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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식 정치공작' 문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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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형근식 정치공작' 문제 없나?

<기자의 눈> '국정원 도청자료'의 노림수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제기한 '국정원의 조직적 도청설'로 정치권이 벌집 쑤셔 놓은 듯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국정원측 제보라며 "대당 가격이 3억원이 넘는 도청장비 수십대를 활용해 각계각층 인사들의 휴대전화를 도청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국정원측은 '근거없는 보도'라며 해당 언론사를 고발조치키로 했다.

국정원의 도청행위가 사실이라한들 '쥐뿔'도 없는 민초들 얘기까지 엿들었을까마는 가뜩이나 개인정보 유출이 비일비재한 마당에 '도청'이라는 말이 나온 것만으로도 불쾌하기 그지없다. '국정원 도청설'은 일반 국민들의 이 같은 심리와 맞물려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정형근 '도청자료' 거론, 9월 이후 벌써 세번째**

도청설의 발단은 정형근 의원이 '국정원 도청자료'라고 주장하며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검찰에 대북 4억달러 비밀지원 의혹에 대한 계좌추적 자제를 요청했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대북자금 밀지원 논란에 더해 금감위원장이 검찰을 흔들고 나섰다면 그야말로 현 정권으로서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는 내용이다.

현재 민주당과 국정원 측은 정 의원의 발언에 대해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반발하고 있고, 정 의원은 "이에 대한 자료를 얼마든지 갖고 있으며 얼마든지 제시할 용의가 있다"고 자신만만하다.

정 의원이 '국정원 도청자료'라고 주장하며 의혹을 제기한 것은 9월 이후에만도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지난 4일에는 금감위 국감에서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과 요시다 다케시 신일본산업 사장 사이에 오간 대북사업 관련 대화내용을 끄집어 냈고, 이에 앞선 9월 25일 국감에서도 "한화 김승연 회장의 통화를 도청한 자료를 확보했다"며 대생 매각에 여권 실세들의 개입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불법도청 만연' 인식, 기정사실화**

대북사업 관련 의혹, 대생 매각 관련 의혹은 일단 제쳐두자. 그 의혹제기의 근원이라 할 국정원의 도청 여부, 그 도청의 적법성 여부, 도청자료 유출 여부 자체가 쟁점이다.

도청이 실제 이뤄지나? 그 도청은 합법적인가?

일부 신문과 방송뉴스까지 연일 이 문제를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국정원측 인사의 비밀제보도 등장하고, 정치권 인사들은 휴대전화를 대여섯개 씩 들고 다닌다는 얘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얼마전 특수제작된 비화기를 구입했다는 얘기들이 나돈다.

사실 여부, 법적 확인에 관계 없이 국정원이 정관계 인사들을 폭넓게 도청하고 있으며, 그 도청은 대부분은 불법도청이라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일단 여기까지만으로도 정 의원과 한나라당이 노린 정치적 목적은 절반 이상 달성된 셈이다. 정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대북사업이나 대생매각의 진실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 먼저 "현정부는 무차별적으로 도청을 자행한다"는 인식, 여기서 벌써 분개하고 개탄한다.

정 의원의 의혹제기, 일부 언론의 분위기 편승, 그 바탕에 깔린 국민적 의구심. 이렇게 삼자가 합작품으로 만들어낸 정치적 결과다.

***'줄대기' 퍼뜨리며 '昌 대세론' 강화**

그 다음 주제가 도청자료의 정치권 유입문제다. 여기서도 정 의원과 한나라당은 일단 회심의 미소를 짓는 분위기다.

정 의원은 도청자료 출처와 관련, "국정원 간부들의 충정에 의해 전달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차기 집권가능성 1위 후보를 향한 권력기관 내부의 '줄대기'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국정원측의 일관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권력기관 관련자들이 '쓸만한(?)' 자료를 들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일은 더욱 비일비재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아직 정 의원이 주장한 '국정원 도청자료'가 진짜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법정공방으로 치달을 태세다. 하지만 여기서도 진짜인지 여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줄대기'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이미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정 의원은 '국정원 도청자료'를 들먹이면서 1단계로 도청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2단계로 권력기관 핵심마저 우리편이 많다는 '대세론'을 강화하며, 3단계로 권력말 레임덕 현상을 조장·강화시키는 것이다.

국정원 전신 안기부 경력 12년의 '안기부 맨'다운 교묘한 '정치공작'이다.

***'도청자료' 거론 자체가 정치공작**

또 하나 짚어야 할 문제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 문제이다. 만약 국정원의 도청행위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자료가 정치권에 흘러들어간 것은 별개의 문제다.

경로야 어쨌건 대선을 코앞에 둔 민감한 시점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정원으로부터 특정 세력에게 치명적인 자료가 제공된 것 자체가 명백한 정치 개입이다.

정 의원은 '도청의 불법성'을 면죄부 삼아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안기부 시절 정치개입이 일상사였기 때문인지 정 의원은 사실여부도, 출처도, 유출경로도 분명치 않은 '도청자료'를 들먹이며 민심을 어지럽히고 국정원과 정치권 전체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다시 되짚어보자. 도청은 있는가? 불법인가 합법인가? 도청자료 유출은 사실인가? 정 의원의 자료는 진짜인가?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의혹 제기가 있고, '절대 사실무근'이란 부인만이 있을 뿐이다.

차근차근 따져져야 한다. 그래서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가 '비리 폭로'라는 명분 속에 감추어진 음흉한 '정치공작'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昌 '권력기관 정치적 중립' 공언 어디로 갔나?**

정 의원은 정보 수집과 정국대응 보고서 준비를 위해 7~8명의 실무자로 구성된 전략기획팀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면서 이회창 후보를 하루 평균 4, 5번씩 독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최근 한나라당에서 정 의원의 주가는 연일 상종가라고 한다.

그동안 고비 때마다 대여공세의 선봉장을 자임하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으니 이번에도 이 후보가 정 의원의 정보력에 상당한 신뢰를 보내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이회창 후보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은 수차례에 걸쳐 국정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의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공언해 왔다. 그런데도 지금 한나라당은 국정원을 정치판에 끌어들여 교묘한 정치공작을 펴는 정 의원을 두둔하고 나선다.

명백한 상호 모순이다.

만약 이 후보가 집권한다면 정형근 의원은 차기 국정원장 1호감으로 꼽힌다. 그가 국정원장이 될 때 그 국정원이 어떤 일을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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