷하다. 그 때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돌리고 선거 텀을 맞출 수 있지 않나. 그런 식으로 조정을 하자는 것이 중론인 것으로 안다. 노무현 씨도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보면 해결 방법은 순수한 4년제 대통령 중임제로 가느냐, 내각제로 가느냐, 아니면 정몽준씨와 노무현씨가 합의한 대로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느냐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이원집정제인데, 그때 내 놓은 것을 보면 대통령 직선제로 하되 대통령은 통일, 외교, 국방, 안보 분야를 맡고 나머지 내정은 원내 제1당의 당수가 맡는다는 것이다. 장관 임명권도 나누어서 맡고, 만약 문제가 생겨 불신임 당하면 내정에 관한 부분만 내각이 무너지고 새 내각을 구성하는 식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느냐는 생각은 한다.

프레시안 : 그런 모든 것을 논의해서 결정할 시기는 2007년이라는 말인가.
최병렬 : 지금은 아니다. 대통령이 이제 당선됐는데 어떻게….

프레시안 : 지금 얘기를 꺼내는 분들이 실제로 추진 할 것이라고 보나.
최병렬 : 그 사람들 얘기를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자면 이번 국회의원 선거 때 그런 부분을 공약으로 내보겠다는 생각 정도가 아니겠나.

프레시안 :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약이 받아들여지면 총선 후에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인가.
최병렬 : 그런 것일 것이다. 우리 당에서도 내각제를 총선에 공약으로 내걸고 총선에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국민들 중에서 내각제 싫어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안찍을 것 아닌가.

내각제가 권력 분산에서는 참 좋은데,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는 국민들이 우리 정치인을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각제라는 것이 정치인들이 나라를 떡주무르듯 하는 것 아닌가. 국회의원들이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좋게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노 당선자가 만약 집권기에 실수를 많이 저지르면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병렬 : 그것은 두고봐야 안다. 노무현씨는 그렇게 실수를 많이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더라.

프레시안 : 최 의원의 경우 현실과 상식에 기초해서 순리적 대안을 찾아나가는 정치인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세상의 변화의 흐름을 타는 측면이 조금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최병렬 : 부족한 것이 아니라 없다.(웃음) 그래서 내가 보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과거에 집착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현실을 분석적으로 보려 하고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들으려 한다. 그러나 사람이 튀는 사람이 있다. 나는 튀는 사람이 아니라서 현실 중심으로 보고 거기에서 해결을 모색한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이 그런 분들이 다수가 되면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위기에 빠질수도 있지 않나.
최병렬 : 우리당 안에 우리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숫자는 많을지 몰라도 그 사람들 스타일이 열려있다. 변화를 얘기하는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 옳다고 생각하면 찬성하는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세상이 볼 때 보수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이 우리당에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접촉하는 범위 안에서는 모두 열려있다.

한백회라는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 공무원 출신 모임인 상록회라는 것도 있다. 나는 양쪽에 다 해당되니까 합동으로 당 개혁에 관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국민속으로'에 들어간 원희룡 의원도 오고 현경대 위원장도 왔다. 그 자리에서 3시간 가량 토론을 했다. 개혁, 즉 바꾸자는 얘기에 대해서 시비조로 나오는 사람들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열려있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 개혁이 잘 되갈 것으로 보나.
최병렬 : 나는 그렇게 본다. 국회의원들은 선거에 모든 것이 걸려있다. 모든 상황이 자기와 어떻게 관련되는 유심히 보고 있다. 당이 흔들리고 풍비박살 나면 긴장하게 돼 있다. (앞으로 총선이) 1년여밖에 안남았기 때문에 지금 당 상황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탈이 있을 것으로 보나.
최병렬 : 있어도 아주 소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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