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폭력 사태가 잇따르면서 중동평화협상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입지가 최대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지난 13일 아라파트를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극단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위기상황 뒤에는 아라파트 자치 정부를 붕괴시켜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제압하겠다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전략적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다.
미국의 테러전쟁 분위기에 편승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해묵은 갈등을 협상이 아닌 무력에 의해 해결하겠다는 것이 샤론 정부의 계산이라는 것이다. 분석가들은 샤론 총리는 1993년 체결된 오슬로 평화협정에 대해 줄곧 적대감을 보여왔으며 아라파트 수반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한 적이 한번도 없다며 최근 아라파트와의 협상을 중단한 것은 모두 계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의도한’ 사태**
지난 13일, 10명의 이스라엘 주민들이 사망한 버스폭탄테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조치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라파트는 테러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며 “이스라엘은 더 이상 팔레스타인과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하루 뒤인 14일, 이스라엘은 헬기를 동원, 아라파트의 서안지구 사령부를 공격했다.
분석가들은 그동안의 행보를 보았을 때, 샤론은 팔레스타인과의 군사적 충돌을 도모해 왔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붕괴시킬 계획을 체계적으로 수행해 왔다고 주장했다. 인티파다(반 이스라엘 봉기)를 자극한 장본인이 바로 샤론이라는 분석이다.
제4차 인터내셔널 국제위원회의 크리스 마슨은 “작년 9월, 샤론은 알 아크사 사원에 중무장한 경호원들과 방문, 적대감을 고무시킨 바 있으며 급진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암살을 지시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의 갈등을 선동한 것은 샤론이며, 그의 목표는 아라파트의 축출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전체의 붕괴에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서는 팔레스타인 과격파들의 행동을 자극시킨 샤론의 강경노선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BBC 예루살렘 특파원 바바라 플렛은 “이스라엘의 공습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파괴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계획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15일, 영국 가디언지의 수잔느 골든버그도 “아리엘 샤론은 아라파트의 권력기반을 약화시켜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반 아라파트 봉기를 일으키도록 오랫동안 계획해왔다”고 전했다.
분석가들은 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의 배후에는 부시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크리스 마슨은 “샤론 정부는 미국의 후원에 힘입어 공습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우지 란다우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즘 기반을 제거할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를 지금 맞고 있다. 우리는 그 기회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샤론 정부는 9.11 사태 이후 전개된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왔다. 팔레스타인 정부를 붕괴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전략 수행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 이후 급속하게 증폭됐다.
‘테러와의 전쟁’이 미국과 이스라엘이 표방하는 전쟁 명분의 일치점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폭격과 빈 라덴을 법정에 세우는데 혈안이 된 것은 이스라엘의 무력행사 역시 정당하다는 정서적 분위기를 제공했다.
미국은 아프간과의 전쟁 초기에는 아랍국가들 사이에서 전쟁수행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샤론의 호전적인 태도가 방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에 대한 공격이 성공을 거두면서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주위의 매파 그룹은 중동지역에서 미국에 가장 호의적인 나라로 이스라엘을 지목했다.
지난 주말,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샤론과 부시의 발언은 매우 유사하다. 그들 모두 테러리즘에 대한 즉각적인 종결을 계획하지 않았고 테러리즘의 구체적 대상을 명시했다. 부시는 오사마 빈 라덴, 샤론은 야세르 아라파트.
***샤론 정부의 핵심적 전략**
제트 매거진의 제프 하퍼는 샤론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압력은 다음과 같은 전략적 의도에 따라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 군사행동은 ‘당연한 방어권’
팔레스타인의 취약지구에 대한 군사적 공격과 정치적 중요 인사들에 대한 암살은 팔레스타인을 굴복시키기 위한 근본적 위협이다. 그러나 군사적 행위는 아주 조심스럽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스라엘이 평화를 수호하는 ‘희생양’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이스라엘의 영토 강점에 대한 국제적 시선을 주목시키지 않기 위해서 군사행동은 국민들을 방어하기 위한 ‘당연한 권리’의 일환으로 보여져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군사적 조치도 테러리즘에 대항한 ‘보복적’ 공격이다.
▲ 팔레스타인의 저항 의지 무력화
군사적 공격은 분명히 팔레스타인 저항군을 파괴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효과적이지 않다.
팔레스타인 사회구조를 붕괴시키고 이스라엘의 영토 강점에 저항할 수 있는 세력에 대한 장기적인 무력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의지를 꺾는 것과 더불어 정부에 대한 지지기반을 붕괴시켜 보다 고분고분한 지도부를 세우는 것이다.
▲ 이미 완성된 정착촌의 기정사실화
이스라엘이 수행 중인 이스라엘 정착촌의 확장이라는 대규모 사업은 거의 완성됐다. 이스라엘은 이미 충분한 거주지를 확보했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60%는 이미 이스라엘의 통치권 하에 있다. 40만명의 유태인 주민들이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의 노력은 그 지역에서의 명백한 권리를 강화시키기 위해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것이다. 거주지를 잇는 4백50 km의 고속도로와 통행로가 건설됐다. 이러한 주요한 사업은 미국의 자금지원으로 수행됐다.
▲ 팔레스타인 정부의 비정당화
9.11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끊임없이 팔레스타인 정부를 ‘전세계 테러리즘’과 관련된 필연적 기반으로 간주하는 작업을 수행해왔다.
샤론은 아라파트를 ‘우리들의 빈 라덴’이라고 주장했으며 예루살렘에 가해진 연이은 테러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정부를 ‘테러 후원자’로 간주했다.
***팔레스타인의 폭력은 군사 행동의 빌미**
아리엘 샤론이 권력을 획득한 과정은 팔레스타인의 ‘폭력’을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즘’으로 대체시키는 과정이었다. ‘폭력’과 ‘테러리즘’은 감정적 무게가 다르다.
팔레스타인을 테러리즘과 연관시키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통치기반을 무너뜨리고 군사적 강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샤론은 팔레스타인의 주요 거점도시를 차단하고 검문소와 참호를 구축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켜왔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권한은 ‘제한된 통치’로 축소됐다.
이같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경조치는 팔레스타인 경제를 마비시켜 점차적으로 강한 반 이스라엘 감정을 유발했다. 그러나 증가된 팔레스타인의 폭력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안보조치’를 강화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스라엘은 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공동관할 구역인 접경지역에서 위협적인 군사행동을 취했다. 팔레스타인 관할 지역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위한 근거지로 사용되고 있다는 안보상의 문제가 구실이었다.
팔레스타인 통치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은 국제적 여론을 군사적 행동에 무감각해지도록 하는 부수효과도 거두었다.
샤론 정부는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을 가했다. 지난해 초에 첫 번째 암살사건이 발생한 후, 국제적 압력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9.11 이후, 정치적, 윤리적 이견과 같은 논쟁은 자취를 감췄다.
결과적으로 오슬로 협약으로부터 거둔 외교적 성과는 체계적으로 제거됐으며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은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아라파트의 최대 위기**
사론 정부가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폭력의 순환을 영속화시켰다. 그러나 그 책임은 모두 아라파트에게 돌아갔다. 샤론은 미디어를 통한 효과적 선전을 통해 (그것이 팔레스타인이건 이스라엘이건) 모든 폭력의 책임은 아라파트에게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살 폭격과 테러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다.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영토를 보호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통제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폭력을 중단시킬 수 있는 아라파트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중동, 유럽, 미국의 전문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지적돼왔다. 권위있는 군사 정보의 출처중의 하나인 제인스 인텔리전스 다이제스트(JID)는 단호하게 “JID가 여러달 동안 경고한 바와 같이, 아라파트는 현 상황을 개선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방어능력의 상실은 정당성의 상실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팔레스타인 정부가 대중들의 반 이스라엘 감정을 반영하지 못할 때마다 아라파트 정부는 지지기반을 잃어왔다.
지속되는 테러를 통제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요구 앞에서 통치력을 상실한 아라파트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만일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의 강경파들을 체포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력에 굴복한다면 내적 저항에 떠밀려 스스로 제거될 것이다. 이는 곧 팔레스타인 내전의 장기화를 의미한다.
반대로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의 여론에 부응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경조치에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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