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환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이틀간의 인사청문회가 모두 끝났다. 인사청문회법 제정 이후 2번 연달아 총리 인사청문회를 경험한 것이다.
이제 모든 정치적 관심은 28일로 예정된 인준 표결 결과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인준 여부에 관계 없이 인사청문회 자체에 대한 평가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잇따른 두번의 청문회에 대한 평가는 "고위 공직자 자격 검증에 대한 획기적 변화의 계기를 가져왔으나 청문회 내용 자체는 부실했다"로 요약된다.
***박관용 의장, "청문회 효과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면서 공직생활을 하려는 분들에게 엄격한 자기관리에 대한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문회 효과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청문회가 앞으로 잘 정착되면 사회도 정화되고 맑은 정치가 자리잡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이번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박관용 국회의장이 한 말이다. 인사청문회가 우리 사회에 갖는 의미와 힘을 적절하게 요약, 표현한 말로 보인다.
2번의 청문회 모두 각종 비리 의혹이 중점 추궁대상이었다. 능력보다는 도덕성 검증 위주였다. 정치부패와 비리에 대한 국민적 혐오감이 보다 높은 도덕성에 대한 요구로 청문회라는 장을 통해 표출된 것이다.
현재 인사청문회 대상은 국무총리,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감사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다. 게다가 한나라·민주 양당 공히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금융감독위원장 등을 청문회 대상으로 확대시키자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공정거래위원장도 포함시키자는 주장이다.
일단 시작된 인사청문회의 위력은 이제 사회 전체로 확산될 전망이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TV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발가벗고 낱낱이 드러내야 하는 엄격한 검증 기준이 이미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준비기간과 청문기간 부족으로 내용 부실화**
하지만 청문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지극히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첫째 인사청문기간과 준비기간 부족은 청문특위를 담당했던 의원들과 시민단체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로 장대환씨에 대한 총리서리 지명은 9일에 단행됐으나 청문특위 구성은 19일에야 이뤄져 특위위원들의 준비기간은 단 1주일에 그쳤다. 후보자에 대한 기초자료를 청문회가 임박해서야 받아볼 수 있었다.
참여연대 김민영 시민감시국장은 "이번 청문회에서도 장 지명자의 매일경제신문과 관련된 부분 및 탈세의혹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에 국세청 등 행정부서가 미온적 태도를 보여 충분한 사전검토가 불가능했던 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이번 청문회에서 쟁점이 된 사항은 장 지명자의 세금 탈루의혹인데 국세청에서 세금납부실적을 보고하지 않아 사실 확인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장상씨 인사청문특위 위원이었던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특위 구성에서 청문회까지 20일로 제한돼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고, 청문회 기간도 이틀밖에 안돼 제대로 증언을 들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우리 인사청문회 제도가 모델로 삼고있는 미국에서는 공직 후보자를 청문회에 회부하기 수개월 전부터 연방수사국의 신원조회, 국세청의 세금조사,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조사과정 등 혹독한 사전검증과정을 거치게 돼있다.
김민영 국장은 "인사청문회가 제도적으로 안착된 미국과 동일한 수준을 요구할 수는 없겠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특위위원들의 사전검증기간이 보다 충분하게 주어져야 한다"며 "무리하게 이틀로 규정된 청문회 기간도 사안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계현 실장은 "인사청문특위의 자료접근권과 사전조사제도를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며 "의원들의 검증능력 보강을 위해서 민간 전문가들과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문회에 정치논리는 배제돼야…"**
둘째 청문회 자체가 각 당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휘둘린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장상 전 지명자 때와는 달리 정치권은 청문회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장대환 지명자를 둘러싼 의혹에 이례적으로 침묵했다. 양당은 두 번의 총리인준 부결 사태가 불러올 국정공백에 대한 책임 논란 자체가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그러나 장 지명자의 도덕성에 대한 시민단체와 언론의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거대야당의 횡포'라는 비판에 대한 부담이 사라진 한나라당이 고강도 검증을 천명했다. 한나라당의 강경론 선회 배경에는 '병풍'수사에 맞춰진 여론의 이목을 분산시켜야 할 필요성도 강하게 작용했다.
반면 민주당은 장 지명자의 각종 비리의혹과 도덕성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감안, '철저한 검증'을 내세웠으나 장 지명자의 인준 부결사태가 가져올 파장을 우려, 인준안 지지 쪽으로 당론을 모았다.
이같은 양당의 입장차이는 양당 의원들의 질의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등 장 지명자의 비리 의혹에 대한 질타로 일관했으며, 민주당 의원들은 국정수행능력을 부각시키는 등 보호성 질의에 비중을 뒀다.
이번 청문회를 지켜본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청문회 자체의 결함보다는 각당의 정략적 태도에 우선적인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민영 국장은 "청문회가 맥없이 흘러간 데는 청문특위 의원들의 준비부족과 함께 각 당 의원들의 정략적인 태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계현 정책실장은 "이번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도대체 무얼 검증했는지 모르겠다"며 "여야 의원들 공히 장 지명자의 도덕적 결함을 인정하면서도 제대로 된 추궁이 이뤄지지 못한 데에는 병풍을 비롯한 법무장관 해임 건의안 등 정략적 사안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고 실장은 "청문회는 후보의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인 만큼 정치논리는 철저히 배제돼야 한다"며 "시민단체 등 민간영역의 청문회 참여는 당리당략에 따라 청문회가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극복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문회 따로 정치논리 따로' 될 것인가?**
이처럼 인사청문회는 의도했든 안 했든 우리 사회 고위공직자 도덕성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반면 충분치 못한 준비와 정치논리 개입으로 부족한 면도 많이 노출시켰다. 시급한 제도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제 28일 인준표결에서 인사청문회는 또 하나의 시험대를 거치게 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장 지명자 인준문제는 결국 인사청문회와는 별개로 김정길 장관 해임건의안, 정기국회 전략 등과 맞물린 정치적 고려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과연 그럴 것인지 28일 인준 표결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청문회 따로 정치논리 따로'인지, 아닌지 또 다른 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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