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4일 오전 9시30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무총리, 법무부, 행자부 장관 등 요직에 한나라당 추천 인사를 기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거국 중립내각 구성을 제안했다.
노 후보는 또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에게 부패청산 특별 입법을 추진하기 위한 '대통령 후보 회담'을 제안했다. 노 후보는 부패청산을 위한 특별 입법에 ▲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에 대한 인사 청문회 실시 ▲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 비리를 전담하는 비리조사 특별기구(특검제) 설치 ▲ 일정액 이상 후원금 기부시 수표사용 의무화 등을 포함한 정치자금법 개정 ▲ 부패문제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또는 연장 등을 포함하겠한다고 밝혔다.
노 후보는 "현 정부의 공은 어떤 역풍이 불더라도 확실히 이어가겠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병폐와 현 정부의 잘못은 반드시 청산해 나가겠다"면서 아태재단과 김홍일 의원 거취 문제와 관련, 대통령과 김 의원의 결단을 촉구했다.
노 후보는 이어 "부패문제만큼은 이번 대선이 끝나기 전에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해결하겠다"고 덧붙였다.
노 후보는 또 6.29 서해교전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서 "북한당국은 그 경위에 대해 그대로 밝히고 사과해야 하며 관련자들을 엄중히 문책할 것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 후보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기에 앞서 지난 3일 저녁 정동채 비서실장, 문희상 대선 기획단장, 이강래 대선기획단 전략기획실장, 천정배 정무특보 등과 심야회의를 갖고 이같은 내용의 정국 수습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노 후보의 제안에 대해 아직 청와대와 한나라당 반응은 일단 부정적이다.
청와대의 박선숙 대변인은 한나라당 추천을 받아 중립내각을 구성하자는 노 후보 제안에 대해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며 따라서 이같은 언급은 유감스런 일"이라고 반발했다. 박 대변인은 "김 대통령은 이미 민주당 총재직을 떠났고 당도 탈당했다"면서 "이미 월드컵과 지방선거를 통해 내각이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나라당도 일단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그동안 한나라당이 일관되게 요구했던 것은 선거관리를 중립적으로 할 수 있는 중립내각 구성"이라며 "장관자리를 나눠갖는 식의 내각참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직 정확한 진의 파악이 안된 만큼 좀 더 지켜보겠다"며 "노 후보의 제의는 부정부패와 서해교전 등으로 불리한 정국을 돌려보겠다는 정치적 술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같은 청와대 및 한나라당 반응을 볼 때 노 후보 제안이 곧바로 가시적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에서는 그러나 이번 제의로 노 후보의 탈DJ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청와대 및 동교동 가신그룹과의 한차례 싸움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이번에 노 후보가 내세운 부패방지 특별입법의 경우 그동안 시민단체 등 다수 국민들이 정치권에 요구해온 개혁방향인 만큼 계속해 대화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하튼 노무현 후보가 탈DJ 노선을 분명히 밝힘에 따라 앞으로 일파만파의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음은 이날 노 후보가 발표한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이제 정쟁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합시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지난 4월 대통령 후보가 된 이후 2개월 동안 저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몇 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국민 여러분의 엄중한 질책을 받으면서 저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습니다. 고통스런 나날이었지만 저에게는 무척 의미 있는 단련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우리는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습니다. 이 눈부신 성공이 우리 민족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임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온 국민이 가슴을 활짝 열어 정치적 대립과 지역적 분열로 멍든 대한민국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정치만 제대로 개혁하면 대한민국이 일류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정치입니다. 정치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발전과 도약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국민 여러분을 뵐 낯이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저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략과 부패의 정치, 분열의 정치를 끝내고, 깨끗하고 정정당당한 정치,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생산적인 정치로 개혁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국민 여러분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부끄러운 삼류정치를 자랑스런 일류정치로 바꾸어내고 말겠습니다. 그래서 책임을 다하는 떳떳한 정치인으로 여러분 앞에 설 것을 약속드립니다.
지난 6월 29일 북한의 서해도발은 용납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같은 민족의 젊은이들을 향해 기습공격을 퍼부은 북한의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북한 당국에 대해 강력한 분노의 뜻을 표하며, 북한 당국은 그 경위를 있는 그대로 밝히고, 사과해야 합니다. 또한 관련자들을 엄중히 문책할 것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요구합니다.
아울러 이번 교전에서 전사하신 장병들의 영혼앞에 삼가 뜨거운 추모의 정을 올리며 부상당한 장병 여러분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국의 안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이 소모적인 정쟁을 중단해야 합니다. 지금은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이익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 앞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충심어린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먼저 김대중 대통령께 제안합니다.
대통령은 부패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하루 속히 정리하고 남은 임기동안 국정을 마무리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정권 말기의 불안정한 요소를 제거하여 국민을 안심시키고 경제문제를 비롯한 민생문제 해결에 주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정쟁중단을 위한 중립내각 구성을 긴급 제안합니다.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러나 저는 월드컵 이후 정치가 확실하게 달라지기를 갈망하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은 현 정부를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으로 몰아붙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그리고 과반수에 육박하는 의석을 가진 거대 한나라당은 끊임없이 현 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선거관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망국적인 정쟁 중단과 정국의 안정을 위해 이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국무총리, 법무부장관, 행정자치부장관 등 선거와 관련이 있는 부처의 책임자를 한나라당의 추천도 받아서 임명할 것을 대통령께 건의합니다. 불신에 근거를 둔 소모적인 정쟁을 종식시키고 대통령 선거 관리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 내내 검찰의 공정성과 중립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검찰의 권력형 비리 의혹사건 수사는 극한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소위 옷 로비 사건 이후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과 특검제 공방 등으로 2년씩이나 정치권이 정쟁으로 날을 지새웠던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얻은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검찰과 정치권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 더욱 심한 불신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이 법무부 장관입니다. 한나라당이 추천하는 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서라도 어떤 성역도 인정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각종 비리 사건을 엄정히 수사하도록 할 것을 제안합니다. 현 정부에서 발생한 각종 의혹사건은 김대중 대통령 임기 내에 종결해야 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정쟁의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고 정치권은 일체 개입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결단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4천7백만 국민의 내일이 걸린 대통령 선거에 정정당당하게 임하고 싶습니다. 각종 게이트를 빌미로 서로 삿대질을 하는 추한 정치를 하기는 싫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책과 비전을 놓고 멋지게 경쟁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확실하게 달라진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뜻을 받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탈당한 이후 민주당은 집권 여당일 수 없습니다. 저는 여당 후보가 아니며 어떠한 기득권도 누릴 생각이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여당 후보에게 주어졌던 모든 프리미엄을 포기하겠습니다. 정정당당하고 공정하게 선거에 임하겠습니다.
이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제안합니다.
부패청산 특별 입법을 추진하기 위한 '대통령 후보회담'을 제안합니다. 부패청산은 미룰 수도 없고 미룰 이유도 없는 긴급과제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집권할 때마다 부패청산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지난 20년간 똑같은 부패 시비가 되풀이 되었습니다.
월드컵 기간 내내 온 국민이 자랑스럽게 외쳤던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부패지수 42위의 부패국가로 낙인찍혀 있습니다.
이제 입으로만 외치는 부패청산은 그만두고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어차피 해야 할 일입니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 하겠다고 미루지 말고, 올해 안에 부패청산을 위한 특별 입법을 합시다.
저는 다음의 내용을 포함하는 부패청산을 위한 특별 입법을 양당 합의로 연내에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제안합니다.
첫째,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권력기관의 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확대 실시하도록 입법화해야 합니다.
둘째,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전담하는 비리조사기구를 설치합시다. 이것은 특별 검사제를 상설화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집니다. 권력층의 부정부패는 권력의 의지만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서 감시해야 합니다.
셋째, 일정액 이상 후원금 기부 시 수표사용 의무화 등을 포함한 정치자금법 개정을 추진합시다. 깨끗한 자금으로 깨끗한 정치를 만들어 내야합니다.
넷째, 부정을 저지르면 부정을 통한 이익을 누릴 수 없도록 공소시효를 폐지 또는 대폭 늘리고, 부정한 재산을 끝까지 추적 환수하도록 해서 이 사회에 부정과 부패가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역대 정권이 부패청산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을 무수히 목격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정치, 국민을 속이는 거짓의 정치를 끝내야 합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지금, 바로 이 순간이 결코 놓칠 수 없는 결단의 시기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부패청산을 위한 특별 입법을 추진하여 조속히 법이 시행되도록 합시다.
이 특별입법들을 연내에 조속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저와 이회창 후보의 결의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부패정권 청산을 외치는 이회창 후보께서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저와 이회창 후보는 또한 공정한 경쟁과 승복의 문화를 확립하기 위해서도 만나야 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깨끗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패자는 승자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이회창 후보와 만나기를 원합니다. 이회창 후보께서는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현정부가 이룬 IMF 국난 극복과 남북화해의 초석 마련은 역사의 금자탑으로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저는 현 정부의 공(功)만큼은 어떤 역풍이 불더라도 확실히 이어갈 것임을 다짐합니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병폐와 현 정부의 잘못은 반드시 청산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 대통령의 측근과 아들들의 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드높습니다. 아태재단과 김홍일 의원 문제는 대통령과 본인이 결단해야 합니다.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적절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이번 월드컵 대회는 우리 국민이 세계 어느 국민에게도 뒤지지 않는 뛰어난 잠재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가진 새로운 세대(New Generation)가, 새로운 가치관을 지닌 새로운 한국인(New Korean)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정치만 달라지면 이 새로운 한국인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습니다. 정치만 좋아지면 일류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정치가 바로서면 부패를 청산할 수 있습니다.
부패문제만큼은 이번 대선이 끝나기 전에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해결하겠습니다. 또한 저는 대선 과정에서의 정정당당한 공정 경쟁을 위해 여당후보로서의 일체의 기득권과 프리미엄을 포기하겠습니다.
국운 융성의 해인 2002년을 부패 청산과 공정 경쟁의 원년으로 만들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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