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철 의원이 8일 탈당하는 등 민주당에서의 추가 탈당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탈당파 의원들과 자민련이 다음 주중 독자적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나설 계획으로 알려져,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민주당 탈당파 의원들이 탈당 명분으로 내걸었던 '후보단일화 압박'은 이미 명분을 상실한 상태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 진영이 이들 탈당파를 제쳐놓고 직접 협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탈당파가 설 명분도, 땅도 없어진 셈이다.
***형태를 갖춰가는 중부권 신당 창당 움직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반노(反盧)진영 의원들의 탈당은 계속되고 있다.
원유철 의원이 8일 탈당한 데 이어 유용태 사무총장과 장성원, 송영진 의원은 9일 탈당할 예정이다. 송석찬 의원은 "박병석, 이용삼 의원도 동반 탈당하도록 설득작업이 벌이지고 있다"고 말해 탈당 의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이인제 계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이들의 수장격인 이인제 의원도 지난 7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머지않아 입장을 분명히 정하려고 한다"고 말해 조만간 탈당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처럼 반노진영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지는 이유는 후보단일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중부권 신당' 창당이 목적이다. 경기남부와 충청권이 지역구인 이들 의원들의 경우 자민련과 '중부권 신당'을 창당해 충청권의 맹주로 자리매김하는 게 2004년 총선에서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눈치다. '뱃지 다시 달기'가 이들의 솔직한 속내인 것이다.
김종필 자민련총재는 겉으론 '헤게모니'를 의식해 아직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내심 이들의 움직임을 반기는 분위기다. 거의 입지를 상실한 충청권에 다시 토대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미련 때문이다. 자민련 김학원 원내총무는 7일 "민주당 탈당 의원들과 내주초 원내 교섭단체 구성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당내 의원들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JP 2선 후퇴'를 주장하다가 이날 자민련 사무총장에서 해임된 오장섭 의원을 비롯한 자민련의 대다수 지역구 의원들은 한나라당행을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이들도 아직 자민련 탈당을 단행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쪽 반응이 처음과는 달리 요즘 미묘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의 태도**
역설적 얘기이나,'중부권 신당' 논의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 때문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미래연대 소속 원내외 위원장 20여명은 지난 6일 민주당 탈당파 의원들의 영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래연대측은 영입 반대 이유로 대상자 대부분이 파렴치범이거나 선거법 위반자, 한나라당 해당 행위자 등 '때묻은 정치인'이라는 점을 들었으나 사실은 지역구 공천을 둘러싼 문제다. 이들 의원들이 밀고 들어올 경우 다음 국회의원 선거때 공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내부 반발만 갖고서 최근 한나라당이 보이고 있는 미묘한 대응을 해석하기란 뭔가 부족해 보인다. 당초 "대세론 확산을 위해 현역의원 영입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던 한나라당이 지나치게 잠잠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태도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선 대선 후 총선을 염두에 둔 계산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가 지지율 한계선이라던 '35%'를 뛰어넘은 높은 지지율이 나오고 지지층도 견고해지는 등 '이회창 대세론'이 굳어져가는 양상을 보이자 '집권 후'를 생각한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른바 '도토리 야당 만들기' 구상이다.
***한나라당의 '도토리 야당 만들기' 시나리오?**
한나라당은 12월 대선에서 승리한다 할지라도 집권후 1년여 뒤인 2004년 4월 국회의원 총선을 치러야 한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몽준 후보간 단일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후보단일화가 실패해 대선이 이회창,노무현,정몽준 3파전으로 진행되면 이회창 후보가 50%선에 육박하는, 2위와의 압도적 표차로 당선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현재 이회창 후보의 목표 득표율을 전무후무한 53%로 잡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나라 유권자는 '견제 심리'가 높기로 유명하다. 지난 87년 노태우 후보가 양김 분열로 집권하자, 그 다음해 총선때 유권자들이 야당에게 표를 몰아줌으로써 여소야대 국면이 창출됐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은 90년초 3당통합이라는 인위적 정계개편을 통해 간신히 여대야소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같은 상황의 리바이벌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우선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를 차단해 이번 대선을 3파전으로 이끌고, 민주 탈당파들로 하여금 자민련과 함께 '제3당'을 만들도록 함으로써 대선승리후 야권을 도토리 정당들로 분산시키는 게 2004년 총선 등에서 여러 모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지금 한나라당이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게 정가의 의혹어린 관측이다.
요컨대 2004년 총선에서의 여야간 1대1 대치전선의 구축을 차단하기 위해, 일부러 자민련 의원 영입을 멈춘 뒤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인 셈이다.
이같은 음모론적 시나리오는 한나라당행을 희망하고 있는 일부 민주 탈당파들에 대해서까지 한나라당이 종전에 비해 그다지 적극적 영입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미스테리를 푸는 데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 하겠다.
***후보단일화가 중부권 신당 창당여부의 최대변수**
한나라당의 속내가 무엇이든간에, 현재 퇴로가 막힌 민주당 탈당파 의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중부권 신당'이 거의 유일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자민련 지역구 의원 7명이 모두 빠진다해도 민주당 의원들의 추가 탈당으로 교섭단체 구성은 가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내교섭단체 구성 후 독자적인 신당 창당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의 최대변수는 노무현-정몽준 후보간의 후보단일화 여부다.
한나라당의 예상을 뒤엎고 극적으로 후보단일화가 될 경우 상황은 1백80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이회창 대세론'이 흔들리게 되면서 한나라당은 자민련은 물론, 민주당 탈당파들까지도 모조리 받아들이는 적극적 영입전술을 취할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중부권 신당 구상 자체가 붕괴될 공산이 크다.
또한 정몽준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에는 반노·비노파인 탈당파들이 정 후보쪽으로 몰려들면서 중부권 신당 구상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도 크다.
'후보단일화'가 이번 대선은 물론, 앞으로 2004년 4월 총선의 결과까지 좌우할 최대변수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게 최근의 미묘한 상황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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