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2일 일본방문 귀국보고회를 통해 서해교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대북 햇볕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뜻을 천명함에 따라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각 당은 얼마 남지 않은 8.8 재보선과 연말 대선에 이번 사태가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하며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강도 높게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서해교전으로 악화된 국민감정을 의식, 대응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이번 사태가 자칫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정략적 공세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분위기다.
***김 대통령, 햇볕정책 지속적 추진**
김 대통령은 귀국보고회에서 서해교전사태와 관련 유가족과 부상자 가족들에게 애도와 위로를 전하고 "만약 북한이 또다시 군사력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한다면 북한도 아주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며 우리는 그럴만한 힘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더욱 철저한 안보태세를 확립하고 어떠한 도발에도 이런 손실을 입지 않도록 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대통령은 그러나 "과거 94년 핵문제를 놓고 한반도 상황은 전쟁일보 직전까지 갔고 당시 미 군사당국 판단에 따르면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초기에만 한국인 50만, 미국인 5만의 희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면서 "우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평화를 증진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해 햇볕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측이 서해교전에도 불구, 대화해결 등 냉정한 대응을 요청했다"면서 "확고한 군사적 대비 외에 한·미 군사동맹과 한·미·일 공조, 중국과 러시아, EU 등 세계와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에 앞서 1일 일본 현지에서 가진 동포 간담회에서도 "햇볕정책에 의해 교전사태가 일어난 것은 아니며 소신을 갖고 평화를 지키면서 굳건한 안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해 햇볕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정세현 통일부 장관도 2일 KBS 라디오에 출연 "인도적 대북지원과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면 외국 투자가 빠져나가고 수출이 부진하게 돼 결국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정부의 햇볕정책 지속 추진방침을 확인했다.
***한나라당, 서해교전 사태 선거 쟁점화 조짐**
한나라당은 현정부 대북정책의 전면 수정을 촉구하는 등 8.8 재보선, 나아가 연말 대선에 이 문제를 쟁점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편으론 서해교전과 같은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한 초당적인 협력방침을 표방, 불필요한 정쟁으로 비칠 소지를 차단하면서, 다른 한편 현정부의 대북정책을 실패로 규정, 햇볕정책에 대한 반발정서를 자극하겠다는 강온 조절 전략이다.
이회창 후보측은 1일 "재보선을 한달여 남겨 놓은 시점에서 서해교전이 터진 만큼 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를 이슈화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이 후보가 그동안 주장해온 대북 상호주의와 대북지원에 대한 투명성 제고 및 검증원칙 등을 전면에 부각, 대북정책 문제를 권력 비리 의혹과 함께 선거의 양대 이슈로 부각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서청원 대표는 "서해에서 무력도발이 발발했는데 금강산관광을 떠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금강산관광 즉각 중단을 촉구했으며, 2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는 "서해 무력도발 사태에 대해 국민이 여러 의문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김동신 국방장관과 이남신 합참의장은 해임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경필 대변인도 "한없이 퍼주고 한없이 당하는 식의 햇볕정책은 더 이상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고 햇볕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은 강창희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6.29 서해무력도발 진상조사특위'를 본격 가동, 군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의 책임규명과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고, 국방장관 등 관련자 엄중 문책, 북한의 사과 및 배상, 향후 재발방지 약속 등을 추진키로 했다.
한나라당은 한편 김용갑 의원의 "친북 좌파적 정권" 논란 등 국민여론에 불필요한 정쟁으로 비쳐질 소지가 있는 대목은 서둘러 무마하고 민주당과의 초당적 협력을 주장하는 등 수권정당 이미지도 구축하고 나섰다. 안보 문제는 적극 부각시키되 개혁층의 반발을 살 만한 색깔 공세는 구사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자민련, 햇볕정책 전면 재검토 요구**
자민련 역시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 책임자 문책 등을 촉구하며 현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을 전면 재검토 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종필 총재는 2일 "우리가 선제공격은 하지 않을지언정 북한의 공격에는 철저한 응징을 해야 하며 확전을 우려,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민련 유운영 대변인 직무대리는 2일 북한의 서해도발과 관련한 논평에서 "평택 해군 2함대 사령관이 확전을 우려해 사격중지를 지시했다는 보도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 군의 무력화와 정신해이는 북한의 눈치만 보며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햇볕정책에 있다"고 햇볕정책의 근본적 재검토를 촉구했다.
유 대변인은 이어 "도대체 교전현장에서 군인이 확전을 우려해 사격을 중지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지구상 어디에서 일어날 수 있느냐"며 "결국 우리 군이 정치화돼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데서 비롯된 행태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 대변인은 이에 앞선 1일에도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논평을 내고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와 김동신 국방장관의 즉각적인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자민련은 서해 교전을 대북 햇볕정책의 총체적 실패 사례로 간주하고 보수층을 결집, 지지기반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보수강경론을 매개로 한나라당과 공조, 현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큰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 "대북정책 골간을 흔들어선 안된다"**
민주당은 서해교전에 대한 국민 여론을 감안, 대북전략의 수정이 일정정도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햇볕정책과 민간교류는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군사적 도발 사태에 대해서는 강경대응 방안을 검토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노무현 후보는 1일 "대체로 일단 군사적 위기상황은 종료된 것 같으나 국민은 아직도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면서 "대북정책에 대해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다는 국민의 새로운 문제제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그러나 "대북정책의 골간을 함부로 흔들어서는 안된다"며 현정부의 대북정책에 지지 입장을 밝혔다.
한화갑 대표는 2일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교전규칙을 개정하고 단호한 안보태세를 확립해야 한다"면서 "대북경고 등도 차질없이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대철 최고위원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는 여론도 있다"며 "나는 햇볕론자이지만 이같은 국민 감정을 고려해 강온 전략을 겸하되 좀 더 강하게 해야 할 때는 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기남 최고위원은 "남북간의 화해 및 협력관계가 유지, 발전돼야 하지만 국민감정을 고려한 응징도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대응했어야 옳았다"면서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질책했다.
박상천 최고위원도 안보태세를 확고하게 유지해야 하며 북의 공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교전수칙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북측에 대해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요구 등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또 서해교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사업 등 민간 교류협력 사업은 지속돼야 하며 확고한 안보태세가 햇볕정책의 본질이라는 입장을 정부측에 전달했다.
한편 '안보론'을 바탕으로 한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정치적 공세는 적극 경계, 김용갑 의원의 발언 등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을 수구적, 호전적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역공을 폈다.
노 후보도 한나라당의 '안보불안'을 이용한 정치공세를 겨냥, "국민적 분노와 아픔이 있는 이같은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거나 대북정책 전체를 공격하는 빌미로 삼으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는 점을 당의 성명이나 논평에 첨가해야 한다"고 말해 이낙연 대변인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논평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동안 눈에 띄는 행보를 자제해 온 이인제 의원이 '주적론'을 거듭 제기하며 김동신 국방장관과 임동원 특보의 즉각적인 파면,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취소 등을 촉구하고 나서 이에 따른 당내 파문이 적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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