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인제 의원과 한국미래연합 박근혜 대표가 26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오찬회동을 가졌다. 회동 이후 두 사람은 개헌문제 등 광범위한 수준의 논의만 있었을 뿐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이날 회동은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 지각변동을 염두에 둔 전략적 성격이 다분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치권 입문 이후 처음 갖는 두 사람 간의 회동에서 구체적 논의를 주고받기는 힘들겠으나 지방선거 이후 변화될 상황에 대비한 의미가 크다는 해석이다.
정치권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위기상황에 처한 두 사람의 동병상련이 이날 회동을 만들었다. 뭔가 정치판에 큰 변화가 있어야만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계제가 아니라는 현실적 제약이 공허한 회동결과를 낳았다.
***"서로 공감하는 부분 많았다"**
두 사람의 회동 이후 발표된 합의사항은 개헌 뿐이었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지방 선거를 한해에 모두 치르도록 조속히 개헌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는 것이다.
오찬 후 두 사람은 공동 기자간담회를 갖고 "거의 매년 선거를 치르는 것은 국력낭비이며 이로 인한 국론 분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 "4년에 한번씩 모든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것이 국가경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은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이다. 개헌 합의란 너무도 공허하다. 게다가 한 사람은 민주당 경선패배자, 또 한 사람은 국회의원 1명짜리 초미니정당 대표다. 이 두 사람이 개헌에 합의했다고 해서 실제 개헌이 추진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갑자기 왠 개헌 타령이냐"는 반응이 즉각 터져 나왔다.
관심을 모았던 'IJP 연대'와 지방선거 및 대선에서의 연대 문제 등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고 이 의원은 "광범위한 분야에 대해 초보적인 수준의 얘기를 나눴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박 대표는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분야, 정치 권력구조 문제 등에 대해 새로운 정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데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으며, 이 의원도 "앞으로 자주 만나 정치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고 같이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여 연대론과 관련해 여지를 남겼다.
함께 하긴 해야 겠는데, 아직은 딱히 함께 할 것이 없는 상황이 낳은 '어정쩡한 연대 합의'다.
***세몰이 실패한 박근혜 대표, "정계개편 필요하다"**
이날 회동은 박 대표의 제안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정가에서는 민주당 경선 패배와 한나라당 탈당 이후 정치권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두 사람의 처지가 이날 만남을 촉매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이회창, 노무현 양강구도가 고착돼 가면서 대선을 앞두고 두 사람 사이에는 위기의식의 공감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올해 초까지만 해도 지지율 20%를 넘나들며 대선 레이스의 유력 변수로 지목되던 박 대표의 경우 한나라당 탈당 이후 세몰이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과 회동한 방북효과가 박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미래연합 창당도 별다른 주목을 끌어내지 못했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히고는 있으나 미니정당에 불과한 미래연합이 대선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어떤 식으로건 연대를 모색하고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 대표는 회동에 앞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지방선거 후 정치권 변화가 있을 것이며 지금은 자연스러운 정계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지방선거 후 정계개편이 있을 때 운신이 자유로운 분이 있고 뜻이 같다면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해 이 의원과의 연대 의사를 적극 시사했다.
***지방선거 후 책임론 제기에 대비한 이인제 의원의 재기전술**
민주당 경선 이후 이렇다 할 정치적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 의원 역시 박 대표의 회동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노무현 후보와의 회동에 마뜩찮은 반응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의원은 또한 최고위원, 상임고문, 선대위원장 등 중앙당 차원에서의 양대선거 결합은 전면 고사하고 있다. 당 지도부에 공식 결합할 경우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 지각변동 상황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상황판단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자민련과의 충청권 공조지원에 나섰고 서울시장 및 경기지사 선거본부에서 고문직을 수락, 적극 협력을 약속했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책임론이 제기될 경우를 대비한 복안인 셈이다.
이 의원은 자신의 지지모임인 '21세기 산악회' 정기 산행에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며 재기 의사를 강력하게 밝힌 바 있다. 지방선거 후 어떻게든 정치판을 새로 짜 보겠다는 의지표명인 셈이다. 박근혜 의원과의 이날 회동 역시 훗날을 도모하는 한자락 전술구사로 보인다.
이처럼 정치권 변화를 간절히 바라는 두 사람이 만났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JP, 정몽준 의원 등도 '4자연대설' 등으로 함께 거론된다.
그러나 아직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변화의 주도권도 이들에게 있지는 않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이회창 노무현 두 정치권 중심세력의 위상변화에 따라 이들의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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