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대통령 탄핵'과 '병역비리'에 대한 '1천만인 서명운동' 전개방침을 천명하고 나섰다.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정면 충돌 직전의 양상이다.
그러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장외 서명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나,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뜬금없이 등장한 '대통령 탄핵' 운운은 사건의 진실규명과 상관없는 정치싸움이라는 비판이 높다.
***민주당, '병역비리 근절 천만인 서명운동' 전개**
민주당은 19일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아들들 병역비리 및 은폐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천만인 서명운동'에 착수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당사에서 한화갑 대표의 기자회견에 이어 주요 당직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병역비리근절운동본부 발대식 및 천만인 서명운동' 행사를 갖고 본격적인 서명작업에 돌입했다.
한 대표는 회견에서 '국방의 의무는 신성하고 모든 국민에게 공평해야 한다'며 '그런데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아직도 권력과 금력을 이용해 병역을 면탈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한 음모와 공작을 서슴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는 오늘 병역비리를 발본색원하는 국민적 운동에 나서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특히 '검찰수사와 언론을 통해 검은 거래를 통한 병역비리와 그 비리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던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데도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고 진실규명을 가로막는 반민주적, 반국민적 세력이 있다'며 '우리 당은 이런 조직적, 집단적 범죄행위를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거리 서명운동은 하지 않는 대신 중앙당과 지구당을 중심으로 서명작업을 추진하고 온라인 서명도 병행할 방침이다.
***한나라당, '정권퇴진운동 및 대통령 탄핵' 역공**
한나라당은 이같은 민주당의 병역비리 의혹공세를 '정권연장을 위한 정치공작'이라고 비판하고 공적자금 부실운용을 매개로 정권퇴진운동 및 대통령 탄핵에 나설 뜻을 밝혔다.
김영일 사무총장은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97년 대선때 모 그룹과 엄청난 대선자금 거래가 있었고 집권후 이 그룹은 대북 독점, 빅딜 완승, 공적자금 특혜, 구조조정 대신 증원특혜 등 엄청난 대가를 받아냈다는 의혹이 있어 구체적인 제보와 함께 조사중에 있다"며 "자유당 정권보다 더 실패한 정권은 타도돼야 하고 이런 대통령은 탄핵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DJ와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정몽준 의원의 현대그룹을 함께 겨냥한 공격이며, '대통령 탄핵'이란 마지막 카드를 빼든 정면 반격이다.
또한 한나라당은 이날 현 정권 6대 의혹을 제기하고, 민주당이 병역비리 서명운동을 시작할 경우 대통령 탄핵 추진 서명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6대 의혹에는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와 모 그룹간의 대선자금 거래설 및 당선후 해당그룹에 대한 각종 특혜 ▲권력층 해외 재산관리 ▲민주당 고위실력자의 거액수뢰 ▲장관직 역임 민주당 실력자의 직무관련 축재 ▲민주당 인사의 벤처주가조작 개입 축재 ▲민주당 실세ㆍ주변인사의 성상납 연관설 등이 포함됐다.
민주당의 병역비리 공세에 권력핵심의 각종 비리 의혹 제기로 맞대응하겠다는 포석이다.
***검찰의 신속한 수사결과 발표가 관건**
그러나 양당이 이처럼 극한 대치로 치닫는 상황에 대해 여론은 싸늘하다. "장외 서명운동으로 병역비리가 근절될 수 있나, 무작정 대통령 탄핵을 추진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라는 반문이다.
이미 김대업씨와 한나라당은 명예훼손혐의로 쌍방을 맞고소한 상태다. 그리고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양당은 극한적 정치 공방을 자제하는 게 옳다.
물론 연일 각종 언론을 통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김대업씨에 대해서 검찰은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검찰은 가능한한 신속히, 그리고 정확한 수사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병역비리 근절은 결국 법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민주당이 병역비리 근절을 원한다면 장외서명운동을 펼치기보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 향후 조치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대통령 탄핵' 운운하며 무작정 정치 맞공세를 펼치는 한나라당의 태도도 옳은 것은 아니다.
이미 국민적 의혹의 대상으로 떠오른 '병역비리 의혹'의 진위 여부가 올 대선의 결정적 승부처라는 현실정치의 논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질 책임있는 정당이라면 우선 정확한 진실규명 뒤에 책임소재를 가리고 사후 대책을 수립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의 앞날을 책임지겠다는 양대 정당이 한 청년의 병역면제 의혹을 놓고 정확한 진상도 밝혀지기 전에 죽기살기식의 진홁탕 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보기 싫다'의 차원을 넘어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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