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소속 제주도의회 의원 13명은 29일 오후 ‘성희롱’사건과 관련,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공개사과를 요구하고 나서 우 지사의 대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다수 도의원들이 현역 단체장에 집단으로 반기를 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도의원 13명, "우근민 성희롱 공개사과하라"**
한나라당 소속 도의회 의원들은 이날 오후 ‘우근민 지사의 성희롱 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을 통해 “밤낮 없이 뛰어야할 도지사가 성희롱 사건, 선거법 위반 의혹 등 개인적 문제에 매몰됨으로써 도정 수행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제주도민과 제주도의 미래를 위해 우 지사의 대승적 결단을 요구한다”면서 ▲성희롱사건에 대한 공개사과 ▲손해배상과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 등 여성부 권고 수용 ▲행정소송 철회 등 제주도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판단 등을 촉구했다.
도의원 19명 중 절대다수인 13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성희롱’에 대한 공개사과 및 여성부 권고 수용을 촉구하고 나섬에 따라 우 지사가 마냥 이를 거부하기란 힘들 전망이다.
***한나라당 도의원 7명, 그러나 지난 8월엔 우근민 눈치보기**
그러나 이런 도의원들의 입장표명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여성부의 성희롱 결정이 난 직후인 지난 8월초 본지는 한나라당 도의원 12명 전원에게 전화해 이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았다. 지난 15일 한나라당에 입당한 김기성 의원은 취재대상에서 제외됐다.
이같은 조사를 한 것은 한나라당 중앙당이 성희롱 사건과 관련, ‘우 지사의 공개사과 및 사퇴’를 요구하는 공식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같은 한나라당 중앙당 입장에 직간접적으로 찬성했던 의원은 김영훈 김영희 양우철 한정삼 의원 4명에 불과했다.
여기에 "성희롱 사실 자체는 다 인정하지만 우 지사가 이의신청을 하겠다고 나선 상태에서 도의회에서 섣부르게 나섰다간 갈등만 초래할 것 같다"고 말한 고동수 의원을 포함한다 해도 정부기관인 여성부 결정을 인정하는 태도를 취한 의원은 5명뿐이었다.
나머지 의원들은 애매한 입장을 보였고, 일부는 우근민 지사를 감싸기까지 했었다.
"계속 다른 일에 매달려서 그 문제는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양대성 의원)
"상임위에서 의원들과 회의를 열어 조치 등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 입장을 표명하기는 힘들다."(허진영 의원)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강원철 홍가윤 강호남 현승탁 의원)
"우 지사가 전부터 친절하게 사람을 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발생했을 수 있다고 본다."(고석현 의원)
지역의회 의원들은 당 소속이나 중앙당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지자체단체장과 밀접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반응들이었다.
***또다른 하나의 '줄서기'?**
따라서 한나라당 도의원들의 이번 입장표명은 자신의 독자적 가치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최근 돌아가는 정국 추이를 살핀 뒤 나온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게 지배적 여론이다.
여성부가 우지사의 이의신청을 기각하고 원심대로 ‘성희롱’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우지사가 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사법부의 최종판결이 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던 의원들이 ‘성희롱’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앞뒤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원내총무인 고동수 의원은 “내부적으로 여성부 이의신청 결정이 날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많았다”며 “그러나 여성부 재심 결정에 우 지사가 행정소송까지 제기하고 나서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 입장을 밝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최근 '이회창 대세론'이 확산되자 대세론을 굳히기 위한 '대선 지역전략'의 일환으로 민주당 소속인 우근민 지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세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다른 하나의 '줄서기'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제주지검, 우 지사 소환**
한편 제주지검도 지난 6.13 지방선거 제주도지사 선거전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우근민 후보의 허위사실 공표' 고발 사건과 관련, 29일 오후 우근민 지사를 피고발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지난 28일 고발인 측인 신구범 전 지사를 소환, 조사한데 이어 이날 우 지사를 불러 제주지방경찰청 수사 기록을 중심으로 사실관계 등을 재확인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6월1일 우근민 후보가 허위사실을 공표비방했다며 서청원 대표 명의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으며, 경찰은 검찰로 이 사건을 넘기면서 ▲신 후보가 지사 재직 때 감귤 풍작으로 도에서 매입한 감귤을 불법으로 땅에 파묻었다 ▲신 후보가 축협중앙회 재직시 5천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히고 파산시켰다 등 우 지사의 주장에 기소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와함께 우 지사의 선거비용 1억여원 축소 신고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우 지사의 경우 조사할 내용이 워낙 광범위하고 조사 대상도 많아 한정된 시간에 모든 것을 조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혀 선거법 위반 혐의 등과 관련해 우 지사가 검찰에 재소환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제주지검의 자세도 우근민 성희롱 사건조사때 "고여인을 만진 것은 사실이나 성희롱으로 볼 수는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한 종전과 크게 달라진 것으로, 세간의 냉소적 반응을 사고 있다.
제주도 현지에서는 우근민 지사가 사실상 '집무정지' 상태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우근민 지사는 고립무원의 처지로 몰리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한나라당 제주도의원들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우근민 지사의 성희롱 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
우근민 지사는 지난 1월 도지사 집무실에서 모 여성사회단체장이던 고모 여인을 성추행 했다고 제주여민회와 고 여인에 의해 여성부에 신고됐습니다. 이후 우근민 지사는 본 사건이 정치적 경쟁자였던 신구범 전지사측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며 오히려 조작설을 부각시켰고, 문제를 제기한 제주여민회와 고 여인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제주지검에 고발조치까지 했습니다.
본 사건은 제주지검에 의해 무혐의 처리됨으로써 사실상 제주여민회와 고 여인이 조작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음이 드러났음에도 우근민 지사는 오히려 지난 6.13 도지사 선거를 통해 자신이 신 전지사측의 조작에 의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도민의 이목을 속였습니다.
그리고 당선이 됐습니다. 지난 7월 여성부는 제주여민회와 고 여인의 신고에 대한 조사결과로 우근민 지사의 성희롱은 인정되며, 재발방지와 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권고했습니다. 우근민 지사와 제주도는 여성부의 조사결과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재심의를 요청했고 그 결과에 따라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10월21일 여성부는 최초 조사결과와 동일한 내용의 재심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여성부의 재심의 발표 직전 우근민 지사와 제주도는 여성부의 재심의 결과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지난 10월 25일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는 여성부의 공신력을 훼손하고 나아가 여성부의 결정을 부정하는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접하면서 제주도정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할 도지사가, 그것도 도지사가 현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성희롱 사실을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뇌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제주의 사활이 달려있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건설 추진, 감귤산업 부흥,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문제, 일부 사업장의 노사분규사태 등에 대해 밤낮없이 뛰어야할 도지사가 성희롱 사건으로부터 선거법 위반의혹 등 자신의 개인적 문제에 매몰됨으로써 도정수행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으며 더 이상 도민사회의 분열을 야기 시키지 말아야 함을 물론 행정공백이나 낭비가 없어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주도민과 제주도의 미래를 위해 우근민 지사의 대승적 결단을 다음과 같이 촉구하는 바입니다.
1. 성희롱사건과 관련해 우근민 지사는 피해자 및 제주여민회, 그리고 도민사회에 대해 공개사과를 요구한다.
2. 손해배상과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여성부의 권고를 솔직하게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3. 더 이상 행정소송이니 하는 것 등으로 시간을 끌지 말고 제주도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요구한다.
2002. 10. 29
제주도의회 한나라당 원내총무 고동수 의원 외 12명 의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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