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등에 지고 그 위에 짐을 실어 나르도록 만든 한국 특유의 운반 기구. 두 개의 가지 뻗은 장나무를, 위는 좁고 아래는 벌어지게 나란히 세운 다음, 그 사이에 세장을 가로질러 사개를 맞추고 아래위로 질빵을 걸었다."
올해 봄 경주 시내를 통과해서 안강읍의 야산으로 꽃산행을 갔을 때의 일이었다. 금곡사지 원광법사 부도탑 안내판이 있고 그 옆으로 하곡 저수지가 넓고 길게 산의 골짜기 속으로 깊숙이 뻗어 있었다. 저수지의 습한 기운을 따라 저 골짜기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다고 했다. 못에 가득 찬 물. 못물은 깊은 침묵으로 겨울을 통과하고 이젠 찰랑찰랑 표면을 일렁이고 있었다. 이제 봄이 도래하니 그간 참았던 말문을 열겠다는 심사인지도 몰랐다.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노루귀 등 일찍 봄소식을 전해주는 꽃을 관찰하고 장소를 이동해서 금곡산 골짜기를 오를 때였다. 야트막한 고개로 오르는 길 복판에 서 있는 물체를 만났다. 그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지게였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한눈에 척 감겨드는 정다운 물건, 지게. 가까이 가서 보니 지게 주인은 어디 가고 없고 지게만 덩그러니 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게에는 무슨 공사를 하려는지 시멘트가 한 포대 실려 있었다.
▲ 시멘트를 지고 있는 지게. ⓒ이굴기 |
모처럼 보는 그 지게는 어릴 적 시골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런 것도 최신식이라고 해야 할까. 지게는 작대기만 빼고 모두 금속 파이프를 잘라 맞춘 것이었다. 어깨와 맞닿는 부분이 반질반질한 질빵도 새끼가 아니었다. 영 옛날 맛이 나지를 않았다.
꽃산행을 모두 마치고 내려오는 길. 다시 지게를 만났다. 그때까지도 지게는 우두커니 길 가운데 작대기에 의지한 채 서 있었다.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었다. '날카로운 왜낫 시렁위에 걸어놓고 / 오매는 몰래 어디로 갔나'(서정주, 麥夏)가 언뜻 떠오르는 풍경.
말없이 서 있는 그 지게를 보면서 정작 떠올린 풍경과 단어가 하나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자란 시골. 그 시골은 경상남도 거창의 덕유산 자락인 아주 깡촌 마을이었다. 당시 팔팔한 젊은이가 평생을 보내기에 그 시골은 너무 좁은 우리였다. 그래서 많은 청년이 아버지가 소 판 돈이나 혹은 어머니 누에 쳐서 모은 돈을 몰래 훔쳐서 도시로 줄행랑을 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성공하기 전에는 고향에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청년들은 지게를 벗어 던졌다고 한다. 과격하게 한 성격하는 어떤 이는 지게를 부수고 불태우기도 하였다던가?
이처럼 좁은 시골에서 지게와 함께 썩을 수는 없다면서, 낯선 도시에서의 막연한 성공을 꿈꾸면서, 고향을 몰래 빠져나간 이들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우리 동네에서는 '개주간다'고 했다. 그리하여 마을 어머니들이 우물가에서 드물게 이런 말을 나누기도 하였던 것이다. "아이고, 누구네 집 아들이 요새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만 그제 개주갔다고 하데!"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앵두나무 처녀'는 이처럼 당시 시골 사는 젊은이들이 감행했던 '개주'의 심정을 절절하게 읊은 노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주간다고 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외려 몇 주 만에 비정한 도시에서 되튕겨오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지게 작대기로 다리몽둥이가 분질러지도록 흠씬 두들겨 맞는 게 다반사였다.
나는 이 노래와 함께 개주간다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런데 참 이상타. 주위에 물어보니 이 단어를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닌가. 개주가 우리 동네에서만 벌어진 일은 분명 아닐 텐데 개주를 아는 이가 없었다. 국어사전을 뒤져도 '개주'라는 말이 없었다. 이제 개주가는 일이 없어졌다고 개주라는 말도 개주갔다는 말인가.
야생화 보러 간 경주에서 지게를 보고 개주라는 단어를 새삼 떠올리며 오래 잊었던 그 말의 유래를 유추해 보았다. '개주'라는 말은 혹 다음과 같은 사연을 간직한 말은 아닐까. 식물 이름 중에는 '개'자가 붙는 게 많다. 개다래나무, 개망초, 개민들레, 개벚나무, 개벼룩, 개부처손, 개여뀌, 개옻나무, 개비자나무, 개살구나무 등등. 이들은 대개 원 이름보다 조금 열등한 것들을 지칭한다. 그러니 개주라는 말도 멀리 '달려간다(走)'는 것을 비하해서 '개'를 붙여 '개주'라고 한 것이 아닐까.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러기에는 인생을 걸고 '개주'를 감행한 분들께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물론 개주갔다가 싸늘한 도시 인심에 혼쭐만 나고 고향으로 쫓겨와 지게 작대기에 맞아 피멍이 든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게를 벗어 던지고, 지게 작대기의 세례도 피하고 자신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한 이도 드물게 있다.
아마 현대를 일군 고(故) 정주영 회장 같은 분은 개주갔다가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 인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개'를 바꿀 개(改)로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니 '개주가다'를 국어사전에 수록한다면 이런 풀이가 될 것이다. "어깨를 짓누르던 지게를 벗어던지고 달리고 달려서 마침내 운명을 바꾸다."
꽃산행에서 촉발된 이야기이니 꽃으로 마무리하자. 그간 사전을 많이 들추었지만 '한국 특유의'라는 풀이는 처음 보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국어대사전에서는 '지게'를 "사람이 등에 지고 그 위에 짐을 실어 나르도록 만든 한국 특유의 운반 기구"라 했다. 그 말은 아마도 지게는 한국에만 있다는 뜻일 게다. 식물학적으로 말한다면 지게는 한국 특산의 고유종(固有種)인 셈이다.
저 지게에 실려 참으로 많은 세상의 일들이 오고 갔다. 헝겊을 덧대 반질반질해진 질빵은 고단한 농촌살이의 흔적이었다. 장사익의 노래 '꽃구경'에서 아들 등에 업혀가는 어머니도 실은 아들이 진 지게를 타고 가는 중인 것이었다.
"바위 속 산도야지 식식거리며 / 피 흘리고 간 두럭길" (서정주, 麥夏)
그 호젓한 길로 떠나간 주인을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 있는 개량식 지게. 그 지게와 그 지게를 홀로 떠받치고 있는 작대기를 뒤돌아보는데 내 고향 사람의 고유한 얼굴들이 몇몇 떠올랐다.
▲ 작대기에 의지해 있는 지게. 그 작은 고개 너머로 주인은 무엇을 찾으러 가고 없었다. ⓒ이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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