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여중생 미군 궤도차량 사망사건의 피고인인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 병장에 대한 무죄 평결이 내려진 가운데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에 대한 첫 공판이 21일 동두천시 캠프케이시 미8군 군사법정에서 열렸다.
그러나 운전병에 비해 상대적으로 책임 소재가 큰 관제병에게 무죄 평결이 내려진 만큼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도 무죄가 선고될 것이 유력시 된다.
한편 관제병 니노 병장의 무죄 평결을 계기로 현행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여론이 뜨거워지고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 국민통합21, 민주노동당 등은 21일 일제히 논평을 발표해 SOFA 재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또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오전 8시부터 경기도 동두천시 미 2사단 주차장에 모여 '여중생 치사 미군 군사재판 총력 투쟁대회'를 가졌다. 이날 집회에서는 미 2사단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시위대와 경찰간에 몸싸움이 크게 벌어져 시위대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집회장에 마련된 두 여중생 영정사진 앞 태극기에 집회 참석자들이 혈서를 남기기도 했다.
***운전병도 무죄 평결 유력시**
이날 오전 9시에 열린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에 대한 첫 공판에서 검찰은 "사고 전날 워크 병장은 6시간 충분히 수면을 취하였고, 앞 차량에서 수신호를 했으며 당시 여중생 2명은 최대한 오른쪽으로 걷고 있었다"며 사고 책임을 워커 병장에게 돌렸다.
반면 민선 변호인으로 참석한 가이 워맥 변호인은 "사고 당시 메이슨 중대장이 건너편에서 브래들리 장갑차가 온다고 신호를 주지 않았으며, 도로에는 여유 공간이 없었다"며 "특히 도로 오른쪽은 운전병에게 사각지대이며, 니노 병장이 여중생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다른 보행자들은 인도 왼쪽으로 걷고 있었으나 여중생 2명만 인도 오른쪽으로 걷고 있었다"고 말했다.
워커 병장에 대한 공판은 3일간 계속되며 오는 23일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이 내려질 경우 재판부의 양형이 결정될 예정이지만 지난 18일 이후 재판 진행과정으로 미뤄 무죄 평결이 유력시된다.
이날 공판 재판부와 검찰은 니노 병장 때와 동일했다.
***배심원단·재판부·검찰 모두 미군**
국내 법조인들과 시민단체들은 여중생 2명이 궤도차량에 압사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없는 사건'이라는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미군이 사고 미군을 평결하는 비상식적 재판 방식에서 찾았다.
니노 병장 공판에 참가한 배심원단 7명과 워커 병장 공판에 참가 중인 배심원단 8명은 모두 미군이다. 재판부와 검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미국 배심제도의 핵심전제는 배심원들과 피고인의 관계를 매우 중시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번 사건의 경우 배심원들이 모두 군인으로 동료 피의자들을 심정적으로 편들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이 핵심 전제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와 검찰이 피의자들의 유죄 여부를 밝혀내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고 시민단체들은 지적했다.
니노 병장의 공판을 지켜본 범대위 최근호 상황실장은 "공범이 공범을 재판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미군 당국이 니노 병장에 대해 무죄를 평결한 것은 군사재판을 미군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요식행위로 진행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재판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일제히 SOFA 재개정 촉구**
한편 이번 평결을 계기로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SOFA 재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 지난해 5월 5년에 걸친 한미간 협상끝에 개정된 SOFA 재개정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21일 논평을 통해 "이번 재판결과는 미군측의 미온적 진상규명 태도와 우리 정부의 소극적 대응, 불합리한 SOFA가 낳은 산물인 만큼 우리 당은 진정한 한미관계 발전을 위해 SOFA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배 정책위의장은 "우리 당은 이미 21세기 한미관계를 평등한 관계, 상호이익을 고려한 관계, 불편이 없는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SOFA 규정 개선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며 "미군범죄에 대한 우리측 재판관할권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민주당도 이날 주한미군 재판관할권에 대한 SOFA 조항 개정 필요성에 의견을 모으고 신기남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여중생 사망사건 무죄평결에 따른 대책위를 구성키로 했다.
이미경 선대위 대변인은 "이번 무죄 평결은 한국인 전체에 대한 기만이자 천인공로할 만행으로, 법치와 인권을 지향하는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판결"이라면서 "가해자가 가해자를 심판하는 모순적 구조를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며 재판관할권 이양을 주장했다.
국민통합 21 정동선 부대변인도 "법리와 국민정서 측면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로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미군범죄에 대한 한미 수사당국의 공동조사와 SOFA 개정 등을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불평등한 SOFA에 의해 일방적으로 치러진 주한미군의 재판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앞으로 민주노동당이 주한미군에 대한 강력한 투쟁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SOFA 재개정 요구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SOFA는 지난해 초 개정작업이 완료된 만큼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개정문제를 제기하는 것 보다는 일단 여러가지 운용개선을 통해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취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재판 중단·재판권 이양" 촉구**
한편 여중생 범대위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동두천 미 2사단 앞에서 '기만적인 미군재판저지 살인미군체포 총력투쟁대회'를 갖고 '미 군사 재판 중단'및 '재판권 이양'을 요구했다.
여중생범대위 김종일 집행위원장은 이날 "무죄판결은 무효"라며 "이번 재판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는 계속해서 투쟁을 하겠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또 문정현 신부, 한상렬 목사 등 시민단체 대표들은 몸에 태극기를 두른 채 삭발식을 가졌으며, 집회 참석자들은 신효순·심미선양 영정 사진 앞에 마련된 태극기에 "살인미군 처벌하라"는 등 혈서를 남기기도 했다.
범대위 청소년 대책위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23일을 '제2차 청소년 행동의 날'로 지정하고 이날 오후 3시 용산전쟁기념관 앞에서 규탄집회를 갖는다. 또 범대위는 내달 2일 대표단 10여명을 미국에 파견, 지난 6월부터 1백20만명이 참여한 '재판권 이양 및 부시대통령 사과 촉구' 내용의 서명용지를 전달하고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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