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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모성 함께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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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모성 함께 쓰는 이유

부계 성씨만 강요하는 나라 거의 없어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은 1997년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3.8여성대회' 때 이이효재(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님 외 170인의 선언으로 시작됐다. 그해 1월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과 대한여한의사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남녀출생 성비불균형의 문제와 대안에 관한 토론회’ 자리에서 한국의 남존여비, 남아선호의 고질병은 부계혈통제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그것을 깨기 위한 쉬운 방편으로 부모성 함께쓰기라는 문화운동을 채택했고, 이것이 3.8여성대회 선언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운동에 대해 일부에서는 일회성이벤트로 끝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고, 미풍양속이 깨진다, 뿌리찾기가 힘들어진다, 후대에 내려갈수록 성씨가 길어져서 이름 부르다가 숨 넘어가게 된다 등등 다양한 반대론이 제기되었다. 심지어 성균관대학교의 유만근교수는 신문지면을 통해 ‘ 강간, 신음...’ 등의 우스꽝스러운 성씨가 나타날 것이 걱정이 된다며, 결혼 후 성을 바꾸는 외국여성들에 비해 성을 바꾸지 않고 사는 한국여인들은 ‘세계적 특전’을 누리고 있으니 공연스레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라고 점잖게 꾸짖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성을 함께 쓰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글에서는 부모성 함께쓰기를 반대하는 각종 논리의 허구성을 밝혀, 한국의 뿌리 깊은 부계혈통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뿌리찾기가 힘들어진다?**

흔히 전주 이씨 xx파 23대 손, 경주 정씨 xx파 32대 손...이라며 자신의 시조를 자신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남자를 통해서만 혈통이 계승되며 여자는 그 도구이며 수단일 뿐이라는 폭력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암술과 수술의 결합으로 씨가 생기고,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인간이 탄생한다. 자기의 N대 조상이 2의 N제곱만큼 존재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과학 상식이다.

어찌 박혁거세, 고주몽, 사농공, 일신공 등 남자 한 명이 우리의 뿌리라고 볼 수 있을까?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만 내 조상이요, 내 뿌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나머지 조상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미풍양속이 파괴되고 가족, 혈연 등 친인척관계가 사라진다?**

5천만에 육박하는 인구가 겨우 270여 개의 성씨를 쓰는 이유, 전 인구의 20%가 김씨 성을 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삼국시대 왕족이 성씨를 쓰게 된 것은 중국의 풍습을 따른 것이었다. 조선 중기만 해도 평민들과 천민들은 성을 가질 수가 없었으며 모든 인구가 성씨를 쓰게 된 것은 일제시대에 이르러서였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한 조선 후기부터 대부분의 평민, 천민들은 마치 자신들이 양반인양 양반의 성씨를 마구잡이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들이 양반들이 독점했던 족보와 제례를 받아들임으로써 현재의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보편화됐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성씨 제도는 우리 고유의 풍습이라고 보기 힘든 부분이 많다.

또한 성씨가 달라도 이모, 이종사촌 등 어머니 쪽 친척을 알아보듯이 앞으로 부계 성씨를 강제로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가 폐지된다고 해서 친인척 관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 아버지의 부모에게는 친(親), 어머니의 부모에게는 외(外)를 붙였던 무례함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결혼해도 성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성씨 제도는 평등하다?**

어떤 이들은 결혼 후 성을 바꾸는 외국 여성들에 비해 성을 바꾸지 않고 사는 한국 여인들은 ‘세계적 특전’을 누리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성씨 제도가 더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국 여성들이 결혼 후 남편 성으로 바꾸는 것은 법에 규정된 강제 사항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호주제를 통해 부계 혈통제, 부계 성씨 사용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이다.

최근 프랑스 의회는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부모는 아빠의 성, 엄마의 성, 혹은 합의 아래 두 사람의 성을 연합해 자녀의 성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는 이미 지난 1985년 아빠의 성에 엄마의 성을 붙여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바 있다.

굳이 다른 나라 법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의 ‘여성에 관한 차별철폐협약’ 제16조에 따르면 여성의 성도 가족성(자녀성)으로 쓸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체 협약 중 이 조항만은 비준을 유보하고 있다.

***후대에 갈수록 성씨가 늘어난다?**

부계의 부계, 모계의 모계의 성을 쓰면 성씨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이 철수'와 '고은 영희'가 아이를 낳으면 ‘정은 광순’이 될 것이다. 어감이 나쁘면 순서를 바꾸거나 친할머니의 성이나 외할아버지의 성을 택할 수도 있다.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의 목표는 부계혈통제의 생물학적, 정치적 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성과 본만을 쓰도록 강제하는 민법 제 781조가 폐기되면 아들 선호, 여아 낙태, 출가녀 차별 문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재혼 가정에서의 자녀성 문제 등은 모두 사라질 수 있다. 다른 나라들처럼 부모 한 쪽의 성을 쓰든, 섞어서 쓰든, 새로 만들든, 중간에 고쳐 쓰든 그것은 국가가 이를 강제할 필요가 없다. 출생시 부여받은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 고유번호로도 국가와 개인간의 공적 관계는 충분히 관리되거나 증명이 될 수 있다.

짤막하게 정리하자면 성씨는 혈통을 드러내는 기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은 ‘모계’를 ‘부계’의 반대 편에, 대립적인 지위에 세우자는 취지가 아니라, 소외되어 온 모계를 살리고, 더 나아가서 근본적으로 ‘가문’이라는 헛된 개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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