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갑작스런 ‘이한동 대안론’을 지켜보며ㆍㆍㆍ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갑작스런 ‘이한동 대안론’을 지켜보며ㆍㆍㆍ

3金과 골고루 얽힌 20년 '양지인생', 다음은?

이한동 전 총리가 갑자기 '뜨고' 있다.

11일 총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이 전 총리를 정치적으로, 그것도 금년 대선과 직접 연결시켜 주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그의 "꿈이 없으면 정치인이 아니다"라는 언급처럼 이 전 총리 혼자서만 그런 '꿈'을 꾸어 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퇴임 직후부터 상황이 돌변했다.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주요 언론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한다.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언론이 각종의 시나리오를 대신 작성해 주고 있다. 급기야 퇴임 일주일도 안돼서 '이한동 대안론'까지 등장했다.

급속한 당세 몰락으로 대선후보급 중진이 전무한 자민련, 노무현 대통령후보 체제를 장담할 수 없는 민주당 일각에서 영입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정몽준 박근혜 이인제 김종필 등의 이른바 '4자연대' 추진세력 동참설도 등장했다.

이 전 총리가 어디로 갈 것인지, 그때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질 것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론지상에 등장하는 면모로 본다면 가히 대선정국 전체를 좌지우지할 만큼 큰 파괴력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이한동 전 총리. 그의 파괴력은 실제 어느 정도인가.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81년 정치 입문 이후 '20년 양지인생'**

먼저 그의 프로필을 보자.
이한동. 34년 경기 포천생. 경복고 서울법대 졸업. 판·검사를 거쳐 80년 변호사 개업. 81년 11대 국회에 입성한 이래 16대까지 연속 6선 국회의원.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을 거치며 3번의 여당 원내총무, 2번의 사무총장, 국회 부의장, 내무부 장관, 당 대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포스트 김영삼을 노리는 '7룡', '9룡'에도 늘 꼽혔다.

하지만 당시 신한국당 경선결과는 2위 이인제 후보와 다섯표 차이의 아쉬운 3위. 그 이후 그야말로 '화려한 변신'이 시작된다.

당 대표까지 역임했던 한나라당을 2000년 4.13 총선 직전에 탈당, 자민련에 입당하는 모험 끝에 공동여당의 총재를 역임했다. 한나라당을 탈당, JP 품에 안기며 그가 남긴 소회는 "떠날 때는 말 없이"라는 유행가 구절이었다.

그러나 JP의 신임에도 불구하고 자민련과의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DJP 공조파기 이후 2000년 8월, 자민련 복귀냐 총리직 유임이냐의 갈림길에서 이 전 총리는 JP의 극구 만류를 뿌리치고 총리직 유임을 택했다.

자민련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DJ와의 협력 속에 대권의 꿈을 키우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당시 언론은 해석했다.

그리고 이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무소속 국회의원.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애초의 뿌리인 한나라당인가, JP의 품 자민련인가, 비록 DJ는 떠났지만 민주당 행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정계개편 이후의 또 다른 어디인가.

***3김과 골고루 두터운 인연을 맺은 유일한 정치인**

그의 이력은 한마디로 '양지 인생'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를 거치며 줄곳 여당의 핵심 요직을 도맡았다. 여야 정권교체 이후 2년이 채 못 되는 야당생활을 했지만, 곧바로 공동여당 자민련 총재, 국무총리로 다시 양지를 찾았다.

이 과정에서 처음엔 군부 실세들과, 곧이어 3김과 골고루 깊은 인연을 맺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여당 대표, 김종필씨가 만든 자민련 총재, 김대중 정부 최장수 총리가 바로 그다. 아마도 우리 정치사에서 3김과 모두 깊은 교분을 쌓은 전무후무한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총리 퇴임 일주일도 못돼 '대안론'까지 등장하는 이 전 총리의 파괴력, 그 힘의 원천은 바로 이 20여년의 '양지 인생', 3김과의 깊은 인연이다.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행보 재개 의사를 밝힌 이래 이 전 총리가 보여준 첫 번째 정치일정 역시 김영삼, 최규하 전 대통령에 이어 자민련 김종필 총재 예방이었다. "그냥 모시고 한잔 했다"며 정치적 의도를 경계했으나 3김과의 관계복원은 이 전 총리의 정치 생리상 당연한 수순으로 읽혀진다.

또한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과는 사돈지간. 정치권 최고실세 3김과의 교분 뿐아니라 언론계 실세와도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이 정도면 갑작스런 그의 부상의 배경을 대충 짐작할 만하다.

***"정치를 오래 하면 말 바꾸기를 하게 된다"**

3김과 더불어 걸어온 이 전 총리의 '양지인생'에는 '말 바꾸기'에 대한 비판이 늘 함께 했다. "소신을 바꾸는 게 소신이냐"는 정치권의 비아냥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지난 2000년 4.13 총선 때 자민련 총재였던 자신이 앞장서 "자민련은 지금부터 야당"이라며 DJP 공조파기를 선언해 놓고, 선거후 8월 총리로 임명되자 공조 복원을 거론한 점은 대표적인 그의 '말 바꾸기' 사례다.

또한 JP의 만류를 뿌리치고 총리직 유임을 택했을 때, 자민련 측은 "잠시나마 이런 분을 총재로 모신 점에 대해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짖는 개'보다 '무는 개'로 보여주겠다"는 논평을 내놓을 정도로 이 전총리의 '변절'을 성토했다. 신의를 저버렸다는 여론의 따가운 질타는 물론이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곧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상을 높여주고 북한의 체제선전에 이용된다"며 햇볕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던 그가 올해 6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한반도의 안정과 남북관계를 위해 가장 적절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자신의 입장변화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에 이 전 총리는 "정치를 오래 하면 말 바꾸기를 하게 된다"고 일축했다. 세월과 당론의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해명이나 지나친 소신 변화는 그의 정치활동 재개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어쩐지 뜬금없는 '이한동 대안론', 그 미래는?**

지난 15일 이 전 총리는 신임 박관용 국회의장을 찾아 "11대부터 16대까지 연속해서 국회에 남아 있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라며 "의장으로 선출되신 데 대해 특별한 감회를 갖고 있다"고 축하인사를 건넸다 한다.

입법부 수장이 된 박의장에게 건넨 '특별한 감회'라는 축하인사, 그 속에는 정말 어떤 '감회'가 있을까. 대통령을 향한 오랜 야망 아닐까.

이미 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그는 야망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당시 이인제 후보에게 5표 차이로 2위 자리를 내주고 결선에 오르지 못한 것을 내심 아쉬워했다는 후문도 있다. 그가 결선에 올랐으면 김덕룡 이수성씨 등과 '반창연대'를 형성 당의 대선후보로 당선됐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행정에 전념하겠다"던 총리 재임 시절에도 '왕건론'을 주창하며 '중부권 대망론'을 심심치 않게 언론에 흘렸다.

11일 총리 퇴임 직후 "정치권으로 돌아가 가슴 속에 소중히 간직해 온 꿈을 실현하는 데 진력하겠다"는 말도 이 전 총리의 대권 야망을 드러낸 단면이다.

그러나 현재 떠오른 '이한동 대안론'의 현실성 여부는 8.8 재보선 이후의 정국변화 양상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한동 대안론'은 이한동 개인의 정치적 파괴력보다는 얽히고설킨 대선구도의 난맥상에서 부각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8.8 재보선 이후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입지 변화는 가장 큰 상황변수로 점쳐진다. 이 전 총리도 재보선까지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정계원로를 두루 예방하며 상황타진에 전력할 분위기다.

어수선한 2002년 대선정국 중에 갑자기 떠오른 '이한동 대안론'. 20여년 그의 행보, 정계 관계 언론계 최고 실세들과의 끈끈한 인연을 되짚어 보면 그리 갑작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갑작스럽고, 어딘지 뜬금없기도 하다.

앞으로 그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양지인생'에서 쌓아 온 든든한 '배경의 힘' 뿐인가, 아니면 새로운 무엇인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