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관위(위원장 유지담)가 10일 선거자금 모금 및 선거운동 일환으로 민주당이 실시하고 있는 '희망돼지저금통 분양'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일선 선관위에 강력한 단속을 지시해 파장이 예상된다.
선관위는 이날 "정당연설회 및 거리연설회 등에서 지지자들이 희망돼지저금통을 흔들며 특정 후보를 연호하거나 이를 유도하는 행위는 선거법 제105조 2항에 저촉되며, 저금통을 유권자에게 배부·판매하는 것도 선거법 제90조 규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희망돼지 저금통의 제작과 배부를 중단하고, 이를 선거운동에 이용하지 말 것을 지난 9일 민주당 측에 공식 요청했으며 각급 선관위에 이같은 행위에 대해 엄중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지금까진 각급 선관위가 개별 행사에서의 저금통 분양사업의 위법성을 고지하고, 이를 단속, 조치해 왔다"면서 "하지만 이같은 행위가 중지되지 않아 민주당 측에 공문을 발송, 정식으로 중지를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된 이후 9일까지 희망돼지저금통과 관련, 총 86건의 위반행위를 적발, 이 가운데 33건을 고발했으며, 수사의뢰 3건, 경고 37건, 주의 12건, 이첩 1건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선관위 입장 번복, 논란 소지 많아**
선관위의 이같은 결정은 많은 논란의 소지를 남기고 있다.
현행 선거법 105조(행렬 등의 금지) 2항은 '모양과 색상이 동일한 모자나 옷을 착용하거나 기타 표지물을 휴대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선관위의 입장은 돼지저금통을 흔드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 선거법 90조(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는 '후보자를 상징하는 인형, 마스코트 등 상징물을 제작 판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선관위 관계자는 "노 후보의 유세장마다 돼지저금통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노 후보의 상징물이 됐고, 이를 배부하는 것도 법에 저촉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선관위의 이번 결정으로 희망돼지 저금통을 일반 유권자에게 나눠주거나 유세장에서 흔드는 행위는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당원들끼리 저금통을 주고받거나 모금하는 행위는 허용되며, 민주당 선대위 국민참여운동본부가 오는 15일을 '희망돼지 수거의 날'로 정하고 행사를 가지려던 계획 역시 당원들만의 당내 행사로 치를 경우에는 가능하다.
또한 민주당이 돼지 모양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저금통을 제작, 유세에 활용할 경우 법 적용 대상이 되는지 애매한 상황이다.
이에 앞서 법정선거운동기간 전 돼지저금통이 논란이 됐을 때 선관위는 저금통을 분양하면서 특정후보를 지지.선전하는 활동을 할 경우엔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지만 후원금을 모금하는 행위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법 해석을 더욱 엄격하게 한 것이다.
또 일선 선관위에서 저금통 분양을 '기부행위'로 보고 단속하자, 노 후보 지지자들이 2백원씩 받고 판매하는 방식으로 위법소지를 피하는 등 숨바꼭질이 계속돼 왔다.
***한나라당 "만시지탄", 민주당 "유감"**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남경필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이미 민주당은 불법 저금통을 무차별 살포해 국민을 속인 결과로 무려 50억원의 불법 자금을 모금했다"며 "선관위는 이제라도 철저한 단속에 나서 전국에 살포된 돼지저금통을 회수하는 등 철저한 사후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대변인은 또 "노 후보는 '국민 성금' '새정치'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한 것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라"며 "오늘(10일) TV토론에서도 거짓말을 계속한다면 국민이 내리는 철퇴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앞서 조윤선 대변인은 지난 9일 논평을 통해 "민주당은 올해 법정후원금의 한도액인 6백억원을 전부 채워서 모금한 바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시·도별 후원회를 통해 60억원을 추가로 모금했다"면서 "민주당은 이 거액의 후원금을 다 어디 두고 국민들에게 빈 돼지저금통 나누어 주고 동냥을 하냐"고 '희망돼지 저금통 분양'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반면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은 "희망돼지 저금통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적은 돈으로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요구이며 검은 돈, 재벌 돈을 기웃거리지 말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면서 "선관위는 국민의 그런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선거법의 문구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선관위가 일단 제시한 해석과 조치는 우리도 존중하겠지만 선거와 정치와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선관위의 이번 해석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희망돼지 저금통 분양 사업을 주관해온 민주당 선대위 산하 '국민참여운동본부' 임종석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희망돼지에 대한 중앙선관위의 입장은 계속 바뀌어 왔다"면서 "초기 희망돼지 분양은 적법하다고 결정했다가, 국민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놀란 한나라당의 항의에 따라 가두분양 금지를 요청했다가, 이번에 다시 희망돼지 분양에 대해 불법 결정을 내린 것은 중앙선관위의 소신없는 행위를 반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총장은 "그러나 국민참여운동본부는 모든 폭로전과 흑색선전 중단을 선언한 노무현 후보자의 공명선거를 실천하려는 의지를 존중하고, 이회창 후보 측의 흑색선전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중앙선관위의 요청을 전폭적으로 수용한다"고 덧붙였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비난글 쇄도**
한편 선관위 결정에 대한 비난글이 선관위 홈페이지 게시판에 쇄도하고 있다. 노 후보 지지자들인 이들 네티즌들은 '노사모' 폐쇄 결정에 이어 희망돼지분양사업에 대한 불법 판정으로 선관위의 편파성이 드러났다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조재형'이라고 아이디를 밝힌 네티즌은 "돼지저금통을 통한 선거자금 모금이 불법이라니 중앙선관위의 역할에 대해 심각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며 "과거의 방식대로 뒷돈이 왔다 갔다 하고 무슨무슨 산악회 등으로 수만 수십만이 동원되는 구태들은 제대로 단속 못하면서 국민운동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 정치 변화 욕구는 자꾸 무시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열심히 과거의 구습에 집착한 선관위는 공정성과 정체성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며 "시대에 부응하는 인물들로 대폭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디를 '민주주의 수호자'라고 밝힌 네티즌은 "남에게 있는 멸시 없는 멸시 당하면서 돈 번 것을 자신의 판단에 의해 희망돼지 저금통에 넣는 것인데 국민이 그렇게 어리석게 보이냐"면서 "국민의 열망을 저버리는 선관위원장은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디를 '웃긴다. 선관위'라고 밝힌 네티즌은 선관위가 '이른바 희망돼지저금통을 흔드는 등의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행위는 선거법에 위반된다'고 밝힌 것에 대해 "그럼 돼지저금통 다 뺏고 나서 사람들이 목도리 휘두르면 목도리도 불법이라고 잡아 넣을건가"라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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