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29일 MBC 대선 예비주자 토론프로 ‘선택 2002, 예비후보에게 듣는다’에 출연해 최근 정가의 핵심쟁점이 되고 있는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한 신3당합당에 대해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정 고문은 당초 신3당합당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이었으나 “생각이 짧았다”며 “지역정치, 노인정치로 회귀를 의미하는 신3당합당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고문은 신3당합당은 반대하지만, DJP 연합에 대해서는 ‘5년전 약속이 복원되는 의미’라고 찬성해 다소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또 야당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의 정치활동을 비판했던 것과 달리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김홍일 의원의 정치활동에 대해선 모호한 입장을 취했기도 했다.
MBC 민주당 대선 주자 TV 토론 마지막 주자로 출연한 정 고문은 방송사 앵커, 당 대변인 출신답게 매끄럽고 막힘없는 말솜씨를 한껏 발휘했다. 답변 제한 시간 2분을 한번도 넘기지 않고 짧고 명료하게 답해 패널들이 당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짧고 명료한 답변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날 참석한 한 패널은 “교육, 경제 분야에서 구체적인 질문에 원론적인 답변에 그쳐 정책능력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것 아니냐”고 말했다.
***TV 토론 마지막 날, 밀어닥친 취재진들**
정동영 고문은 이날 부인 민혜경씨를 비롯해 보좌진 4-5명과 함께 오전 11시 5분경 촬영장소인 한국여성개발원에 도착했다. TV토론 마지막 날이라 이날은 NHK 보도국, MBC '시사매거진 2580', '미디어비평'팀 등 많은 취재진이 몰려왔다. 취재진들은 정 고문이 후보 대기실에서 분장을 하는 장면 등을 촬영했다.
분장을 마친 뒤 정 고문은 '모두연설'을 연습하며 보좌진들과 함께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다. 정동영 캠프의 한 관계자는 “다른 후보들이 스튜디오를 빌려 연습한 것에 비해 정 고문은 조촐하게 후원회 사무실에서 난상 토론방식으로 연습했다”고 밝혔다.
방송이 시작되기 10분전에 촬영장에 도착한 정 고문은 방청객들에게까지 악수를 청하며 “인간 테스트를 받으러 나왔다.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등 비교적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과오 순순히 인정**
정 고문은 에둘러 말하거나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민감한 문제에 대해 오히려 공세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한 패널은 “다른 후보와 달리 과오를 시인하는 모습을 통해 젊고 개혁적인 후보라는 차별성이 부각됐다”고 평했다.
정 고문은 국정경험이 일천하다는 지적에 대해 “17년간 기자생활로 현장경험과 방향감각을 갖고 있다”며 “대통령은 나라의 문제가 뭔지 파악하고 방향을 잡는 능력과 국민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설득력이 필요한데, 나는 국민과의 의사소통 능력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정 고문은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자세를 취했다. 그는 “국민경선 지킴이가 되겠다”며 “16개 시도에 별도의 선거사무실을 두지 않고 정치자금 모금한도인 6억원 내에서 경선을 치루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부정선거 시 후보를 사퇴할 용의가 있고, 경선과 본선과정의 정치자금을 시민 옴부즈맨에게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정 고문은 개인 재산이 지난 96년 4억 9천만원에서 2000년 7억4천만원으로 증가했다는 지적에 대해 “후원금 2억 3천만원이 포함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돈 문제를 캐물을 만한 후보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냐”며 “나와 김근태 고문에게 돈 문제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 고문은 앵커 출신이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개인적인 콤플렉스”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는 “정치에 입문할 당시 정권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적인 가치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시스템’ 100여번 강조했지만...**
특히 정 고문은 ‘시스템’에 의한 국가경영을 역설했다. 그는 “현 정부의 실수는 시스템에 의한 국가경영보다 주변 사람들에 의지한 것에서 비롯됐다”며 “국민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철저히 시스템에 의해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밝혔다.
정 고문은 2시간 동안 ‘시스템’이란 표현을 100번 넘게 사용하는 등 새로운 시스템에 의한 국가경영의 절박성을 몹시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시스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하진 못했다.
참여연대 TV토론 모니터링팀은 40대 젊은 정치를 강조하고 정치혁명과 세대교체를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물리적으로 젊은 것 이외에 구시대 기성정치와 차별되는 새로운 비전과 정책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친정 MBC, 화기애애한 분위기 **
정 고문은 방송기자 출신답게 토론 진행 만큼은 다른 후보에 비해 우수했다는 것이 패널들의 총평이다. 그는 TV토론을 마치고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며 “대북관계, 부정부패척결, 교육문제에 대해 정책대안을 준비해 왔는데 얘기하지 못했다”고 아쉬워 했다.
그는 또 DJ정부의 실패를 인사정책의 실패로 평가했는데 29일 단행된 개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에 “말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정 고문은 방송을 마치고 패널 및 이인용 해설위원 등 MBC 관계자들과 함께 30여분간 담소를 나눴다. MBC 앵커 출신인 정 고문이 ‘편안하게 얘기를 나누게 자리를 비겨달라’고 요구해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가 오고 갔는지 모르지만 문밖으로 간간이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한편 이번 TV 토론에 대해 시청률이 2%대에 불과하고 정책 중심의 토론이 진행되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 이인용 해설위원은 “TV토론은 말을 많이 하고 돈을 적게 쓰는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다”며 “본선 후보가 아닌 당내 경선 후보인 만큼 정책도 중요하지만 정치가로서 어떤 길을 걸어왔나 짚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기과열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에 대해 “TV 토론 등을 통한 후보 검증은 민주주의가 치러야할 비용”이라며 “뒤에서 돈으로 분탕질 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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