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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한국의 미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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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필리핀은 한국의 미래인가

[초록發光] 한국의 부정부패와 빈부격차가 두렵다

필리핀, 동남아 국가 중 빈부 격차 최대

나의 첫 외국 여행은 신혼여행으로 갔던 필리핀의 엘 니도(El Nido)였다. 신혼이라서 더 그랬겠지만, 필리핀의 산호초 바다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난 2010년 4월, 나는 다시 필리핀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마닐라 북부 타워빌 지역의 빈곤 퇴치 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 타워빌 프로젝트는 마닐라 통근 철도 부설 사업으로 인한 강제 철거민과 태풍 이재민 6만 명이 모여 사는 재정착촌에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이다. 주민들이 경제적 자생력을 갖추고, 지역 공동체의 활력을 되찾음으로써 프로젝트가 끝나도 지속 가능한 지역이 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12년 말에는 타워빌 프로젝트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공적개발원조(ODA) 프로젝트로 선정되었다. 나는 공동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현재 두 달간 마닐라에 체류하면서 사업 진행을 관리하고 있다. 프로젝트 자체가 주민들의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기 때문에 속도는 다소 더디다. 게다가 주민들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사회적 기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면담을 진행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답답하고 초조할 때도 있다.

이렇게 매일매일 빈곤과 일자리의 문제와 씨름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를 만들어낸 필리핀의 사회 구조가 궁금해졌다. 필리핀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우리가 원조 공여국이고 필리핀은 수원국이다.

필리핀 여론기관인 SWS(Social Weather Station)가 지난해 12월에 조사한 바로는, 일일 소득 2달러 미만의 빈곤층 비율은 전체 인구의 54퍼센트에 달한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0.439로 동남아 국가 중 빈부 격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는 사람들은 필리핀 인구의 1퍼센트가 전체 국토의 90퍼센트를 독점하고 있으며, 특히 15개의 명문가가 필리핀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 지난해 12월 필리핀 마닐라 바세코초등학교를 찾은 대한적십자사 청소년 해외봉사단원들이 현지 학생들에게 손씻는 방법 등 위생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뉴시스

필리핀의 몰락, 원인은 만연한 부정부패

대체 왜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되었을까? 필리핀의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에 많은 전문가는 식민 시절의 봉건적 유산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점과 만연한 부정부패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근대적 토지 개혁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결과, 중세 봉건적 토지 소유의 유제가 필리핀 사회에 그대로 잔존하고 있으며 지주 출신인 열다섯 개의 명문가와 일부 신흥 부자들이 사회 전반의 지배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도 빈곤의 확대·재생산에 기여한다. 2012년 국제투명성기구 발표로는 필리핀의 부패 인식 지수는 176개국 중 105위를 기록했다. 2011년 129위와 2010년 134위보다 개선됐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이러한 부정부패가 관료 사회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만연해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회 모순을 고발한 언론인, 사회운동가, 환경운동가들은 정치적 살해(extra-judicial killing)라고 불리는 백색 테러로 인해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매년 약 130명 정도가 희생된다고 한다.

타워빌 프로젝트는 올해로 3년 정도 진행된 셈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차츰 희망을 갖게 되고, 스스로 조직화하면서 향후 지역 공동체의 비전을 구상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작은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도 필리핀 사회의 절망적인 사회 구조를 생각하게 되면 맥이 탁 풀린다. 자발적으로 지역을 살리는 주민들의 노력들이 언제나 사회 구조의 변화라는 결실을 맺게 될까? 백년하청(百年河淸). 필리핀 사회의 빈부 격차와 부정부패가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황하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한국 지니계수 OECD 최하위 수준

그러면 필리핀을 도와주고 있는 한국 사회는 어떨까?

지난 5월 15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조차 "현재와 같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로는 한국 경제가 더는 성장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대기업이 시장을 독식하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00대 땅 부자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 가격은 공시 지가로 따져도 60조 원이 넘는다. 시가로 따지면 두 배 이상은 될 것이다. 한국의 2012년 지니계수는 0.35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뒤에서 5번째다.

가계 대출은 900조 원을 훌쩍 넘어섰고,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부동의 1위이다. 젊은이들은 좋은 직업을 갖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잠시 짬을 내 공부하는 신세가 된 지 오래다.

국가정보원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대통령 선거에 불법으로 개입하면서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군사 독재를 했던 전두환 대통령 일가는 세금 도피처 등을 이용해 불법 자금을 은닉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29만 원 밖에 없다고 했다. 몇몇 대기업 총수들은 회사 돈을 임의대로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감사원이 지적했듯이 이명박 정부는 강을 살린다는 미명하에 30조 원이나 되는 막대한 돈을 토건 사업에 퍼붓는 대국민 사기극을 펼침으로써, 우리나라가 미래를 준비할 기회를 날려버렸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대기업의 뇌물을 받고 불량 부품을 사용하였고, 부품에 대한 시험 성적을 날조하면서 핵발전소를 짓거나 운영하였다. 뿌리 깊은 비리와 부정부패가 온 사회에 만연하다.

물론 한국과 필리핀의 산업 구조 기반이 다르고, 국가 형성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위험하다. 하지만 경제 구조와 정치 분야만 한정해서 보자면, 식민 시절의 특권 집단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점, 대기업과 같은 특정 집단들에 의한 산업과 토지의 독식 구조, 빈부 격차의 심화, 비리와 부정부패의 만연, 민주주의의 실종 등 필리핀과 한국이 과연 그렇게 다를까 싶다.


한국, 현재의 필리핀보다 후퇴할 수도…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 필요

여기에 앞으로 한국 사회에 다가올 미래의 위험을 감안해서 고민해보면 이런 비교는 더 실감 난다. 한국 사회가 지금과 같은 발전 모델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남북 통일, 초고령화, 석유 생산 정점(Peak Oil)과 같은 암울한 위험들이 실제로 닥쳐온다고 생각해보자. 한국 사회는 이러한 도전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현재의 필리핀 사회보다 더 후퇴된 사회일 것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가야 하는 빈곤층이 인구의 절반이 넘고, 그 빈곤층 대부분이 노인인 사회. 복지 재원은 줄어들며, 신자유주의적 민영화가 진행되어 개인이 고비용을 지급해야만 의료를 비롯한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회. 소수의 부유층은 넘쳐나는 부를 향유하면서 철저하게 빈부로 양분화된 사회. 다양한 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 스포츠나 선정성, 도박 등에 대한 대중적 탐닉을 조장함으로써 사회적 불안과 불만을 무마하는 사회.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세력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숙청하는 사회. 한마디로 정치적 자유도 없고, 경제적 자유도 없이, 지배층들이 전횡하는 폭력적인 전체주의 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제 성장 제일주의, 황금만능주의,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에 기초한 발전 모델을 시급하고도 과감하게 폐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연대와 호혜, 생명과 평화의 가치관에 기초한 새로운 발전 모델과 지속 가능한 대안을 부지런히 찾아야 한다. 과감하고 혁신적인 상상력도 필요하며, 다른 나라에서 진행되는 새로운 사회적 실험과 정치 운동 등도 눈여겨보아서 참고해야 한다. 그래서 참신하면서도 실현 가능한 대안들을 계속 만들고 적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불온한 미래는 결국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결국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오늘도 어두컴컴하고 매연 가득한 마닐라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숙소로 돌아오면서, 선택과 전환에 실패한 한국사회의 미래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불안하게 엄습해온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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