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들이 패스21의 주식을 보유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착 의혹뿐 아니라 윤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기자가 패스21의 주식을 받은 뒤 주가를 올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홍보성 기사를 작성한 경우 범죄가 된다. 유착 의혹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취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면 그 자체가 윤리적인 문제가 된다. 지난 98년과 2000년 중앙언론사의 기자와 케이블TV의 PD가 취재와 관련된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일로 각각 언론사를 떠난 경우도 있었다.
이번 패스21의 주식 보유 의혹을 두고 그간 언론의 보도를 보면 상황이 명확하지 않다.
지난 2년여 동안 패스21에 관한 보도는 중앙일간지가 각 3-5건이었다. 기사는 ‘생체인식기술 개발’'이규성 전 재경장관 패스21 회장에 취임’지문암호 전화 개발’ 등이고 과학 기사로 같은 내용을 되풀이 한 정도였다.
경제지는 매일경제가 30건 정도이며 서울경제 한국경제 내외경제 등은 10건 정도. 중앙일간지의 기사에 ‘은행, 패스21과 업무제휴’‘윤태식씨 불우 아동에게 1억원 기탁’‘패스21, 미국 벤처기업 인수’‘생체인수기술 중동에 수출’ 등의 기사가 덧붙었다.
매일경제의 보도 건수가 특히 많았던 것은 이 회사가 엔젤클럽 등 자체 사업과 관련해 벤처기업에 관한 기사를 많이 다루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장이 패스21의 주식을 보유해 의혹을 산 서울경제는 99년12월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 정도의 기사 건수는 패스21만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99년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벤처열풍을 타고 경제지의 벤처기업 기사가 급격히 늘어났다. 99년 중반부터 2000년 중반까지 1년 동안 벤처기업에 관한 기사는 각 경제신문마다 매달 수십 건씩 게재됐었다.
당시 한 경제지의 담당 부장은 “벤처기업의 옥석을 가릴 방법도, 틈도 없이 이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며 “벤처기업은 주식에 투자한 독자들의 중요 관심사였고 신문사의 광고 수입원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한편으로는 당시 기자들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공공연히 붐을 이뤘다. 기자뿐만 아니라 변호사 회계사들도 줄을 이었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아예 기관장이 앞장서 투자조합을 만들어 공무원들에게 투자를 권유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기자가, 또는 언론사가 개별적으로 특정 벤처기업과 유착돼 주가 띄우기에 가담했는지 여부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언론이 독자의 요구에 따라 기사를 쏟아냈다고 하지만 기사에 대한 책임은 언론사가 져야 한다. 모든 신문이 검증도 없이 벤처기업에 관한 기사를 쏟아낸 것만은 아니었다. 벤처열풍이 한창이던 99년 한 경제지는 신발명품을 내놓은 회사의 주가가 폭등하자 이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해 언론중재위에 제소되기도 했다. 이처럼 언론이 검증할 여지가 있었으며 다른 벤처기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라도 검증을 했어야 했다.
패스21의 경우 생체인식기술에 관해서는 문제 제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윤태식씨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 터였다. 2000년 1월 주간동아가 윤씨와 수지 김 사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만큼 약간의 주의만 기울였어도 의심을 가질 만했다. 그럼에도 그 보도 후에도 윤씨에 관한 홍보성 기사가 여러 건 보도됐다.
2000년 5월 월간조선에 윤씨에 관한 인터뷰 기사가 보도됐다. 월간지 기자와 부장은 인터뷰 후 패스21의 주식을 매입했다. 12월에는 한 경제지에 역시 윤씨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됐고 2001년 1월에는 다른 경제지에 윤씨에 관한 미담 기사가 실렸다.
윤씨의 구속 후 일부 언론사의 기자가 패스21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당사자는 개인적으로 투자목적으로 보유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해명대로라 해도 자신이 알게 된 기업 정보를 이용한 투자인 셈이다.
기자가 자신의 취재와 관련된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일은 윤리 차원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증권거래소 출입기자의 주식 투자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김대중 대통령이 윤씨를 두 차례 접견한 사실을 두고 야당의 성명을 인용하거나 사설을 통해 ‘청와대가 살인 용의자에게 농락당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은 농락당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본적인 윤리를 저버린 셈이다. 언론사가 지면채우기식이나 광고 확보를 위해 검증 없이 기사를 게재한 일이나 기자가 투자 목적으로 주식을 매입한 것 모두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언론 자신은 무엇했느냐’는 비판이 제기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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