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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우조교 성희롱’ 발언만 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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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운찬, ‘우조교 성희롱’ 발언만 문제 아니다

<기자의 눈>여교수 채용목표제 반대는 자기 모순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23일 여성부 한명숙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해 파문이 일었다.

한 장관은 최근 서울대 법대학생회로부터 "서울대 여교수 채용 확대와 빈발하는 대학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 여성부가 관심을 가져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논의하기 위해 정 총장과 프레스센터 19층에서 만났다.

***정운찬총장의 '우조교 발언' 파문**

이 자리에서 정 총장은 한 장관이 우 조교 사건과 연관지어 학내 성희롱 문제를 언급하자 "우 조교 사건은 (신 교수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매장된 것은 문제"라며 "소장을 보면 신 교수가 아주 딴 교수다, 40개 항목 중 20개가 터무니없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판결이 나버리고 나니 그만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 여성운동도 신중해야 한다"며 "어떤 일은 운동 차원에서 해결돼야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아주 죽을 맛이고 매장당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후 여성계의 비판성명이 나오는등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자 정 총장은 24일 "한 장관과 흉허물없이 한 이야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면서 "여성계와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곧바로 사과했다. 정 총장은 "성희롱 문제가 사회적 이슈화되고 사회적 발전의 계기가 된 우조교사건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고 법원의 판단도 존중하고 있다"며 "단지 잘 알고 지내던 교수와 가족들이 그 사건으로 어려워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해 한 장관에게 그같은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 총장이 한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신교수가 아니라고 하나 내가 보기에도 성희롱을 한 것은 맞다"고 지적한 점과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점을 미루어볼 때 이번 발언을 놓고 정 총장의 '여성의식'에 대해 과도한 반응은 일단 삼가기로 하자. 서울대 총장이 여성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하기엔 부적절한 발언임에는 틀림없지만 말이다.

***여교수 채용목표제에 부정적 입장 취한 것이 더 문제**

오히려 이날 정 총장의 발언 중 짚고 넘어갈 대목은 여교수 채용목표제에 대한 것이다.

정 총장은 이날 "서울대가 추진하는 개혁과제에 여교수 채용목표제를 포함해 달라"는 한 장관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정 총장은 "교육부와 협의해 전체 교수의 수요조사를 해보고 긴요한 자리에 교수를 뽑아야 하나 교수의 퀼리티(자질) 문제도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여자를 뽑으려고 노력했는데 상대적으로 남자가 너무 우수한 경우가 있었다"며 최근 경쟁관계의 남녀 교수 후보 중 남성을 뽑은 사례를 소개했다.

정 총장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서울대가 7.6%라는 독보적으로 낮은 여교수 비율을 보이는 데에는 여교수의 자질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여교수 자질만의 문제일까?
이는 또한 정 총장이 지난 8월 취임일성으로 신입생 선발에 있어 지역할당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과 모순된 입장은 아닌가?

***서울대 여교수 비율 7.6%에 불과**

현재 서울대에는 1천4백96명의 교수가 재직중이나 이 가운데 여성은 1백14명(7.6%)에 불과하다. 이는 전국 사립대와 국·공립대 여교수 평균 비율 16.0%, 8.8%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 예로 법과대학.경영대학.수의과대학에 여교수가 한명도 없으며 2백57명, 1백1명 교수가 재직중인 공과대학과 농업생명과학대학도 각각 1명의 여교수만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학과별로도 중어중문학과, 경영학과 등 46개과에 단 한명의 여교수도 없다.

문제는 서울대 여학생 비중은 점점 높아져 30%를 웃돌지만 여교수 비율은 10년째 별다른 변동이 없다는 것."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여학생들은 모두가 남학생들보다 공부를 못해 교수가 못된 것일까"라는 의문이 제기될 만하다.

급기야 지난해 8월 이기준 총장 재직시절 서울대 여교수회(회장 정옥자 국사학과 교수)는 학교에 여성교수 채용할당제 실시를 촉구했었다. 여교수회는 건의문을 통해 "학문후속세대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간호대와 생활과학대(구 가정대) 등 특수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여교수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5년 안에 여성교수 비율이 10%에 도달할 수 있도록 여성교수 임용목표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임용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여성을 배제하지는 않더라도, 구조적으로 여성이 학자로서 대학 강단에 서는 일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은 여전하다"는 것이 여교수회의 문제제기였다.

서울대의 교수채용은 학연과 지연에 의한 밀어주고 끌어주기식의 전근대적인 도제 시스템이 견고하게 자리잡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타 대학출신의 교수임용율이 5%에도 못 미치는 사실을 통해 이런 폐쇄성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정 총장은 취임후 "여교수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며 "여성을 우선적으로 임용하는 단과대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여교수회에서 건의했던 ▲여성 학문후속세대 증가율에 비례한 여교수 비율 재고 ▲동등한 능력 및 자격 소지자일 경우 여성지원자 우선 임용 ▲여성연구자를 우선 임용하는 단과대에 대한 가산점 제도 도입 중 일부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대학생회가 요구한 '여성교수 쿼터제' 수용을 거부함으로써 정총장의 '의지'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지역할당제 주장하면서 여교수 할당제 거부, 모순 아닌가**

정 총장은 취임직후인 지난 8월13일 한 방송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임기내 지역할당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한바탕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정 총장은 "미국의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유수의 대학도 지역별, 경제수준별, 인종별로 신입생을 뽑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다양한 사회계층이 서로 어울려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도 이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신입생을 뽑아야 사회가 균형 있게 발전한다는 생각에 도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정 총장은 "예를 들어 군 단위별로 1~2명씩 의무적으로 뽑는 등 다양한 선발방식이 있을 수 있다"며 "이렇게 뽑더라도 전체 신입생 4천명 가운데 3백~4백명에 불과해 전체적으로 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총장의 제안에 이상주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도 같은달 20일 "적극적으로 지역할당제를 지지하며 정부지원방안도 강구하겠다"며 찬성했다.
정 총장은 최근 서울대 개교기념식사를 통해 지역할당제 추진 의지를 재차 강력히 표명하기도 했다.

정 총장은 미국의 각 대학에서 실시하는 차별철폐제도(affirmative action. 적극적 조치)를 지역할당제 방식으로 도입하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차별철폐제도란 사회경제적으로 마이너리티(소수세력)를 보호함으로써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제도다. 인종차별, 성차별이 존재하는 한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결과적 평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논리다. 우리사회에서 서울 등 대도시와 기타 지방간에 교육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정 총장의 지역할당제는 국민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진보적 의식을 가진 정 총장이 "여교수의 자질"을 거론하며 여교수 채용목표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자기모순 아닐까? 자질 문제를 들고 나오면 '신입생 지역할당제'도 같은 모순에 빠져드는 건 아닐까?

진보적인 성향의 정 총장의 취임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의 보수성을 깨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 총장이 여교수 채용 문제에 좀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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