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의원이 북핵개발 파문 이후 대북정책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하는 양상이다.
대북 포용정책을 적극 옹호해왔던 정 의원은 북핵 파문 이후 "금강산 관광 등 대북 현금지원 중단"을 요구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22일 전주방송 토론회에선 "경의선-동해선 연결과 경수로 건설 지원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그러다 23일 청와대 회담에서는 "경수로 건설 중단 문제는 여러 회원국과의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고 제네바 협정 파기는 대단히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다시 한발 물러선 입장을 취했다.
***19일, "핵 프로그램 실체 확인 필요, 지나친 경색 안돼"**
정 의원은 대선 출마가 거론되던 시기부터 북핵 파문이 터지기 직전까지 줄곳 대북포용정책을 옹호해 왔다. 대북사업의 물꼬를 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현대가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입장으로 여겨졌다.
정 의원은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기 직전인 지난달 10일 열린 아시아.유럽 프레스 포럼에 참석해 "포용정책은 외교정책의 기본으로 어느 나라나 다 쓰고 있는 만큼 여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대북정책의 핵심을 담은 6대 목표로 ▲한반도의 평화유지 발전 ▲긴장완화와 군축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경제협력을 통한 사실상의 한반도 공동체 구축 ▲식량과 부족물자 지원을 통한 인도적 지원 추구 ▲북한의 국제사회 일원화 지원 ▲장기적 관점의 민족통일 추진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정 의원은 또 북핵 파문이 터진 직후인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만 해도 "북한이 그동안 가동했다는 핵프로그램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현실적 위협은 상존하고 있으며 지나치게 경색될 필요는 없다"고 다소 유연한 태도를 취했었다.
***23일 아침, "핵사찰 없이는 경수로 건설, 중유 공급 당분간 중단해야"**
그러던 정 의원이 대북강경발언을 시작한 것은 지난 21일. 정 의원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북한에 내복보내기 등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을 제외하고 금강산 관광을 포함, 북한에 현금 지원을 해선 안된다"면서 "이같은 입장을 북한에 통보해야 하나 북한과의 대화는 계속해야 한다"고 강경대응 입장으로 돌아섰다.
정 의원은 이어 22일 전주방송 토론회와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정부 입장에선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모든 경제협력,교류는 당분간 중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경수로 건설지원 및 경의선 복원 지속여부에 관한 질문을 받자 "(내가) 원하는 바에 관계없이 당분간 중단되는 것이 확실하다고 봄으로 이에 대한 논의는 의미 없다"고 말했다.
이어 23일 아침 한국발전연구원 초청 특강에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명백한 제네바 합의 위반"이라며 "북한이 핵활동 중지와 모든 새로운 시설의 동결 및 폐기 약속, 사찰과 검증을 이행하지 않는 한 경수로 건설과 중유 공급을 당분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제네바 합의 폐기여부에 대해선 "합의 자체를 폐기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23일 오전, "경수로 중단 재검토 얘기 신중해야"**
그러나 정 의원은 한국발전연구원 초청 특강이 끝난 지 몇시간 뒤에 있었던 청와대 간담회에선 "KEDO 문제와 관련해서 KEDO는 우리가 많은 부담을 지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고 EU에서는 재검토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니 여러 회원국들과 완전한 합의에 이르기 전까지는 계속할 건지 재검토할 것인지를 얘기하는 것은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북 특별사찰을 전제조건으로 경수로 건설 및 미국의 중유 공급까지 당분간 중단해야 한다"던 주장에서 선회, "경수로 건설 중단문제는 재검토 여부를 얘기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로 달라진 것이다.
이렇게 바뀐 정 의원의 대북발언과 관련, 박진원 대선기획단장은 "대북정책의 큰 기조가 포용정책이라는 점은 변한 게 없지만 북한 핵개발 문제는 민족의 생사가 걸린 비상사안이므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 입장에선 모순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盧측, "말 바꾸기"라며 맹공**
하지만 노 후보 진영은 이를 계기로 집중 공격에 나섰다.
임채정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한민족과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장기적 전망없이 정략적인 이해만을 의식한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이낙연 대변인도 "대북정책, 특히 민족의 생존이 걸린 북한 핵 문제에 대해 평소에는 강경론을 함부로 말하다가 막상 청와대 회담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이중적 처신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했다.
김만수 선대위 부대변인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남북정책조차 갈팡질팡하는 것은 국민을 불행에 빠뜨릴 수 있기에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후보단일화론 입지 위축, 당혹**
한편 청와대 회동 직전까지 정 의원이 잇따라 내놓은 대북 강경 발언은 '냉전세력과 평화세력간 대결구도'를 명분으로 후보단일화를 주장해오던 민주당 의원들은 당혹케 하고 있다.
김근태 의원은 "정 의원의 발언은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한 것이며 평화정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해야 할 다음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으로서 부적절한 언사"라면서 "만약 정 의원의 이같은 입장이 정책으로 굳어진다면 중대한 변화"라며 정 의원을 평화세력의 범주에서 배제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정균환 총무는 "그간 정몽준 의원이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큰 틀에서는 우리와 방향이 같은 것으로 이해해 왔다"면서 "정 의원의 진의가 파악되는 대로 정확한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회동에서 정 의원 발언이 평화론으로 바뀜에 따라 이들 후보단일화론자들의 다음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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