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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昌 주5일근무제 시기상조’ 발언은 당론 오해"

한나라당 해명 불구 '책임 떠넘기기' 비판 고조

한나라당이 이회창 후보의 '주5일근무제 도입은 시기상조'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이에 즉각 반발 대립각을 세우고 나섰고, 노동부는 '국민 다수의 뜻'이라며 9월 정기국회 입법 추진 방침을 고수했다.

게다가 양대 노총이 '주5일 근무제를 반대하는 후보는 대선에서 엄중 심판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이 문제가 계속 확대될 경우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크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24일, 주5일근무제 도입에 대한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강조하며 이 후보의 발언을 서둘러 진화하고 나섰다.

그러나 당 내부적으로는 "노동계와 재계의 민감한 사안을 이 후보가 잘못 건드렸다"며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또한 당의 해명 역시 '노사간 합의가 중요하다'는 원칙적 입장에만 머물고 있어 '책임 떠넘기기'라는 비판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 "주5일 근무제 강행은 시기상조"**

문제가 된 이 후보의 발언은 23일 오전 여의도 63빌딩에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측과 가진 정책간담회에서 나왔다. 이 후보는 이 자리에서 "이 정부가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로 임기말에 (주5일 근무제를) 강행하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모든 작업장에 대해 법으로 일률적으로 강요하는 정책은 시기상조"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후보는 또 "다른 나라의 경우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천달러가 된 이후에나 실시하기 시작했다"며 "이 정권이 이를 무리하게 밀어붙임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중소기업 인력난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언급이 재계 편향적 입장으로 비쳐지자 동석한 임태희 의원(제2정조위원장)은 "시대적 흐름으로 볼 때 주5일제를 수용해야 한다는 게 대세"라면서 "다만 중소기업 중심으로 기업 부담이 가중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가급적 노사정위에서 접점을 찾아 추진하는 게 소망스러우며, 노사정간 갈등상태에서 정부가 법안을 국회로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서둘러 의미를 희석시켰다.

***노무현, "일단은 시작해야 한다"**

이에 대해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23일 "주5일 근무제 시행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면서 "기업의 규모나 여건에 따라 유예기간을 두거나 또는 순차적으로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시작해야 한다"고 이 후보의 주장을 즉각 반박했다.

노 후보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나라당이) 대통령 공약이라고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나 근로시간 단축은 한나라당도 16대 총선에서 공약한 사안이고 외국에서 1인당 국민소득 1만5천달러 이상 된 뒤 실시했다고 하나 중국은 다르다'고 반박했다.

노 후보는 또 '모든 사업장에 법으로 강요하는 것으로 말하나 정부입법안의 기초인 공익안이 기업 규모와 업종에 따라 순차적으로 실시하게 돼 있음을 간과한 것'이라며 이 후보의 발언을 비판했다.

노동부 역시 단독입법 추진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방용석 노동부장관은 24일 아침 KBS 라디오에 출연, "이미 2년 이상 논의했고, 이제 더 이상 늦추면 정부 입법조차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며 "한나라당도 국민 74%가 찬성하는 정책을 반대만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입법 강행 방침을 분명히 했다.

***노동계, "주5일 근무제 반대하는 후보는 대선에서 엄중 심판할 것"**

한편 양대 노총이 24일 각각 성명을 내고 이 후보의 주장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사태는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 후보의 주장대로 근로시간 단축을 현장의 노사협상에 맡기면 비교적 잘 나가는 사업장의 노동자는 혜택받을 수 있지만 중소 영세 사업장 및 비정규직, 노조가 없는 기업의 노동자는 소외돼 사회적 위화감이 커지고 일선 기업 노사분규의 핵심 쟁점으로 작용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이어 '이 후보의 시기상조론은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지극히 정치적이고 무책임한 말이며 국민의 78%가 주5일 근무제 도입에 찬성하는 현실을 외면하는 반시대적 발언'이라며 '주40시간, 주5일 근무제의 법제화에 반대하는 정당과 후보에 대해선 12월 대선에서 엄중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성명을 통해 '이 후보가 처음에는 시기상조론을 내세우다 국민여론에 거스르는 결과를 빚자 노사합의로 도입해야지 법으로 강제해서는 안된다고 말을 바꿨다'며 '이는 노동자 열 가운데 아홉은 노조도 없는 사업장에 일하기 때문에 법으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혜택을 볼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총은 또 '주5일 근무제는 노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으로 노사합의 때까지 도입을 미루자는 주장은 사실상 도입을 포기하자는 주장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 발언은 "후보가 당의 기조를 잘못 이해한 것"**

이 후보의 발언에 대해 노동계가 이처럼 거세게 반발하고 이 문제가 정치쟁점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당내 정책그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진화에 나서고 있다.

노동 관련 정책전문가인 허미연 수석전문위원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후보가 중기협에서 했던 발언은 후보가 당의 기조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한나라당에서는 주5일근무제 도입 반대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잘랐다.

허 위원은 이어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만큼 주5일근무제는 당연히 도입돼야 한다"면서 "절차와 시기는 싹둑 잘라 말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고 노동계와 재계의 의견조율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 한나라당의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허 위원은 또 "이 후보의 대선 공약에도 주5일근무제의 단계적 도입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중기협 발언이 나온 후 후보와 당 사이에 입장 조율이 있었으며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이에 대한 해명이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허 위원은 "이 문제가 선거가 있는 민감한 시기에 돌출해 정치쟁점화 되는 것은 올바른 문제해결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계했다.

***재계·노동계 모두 잡으려는 애매한 입장 여전**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주5일근무제 도입에 대한 원칙적 찬성 입장을 강조해 사태를 무마하는 한편 정부의 단독입법 추진 및 노무현 후보의 '즉각 도입' 입장을 '절차를 간과한 무리수'로 규정, 역공을 취하고 나섰다.

남경필 대변인은 24일 논평을 내고 '우리 당도 주5일근무제가 시행돼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그러나 노사정 합의가 결렬되자마자 정부가 단독입법을 강행하려는 것은 문제가 많은 만큼 밀어붙이기식으로 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남 대변인은 특히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순차 실시라도 일단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합의가 지연된다고 모든 작업장에 대해 법으로 일률 강요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며 '법제화는 노사간 합의가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만큼 정부는 노사 양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러한 해명은 "대선에서 재계와 노동계를 모두 잡으려는 궁여지책일 뿐"이란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이미 2년 이상 노사가 논의를 거듭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 마당에 계속 '노사간 합의'만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모든 책임을 정부와 노사 양측에 떠넘기는 책임회피라는 것이다.

이제 노사정과 민주당의 입장이 모두 분명해 진 이상 한나라당도 연내 입법 찬성인지 반대인지, 반대라면 언제 어떤 방식의 입법 추진안을 갖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는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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