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갑작스레 인터넷 언론에 '메스'를 들이대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익명성을 가장한 언어폭력', '무소불위의 권력' 등을 운운하며 연일 인터넷 언론과 네티즌들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사들은 대선판도가 동아일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아서인지, 인터넷의 파급력에 대한 위기의식에서인지 더 이상 독점적 정보장악력을 상실한 인쇄신문의 '신세한탄'을 대변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동아일보는 10일자 신문에서 사설 ''인터넷 권력'도 민주화해야'와 칼럼 ''익명' 뒤에 숨은 독설폭력', 기사 '인터넷 매체는 무소불위인가' 등 세 꼭지를 통해 인터넷의 일부 '악영향'을 근거로 모든 인터넷 언론을 불법선거운동의 무대로 낙인찍었다.
***"인터넷 매체는 불법선거운동 무대"**
10일 사회면에 게재된 '인터넷 매체는 무소불위인가' 기사에서는 인터넷 언론의 대선보도 편향성과 법적 지위 문제가 주요 비판 대상이다.
기사는 우선 "대통령선거전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언론'을 표방하는 인터넷매체들이 기사 논평 해설 형태로 특정후보에 대해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해 유권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현행법상 인터넷매체들은 단순한 '인터넷사이트'에 불과한데도 이들이 언론기관으로 행세하는 바람에 검찰과 경찰 선거관리위원회가 적극 단속에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들 인터넷매체는 선관위의 공정성 심의 대상도 아니어서 선거법의 '사각지대'에서 특정후보를 인신공격 또는 찬양하는 등 사실상 불법선거운동 무대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법적으로 '언론사'도 아닌 인터넷 매체들이 특정후보를 일방적으로 편들고 나서 불법선거운동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신문이 사회적 역할과 보도내용에서 언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이같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기간행물법 개정이 오히려 시급하다는 점은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또한 한국언론재단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2002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인터넷은 매체별 이용시간과 만족도, 신뢰도, 영향력 등 모든 항목에서 종이신문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법적 지위'를 근거로 인터넷 매체의 언론으로서의 자격을 매도한 잣대는 본말이 전도된 '생트집'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또한 기사는 A, B, C 3개 인터넷 언론의 최근 기사를 자신의 잣대로 '수색'해 이들 매체가 친노무현, 반이회창 논조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아봤더니 "A 매체는 4백14건의 기사 중 3백건이 노 후보를 지지하거나 인간성을 미화했으며 이 후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글이 '친미=수구=이회창'식 논지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매체의 어느 기사, 어느 대목이 그러한지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언론 비평의 기본적인 '룰'을 어긴 셈이다. 또한 일부 인터넷 매체를 타겟으로 한 두루뭉술한 비판으로 모든 인터넷 언론을 싸잡아 비난하는 논리 비약으로까지 나아간다.
***"사이버 공간에서 비열한 권력투쟁"**
한편 동아일보는 이날 ''인터넷 권력'도 민주화해야'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사이버 테러'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사이버 언론을 표방한 일부 인터넷 매체들의 '보도'를 가장한 선거운동 또한 우려할 만한 단계에 이르렀다"며 "사이버 공간에서 구시대 낡은 정치나 다름없는 비열한 권력 투쟁을 벌이는 양상"이라고 주장했다.
사설은 일부 커뮤니티사이트나 게시판에나 합당한 '익명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인터넷 매체 전반에 확대적용, 인터넷 언론 자체를 교묘하게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잣대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동아일보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있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사이버 테러'는 어떻게 설명이 될까. 또한 '보도를 가장한 선거운동'이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신문3사에서 가장 극심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을 동아일보는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사설 말미에 지적한 "인터넷 독자 역시 '언론'을 자처하며 무책임한 정보를 쏟아내는 일부 사이버 매체를 걸러내는 안목도 키워야 한다"는 독자 '훈계'는 따라서 동아일보가 먼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동아일보는 또 한국방송통신대 이영음 교수의 ''익명' 뒤에 숨은 독설폭력'이라는 기명칼럼을 함께 게재하며 자사 주장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이 교수는 칼럼에서 '공공 담론의 장'으로서 인터넷의 순기능과 인터넷 문화의 어두운 측면인 '익명성'을 함께 지적했으나 비대칭적인 이날 동아일보의 사설과 기사에 둘러싸여 '무소불위의 인터넷 언론'이라는 주장에 일조한 셈이 됐다.
동아일보가 최근 '인터넷 권력, 대선-반미 등서 의견 다르면 언어폭력 난무(12월 9일자 사회면)', '허위 대선여론조사결과 인터넷 난무(12월 6일자 정치면)' 등의 기사를 통해 연일 인터넷의 부작용을 대서특필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아일보의 한 중견기자는 이와 관련 "지난 주 인터넷 게시판에 동아일보 여론조사 내용이라며 올라온 글이 거짓으로 판명되면서 이 같은 인터넷상의 문제점을 짚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편집국 내부에서 있었다"면서 "그외의 다른 정치적 배경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중견간부는 동아일보 홈페이지 인터넷 게시판에도 동아일보가 지적한 문제점이 그대로 나타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인터넷상의 익명성을 이용한 폭력은 금지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기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 동아일보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문제가 있지만 실명으로 전환하면 이 같은 인터넷 역기능들은 많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소불위의 언론권력에 대한 향수**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동아일보 지적대로 인터넷 문화의 역기능은 시정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선이라는 정치적 국면을 통과하며 사이버 공간에서도 인터넷 언론과 자발적 커뮤니티 등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돼 가고 있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여중생을 추모하고 불평등한 SOFA 개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모아내고 있는 광화문 거리의 촛불시위는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일부 포탈사이트는 시민단체와 손잡고 정책선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선관위도 일부 커뮤니티사이트와 함께 '공명선거 실천 및 투표참여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들은 유독 동아일보의 정보망에만 포착되지 않는 모양이다. 인터넷의 일부 부작용을 침소봉대해 인터넷 언론 전체를 불법ㆍ탈법 선거의 우범지대인냥 매도하려는 동아일보의 이같은 보도는 종이신문이 선거판을 쥐고 흔들었던 과거'무소불위의 언론권력'에 대한 향수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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