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신당 창당 논란을 기화로 급류를 탄 정계개편 분위기에 한나라당의 촉각이 곤두섰다.
8.8 재보선 압승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향후 진행될 각종 정계개편 시나리오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이다. 민주당이 만일 신당 논란 중에 불거진 마찰을 최소화하고 현재의 위기를 결속의 계기로 삼아 신당 창당을 원만하게 진행시킨다면 한나라당으로서도 그 파괴력을 가볍게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정몽준 연대를 중심으로 반창(反昌)세력의 결집이 성사되면 정국 분위기는 급속하게 반전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한나라당은 보고 있다.
또한 재보선에서 승리를 거둔 당일 정몽준 의원에게 여론조사 지지도 1위 자리를 빼앗긴 심리적 충격도 한나라당 내부에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아직 신당의 모양새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나라당의 구체적 대응방안도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한나라당의 대응을 대략 세 갈래로 정리한다.
***자민련 자극해 한나라당發 정계개편도 고려**
첫째 민주당의 신당에 맞대응하는 한나라당의 역(逆)정계개편이다.
10일 민주당이 신당창당추진위를 구성키로 하고 자민련과 민국당을 비롯해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 이한동 전 총리, 정몽준 의원 등에 신당참여 의사를 공식 타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나라당의 발걸음도 분주해졌다.
한나라당은 무엇보다 신당 창당 과정에서 '반창(反昌) 연대'를 표방한 외부세력의 결집과 노무현-정몽준 연대에 따른 상승효과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한 핵심 당직자는 9일 "민주당의 신당 창당작업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유의해야 한다"면서 "반 이회창 연대를 위한 외연확대 가능성과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대타로 누가 될 것인가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한나라당은 신당 추진을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으로 비판하면서, 동시에 자민련 의원 등 보수성향의 의원들을 적극 영입, '한나라당 발(發) 역(逆)정계개편'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노무현 후보 및 개혁연대 세력 등이 자민련과의 당대 당 통합을 '과거회귀적 신당' 창당으로 규정, 당내 갈등을 빚고 있는 틈새를 노려 재보선 이후 궁지에 내몰린 자민련에 대한 물밑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민주당의 신당 창당에 맞대응하고, 또 '수구정당', '보수 일색'이란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한나라당 역시 개혁성향 인사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새인물 영입'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한나라당, 정몽준 흠집내기 돌입**
둘째 민주당 신당의 향배를 좌우할 핵심변수인 정몽준 의원에 대한 공격개시다.
신당 논란의 핵심사안으로 떠오른 대선후보 문제와 관련, 한나라당은 노 후보의 주가하락과는 반대로 국민적 인기도를 높여가고 있는 정몽준 의원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정 의원에 대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한나라당이 9일 정형근 의원이 제기한 '신북풍 공작' 의혹을 시작으로 정 의원에 대한 '딴지걸기'에 나선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특히 정 의원이 기존 정치권의 이전투구에서 한발 물러나 있어 이미지 훼손이 심각하지 않고, 월드컵 성공에 따른 국민적 호응도가 높다는 점이 한나라당으로서는 부담이다. 거기에 탄탄한 재력과 현대라는 조직을 갖춘 배경도 한나라당이 정 의원의 출마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정몽준 의원이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노 후보를 지원해 줄만한 집권세력 내부의 움직임이 없고 정 의원에게 쏠린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가 당분간은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그러나 재벌2세라는 태생적 한계와 주변인사들과의 잡음설 등 드러나지 않은 정 의원의 약점이 많아 대선후보로서 본격적인 검증단계에 돌입하면 '정몽준 바람'은 결국 무너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회창 후보의 한 측근은 "이런 점을 정 의원이 모를 리 없으므로 본인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고, 신당 추진파도 그를 후보로 하기에는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당=新 DJ당' 성격규정**
셋째 신당과 정계개편 역시 DJ의 정권 재장악 음모이며 부패정치 연장 기도라는 정면 공격이다.
한나라당은 신당 논의가 시작되자 마자 신당의 성격을 '비빔밥 당'으로 규정했다. 최근의 신당 논란에 대해서도 '현 정권의 국면전환용 술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신당의 형태와 상관없이 현 정권 부정부패의 책임과 직접적으로 결부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10일 열린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김영일 사무총장 등 당직자들은 "민주당은 경쟁력 강화 대신 고의부도를 낸 뒤 간판을 바꾸는 사기 기업처럼 비양심적인 작태를 보이고 있다"며 신당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김 사무총장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현 정권에 대해 퇴출명령을 내리자 다시 간판을 바꿔 나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작태"라며 "특히 민주당은 신당을 한다면서 우리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두려워서인지 정치판의 철새나 오합지졸을 끌어들여 누더기당을 만들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남경필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부정부패 책임을 당 간판만을 바꿔서 모면하려던 민주당의 술수를 재보선에서 국민이 심판했다'며 '그런데도 선거가 끝나자마자 신당 움직임을 노골화하는 것은 정권 특유의 오만과 독선'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신당=新 DJ당'으로 성격규정하고 공적자금 국정조사 등을 요구, 현 정권에 대한 부정부패 심판론을 강도 높게 제기할 방침이다.
이와관련 이회창 후보는 "부정부패와 비리, 무능한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따지고 정치도 정화해 나가겠다"고 했고, 서청원 대표도 "공적자금 국정조사 같은 것은 당당하고 단호하게 처리하라는게 국민의 뜻인만큼 이런 부분은 강하게 국정에 임하겠다"고 말해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한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전면적인 압박을 펼쳐 나갈 것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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