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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악마 정신이 신산업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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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붉은악마 정신이 신산업 동력"

<김중웅 현대경제연구원장 인터뷰>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당면한 양대 현안은 북핵 문제와 경제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무엇보다 시급하나, 동시에 빠르게 침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경제에 대한 관심도 중요한 시점이다.

한 택시운전사는 "월드컵 이후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다. IMF사태때보다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 재래시장 상인은 "경기가 완전히 죽었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한 유명 피부과 원장도 "지난해 하반기이래 절반이상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작금의 경기침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감지할 수 있는 현장의 소리들이다.

이와 관련, 25일 현대경제연구원 김중웅 원장(62)의 고견을 들어봤다.

김 원장은 경제계에서 흔히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과 자주 비교를 하는 경제거목이다. 박정희 정부시절 이헌재 전 장관과 함께 재무부에 금융정책과장으로 근무하며 선의의 경쟁을 벌이다가,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함께 '정치적 숙정'을 당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이한구 의원도 당시 함께 숙정당한 3인의 과장 중 하나다.

김 원장은 그후 KDI(한국개발연구원) 금융재정실장, 한국신용정보 사장, 세계은행 고문 등의 활동과 경향신문, 중앙경제 논설위원 등 언론인 생활 등을 거쳐 94년부터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 원장은 1시간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속사포처럼 자신의 생각을 쏟아놓았다.

김 원장은 우선 IMF사태후 해외변수의 영향력이 급속히 높아진 점을 우리 경제를 읽는 최우선 키워드로 꼽았다.

김 원장은 "일본, 미국의 경우 17%, 20%에 그치는 무역의존도가 우리나라는 자그마치 78%에 달한다. IMF사태 후 특히 무역의존도가 급속히 높아졌다. 에너지 다소비 산업 구조와 높은 부품 수입 의존도로 해외 경제 변화에 국내 실물 경제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금융 시장 개방 등으로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의 투자액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35%에 달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하에선 글로벌 스탠다드에 충실하면서 대미 관계 등에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그러나 우리경제의 진짜 위기를 이같은 외부변수가 아닌 내부 경제시스템의 효율성 부재에서 찾고 있었다. 그는 "오늘날의 경쟁은 생산요소의 최적 결합에 의한 생산성을 제고하는 '생산공정 경쟁'이 아니라 그 나라가 얼마나 효율적인 사회구조를 갖고 있느냐 하는 '구조 경쟁'으로 변했다. 이제는 경제 문제를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며 정경유착 청산, 글로벌 스탠다드 도입, 시장 경제 확립, 창조력을 키우는 교육 개혁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다른 경제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새 정부가 직면할 가장 큰 경제 과제로 '노사문제'를 꼽았다. 그는 '법과 원칙', 그리고 '신뢰'에 기초한 '창조적 노사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특히 사용자들에게 기업윤리의 확립을 주문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업윤리 수준이 아담 스미스 시절보다도 못하다는 지적이다.

아담 스미스 시절의 자유방임 시대에도 자본주의 윤리가 중시되었고, 기업가들의 자제력과 윤리가 강조되었다. 자유 기업의 신장을 토대로 한 시장 경제의 경쟁과 효율성이라는 경제 철학 내지 가치관도 취약하기 짝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당시의 윤리가 지금보다 더 강했다. 계급 투쟁 방식보다는 상호보완적으로 나가야 하는데, 기업의 윤리와 가치관이 부재하니 '천민자본주의' 확산이라는 우려와 함께 노사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김 원장의 인터뷰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3~5년 후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재계의 고민에 대해, 지난해 월드컵과 대선때 표출된 시대정신을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인으로 삼아야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른바 '붉은악마 정신'을 새로운 경제 정책 추진의 배경이 되는 정신적 바탕으로 삼아야 경제도약이 가능할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과거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자주, 근면, 협동의 '새마을운동 정신'이었다면 이는 자유화 및 민주화 운동으로 연결되어 시민 혁명을 유발하였으며, 이번 한일 월드컵에서는 21세기에 한국의 발전을 이끌어갈 새로운 원동력으로서 '붉은 악마' 정신이 표출되었다. 이는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여 성취하는 '창조적 도전 정신'이자 지역간.세대간.계층간 갈등과 장벽을 해소하는 '역동적 화합 정신'으로 표현할 수 있다."

김 원장은 이런 붉은악마 정신에 기초할 때 "현 시기는 '군림하는 카리스마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동기 유발자'라는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고 단언했다. 노무현 당선자 진영에게 보내는 주문이었다.

또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표적 신산업으로는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다"고 평가받는 금융산업과 "일본 못지않은 창의적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문화산업을 꼽았다. 이들 산업을 통해 한국을 동북아의 허브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이같은 맥락에서 "새 경제팀은 글로벌스탠다드와 시장경제의 효율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함께 뉴 패러다임 전환에 적응하고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는 개혁 정신, 그리고 세대간.계층간.지역간 갈등과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조정 능력 등 세가지 조건을 갖춘 인물들로 구성돼야 한다"며 노 당선자가 경제팀 인선시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기대했다.

다음은 현대경제연구원장실에서 진행된 김 원장과 박태견 프레시안 편집국장간의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6년만에 경상적자로 전환될 수도**

프레시안: 북핵을 둘러싼 긴장고조, 이라크전 임박 등 올해 국내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향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으며, 가장 예의주시해야 할 경제변수는 무엇인가?

김 원장: 올해 경기는 '상저하고(上低下高)'의 형태로 5%대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상반기에는 4%대로 저조하다가 하반기에는 6%대 성장이 예상된다. 5% 성장은 작년 6%에 비해 줄어든 것이지만, 재작년에 우리경제가 3%대 저성장을 했다는 점을 참조하면 5%란 결코 낮은 성장률이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낙관적 전망은 몇 가지 전제에 기초한 것이다. 미·이라크 전쟁이 단기간에 마무리되고 북핵 문제도 평화적으로 조속히 해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앞의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못하다. 여러가지 변수가 있다.

우선 걱정되는 게 노사관계다. 조흥은행 민영화, 공무원 노조결성문제, 주5일 근무 법제화, 현대자동차 등 주요 업체에서의 이익 추가 배분 요구, 최근에 발생한 두산공업 노동자 분신사건 등을 둘러싸고 노사 문제 발생이 염려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노사 문제를 정치적 접근 방식이 아닌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가문제도 우려된다. 가계부채가 4백조에 이르고 유동자금도 3백70조원에 이르고 있다. 언제 이들 유동자금이 또다시 꿈틀대면서 거품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게다가 파업에 따른 베네주엘라 석유산업 불안과 이라크 사태로 인해 원유값이 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유를 1년에 8억7천만 배럴 이상 수입하는데, 원유값이 1달러 오르면 9억달러의 국제수지 적자가 나게 돼 있다. 이밖에도 임금인상, 공공요금인상 등 비용 인상(Cost Push) 요인이 산적해 있어 물가가 불안하다.

경상수지도 걱정이다. 정부는 올해 국제수지 흑자 폭을 20억달러 정도로 예상하고 있으나, 우리 경제연구원의 추산으로는 수 억 달러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다가 최근 미국 달러화가 약세로 전환돼 위기감이 한층 커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경상적자가 5천억달러로 늘었다. 일반적으로 경상적자가 GDP(국내총생산)의 5%에 달하면 위험해진다. 미국 경상적자가 이 숫자에 도달하면서 달러화 약세가 시작된 것이다.

달러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원화가치가 올라가고 전쟁 등의 세계경제 불안요소가 증가하게 된다면 국제수지가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6년을 흑자로 왔는데, 조금이라도 적자로 전환하면 국민은 물론 외국투자가들이 갖는 심리적 불안이 대단히 커질 것이다.

한국경제에는 그러나 이런 대내외 경제의 불확실성보다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근본적으로 경제·사회적 비효율성이라는 시스템의 문제다. 구조적으로는 경제구조의 대외 취약성, 구조개혁 미진, 산업 공동화의 진전, 미래성장 동력 확보 미흡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효율적 금융시스템 확립이 미흡하여 금융정책의 효과성도 떨어지고, 주식 및 외환시장에서의 외국인 지배력이 과도하여 불안한 양상이 지속되고 있는 점이 큰 걱정이다. 따라서 채권시장이나 정크본드 시장 등을 활성화하고, 기관투자가를 적극 육성하며, 국제금융시장의 교란에 대비하기 위한 주변국과의 공조체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IMF사태 후 무역의존도 78%로 높아져**

프레시안: 미 일각에서 주한미군 단계철수론이 제기되고,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컨츄리 리스크(국가위험도) 조사차 방한하기로 하는 등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미양국간 갈등에 따른 '미국발 변수'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김 원장: 앞에서도 말했듯 우리 경제는 외부 경제의 충격에 지극히 약하다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 미국의 경우 17%, 20%에 그치는 무역의존도가 우리나라는 자그마치 78%에 달한다. IMF사태후 특히 무역의존도가 급속히 높아졌다.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의 투자액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35%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 경제,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우리 경제에 주는 영향력은 우리가 미국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매우 크다. 한 예로 한국의 총수출에서 미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대로 단일국가로는 중국과 함께 가장 크다. 외국인 직접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미국이 2002년 현재 49.5%로 가장 높다. 따라서 미국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현실적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만일 미군의 철수를 기점으로 한미간의 전통적 우호 관계가 손상되는 것은 우리의 안보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크나큰 우려 요인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내에서 무분별한 반미 감정이 확산되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자제해야 한다.

일단 한미간의 급격한 관계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전통적 한미간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는 가운데 민족 정서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 양국간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미국의 여론주도층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외교 채널을 구축하는 한편, 한미 재계협의회 같은 민간단체들을 통한 풀뿌리 외교를 강화하고, 한미 청소년 캠프 운영 그리고 한미 공동의 문화, 학술 활동 등을 통해 양국 젊은이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 했다고 하나 비효율 구조 여전히 존속**

프레시안: 대통령인수위 경제팀에서 '경제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제대로 잡은 방향이라는 평가가 많은데, 시스템 개혁의 방향은 어디에 포커스가 맞춰져야 하나?

김 원장: 우리 경제의 근본적 문제는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데, 이런 변화에 우리의 사회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적응하지 못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경쟁은 생산요소의 최적 결합에 의한 생산성을 제고하는 '생산공정 경쟁'이 아니라 그 나라가 얼마나 효율적인 사회구조를 갖고 있느냐 하는 '구조 경쟁'으로 변했다. 이제는 경제 문제를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가장 비효율적인 사회구조의 예로 정경유착을 들 수 있다. 정경유착은 고비용의 정치를 유발하고, 기업의 사회적 투자비용을 늘려 제품 가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과 같은 부정적 측면이 크다.

구조조정으로 발생했다는 기업의 이익도 엄밀히 따져 보면 결코 구조조정에 따른 재무적 이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채 비율 축소, 금리인하, 환율 이익, 자산정리 등 재무적 차원에서의 개선과, 인원 감축 등을 통한 이익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기업의 기술혁신과 경영혁신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발전 잠재력 확충은 아직은 미흡하다.

효율적인 경제.사회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정치구조와 제도의 선진화, 사회 구성원간 신뢰관계 제고, 글로벌스탠다드 확립, 교육과 훈련 강화, 시장경제 시스템 강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

***신뢰와 원칙에 기초한 '창조적 노사관계' 시급**

프레시안: 지금 제시한 과제들을 하나씩 짚어달라.

김 원장: 무엇보다 우선 경제구조의 상위구조라 할 수 있는 정치구조와 제도가 선진화돼야 한다. 정치권은 실종된 도덕성을 회복하고 생산성 있는 정책 대안과 새 시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신의와 성실성에 입각한 가치관 토대로 신뢰 관계를 형성하여 국민적 사회 통합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치주의가 하루 빨리 정착돼야 한다.

글로벌 스탠다드의 확립도 매우 시급한 과제다. 우리의 가치 기준이나 규범에 잘 맞지 않더라도 세계화 환경에서는 투명한 회계기준, 민주적 기업지배구조와 같은 선진국들의 글로벌스탠다드에 맞는 경제 규범과 기준이 생활화돼야 세계화 경영에 동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교육과 훈련이 강화돼야 한다. 결국 사회시스템이 효율성이나 발전은 교육과 훈련에 달려 있다. 현재의 입시 위주의 암기 주입식 교육으로 미래 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 새로운 시대에는 인간의 지적 능력이 가장 중요시되고 창조적 가치의 생산이 인간 활동의 보람이고 목표라 할 수 있다.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며 새로운 가치 창조가 중시되는 개혁 없이는 사회 시스템의 효율성은 증진될 수 없다.

다음으로 시장경제 시스템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안정적으로 자금 및 물자가 흐를 수 있도록 정부-금융기관-기업의 관계가 시장 원리 및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재구축 돼야 한다.

정부는 '자유경쟁시장' 원리를 지켜야 한다. 현재 한국은행에서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투자를 유도해도 투자가 활발하지 않은 것은 투자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정부 규제는 제도적인 면에서나 그 운용의 면에서 최소한으로 제한돼야 할 것이다. 특히 금융개혁의 완수를 통한 금융 안정화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은 적극적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효율적 기업지배구조를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법과 원칙의 준수를 토대로 창조적이며 화합하는 노사관계를 정착시켜나가야 한다. 여기서 '창조적 노사관계'란 자본주의 체제와 시장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경영자와 근로자가 협력해 더많은 부가가치를 창출,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을 보다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윤리, 아담 스미스 시대보다도 못한 수준**

프레시안: 의식 구조의 변화가 선행돼야 가능한 일들 같은데...

김 원장: 그렇다.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고 새로운 발전전략을 실천하는 데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부합되는 가치관 내지 의식 구조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지금 지역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소득계층간 위화감이 심각해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농업사회, 산업사회, 디지털 시대의 경제 패러다임이 공존하고 있어서 심각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으며 세대간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 특히 금번 대선 과정에서 세대간 엄청난 이념과 가치관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새로운 발전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경제주체들의 응집력 제고를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조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이념과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

경제 주도세력으로 30대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장년층이 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윤리와 신뢰 회복을 위해 장년층이 조정자로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장년층은 쉽게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는 형편이다. 세대간 조화를 위해 장년층의 경험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게 하는 사회 시스템의 구축과 靑老 조화의 문화가 창출되어야 한다.

보수, 좌파 등의 이념적인 용어도 정리되지 않은 채 남발되고 있다. 좌파와 우파는 선택을 통한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의 문제고, 국가적 문제다. 이분법적으로 자르지 말고 조화시켜야 한다.

기업 윤리나 시장 경제 가치관 확립도 미흡한 실정이다. 아담 스미스 시절의 자유방임 시대에도 자본주의 윤리가 중시되었고, 기업가들의 자제력과 윤리가 강조되었다. 자유 기업의 신장을 토대로 한 시장 경제의 경쟁과 효율성이라는 경제 철학 내지 가치관도 취약하기 짝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당시의 윤리가 지금보다 더 강했다. 계급 투쟁 방식보다는 상호보완적으로 나가야 하는데, 기업의 윤리와 가치관이 부재하니 '천민자본주의' 확산이라는 우려와 함께 노사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신인본주의, 사민정책**

프레시안: 작금의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대안적 가치관이 필요한가.

김중웅: 새로운 가치관은 우선 21세기 경제 패러다임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것이 돼야 하고, 한국의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으로 새로운 경제 비전을 달성하는 데 국민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것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신(新)인본주의' 가치관이 정립돼야 한다.

인본주의가 경제 선진화를 위한 새로운 가치관으로 정립돼야 하는 이유는 우선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는 인간의 창조 능력과 지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세계화의 과도기적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적·종교적·인종적 차별화와 대립이 나타남을 감안할 때 인간 가치의 존중이라는 인본주의만이 공존공영의 공통의 가치 이념이 될 수 있다.

특히 최근에 들어 한국 사회에서는 보수와 혁신, 개혁과 수구, 좌익과 우익과 같은 개념조차 불분명한 이념 논쟁이 치열한데, 이러한 이념들이 가장 중시하는 보편적 원리 역시 인간 중시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소득갈등도 해소해야 한다. 성장이냐 분배냐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고려해야 하는데, 우리의 경제 규모 정도에서 분배는 중산층을 키우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IMF로 중산층이 붕괴되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됐다.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인사탕평책을 사용하고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난 5년간 지역 갈등 해소가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따라서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경제철학으로서 인본주의가 존중되고 강조될 때 비로소, 천민자본주의의 부작용과 사회적 갈등이 극복되고 진정한 선진복지 국가를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국민들이 잘사는 富民 정책, 국민을 편안하게 만드는 安民, 지역·세대·계층간 화홥과 조화를 이루는 和民 정책, 그리고 민간의 창의력을 최대한 존중하고 계발하는 文民 정책과 같은 四民 政策을 경제 정책의 추진 원리로 삼아야 비로소 국력이 결집될 수 있다.

***금융산업, 진입장벽은 낮추고 감독은 강화해야**

프레시안: 최근 재벌개혁과 관련해 특히 제2금융권에서의 산업자본 지배력 급증을 우려하는 소리가 많은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식의 접근방식이 필요한지.

김 원장: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력 급증은 다양한 문제점을 발생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력 증가시 경제력 집중(생산물 및 생산 자본시장 독점), 자원의 편중 배분(불공정 내부거래) 등에 기인한 시장효율성 저하가 우려된다. 동시에 여신 심사기능 저하 등 금융중개의 비효율성 야기로 실물 부문의 부실이 금융부문의 부실로 직결될 우려가 있다.

하지만 금융산업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참여는 어느 정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우선 실물부문의 잉여자본이 금융기관으로 유입됨으로써 금융기관 자본 확충 및 경영 안정성 등에 유리하다. 특히 우리나라가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물류산업의 중심이 되기보다는 금융산업의 발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선진국의 막대한 자본을 지닌 금융기관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산업자본의 참여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참여에 따르는 문제점 해소는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지배의 위험요소 제거'와 '세계화 시대 금융산업의 경쟁력 확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

결국 이는 사전적·구조적 진입 규제보다는 사후적·행태적 금융감독 강화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사전적촵구조적 진입규제는 기본적으로 국내자본과 해외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야기하여 금융부문에 대한 해외자본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지는 경우에 기업금융의 불안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에 대한 여신감독 강화, 부실징후 금융기관에 대한 과감한 시장퇴출 등 금융감독 강화로 산업 자본의 금융 지배의 부작용을 막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본다.

***'붉은악마 정신'이 새로운 성장 동인이 돼야**

프레시안: 인수위도 '3~5년 후 먹고 살 게 막막하다'는 재계의 위기감에 공감하며 '신산업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신산업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성은.

김 원장: 과거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자주, 근면, 협동의 '새마을운동 정신'이었다면 이는 자유화 및 민주화 운동으로 연결되어 시민 혁명을 유발하였으며, 이번 한일 월드컵에서는 21세기에 한국의 발전을 이끌어갈 새로운 원동력으로서 '붉은 악마' 정신이 표출되었다. 이는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여 성취하는 '창조적 도전 정신이자 지역간 ·세대간·계층간 갈등과 장벽을 해소하는'역동적 화합 정신'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 시기는 '군림하는 카리스마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동기 유발자'라는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과거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자주, 근면, 협동의 '새마을운동 정신'이었다면 21세기에는 민주화 운동을 통한 시민의 역할 증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월드컵에서 보여준 '붉은악마' 정신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 질서 있고, 역동적이며 창의적인 '창조적 도전정신', '역동적 화합정신'이 살아나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현 시기는 '군림하는 카리스마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동기 유발자'를 지도자로 필요로 한다.

구 산업시대와 같이 정부가 진입 규제와 금융, 세제지원과 같은 정부의 직접 지원을 통해 특징 산업을 육성하는 이른바 '중점 산업 지원책'으로서의 산업 정책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빅딜과 같이 정부가 인위적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80년대 산업 구조조정 과정과 외환위기 이후 기업간 기업재편이 이에 해당하는 데 모두 실패한 정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정부는 특정산업을 육성하거나 무리한 산업재편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국내산업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고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제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는 새로운 산업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선진국들에서는 연구개발투자 확충, 산업인력 개발, 기업환경 개선 등에 중점을 둔 산업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신정부의 산업정책은 다음 세 가지 점이 중시돼야 한다.

우선적으로 첫번째, 정부 역할을 '산업 조정자'에서 '산업 비전 제시자'로 바꿔야 한다. 정부는 미래산업 발전 비전을 제시하고 기업이 이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번째, 국내외 투자 활성화를 위한 기업환경 개선과 국내외 투자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투자 여건을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이 명실상부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세금, 교육, 이민 정책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개선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세번째, 새로운 성장 원천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및 인적자원을 육성해 새로운 성장 원천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 개발환경을 만들고 인재를 육성하는 데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기술혁신의 가속화, 환경이나 '삶의 질' 중시 등 사회적 환경의 변화, 지식기반화와 글로벌화라는 21세기 경제시스템의 변화에 맞게 IT, NT, BT, ET와 같은 첨단산업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한편, 새로운 기술을 기존 주력산업에 접목하는 것을 통해 기존 주력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뤄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금융산업과 문화산업에 포커스 맞춰야**

프레시안: 모든 산업을 다 일으킬 수는 없는 것이고, 특히 어떤 산업부문에 역량을 집중시켜야 하나.

김중웅: 그렇다. 한국경제의 규모나 수준으로 볼 때 모든 첨단산업을 일거에 육성할 수 없는 만큼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중시돼야 한다.

21세기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시대다. 금융이나 물류와 같은 제조업기반 서비스 산업, 문화산업 등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한국은 금융서비스 산업의 발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동북아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공고화하기 위한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앞으로 사회는 지식산업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다. 정보지식산업은 금융산업을 통해 집중이 된다. 게다가 한국은 금융산업 구조조정이 일본에 비해 앞섰고, IT산업도 비교 우위에 있다. 이러한 점을 잘 활용해야만 한다.

아울러 21세기는 소프트웨어 시대다. 일본은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1위다. 그러나 미래 사회가 지식산업 중심이 된다고 해서 일본이 쉽게 쇠퇴하리라 보는 것은 곤란하다. 일본은 현재 우리보다 문화산업 분야에서 상당히 앞서나가고 있다. 고양이 캐릭터 '헬로 키티' 한가지만 갖고서도 연 1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과 게임 산업은 대단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우리 또한 최근 안재욱, 보아 등이 이끄는 한류 열풍 등에서 볼 수 있듯, 창의성이 매우 높은 국민이다. 자체적 문화상품 개발과 함께, 이러한 창의성을 자동차, 철강 등의 기술에 융합할 때 고부가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새 경제팀이 갖춰야 할 세가지 조건**

프레시안: 얘기를 바꿔, 노무현 당선자가 내각에 전폭적인 정책 운용권 위임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새 경제팀은 어떤 인적 구성이 필요하다고 보나?

김 원장: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우선 첫번째로, 세계화의 추세와 정신을 이해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이는 시장 경제원리를 중시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를 내재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두번째,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꿰뚫어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철학과 비전 그리고 정책수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21세기 한국경제 발전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있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철학이 분명해야 하고 한건주의나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며 장기적인 전략과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한다.

지난 DJ정권에서 교육부 장관은 7명, 산자부 장관은 6명이 바뀌었다. 업무파악에도 급급한 마당에 자신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마저 주지 않는 실정에서 제대로 된 정책을 펴 볼 기회마저도 없고, 여론에 이끌려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된다.

세번째, 현실과 이상, 그리고 거시 분야와 미시 분야, 더 나아가 부처간 이해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조정 능력, 다시 말해 '정책력(Policy Power)'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경제부총리는 정책력을 갖고, 한국은행,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예산기획처 등 이해관계자를 잘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얼마 전에 수학천재인 존 내쉬를 다룬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를 봤다. 내쉬 교수가 한창 더운 여름에 강의를 하는데, 밖에서 공사를 하고 있어 시끄럽기 때문에 화를 내면서 창문을 닫고 찜통 속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여학생이 문을 열더니, 공사를 하는 인부들에게 '저희는 지금 강의 중이니까 40분 정도만 다른 곳 작업을 먼저 하시면 안 될까요?'라고 방긋 웃으며 말했고 인부들은 곧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 일화는, 일을 해결하는데 문을 닫고 싸우느냐, 문을 열고 방긋 웃으며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노 당선자의 최대 경제현안이 될 노사문제, 재계문제도 이러한 의미에서 접근방식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오랜 시간 고견을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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