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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BS·MBC·SBS 슈퍼 갑 횡포…노예 계약 여전"

방송·문화·예술계 사례 발표회 "우리도 노동자, 일한 만큼 대가 달라"

갑을 관계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한 가운데, "을이라도 되고 싶다"고 말하는 방송·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처지를 엿볼 수 있는 사례 발표회가 열렸다. 17일 국회에서 진행된 발표회는 민주당 을지로 위원회와 전국 을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했으며, 예술인소셜유니온(준) 공동위원장인 나도원 음악평론가가 사회를 맡았다. (☞ 관련 기사 보기 : "예술인도 노동자"…'예술인 노조' 뜬다)

최근 몇 년 사이 장자연·이진원(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최고은(시나리오 작가)·박희석(드라마 <각시탈> 보조 출연자) 씨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하며 방송·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처한 턱없이 열악한 근로 및 생활 조건이 일부 드러났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에 오른 문화예술인 2000명(방송은 미포함) 가운데 66.5퍼센트는 개인 창작 활동으로 월 100만 원도 벌지 못했다. 월평균 수입액이 아예 '없다'고 답한 사람은 26.2퍼센트를 차지했다. 산업재해보험 가입률은 27.9퍼센트, 고용보험 가입률은 30.5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직 실효성 있는 개선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발표회를 주관한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고,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별 수 없다'는 인식이 남아 있다"며 "더 이상 문화예술인들을 '우리는 을도 못 된다'는 자조와 탄식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 20일 오후 4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중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밀린 출연료를 지급할 것을 KBS에 요구했다. ⓒ프레시안(최형락)

"KBS·MBC·SBS 슈퍼 갑 횡포, 방송가에 만연"

첫 발제자로 나선 문제갑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한연노) 정책위원회 의장은 방송 산업의 '슈퍼 갑'인 KBS, MBC, SBS의 횡포로 방송 연기자들은 여전히 비인간적 '노예 계약'에 고통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9년 장자연 사건을 계기로, 방송출연계약서와 외주제작계약서를 '표준화'하자는 논의가 본격화했지만, 방송사들이 표준계약서 도입에 번번이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문 의장은 "예정대로면 정부(문화체육관광부)가 방송 출연 표준계약서와 외주 제작 표준계약서를 6월 말에 고시했어야 하지만, 공중파 방송사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해, 한 달가량 고시가 미뤄졌다"며 "방송사들은 표준계약서 내 강제성이 있는 조항을 거부하며, 문광부의 조정 노력에 미동도 하지 않는 슈퍼 갑의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외주 제작이 본격화하며 출연료 미지급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문 의장은 "한국의 외주 제작 시스템은 겉보기에만 '외주'라는 틀을 갖추었을 뿐, 실제로는 모든 캐스팅·편성 권력을 가진 방송사가 출연료·스태프료·진행비 등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이런 구조 속에서 연기자들은 외주 제작사가 잠적하거나 출연료 지급을 '배째라'식으로 거부하면 속수무책으로 빈손이 된다"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 보기 : 이순재의 분노 "우리는 연기하는 노동자다", <내 딸 서영이> 촬영 중단…한연노 "촬영 거부", 한연노 배우 102명, KBS 상대 단체소송)

KBS가 복수노조법을 악용해 한연노와 20년 넘도록 매년 진행해온 단체 협상을 갑자기 거부했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문 의장은 "KBS는 현장에서는 출연자의 '사용자'나 마찬가지인 프로듀서들이 속한 KBS노조와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라고 요구했다"며 "창구 단일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KBS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문 의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방송 연기자들은 자신을 '노동자'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여기며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소극적이었다"며 "하지만 최근 몇 차례 파업을 거치며 스스로 '노동자'로 자각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출연료 미지급 문제 등 방송가에 만연한 갑의 횡포와 싸움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고 진단했다.


다중 하청 속 최말단, 보조 출연자

흔히 '엑스트라'로 불리는 보조 출연자의 상황은 특히 열악하다. 이는 보조 출연자들이 다중 하청 구조 말단에 위치함에 따라, 공정거래법이나 근로기준법과 같은 제도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조 출연자는 보통 거대 방송사와 용역 계약을 맺은 회사에 소속돼 현장에 배치된다. 방송사가 보조 출연자의 일당을 용역 회사에 주면, 용역 회사가 일부를 제하고 보조 출연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기준 방송사는 용역 회사에 기본 일당(8시간) 5만5000원을 지급했고, 용역 회사는 출연자들에게 1만2000원을 제한 4만3000원을 지급했다. 이마저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급여 수준은 올해 더 악화했다.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 문계순 위원장은 "KBS는 2013년 용역 계약을 체결하며 지난해보다 7000원 적은 일당을 주기로 회사와 계약했다"며 "이에 따라 보조 출연자들은 하루 4만 원의 일당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대기 시간을 근로 시간으로 인정하는 문제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문 위원장은 "촬영 현장으로 오가는 데 드는 시간과 현장에서 감독이 오라고 할 때까지 대기하는 시간 모두 근로 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지난해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 시간도 근로 시간으로 보도록 근로기준법이 개정됐음에도, 현장에서는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위원장은 "전국 20만 명에 달하는 보조 출연자들이 이와 같은 열악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며 상당수가 고시원·PC방·만화방·사우나 등을 전전하고 있다"며 "용역 회사 관리자에게 돈이나 음식을 상납하지 않으면 일거리를 구할 수 없는 문제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각시탈> 박희석 씨 유족의 요구로 KBS가 올해 초 마련한 '보조 출연자 대기실'이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문 위원장은 "KBS는 대기실을 만들며 '보조 출연자의 권익을 높이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용역 회사 관리자 인솔 하에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만 사용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프레시안>은 KBS에 설명을 요구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 달빛요정만루홈런 이진원 씨. ⓒ뉴시스

디자인, 음악, 영화계 종사자도 한목소리, "을이라도 되고 싶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노동자 조아라 씨와 자립음악생산조합 단편선 운영위원, 최진욱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도 발제자로 나서, 각 업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나도원 음악평론가와 함께 예술인소셜유니온(준)을 운영하고 있는 조아라 씨는 "그래픽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만도 부러운 게 사실"이라며 "40대 여성 디자이너를 본 적이 있는가. 디자인 업계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어린 디자이너를 선호해 나이가 들면 오히려 일거리를 구하기 더 어려워진다"고 전했다.

조 씨는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사용자는 '내가 포토샵을 할 줄 알면 내가 한다. 그런데 내가 못 하니까 네가 알아서 내 머릿속에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디자이너에게는 100번의 수정도 요구할 수 있다는 인식 탓에, 때로는 지나친 수정으로 이상한 결과물이 나오고, 그 책임은 디자이너에게 전가되는 일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5년 경력에 추가 근무 수당이란 것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디자이너들에게도 정당한 노동 조건과 노동의 대가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편선 씨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주요 수입원인 음반 판매, 음원 판매, 공연 수익 모두 진짜 생산자인 뮤지션들에게는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며 "음악 활동을 시작하고 처음 5년 동안 200회 이상 공연을 했지만, 관객이 공연장에 낸 입장료 중 일부라도 받아본 것은 딱 두 번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최진욱 위원장은 "120억 원이 소요되는 영화를 만들 때, 막내 스태프에게 지급되는 한 달 월급은 6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선 표준근로계약서와 4대 보험을 '자율'이 아닌 '강제'로 적용토록 해야 한다.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아울러 "경제 민주화가 시대적 화두가 됐지만, 초점이 중소기업 살리기에 맞추어져 있다"며 "영화산업계 중소기업을 살리더라도, 그 아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조건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헌욱 변호사는 "문화·예술계 불공정 거래 문제는 다른 산업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하도급' 불공정 거래 문제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며 "시장에서 갑을 문제는 '자율'에 맡겨서는 해결이 어렵다. 국가가 적절히 규제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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