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28일 3당의 주요 정치인과 언론사 고위간부, 현직 취재기자 등의 전화 통화내용을 문서로 정리한 국정원 도청자료를 폭로해 정가에 핵폭탄이 터졌다.
김영일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월 한나라당의 내분 수습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인사, 그리고 기자들의 전화통화를 도청해 정치공작에 활용해 왔다"며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한나라당 vs 국정원ㆍ민주당, 사활건 고강도 정치공방 예고**
김 총장이 공개한 자료는 총 27쪽 분량으로 자료1, 2로 분류돼 있으며 '자료1'에는 민주당 의원 등의 내부통화, '자료2'에는 한나라당 내부통화 및 정치인과 기자들간의 통화내용 등이 기록돼 있다.
한나라당은 정치인들과 박권상 KBS 사장 및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의 실명은 공개하고, 여타 언론인들은 소속 기관만 밝힌 채 실명을 검게 지우고 공개했다.
이와 관련 김 총장은 "국정원 내부자료를 입수한 것"이라며 "이 자료는 도청 내용을 문서형태로 핵심사항만 상부에 보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또 "당 실무자들이 가능한 한 해당 당사자들에게 확인절차를 거쳤다"고 덧붙였으나 자료 입수 경로에 대해서는 "내부 고발자 보호를 위해 밝힐 수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고, 민주당은 "지지율 하락에 초조한 한나라당의 턱없는 흑색선전"이라며 "차제에 국정원 도ㆍ감청 문제에 대해 감사원, 정보통신부의 인력을 지원받아 국회에서 합동감사를 하자"고 촉구했다. 청와대도 한나라당의 '개입설'에 대해 "한나라당이 선거를 의식해 자작극 내지는 조작극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이번 한나라당의 문건 폭로는 대선정국의 향배와 정치권 및 언론계에까지 커다란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그 진위 여부에 따라 국정원의 도청 사실, 정치권의 공작 여부, 언론계와 정치권의 커넥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쟁점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나라당과 국정원 및 민주당은 사활을 건 '문건 진위 가리기' 승부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선일까지 기간이 짧아 명확한 진위가 가려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양측이 서로 '도청과 공작정치'ㆍ'구정치적 자작극'이라는 고강도 정치공방만을 주고 받을 공산이 커 보인다.
한편 김영일 사무총장은 폭로 문건에 대해 "여기 나와 있는 것은 1차 입수한 것으로 대부분 3월달에 이뤄진 것"이라며 "확인 절차를 더 거쳐 추가 공개할 것"이라고 밝혀 2차, 3차의 문건 폭로를 통한 파상공세를 예고했다.
***한나라당, "DJ 정권이 사회 각계각층에 무차별 도청"**
한나라당이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민주당 경선당시 김원기 고문은 김정길 전 의원과의 전화통화에서 "박지원 청와대 특보에게 '노무현 후보가 본선에서 이인제보다 경쟁력이 좋을 것 같다'는 분위기가 청와대 내에 조성될 수 있도록 잘 얘기해 놓았다. 노무현이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말했고 김 전 의원도 "동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김원기 고문은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그날 전화한 사람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제 평소의 행동이나 원칙으로 보아 있을 수 없는 내용이며 법적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고문은 특히 "과거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한나라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후에 정치권이 혼탁하게 오염됐다"면서 "정치공작하던 사람은 국회에 들어올 수 없게 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길 전 의원측도 "총선에서 떨어진 뒤 정치현안에 전혀 관여해 오지 않은 사람을 놓고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다"며 "김 고문과는 오래전부터 친한 관계지만 이런 내용의 전화를 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자료에는 또 이인제 의원이 박상천 고문과의 통화에서 "광주경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나 일부 세력들이 한화갑을 지원하는가 하면 젊은층은 노무현을 지지해 걱정이다. 박의원의 지원을 요청한다"라고 했으며, 이에 박 고문은 "광주경선과 TV토론회에서 상대측이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면 '나의 본 성향은 민주화운동이다. 광범위한 민주세력이 결집하여 정권재창출을 위해 민주당이 창당됐으므로 정체성을 문제삼으면 창당정신에 어긋난다'고 대응하라. 그래서 광주지역 지구당 위원장들이 이 고문을 지원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 이인제 의원은 "당시 경선때라서 많은 지구당 위원장들과 전화통화를 했다"며 "누구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측근이 전했다.
박상천 최고위원도 "대선후보 경선과 당권경선이 함께 이뤄지고 있을 때여서 각 후보간 많은 통화가 있었고 이인제 의원 뿐만 아니라 여러 후보로부터 많은 지원요청을 받았다"면서 "나 역시 당권경선에 나선 처지여서 매일 수많은 통화를 했는데 어떻게 그 내용을 다 기억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자료에는 민주당 이강래 의원이 KBS 박권상 사장과의 통화에서 "노무현 후보가 PK 지역에서 反DJ 정서만 극복한다면 대선 승리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고문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이에 박 사장은 "한국 정치사에선 좌파가 우파를 이긴 전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노무현 고문의 돌출언행에 대해 불안해하는 만큼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노무현 고문이 가장 말을 잘 듣는 김원기를 통해 노무현을 중도 내지는 우파로 돌려야한다"고 반응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 이강래 의원은 "전혀 사실무근이고 날조된 것"이라고 부인했다. 이 의원은 문건 내용과 관련, "3월 23일은 물론이고 그 후에도 노 후보 지원을 부탁하는 전화를 해 본 사실이 결코 없다"며 "법적 대응을 불사할 것"이라고 강력 부인했다.
이 의원은 또 '한나라당의 말기적 작태를 규탄하며'라는 개인 성명을 통해 "이 후보측은 선거패색이 짙어지자 허위사실을 날조해 현정부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기 위해 광분하고 있다"면서 "집권을 위해 수단.방법을 안가리는 어처구니 없는 작태에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한나라당이 공개한 자료에는 정치인으로는 김원기, 이강래, 이인제, 박상천 의원 등 민주당 의원과 이회창 후보, 이부영, 서상섭, 하순봉, 김용갑, 이재오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자민련 김학원 의원 등의 통화내용이 기록됐다. 언론인은 박권상 KBS 사장,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을 비롯, 연합뉴스,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기자 및 매일신문, 대구매일, 중부매일 등 지방지 기자들이 포함됐다.
김 총장은 이와 관련 "DJ 정권이 사회 각계각층에 대한 무차별 도청을 해왔음이 밝혀졌다"면서 "노무현 후보가 대국민 사기극을 통한 사이비 국민후보로 밝혀진 이상 국민 앞에 사과하고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국가 정보기관을 정치적 소재로 악용"**
한편 국정원은 한나라당이 공개한 도청자료와 관련, "김 총장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정치공세에 불과함을 확실히 밝힌다"고 반박했다.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국정원은 그동안 수차 밝힌 바와 같이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 제6조에 따라 내국인의 경우 범죄수사를 목적으로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감청을 실시하고 있을 뿐 불법도청은 일절 하고 있지 않으며 정치공작이나 정치개입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은 또 "금일 한나라당에서 증거자료로 제시한 문건을 분석하면 우선 형식상으로 글자체나 문맥이 국정원 어느 부서에도 없는 형태의 괴문서로서 국정원 직원 누구도 그런 문건을 본 일이 없고 내용상으로도 국가기관에서 작성했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조잡하고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따라서 이 문건은 공작정치에 능한 자들이 사설 공작대를 동원해 자체 도청을 실시했거나, 일부 시중의 사설정보지에 거론되는 정치적 유언비어를 옮긴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정원과 전혀 무관한 문건을 도청자료라고 제시한 한나라당측에서 이 문건이 누가 어디에서 작성한 것이며 어떻게 입수했는지를 밝힐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정원은 "일부 정치권의 근거없는 도청 주장이 국민불안을 조성할 우려가 있어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전문성 있는 감사원, 정통부 등의 인력, 장비 등을 지원받아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감청 관련 제반시설에 대해 철저한 현장검증을 실시해 주도록 국회에 요청했음에도 불구, 야당측이 현장검증을 외면한채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지속하며 국가정보기관을 정쟁의 소재로 이용하고 있는데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출처불명의 문건들을 가지고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 정보기관의 명예를 훼손한 한나라당 관계자에 대해서는 법적대응할 방침임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민주당ㆍ청와대 "출처불명의 날조된 문건"**
민주당과 청와대도 논평을 내고 "출처불명의 날조된 문건",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낙연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선거전에 들어서자 출처불명의 날조된 문건을 쏟아놓으면서 의혹을 부풀리고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하다"면서 "선거가 급해지니까 턱없는 흑색선전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국정원은 한나라당 문건에 대해 전혀 근거없는 조작문건으로 단정했다"면서 "이렇게 된 이상 한나라당이 도청자료라는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고 역공을 폈다.
이 대변인은 "지난번 도청문제가 나왔을때 민주당은 현장검증 실시 등 합동감사를 제안했지만 한나라당이 반대해 무산됐다"면서 "차제에 국정원 도.감청 문제에 대해 감사원, 정보통신부의 인력을 지원받아 국회에서 합동감사를 하자"고 촉구했다.
장전형 부대변인은 "지지율 하락에 초조한 이 후보가 단말마적 발악을 하고 있다"면서 "국민은 이런 낡은 구태정치를 청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이 후보는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8일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이 `국정원 도청' 주장을 하면서 `청와대 개입설'을 제기한데 대해 "터무니없는 얘기"라면서 "대꾸할 가치 조차 없다"고 반박했다.
또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국정원 도청주장을 하면서 제시한 자료는 터무니없는 괴문서"라면서 "한나라당이 선거를 의식해 자작극 내지는 조작극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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