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31일 김대업씨의 고소와 한나라당의 맞고소로 시작돼 3개월 가까이 진행돼 온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장남 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증거 없음'으로 결론났다.
검찰은 25일 오전 이른바 '병풍'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김대업씨가 제기한 정연씨 병역비리 전반에 대해 대부분 '사실로 볼 근거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정치권은 '정치공작' 수사 촉구, 특검제 채택 요구라는 정반대의 공방을 펼치고 있고, 수사결과에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문제 제기도 잇따르고 있어 '병풍' 공방은 대선때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검찰, "김대업 주장에 신빙성 없다" 결론**
병풍 수사의 초점은 91년 2월 정연씨의 병역면제 판정 과정에 금품이 오갔는지 여부와 97년 병적기록표 위·변조등을 논의한 은폐대책회의가 있었는지에 맞춰졌으나 검찰은 이를 뒷받침할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검찰의 이같은 결론은 무엇보다 '돈을 받고 정연씨의 면제판정을 도와줬다'는 김도술씨의 진술이 담겼다며 김씨가 제출한 녹음 테이프의 성문분석 결과, '판독불능'이라는 결론이 나온데 이어 인위적인 편집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의견마저 제시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날 오전 11시 정현태 3차장 검사실에서 행한 결과 발표를 통해 이정연씨가 병무청 직원 2명을 만나 병역상담을 하였고, 병역처분 변경을 신청할 용도로 병사용진단서를 발급받은 점 등을 들어 "이정연이 박사과정 진학을 앞두고 27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하게되었던 점에 비추어 고의감량의 증거는 없으나 체중으로 병역면제를 받기 위해 노력하였을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김대업씨가 지난 8월 12일 제출한 1차 녹음테이프 본체가 99년 5월12일 태국에서 생산된 것"으로 밝혀냈으며 "이로써 김대업씨가 99년 3~4월경 김도술씨의 진술을 보이스펜으로 녹음한 뒤 곧바로 1차 테이프에 옮겨 녹음했다는 주장에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냈다"고 말했다.
또한 병역비리 은폐를 위한 대책회의 의혹과 관련해선, "김길부 전 병무청장이 정연씨 병역문제와 관련해 내부회의를 열고 외부인사를 만난 점은 인정되지만 이를 정연씨 병역의혹 은폐를 위한 대책회의로 볼 근거는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검찰은 또 정연씨 병적기록표의 오기와 기재사항 및 직인누락 등 결함에 대해서도 "정연씨 병적표가 재작성 또는 위변조됐거나 정연씨 신검부표가 부당하게 파기된 사실은 없다"며 '단순한 행정착오'로 결론냈다.
이로써 검찰은 그동안 병풍 의혹과 관련된 고소·고발·진정 등 총 22건의 사건 가운데 서울지검 특수1부에 계류중인 14건 중 10여건을 사실상 '무혐의' 종결 처분했다.
검찰은 그러나 한나라당과 김대업씨간 명예훼손 혐의 등 맞고소 고발건의 경우는 양자간 명예훼손 혐의 적용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 김대업씨에 대한 추가 조사 이후 최종 결정키로 했다.
***검찰 수사결과의 미비점 지적 많아**
검찰은 이날 정연씨 병역비리 의혹과 관련된 22건의 고소 고발 사건 중 아직 결론내리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는 보강조사를 통해 추후 순차적으로 결과를 발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핵심 사안인 병역비리 여부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내림에 따라 병풍 수사는 사실상 종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의 이날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의혹들에 대한 거센 논란이 예상된다.
일단 정연씨 병적기록표와 관련, 신검판정 전에 면제 처분이 이뤄졌고 한자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동생들의 이름이 잘못 적혀있는 등 유독 정연씨 병적기록표에서만 발견되는 수십여개의 숱한 결함은 행정상의 단순한 실수로 간주되기에는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또 '은폐대책회의'와 관련, 당시 병무청장이던 김길부씨가 여춘욱씨와 함께 고흥길, 황우려씨 등 한나라당 인사들을 만난 사실을 왜 끝까지 부인했는지도 아직 해명되지 못했다는 문제제기다. 뭔가 떳떳치 못한 대목이 있었으니, 고위층들이 회동을 했었고 끝까지 회동 사실을 숨기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김대업씨와 김길부씨, 고석대령 등 병역비리 의혹에 관련된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이 서로 상반되고 있는 데도 이들에 대한 대질심문조차 하지 않은 검찰 수사의 미진함에 대해서도 비판이 높다.
또한 검찰이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길부씨에 대해 수사결과 발표 직전에야 수배를 내린 대목도 '면피성 수배'가 아니냐는 의혹의 눈총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 '정치공작' 수사촉구, 민주당 특검제 채택 요구**
검찰 수사가 사실상 종결됐음에도 정치권은 이를 둘러싼 공방을 재개했다.
한나라당은 25일 '병역비리 의혹 무혐의' 수사결론에 근거 '정치공작'에 대한 확대수사를 촉구했고, 민주당은 검찰 수사에 강력 반발 특검제를 통한 재수사를 촉구하고 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일 방침을 천명했다.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사태를 호도하고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면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용수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김대업의 '수사관 사칭' 혐의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시작된다 하니 늦었지만 다행"이라면서도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고 민주당-정치검찰-김대업간 3각 커넥션 단죄를 위해 박영관 부장검사 등 정치검사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날 오전 원내 대책회의를 열어 특검제 채택을 촉구하고, 병역비리 근절 1천만인 서명운동의 재개, 병적기록부 시민배포 검토 등 강경투쟁 방침을 정했다.
신기남 최고위원은 "검찰 내에서 대반전을 꾀하려는 음모가 아닌가 본다"며 검찰내 '음모설'을 주장했고, 천용택 의원은 "김길부 전 병무청장이 병적기록표를 가지고 당시 안기부장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찾아갔고 여당 의원들과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등의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를 종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문석호 대변인은 "권영해 안기부장과 김광일 당시 대통령 특보까지 김길부 전 병무청장과 접촉했다는 것은 병역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권력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반증"이라며 새로운 의혹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한편 김대업씨는 김도술씨가 정연씨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 군검찰 수사 당시 진술한 내용이 담긴 '자술서' 사본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추가 자료공개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검찰이 이처럼 사실상 '무혐의 종결' 처분을 내림에 따라 이번 사건은 검찰 판단을 뒤엎을만한 새로운 증거나 증인이 나서지 않는한 대선때까지 정치공방이 거듭되는 의혹사건으로 머무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