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청와대와 민주당의 '월드컵 기간 중 정쟁중단' 요청을 적극 수용, 제 1당으로서의 면모 갖추기에 나섰다.
서청원 대표는 24일 "월드컵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국력을 결집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일상적 당무활동 범위를 넘어 정쟁으로 비칠 소지가 있는 장외투쟁을 포함, 모든 정치적 투쟁을 일단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서 대표는 이날 여의도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월드컵행사 기간에 필요하다면 한나라당의 전국 조직을 동원, 월드컵과 관련된 각종 자원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월드컵행사의 성공을 위해 모든 지원활동에 앞장서겠다"며 "한나라당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당력을 결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또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간 인신공격을 자행하는 등 후진적 정치행태가 날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런 행태들을 즉각 중단할 것을 모든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국 주도권 쥔 여유이자 기선제압**
한나라당의 이 같은 입장선회는 월드컵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열기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세계적 행사를 앞두고 소모적 논쟁으로 비쳐지는 정치권 공방에는 국민적 지탄이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후보 지지율이 탄력을 받아가고 있는 중에 무리수를 둘 필요 없다는 상황판단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지방선거에 대비한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어, 선거열기를 새롭게 고조시키기보다는 월드컵 분위기에 편승하며 현 구도를 굳히는 전략이 보다 유효하다는 판단도 '정쟁중단 수용' 배경의 하나다.
실제로 지방선거 각급 선대위에서는 최근의 권력비리 공세가 지역민들에게 먹히지 않고 정쟁으로만 비쳐지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 올라왔고, 당 외곽 연구소인 여의도 연구소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통령의 당적 포기로 여야관계가 해체되면서 원내 제1당으로서의 수권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측면도 다분한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 자원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방침 등은 국가적 행사에 주도적으로 개입, 여론 형성을 도모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서 대표는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대표회담 제의에 대해 "정국 전반에 대해 논의할 용의가 있다"며 "내가 다시 한번 그런 대표회담을 제의한다"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국 주도권을 쥔 한나라당의 여유이자 민주당에 대한 기선제압용인 셈이다.
***"권력비리 문제는 정쟁과 무관"**
그러나 서 대표는 "대통령 아들들의 권력비리와 현 정권의 총체적 부정부패는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통해 한점 의혹없이 철저히 파헤쳐져야 한다"면서 "만일 그것이 미진할 경우 우리 당은 행사 이후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 진상을 반드시 온 국민앞에 규명하겠다"고 못박았다.
국민여론을 감안, 월드컵 기간중에는 대대적 비판을 자제하겠으나 권력비리 문제가 월드컵을 거치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도록 하겠다는 일침인 셈이다.
또한 한나라당은 "비리척결 문제는 정쟁이 아니다"는 원칙에 따라 권력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통상적 수준의 공세는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서 대표가 정쟁중단을 천명한 이날도 한나라당은 대선자금과 관련한 논평을 내고, '김홍일 의원 등 5명이 분산 관리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민주당, "서 대표의 선언은 선전용"**
청와대와 민주당은 서 대표의 정쟁중단 수용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한나라당의 '조건부 휴전' 방침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논평을 통해 "대통령은 거듭 정치권에 대해 정쟁중단과 국민단합을 통해 월드컵을 성공시키자고 촉구한 바 있다"면서 "서 대표가 월드컵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국력을 결집하자는 대열에 동참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범구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늦게나마 국민의 비판을 수용해 반성하고 정쟁자제 의사를 밝힌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며 "국민과 함께 환영한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그러나 "정쟁자제를 선언한 오늘도 한나라당이 각종 터무니없는 얘기를 늘어놓으며 정쟁을 촉발하는 것을 보면 서 대표의 선언이 선전용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면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입증되길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으로서는 한 대표가 21일 정쟁중단을 선언함으로써 선점한 명분이 한나라당에 넘어가는 상황을 경계하는 눈치다. 월드컵을 계기로 권력비리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집요한 공격을 여론의 관심에서 희석시키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각 당이 정쟁중단을 천명, 인신공격 등 극단적 대립은 다소 완화될 것으로 보이나 권력비리 문제를 둘러싼 물밑 신경전은 첨예하게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지방선거가 본격화되면서 선거 과정에서 권력비리 문제가 쟁점화될 개연성이 충분해 정치권의 '휴전협정'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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