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연예병사 세븐과 상추가 안마 시술소를 찾았던 다음 날. 가수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가 선정성 논란을 일으켰을 때. <나는 꼼수다> 비키니 논란 때도 그랬다. 심지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논란 때도 기어코 이 몹쓸 질문은 날아왔다. 남과 여가 도드라지는 사건에는, 통일된 남성의 생각과 통일된 여성의 생각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성 대결을 당연시하는 이런 전제 위에서, 찬찬히 '나의 생각'을 털어놓을 여지는 없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느껴 침묵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질문은 '여성들의 생각'을 물었고, 나는 여성이다. 남성이 아닌 가부장제를 힐난하든, 윤창중 전 대변인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든, 상대는 '남자들은…'이란 주어로 시작하는 문장을 내뱉기 마련이다.
이렇게 계급, 지역, 종교, 직업, 나이, 성적 지향 등 한 사람의 사고를 결정하는 다양한 배경들은 간혹 너무나 쉽게 무시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남성'과 '여성'만 남는다. 여성은 여성 전체를 대변하고, 남성은 남성 전체를 대변해야 하는 얕고 부질없는 도식에 갇혀버린다.
성재기 투신, 여성가족부 때문이다?
29일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46)의 주검이 발견된 후, 이어지는 '그의 죽음은 여성가족부 때문'이라는 비난도 마찬가지다. 일간베스트(일베)를 비롯한 일부 누리꾼들은 '여성부 폐지'를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리는 운동을 벌였다. 여성부 홈페이지는 29일 저녁 한때 접속 장애가 발생했고, 자신을 국제 해커 그룹인 '어나니머스'의 한 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여성가족부 홈페이지 해킹을 예고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두고 나오는 각양각색의 목소리들을 남성연대 편과 여성가족부 편으로 단칼에 양분할 수는 없다. 1인 가족이 급증하는 시대에 여전히 정상 가족 담론을 고수한다는 비판을 받는 여성가족부다. 조윤선 장관 체제로 들어선 이후엔 존재감조차 희미하다. 일각에서는 이런 여성가족부가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연대의 '엑스맨'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조롱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대체 현재 여성가족부의 어떤 구체적 정책이 한국 남성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지 묻고 싶다.
게다가 남성연대 지지자들이 그토록 '불평등'이라 외치는 '과도한 책임'을 만든 원흉은 여성도, 여성가족부도 아니다. 의무 군 복무 제도, 가장으로서 져야 하는 경제적 무게, 심지어 데이트를 하며 들어주는 여자친구의 가방 무게까지도 누가 남성들에게 억지로 안기지 않았다. 외려 군 가산점 제도가 잠시 논란이 됐던 2005년 중앙일보가 시행했던 여론조사를 보면, 여성 징병을 찬성하는 남성은 24.9퍼센트에 불과했다. 강요된 남성성이 무거우면 내려놓으면 된다. 의무 군 복무제 폐지와 여성 일자리 확대, 그리고 더치페이를 요구하면 된다.
▲ 지난 26일 오후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트위터에 올라온 투신 순간 사진.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
안타까운 죽음, 그러나 기획 투신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인터넷을 뒤덮은 여성가족부 책임론과는 달리, 정작 성 대표는 "뻔뻔스러운 간청이지만 시민 여러분들이 십시일반으로 1억 원을 빌려 달라"고 말한 후 한강에 몸을 던졌다. 최근 2억 원이 넘는 부채에 시달려 왔다고 알려졌다. 이 무모한 다이빙이 재정 후원을 받기 위한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가 '동지'로 생각하는 지지자들에게 던진 '투신 예고'는 앞뒤가 달랐던 모양이다. 30일 남성연대는 대국민 성명을 내고 "성재기 대표는 절대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운동으로 단련된 몸과 수영 실력으로 얼마든지 한강에 다이빙을 하더라도 무사 귀환할 수 있다고 확신을 했습니다. 나름 한강의 수심과 지형적 특성도 조사하고 안전요원도 대기시키고 양복바지의 아랫부분을 끈으로 동여매는 등 준비도 해왔습니다"라고 밝혔다.
성 대표의 투신 소동이 결국 후원을 받기 위한 '쇼'였다는 인정이다. 성명은 이를 '도전'이었다고 포장했지만, 그렇더라도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는 공개적으로 '투신'을 예고한 후, 살기 위한 사전 준비를 갖추고 뛰어내렸다. 장마철 한강에서 기획 투신을 하며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정말 못했을까. 죽음이 이렇게 가벼이 여겨져선 안 된다.
자살 증가는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우려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극단적 선택을 줄이기 위한 진단과 해법들도 나온다. 그 구체적 내용이 조금씩 다를 뿐, 자살 증가가 한국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단 사실을 보여주는 징후라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시민단체 대표가 재정 부채 해결을 위해 기획 투신을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죽음 그 자체는 안타깝지만, 그와 별개로 성 대표의 무모한 쇼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번 사건의 책임을 여성가족부에 묻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전형적인 '남 탓'이다. 성 대표의 죽음에서 성 대결이 설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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