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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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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5>

제 1강 고전강독 서론

자본축적운동의 파상적 확장이 마치 대립면을 상실한 근대 서양문명과 그 구조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자본축적은 이제 실물생산으로부터 유리되고 실물생산은 수요로부터 유리되고 있습니다. 자본은 생산과 무관하고 생산은 소비와 무관한 운동을 합니다.

자본운동의 원리는 가치증식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본은 그 가치증식이 반드시 실물생산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증권시장이라는 투기장에서 그것이 실현되더라도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실물생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리지 않더라고 팔린 것으로 간주하고 다음 생산과정에 들어갑니다. 팔리지 않았더라도 팔린 것으로 간주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신용입니다. 어음을 할인해주기도 하고 대출해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축적운동이 대립면을 상실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지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대립면을 상실한 근대 서양문명의 모순구조와 같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 모순구조를 조명해주는 것이 동양사상의 특징이면서 동시에 동양사상의 현대적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서구인들의 동양관을 원천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막스 베버에 대하여 이야기해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즉 청교도윤리로서의 금욕주의가 자본축적을 이루었으며 그것이 근대사회를 만들어낸 정신이라는 것이지요. 프로테스탄티즘이 곧 자본주의정신이라는 이론을 전개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베버에게 있어서는 자본주의는 최고 최선의 사회제도이며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입니다. 막스 베버에게 있어서의 동양적 윤리란 이 프로테스탄티즘 즉 청교도윤리를 부각시키기 위한 소도구이며 장치적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위 오리엔탈리즘의 원형이지요.

여러 가지 이론적 분식을 하고 있습니다만 프로테스탄티즘을 요약하면 적게 소비하고 많이 저축하여 재투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금욕주의가 자본축적을 가져왔고 자본주의라는 최선의 사회제도를 가능하게 하였다는 논리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서양문명의 모순구조와 관련하려 베버를 이해할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근검 절약 그리고 자본축적이라는 이러한 금욕주의가 바로 신의 소명(God's calling)이며, 초월적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자본축적은 그것 자체로서 절대적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근검 절약의 정신이 인간의 욕망에 대한 합리적 제어장치로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며 그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매우 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베버에게 있어서 종교와 신의 개념은 지극히 순결한 것이며 이에 반하여 동양사상에 대하여는 바로 이 초월적 순결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욕망에 대한 합리적 제어장치가 없다는 것이 베버의 논리이지요. 유교적 윤리는 이러한 초월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내면적으로 초극의 독백이 없고 현세성 또는 현실주의에 매몰되어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현세적 향유만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예와 도덕은 본질적으로 형식적인 체면(face)의 문화라는 것이 베버의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입니다.

결론적으로 동양사상은 비종교적 현실주의이기 때문에 역사적 지체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성립과 프로테스탄티즘간에 정신사적 필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 또 자본주의를 기준으로 기독교와 유교사상을 비교하는 방식 자체가 갖는 비대칭적 구조를 논의할 생각은 없습니다.

더구나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와 절약 저축 재투자 그리고 거대한 자본축적이 신의 소명이며 신의 영광을 구현시키는 것이라는 베버의 체계가 현대자본주의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관하여 논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베버는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적 논리를 개진한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자본논리를 합리화하는 작업에 충실하였을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 즉 자본이 사회로부터 독립하고 신의 소명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아가 인간으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인간을 소외시키는 거대한 모순구조에 대하여 베버는 최소한의 전망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면죄부를 주기 위한 논리에 충실하였을 뿐이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교와 동양사상에 대하여 저급한 이해의 층위를 드러내었을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사상이 비종교적이며 현실주의적이라는 점은 베버가 옳게 지적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현실성으로부터 현세적 향락과 체면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것이 하나의 종교적 지배력(The Religion of China)을 행사한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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