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룡·이부영 의원 과연 한나라당 대선경선에 출마할 것인가.
'후보선출 연기'라는 새 불씨로 내홍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의 최대관심사다.
김덕룡·이부영 의원 등 비주류측은 이회창 총재의 총재직 사퇴후 대선후보 경선을 지방선거 이후로 늦추라는 새 요구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연기 불가론'을 펴며 29일 경선돌입을 공식화했다.
비주류 의원들은 그동안 "이 총재 지지율이 민주당의 노무현 고문보다 낮은 상황에서 지방선거를 치를 경우 지방선거 패배가 곧바로 대선 패배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펴 왔다. 따라서 대선 후보를 지방선거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지방선거 후 후보선출'이 불가피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주류측은 비주류측 속셈이 '대선 도전을 위한 시간벌기'로 보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와 민주당 노무현 고문의 정계개편 구상, 그리고 박근혜, 정몽준 등 신당 추진세력의 움직임에 따라서는, 지방선거후 한번쯤 '이회창 대세론'을 흔들어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기회 엿보기'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주류 측은 대선후보라는 당의 얼굴 없이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고 하반기에 예정된 8.8 재보선과 9월 정기국회 일정을 고려해 비주류 측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이날 경선일정 공식화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김덕룡, 이부영, 홍사덕, 김원웅, 김홍신, 서상섭 등 경선연기파**
29일 비주류 중진인 김덕룡 의원은 기자간담회에서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거론될 수 있는 '후보사퇴론'을 사전방지하기 위해서도 대선후보 경선을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후보 경선 출마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진 이부영 의원도 공감을 표시했다. 지금까지 홍사덕, 김원웅, 김홍신, 서상섭 의원 등이 동조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29일 대통령후보 경선등록 신청 공고와 함께 후보자등록 신청서를 교부하는 등 본격적인 경선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이 총재도 내달 3일 대선후보 경선 참여를 선언하고 총재직을 사퇴, 총재권한대행에게 당무를 맡길 방침이며, 최근 별도의 대선후보 캠프 사무실을 여의도에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주류 일각에서 제기된 '후보선출 연기' 주장을 묵살하고 대선가도에 발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이 총재와 당 지도부가 이렇게 경선일정 고수입장을 강행한 것은 김덕룡 의원 등의 요구에 힘이 실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당내 보수파 의원 51명 모임인 '바른 통일과 튼튼한 안보를 생각하는 모임'(회장 김용갑)은 기자회견을 갖고 "이 총재가 정권창출을 위해 최후의 것까지 버렸는데도 또 다시 대선후보 경선연기를 주장하며 분란을 일으키는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주류측을 성토했다.
이 총재의 '총재직 사퇴'를 이끌어 내기까지 비주류와 목소리를 같이했던 '미래연대' 소속 소장파 의원들마저 논의 끝에 '경선연기 반대' 입장을 모아냈다.
이처럼 '경선연기론'에 동조하는 의원들의 숫자가 너무 적고, 명분상으로도 '총재직 사퇴' 카드까지 구사한 이 총재 측이 우위에 서면서 이날 경선일정 공식화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노무현이 되고 싶은 거냐"**
주류측이 이같은 강수를 둔 것은 비주류 측의 '후보경선 연기론'에 다른 속셈이 깔려있다는 판단에서다.
김덕룡, 이부영 의원등이 '한나라당의 노무현'이 되려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후보 경선출마 여부를 놓고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부영 의원은 28일 1박2일 일정으로 지리산을 찾았다.
이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이 의원이 경선출마를 이미 결정했으며 이번 산행은 경선출마 선언에 앞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김덕룡 의원도 경선 시기만 조정되면 대권경쟁에 뛰어들겠다는 의사를 비치고 있다. 김 의원은 "경선 연기 제안이 수용되면 당에서 참여할 수 있는 역할을 찾으려 한다"며 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비주류측 대권주자로 지목되고 있는 이들의 최근 행보는 민주당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순식간에 잠재운 '노풍'의 '한나라당 버전'을 노린 것으로 관측된다. 한나라당에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한 순간에 '이회창 대세론'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문제는 경쟁력을 갖출만한 시간과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이총재가 집단지도체제를 수용하고 총재직을 내놓을 뜻을 밝혔더라도 이총재가 구축해온 대권후보 입지는 여전하고 주류세력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 총재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자칫 '경선 들러리'가 될 수 있음을 이들이 모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총재의 대권 경쟁력이 본격적으로 검증받게 될 지방선거 이후까지 시간을 벌어둘 필요성이 제기된 것으로 분석된다. 현 시점에서 이 총재가 대권후보로 확정되면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경우에도 이를 빌미로 '후보교체론'을 들고 나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에 입각, 이 총재 측은 '연기론'에 대해 "오로지 이 총재를 흔들겠다는 의도 아니냐"고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 뒤 정계개편 등을 염두에 두고, 지방선거에서 당이 패배하면 후보 교체론을 제기하려는 사전포석"이라는 것이다.
***김덕룡, 이부영 경선참여가 최대변수**
이제 비주류 일각의 '경선연기론'은 남겨둔 채 경선일정이 공식화됐다. 후보등록일은 오는 4월 4, 5일이다. 경선출마를 저울질 해온 김덕룡 이부영 의원 등에게 결정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경선에 참여할 것인지, 아니면 '연기론' 묵살에 항의하며 탈당할 것인지, 아니면 탈당도 경선참여도 하지 않고 당 지도부 비판을 지속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탈당 감행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 당 안팎의 대체적 관측이다.
그러나 경선참여 여부에 대해선 "경선 참여로 비주류 나름의 입지 구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과, "경선에 불참함으로써 지방선거 이후 이 총재를 흔들 기회를 노릴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이총재 측으로서도 '노무현 바람'에 맞서려면 한나라당도 비교적 모양새를 갖춘 경선구도를 만들어 내야 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면 김덕룡, 이부영 의원이 참여해주는 게 모양새가 좋다. 한나라당이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대선경선을 전국순회 형식으로 하려는 것도 최종목표는 '노무현 바람 잠재우기' 성격이 짙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기간 동안 과연 이총재측이 김덕룡 이부영 의원 등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이들 비주류 중진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가 한나라당 경선 성패의 최대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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