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를 위한 대화가 북핵을 고도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과 관련, 대화를 위한 대화조차도 하지 않으면 북핵은 더 고도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2009년 5월 이후 북한에 대해 고강도 제재를 하는 동안 북한은 가장 빠르고 강하게 핵을 강화시켰다"며 "대화를 위한 대화가 소용없다는 것은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 국면에서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관련해 이 전 장관은 대화록 공개도 심각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말에 대해 토를 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회담이나 협상의 목적은 자신이 이루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다"라고 전제한 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가장 좋은 언어, 화법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합의문"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어떤 화법으로 이야기했다는 것을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 이 전 장관은 "평화협정은 평화체제라는 긴 과정 속에 중대한 전기를 마련하는 한 부분"이라며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체는 남북이다. 그런데 그 중대한 계기인 평화협정을 만드는 것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4자"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제기됐던 '2+2', 즉 남북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중이 이를 보장해주는 것에 대해 그는 "미·중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만 터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와 동북아가 중대한 전환기에 들어선 현 시점에 집권한 박근혜 정부의 바람직한 대북정책에 대해 이 전 장관은 북한을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그는 현 정권이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다고 나서도 싫어할 국민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나, 중장기적인 상황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며 "북한이든, 일본이든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출발점"이라고 당부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프레시안 편집위원과 이 전 장관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편집자>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대화록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바로 이종석 전 장관의 이름이 거명되는 부분이었는데, 배석자를 제외하곤 남측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등장하는 이름이어서 흥미로웠다. 노 전 대통령이 완전한 자주의 불가능성을 설명하면서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독자적으로 경수로를 짓지 못하는 이유를 보고서로 써내라'고 지시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 부분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설명해달라.
이종석 : 나도 내 이름이 나온 걸 보고 좀 놀랐다. 그건 노무현 전 대통령 리더십의 한 측면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 앞에서 참모가 이견을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노 전 대통령께서는 참모들과 토론을 즐겼고 경수로도 그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때가 내 기억에, 일단은 2004년 하반기가 되면서 미국 쪽에서 이제는 경수로 건설을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에 대해서 경수로 사업비의 일부분을 맡았던 일본이나 유럽연합이 미국에 동조를 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2004년 하반기부터는 끊임없이 경수로에 대한 대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했었다.
프레시안 : 그래서 정부 내에서 경수로가 우리 독자적으로 짓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고는 남측에서 북측에 직접 송전을 하자는 중대제안을 고안하게 된 것인가?
이종석 : 사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독자적으로 꼭 경수로를 짓자고 생각하셨던 것은 아니다. 경수로 사업이 완전히 중단되면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신 거였다. 노 대통령께서는 우리가 국민 세금 13억 달러를 쓴 상황에서 이 사업을 완전히 중단하면 막대한 천문학적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아쉬워했다. 더구나 경수로는 우리의 의사에 의해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미국이 제네바 기본합의서에서 북한에 약속하고는 김영삼 정부가 이를 떠안아 시작된 것이었다.
경제적 손실보다 더 큰 걱정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경수로를 잠정적으로 중단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미국은 그것이 아니라 아예 종료시키자고 주장을 했고 그게 종료가 되면 그건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른 모든 합의는 다 중단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우리가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제동장치 하나를 완전히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제네바 기본합의서는 쓸모가 없다고 얘기했지만 우리는 북미 간의 합의를 쉽게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경수로 문제에 대해서 쉽게 끝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다양한 대책, 혹은 다양한 경우의 수로서 독자적인 경수로 건설 가능성도 검토는 해봤다. 우리 정부는 하여튼 그 가능성이 1퍼센트만 되더라도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다음에 결론을 찾아가는 게 우리가 어떤 하나의 정책을 수립할 때에 방식이었다. 이처럼 여러 경우의 수에 대한 검토들이 있었고, 검토 결과 결국 경수로를 우리가 독자적으로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보고를 노 대통령께 드렸고, 대통령께서는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고 하셔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그랬던 거였다.
프레시안 : 2005년 초에 전반적인 정세도 좋지 않았었다. 조지 W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고 국무장관으로 기용된 콘돌리자 라이스는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했다. 북한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핵보유국 선언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수로까지 공식 종결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다고 봤던 것인가? 중대제안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인가?
이종석 : 그런 상황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다. '경수로를 결국 종료할 수밖에 없는 쪽으로 이미 결론을 내부적으로 내리면서 핵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또 하나는 '경수로에 이미 13억 달러를 쓴 상황에서 나중에 이를 다시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도 했었다. 이러한 고민을 집중적으로 하다 보니 중대제안이 나온 거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우리가 경수로 대신에 북한에 2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중대제안의 핵심이었다. 두 번째 고민에 대해서는 경수로 건설 부지인 신포에는 여러 가지 기반 시설과 부대시설도 건설 중이었기 때문에, 향후에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여러 가지 공업 시설이나 지하자원, 물류 기지 등 이런 쪽으로 이용하는 방안도 검토했었다.
9.19 공동성명과 BDA
프레시안 : 그 결과 9.19 공동성명에는 중대제안 내용도 들어가고 경수로도 적절한 시점에 논의하기로 이렇게 합의가 됐다. 그런데 바로 직후에 이 '적절한 시점'이 언제냐를 놓고 북한과 미국이 충돌했다. 북한은 바로 지금이 적절한 시점이라고 얘기했고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해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확보한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처럼 경수로 문제는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와 맞물려 북미관계가 악화되는 중요한 요인이었는데, 그 논란 당시에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이종석 : 9.19 공동성명 협상 당시에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순서를 어떻게 잡느냐가 핵심 관건 가운데 하나였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동시 행동 차원에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이 해야 할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하는 건데, 안전보장이란 것은 결과적으로 북미 관계정상화 같은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또 하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평화적 핵이용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인데, 당시 북한은 자신의 핵 프로그램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원자력 발전에 있다고 주장했었다. 실제 그런 징후도 있었다. 그러면 북한이 자신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원자력 발전도 자체적으로는 못하게 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경수로 제공 문제는 "적절한 시점에 논의"하기로 합의하고, 우리는 경제적 보상책으로 중대제안을 통해 북한에 2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 것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2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이 북한으로 간다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쉽게 받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국 경제에 북한 경제가 지나치게 종속된다고 생각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한국에서 200만 킬로와트의 전기가 북한으로 가면 전쟁은 영원히 종식될 것이고 남북한의 경제협력이 획기적으로 진전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또한 중대제안을 통해 9.19 공동성명 합의에 추동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나라도 북한에 경제적인 보상을 하는 데에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우리에겐 북핵 문제 해결도 절박하고 남북경협과 통일 기반을 확대할 필요도 있었고 해서 중대제안을 통해 돌파구를 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9.19공동성명에 나와 있는 중대제안은 한국정부가 당장 200만 킬로와트 전력을 북한에 제공한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경수로를 짓지 않으면 200만 킬로와트 제공한다고 했고 이것을 다시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수로는 "적절한 시점"에 논의해서 합의가 이뤄지면 다시 지어준다는 거였다. 그리고 경수로가 완공되면 200만 킬로와트 송전은 중단되는 거였다. 북한이 두 가지 모두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9.19 공동성명 관련해 또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다. 최근 북한에서 '조선반도 비핵화' 를 강조하고 있는데, 과거의 맥락을 짚어봐야 할 것 같다.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직후에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은 "이 합의는 미국이 한국에 미국의 핵무기를 재반입하는 권리까지 제약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북한이 반발했던 기억이 있는데, 합의 당시에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개념이나 목표를 둘러싸고 진통이 있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미국 핵무기의 재반입 문제, 핵우산의 문제 등이 있지 않았나?
이종석 : 9.19 공동성명과 6자회담에서 우리가 목표했던 것은 북한의 비핵화였다. 그런데 기본 전제에는 한반도 비핵화가 있었다. 미국도 한반도 비핵화를 원했다. 한국도 현재 플루토늄 생산과 재처리도 못하고 있지 않나? 한국은 현재 핵무기로 가는 길이 첩첩산중으로 차단되어있다. 결국 9.19 공동성명에 나온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핵무기 개발 금지, 그리고 주한미군의 핵무기 재반입 금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다만 핵우산은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철수한다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은, 2007년 2.13 합의에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으로 6자회담에서 문제의식의 지평을 넓힌 것처럼, 결국 공동 안보의 틀을 만들어감으로써 북한이 남한의 미국 확장 핵 억제(핵우산)에 대해 자연스럽게 문제를 제기할 이유가 없어지는 상황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었나 싶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에는 주한미군의 핵무기 반입도 안 되는 것이다.
당시 9.19 공동성명에 대해 한·중·일·러·북은 각국이 느끼는 차이가 있었겠으나 모두 만족했다. 미국도 미국의 협상파들은 어느 정도 만족을 했는데 네오콘들은 북한을 찍어 누르지 못했기 때문에 만족스럽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 분위기가 미국에 영향을 미치면서 9.19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크리스토퍼 힐의 강경 발언을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또한 BDA 사건도 나오게 됐다.
프레시안 : BDA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미국 재무부에서 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한 것이 9.19 공동성명 채택 전인 9월 15일이었다.
이종석 : BDA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9.19 공동성명을 공표한 후 며칠 뒤였다.
프레시안 : 그 부분이 명확하게 정리될 필요가 있는 것이, 미국 쪽은 BDA 결정을 먼저하고 9.19 공동성명이 나중에 나온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네오콘들은 9.19를 방해하기 위해 BDA를 제기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종석 : 네오콘들이 9.19 공동성명을 반대하기 위해 BDA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9.19 공동성명이 나왔으면 이를 존중해야 하는데, BDA 문제를 터뜨려서 결과적으로 9.19 공동성명을 유린했다. 9.19 공동성명의 초안이 9월 19일에 나온 게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북한과 미국 사이의 관계개선, 즉 경제관계를 개선하고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는 일련의 스케줄이 담겨 있는 것이고, 이러한 일정으로 북한의 비핵화로 간다는 것이었다.
▲ 북핵문제 해결의 이정표를 세운것으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이 나온지 7년이 지났지만 북핵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사진은 성명 합의 직후 6자회담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 왼쪽부터 당시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로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연합뉴스 |
미국이 이를 알고도 BDA 문제를 준비했다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9.19 공동성명은 19일 당일에 나온 것이 아니다. 굉장히 여러 번 협상을 통해 문항을 조정했다. 이때 마지막에서 문제가 됐던 것은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밖에 없었다. 나머지 것들은 대체적으로 합의가 됐던 것이었다. 즉 미국과 북한 사이에 관계개선, 경제관계에 대해서는 공동성명 발표 전에 합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랬다면 미국은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비춰질 수 있는 BDA 문제를 꺼내 들지 말았어야 했다.
프레시안 : BDA의 영향을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받은 분이 이종석 전 장관이 아닌가 싶다. BDA 문제로 9.19 공동성명이 이행되지 않았고 6자회담도 열리지 않으면서 결국 북한이 탄도미사일 시험과 1차 핵실험을 했다. 그 여파로 통일부 장관직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이종석 :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약간 착각이나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를 위한 대화는 북핵을 고도화시킬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말은 맞는데, 북한과 대화하지 않으면서 압박하는 동안 북핵은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고도화됐다. 지난 2009년 5월 이후 북한에 대해 고강도 제재를 하는 동안 북한은 가장 빠르고 강하게 핵을 강화시켰다. 당시 추가적 핵실험뿐만 아니라 농축 우라늄까지 본격적으로 가동하게 됐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이 발생하게 된 것도 BDA 사태 이후 핵문제가 다시 표류하게 됐고 6자회담이 무산되면서 북한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핵실험으로 간 것이다.
엄밀히 말해 대화를 위한 대화조차도 대화를 아예 하지 않은 것보다 북핵을 억제하는데 효과가 있었다. 6자회담을 하게 되면 서로 견제하고 의심하는 것이 공론화되기 때문에 북한이 함부로 움직이기가 어렵다. 따라서 대화를 위한 대화가 소용없다는 것은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 국면에서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다. 부시의 강경정책이 압도적으로 북한을 밀어붙이다가 북한 핵실험이 발생하고 그에 대한 반성으로 2.13합의가 나온 것이 아니었나.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통령 선거 유세 때 부시가 북한에 대해 일방적인 압박만 하다가 북한의 핵 능력만 강화시켰다고 말했다. 부시의 강경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 야당(한나라당)은 포용정책이 북핵 실험을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이건 정치적인 해석이다.
국민의 평화를 책임지는 것이 정부
프레시안 : 2006년 여름 북한 미사일 발사 징후가 농후해지기 시작했고 국내적으로 논란이 있을 때 이 전 장관은 쌀 지원을 보류하겠다는 카드를 꺼냈다. 최고의 북한 전문가로서 그게 북한을 움직이는 레버리지가 안 될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당시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인가?
이종석 : 당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는 곧 핵실험으로 가는 가교라고 볼 수 있었다. 정부는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가 미사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핵실험까지 갈 것이기 때문에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내 판단으로서는 북한에 단호한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전에 북측을 설득하면서 통일부장관 목이 10개라도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면 쌀 지원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당시 무조건 쌀 지원을 않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북핵 실험을 저지할 수 있는 길, 즉 북한이 6자회담의 장으로 복귀를 약속하면 쌀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또한 국민 세금을 사용해 쌀 지원을 하는 만큼, 국민 정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로 인해 국민들이 불안해했다. 국민들의 평화를 책임지는 정부가 이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쌀을 지원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당시 쌀은 차관 형태였지만,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북한이 핵실험으로 가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우리가 쌀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북한에 약효가 먹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후회하지 않는다. 핵실험까지 가는 과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쌀을 지원했다면 나라 전체가 큰 홍역을 치르게 되었을 것이다. 비판을 듣더라도 감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정부는 최소한의 책임성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에 아쉬웠던 부분이 하나 있다. 왜 남북 정상회담을 빨리 못했나? 부시 1기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도 많이 했다. 드러난 모습만 봤을 때 노무현 정부는 임기 후반부가 되어서야 정상회담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이종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친서를 통해 밝힌 것은 2003년 가을이다. 당시 문성근 씨를 특사로 보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북미 관계가 핵문제로 틀어져있는 상황에서는 북한이 우리를 상대로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이 있었지만 이후 북미관계 악화되면서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다만 2003년 가을에 의지표명을 했지만 당시는 정상회담의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다가 정상회담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2005년 5월이었다. 그래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6월에 특사로 북한에 갔다. 정 장관은 대통령의 친서와 중대제안을 갖고 올라가서 김정일 전 위원장에게 직접 이야기했다. 우리가 제안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6자회담에 복귀해서 6자회담 타결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정상회담과 관련해 김 전 위원장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래서 2005년 가을을 남북 정상회담의 목표 시점으로 잡고 움직였다.
같은 해 8월에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이 8.15 행사 참석 차 남한에 와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김용순의 사망으로 대남총책이 된 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곧 부장이 됨), 정동영 장관, 저 이렇게 세 명이 워커힐 호텔에서 별도로 회담했다. 내용은 북핵 문제와 정상회담이었다. 그랬더니 북측은 '정상회담 하겠다, 구체적인 것은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제3국인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남북이 이미 협의를 진행시키고 있는 사안이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실제로 정상회담을 가을에 할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를 진행시켰다.
그런 상태에서 9.19 공동성명이 이루어졌고 정상회담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BDA 문제가 터졌다. 이후 북한은 우리가 정상회담 얘기를 하면 계속해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북한이 미국과 대결적인 상태에서 남북정상회담은 힘들다고 봤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북미 관계가 악화되는 상태에서 정상회담은 여의치 않다고 봤다.
결국은 BDA 문제가 2007년 2.13합의로 타결되고 그해 6월에 미국은 BDA에 동결되었던 북한 소유 2400만 달러를 북한에 되돌려줬다. 북미 관계가 새로운 관계로 접어들게 됐다.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2007년 6~7월 남북이 만나서 정상회담에 합의를 봤다. 그리고 나서 원래는 8월에 하려고 했는데 북한에 홍수가 나서 10월로 연기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시기와 여건을 기다렸다. 아쉽게도 그러다 보니 임기 말이 되고 말았다.
프레시안 : 노 전 대통령이 BDA 사태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도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갔던 남북정상회담이 BDA 문제로 미뤄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인가?
이종석 : 그런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더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점은 우리는 온갖 전력을 다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BDA 문제를 꺼내든 미국은 그렇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중국과 협력해서 9.19 성명도 만들었고. 남한 외교에서 가장 우선순위도 북핵문제였다. 그러면 미국도 최소한 북핵 문제에 대해 우선순위를 뒀어야 한다고 봤다. 만약 미국 외교 문제에서 북핵이 우선순위였다면, BDA 사태를 일으키지는 않았거나 조기에 해결했을 것이다.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이후 미국이 2007년 2.13 합의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것에 노 전 대통령은 매우 기뻐했다. 어쨌든 북핵문제에서 BDA 사태가 걸림돌이 된 것은 당시로서는 유감이었다. 이 사태가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의 큰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물꼬를 완전히 역진시킨 측면도 있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합의문', 결과 놓고 판단해야
프레시안 : 얼마 전 공개된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이 좀 저자세가 아니었냐는 지적이 있다. '이웃과 친구가 되기 위해 다른 이웃을 욕하지 말라'는 말도 있는데, 노 전 대통령이 미국이나 일본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5월에 미국에 갔을 때 부시 행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했던 여러 가지 친미적인 발언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이 보여준 스타일을 총괄적으로 평가한다면?
이종석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된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보지만, 노 전 대통령의 말에 대해 하나하나 토를 다는 것도 불쾌한 일이다. 회담이나 협상의 목적은 자신이 이루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가장 좋은 언어 구사, 화법 등을 생각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정상회담에서는 이를 위해 진폭이 큰 대화를 하게 된다.
그런데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합의문이다. 합의가 아니라 회담의 화법을 문제시하는 것은 인격 모욕적인 것이다. 특히 정상회담 대화를 어떤 경우에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그 자리에서 나오는 화법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물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합의가 아니기 때문에 유효하지 않다. 따라서 유효하지도 않은 문제들, 노 전 대통령이 어떤 화법으로 이야기했다는 것을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협상에 대한 평가는 협상의 결과를 보고 이야기해야 한다. 상대방으로부터 뭔가 얻어내야 할 것이 많다면,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 상대방이 듣기 좋아할 만한 발언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합의를 이뤄냈느냐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나 화법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은 곧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논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정상회담에서 밝힌 서해평화협력지대, 공동어로구역 설정은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고 NLL을 제대로 지켜나가면서도 이 지역에서 더 이상 희생이 따르지 않는 방법을 만들기 위해 골똘히 연구한 것이다. 아무리 NLL을 열심히 지켜도 여기에 대해 남북이 이견이 있는 한 결국 군사적 충돌은 불가피한 것 아닌가? 만약 NLL 인근의 지역에 양쪽 군대가 못 들어가게 되면 충돌이 나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프레시안 : 지금 새누리당, 국정원, 국방부, 일부 언론 등에서 당시 정상회담 대화록 어디에도 등거리, 등면적 이야기가 안 나온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위원장의 제안에 동의한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등거리 등면적 표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중요한 문제인가?
이종석 :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이 김정일 전 위원장에게 등거리 등면적을 이야기할 만큼 구체적인 것까지 접근하지 못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김 전 위원장에게 준 보고서가 세 가지인데 거기에 서해평화협력지대, NLL을 중심으로 우리가 주장하는 등면적의 공동어로 구역이 있었다. 참고로 NLL에서 공동어로 구역을 여러 군데 정할 때 모든 구역이 등거리 등면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평도 서쪽 같은 경우 NLL이 북한 쪽에 붙어 있기 때문에 어로 구역이 북한 쪽으로 많이 치고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런 경우는 연평도 부근은 좀 아래쪽으로 내려오고, 백령도 동쪽에 있는 곳은 좀 위쪽으로 올리는 방식을 취했다. 이렇게 하면 전체적으로 등면적이 된다. 이런 식으로 만든 지도를 같이 줬다.
당시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문 작성은 실무진이 했다. 처음에 남북 양측 실무자들이 만나서 공동어로, 공동 수역들을 표시한 지도를 10.4 선언문에 붙이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온 안을 북한에 보여줬다. 그랬는데 북한이 우리가 만든 지도에서 NLL 위쪽에 표시되어 있는 면적을 모두 지웠다. 이에 우리는 이를 거부했고 양측의 신경전이 계속됐다. 결국 합의를 보지 못하고 이 문제를 국방장관 회담으로 넘기게 된 것이다.
▲ 지난 2007년 10월 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그 당시 등거리, 등면적 논란은 정상회담 합의문을 만들면서 남북의 실무자들 사이에서 이미 발생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이 그 말을 하느냐 마느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프레시안 :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긴급 성명에서도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한 것 아니라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이종석 : 정상회담의 내용은 합의문에도 나와 있다. 합의문 이외에 뭐가 더 필요한가? 만약에 노 전 대통령이 정말로 NLL 포기했다면 북한이 이걸 다 이용하고 우려먹었겠지, 지난 5년간 가만히 있었겠나. 오히려 북한한테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우려먹으라고 새누리당이 부추기고 있는 이적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프레시안 :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이후에는 통일부 장관으로 계시면서 국가안보 기구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요즘 국정원과 국방부가 하는 행동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들 것 같은데?
이종석 : 국정원은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했다. 국정원과 국방부가 명예를 스스로 훼손시키는 중대한 자해행위를 한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라의 기강을 흔든 것이다. 왜 본인들이 스스로 정치적 논란에 끼어드나. 그것도 사실관계까지 왜곡하면서 말이다.
평화협정은 평화체제의 중대한 '일부분'
프레시안 : 한반도 평화체제 얘기로 넘어가겠다. 참여정부 5년을 관통하는 평화협정 전략의 핵심은 무엇이었나?
이종석 :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참여정부의 국정 핵심과제였다. 계기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워낙 북핵문제가 엄중하다 보니 평화체제 이야기가 공론화되기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2005년 여름쯤 미국에서 평화체제를 논의할 의향이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6자회담에서 평화체제를 거론하는 데 적극 나섰다. 이런 맥락에서 9.19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별도의 포럼을 만든다는 것을 넣게 됐다. 그때 북한이 우리를 평화체제 논의의 당사자로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북한은 북미평화협정 체결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한미 간 평화체제 논의도 있었다. 평화체제와 관련된 개념을 만들었고 NSC에서 논의했다. 이에 대한 개념 페이퍼를 미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데 9.19 공동성명 이후 상황이 악화되니까 2005년 가을부터 논의가 시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화체제에 대해 언제든지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그 때 만들었고 이후 2007년 2.13 합의 때는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이라는 틀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은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장한다는 '2+2'였다. 그런데 9.19 공동성명에서는 "직접 관련 당사국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이는 곧 미국을 포함한 3자, 혹은 중국까지 포함한 4자로 간주됐다. '2+2'가 3자, 혹은 4자로 전환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종석 : 기본적으로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확립한다는 것, 평화협정을 맺는 것은 정전체제를 해소하는 문제다. 정전체제를 해소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역사적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실체적인 힘의 관계에서 평화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역사적 원인 해소라는 것은 정전체제를 만들어 낸 국가, 즉 남·북·미·중 4자가 원인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실제적인 힘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미국이 이미 한반도에 들어와 있고, 중국 역시 현실적인 힘으로 존재한다. 한반도 정전체제를 해소하는 것이 평화체제라고 한다면 이 구조를 받치고 있는 다리가 4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우리가 한반도 평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남북한만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당위적으로는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현실적인 힘으로 존재하고 있는 미국, 중국과 관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미국이 별도로 북한과 협의하면 이는 결과적으로 북·미 평화협정이 되기 때문에 남한이 결코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정전체제에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원인을 제공했고 현재까지도 관계가 되어있는 핵심 당사자인 4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2+2는 남북한이 합의하고 미국과 중국이 보장한다는 것인데, 이런 주장이 역대정부의 기조였으며 참여 정부 초기까지 논란이 많았다. 2+2 이야기가 나온 원인은 북·미 평화협정에 대한 대응으로 남북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평화협정은 남북이 해야지 누가 하느냐'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미·중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만 터주는 것이다. 보장한다는 것은 도장하나 찍어주고 별 책임 없이 언제든지 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에는 평화체제와 평화협정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종석 :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을 위한 아주 중대한 사건이지만 평화협정이 이루어졌다고 평화체제가 바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평화협정을 통해 많은 것들을 합의하고 실현할 수 있지만 평화체제는 그러한 것들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해나가야 한다. 즉, 평화협정은 평화체제라는 긴 과정 속에 중대한 전기를 마련하는 한 부분이다. 평화체제의 부분집합이 평화협정이라는 말이다.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체는 남북이다. 그런데 그 중대한 모멘텀인 평화협정을 만드는 것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4자다.
4자 평화협정이라는 것이 하나 있고 그 밑에서 필요하다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하는 협정도 가능할 수 있다. 즉, 협정 안에서 부속 협정도 맺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평화협정의 핵심은 결국 휴전선이 일반 경계선이 되는 것이다. 그 일반 경계선은 누가 지키나? 남북이 지키는 것이다. 곧 남북이 주체적으로 평화를 관리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4자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체제의 주체를 남북한으로 자리매김하는 그러한 전략으로 이해된다. 평화체제 논의 시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주한미군 문제인데,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이 평화 유지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종석 : 우선 평화유지군이라는 것은 아직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는 말이므로 평화협정 이후 평화유지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북이 군비 통제나 축소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실현이나 합의, 실천까지가 포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잠정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군대가 들어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것 자체가 평화체제를 만들 만한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레시안 : 평화체제를 통해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하면서, 주한미군 문제를 한미 간의 협의로 하는 것으로 북한에 양해를 받는 전략으로 가야하나?
이종석 : 양해받을 것도 없이 주한미군이 북한에 적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 합의하면 된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주한미군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우리와 미국이 해결할 일이 되는 것이다. 북한과 상관없이. 더불어 유엔사는 평화체제가 만들면 해체될 것이다. 유엔사라는 것 자체가 정전상태이기 때문에 있는 것 아닌가? 전쟁 상태가 해소되는 것이 평화 상태고, 평화체제가 되면 당연히 유엔사는 물러날 수밖에 없다.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많은 국민들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지위도 불안해지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안보가 불안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종석 :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는 오히려 튼튼해질 것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후 남북한이 군비 통제하는 과정이 있을 것인데, 이는 곧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에 안보가 튼튼해진다는 뜻이다. 또한 평화협정에는 당연히 북한의 불가침 확약도 포함된다.
안보라는 것은 국방력을 강화시켜서 지켜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협상을 통해 전쟁의 위험성을 낮추려는 노력도 있다. 더욱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전쟁의 위험성을 극도로 낮춰버릴 수 있다. 게다가 한국군의 정예화는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당연히 안보는 강화된다.
사람들이 원래 있던 것에서 없어지는 것만 생각하지, 새롭게 형성되는,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수많은 기제가 생긴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잘 생각을 못한다. 그러다 보니 우려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진통이 따르더라도 이제는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우리 안보도 튼튼히 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도 밝게 비춰줄 것이다.
김정은, 병진노선을 들고 나온 이유
프레시안 : 최근 북한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이종석 : 1960년대 나온 국방-경제 병진노선과 현재의 병진노선은 다르다고 본다. 예전 병진노선 담화를 내놓을 때 북측이 선전했던 것은 경제가 조금 희생되더라도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핵을 통해 재래식 군비를 축소해서 군비 부담을 줄이고 이를 경제로 돌릴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담론 구조가 다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현재 북핵이 재래식 무기를 감축할 수 있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핵의 실존화된 능력이 아직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선전 도구로서 병력을 감축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핵이 있으니까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실 현재 북한의 군대 자체가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110만 명의 병력을 갖고 있는데 이는 북한 전체 인구에 5%에 해당한다. 따라서 현재 병력을 축소시켜 이를 노동현장으로 돌려야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군대를 줄이는 명분으로 핵을 삼는 것이다. 결국 과거에는 국방비 투자를 많이 하기 위해 병진노선을 이야기한 것이고 지금은 병력을 감축하는 논리로, 국방비 일부를 경제적 영역으로 돌리려는 명분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어찌보면 북핵은 북한 군부를 잡기 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김정은 1년간 군 인사의 세대교체가 빠르고 폭넓게 진행됐다. 이런 것 역시 병진노선을 선택하기 위한 내부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나?
이종석 : 일단 북한이 김정은 체제를 군에서 확립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세대교체의 의미도 있다. 젊은 지도자의 탄생 이후에 맞춰지는 것으로, 아마 군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1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지난번 북한이 핵실험 하고 위기를 고조시킨 것이 고도로 계산된 전략인지 자만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만심으로 갈 위험성도 있다. 세대교체가 작년부터 계속된 것은 아마 자기 체제, 김정은 체제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겠나 싶다. 꼭 병진노선과 관련된 것만으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물론 현재 김정은에게는 경제를 제대로 살리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북한은 이 회의에서 경제건설-핵무력 건설 병진 전략을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우리 정부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이 북한의 병진노선을 두고 국방력 강화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보다는 현재 상태에서 핵보유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불필요하게 많은 재래식 군비 부분을 축소시키면서 그 부분을 경제 영역으로 돌리려는 명분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김정은은 핵을 통해 재래식 군축을 한다는 주관적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만약 북한이 이번 병진노선을 통해 재래식 군축을 같이 하자고 한다든지, 또는 개혁개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경제발전 시도할 테니 협력하자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종석 : 남북한 군비 축소는 운용적 수준에서의 군비 통제가 있고 또 하나는 구조적 통제가 있는데 우선 초기에는 운용적 수준의 군비통제를 하게 될 것이다. 상호간 군사 대화를 하고 연락망을 놓고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훈련 횟수를 조정하고 비무장지대 초소(GP)를 철수하고 휴전선을 정상화하는 것 등 운영상의 군비통제가 먼저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러한 작업 이후에 병력과 무기 감축 문제가 나올 것이다. 군사력 감축을 의미하는 구조적 군비통제는 현 상태에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미 남북한 군사력 사이에 비대칭 상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핵을 갖고 있으면서 우리한테 군비 감축하자고 하면 어떻게 똑같이 감축할 수 있겠나?
다만 시간이 좀 오래 걸리겠지만 운용적 군비통제를 높은 수준까지 해 나가면 그 과정 속에 신뢰가 생길 것이다. 그 신뢰에 기초해서 실제 구조적 군비통제를 하는 방법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아이디어 내기 힘들다. 북한이 재래식 무기를 감축하자고 해도 이미 비대칭 상황이 됐기 때문에 어렵다.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일 수 있다. 일단 운용적 군비통제부터 이야기한 뒤에 거기서 쌓인 협상의 노하우와 신뢰와 지혜를 갖고 구조적 군비통제로 나아가야 한다. 또 구조적 군비 통제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을 때, 북한이 핵을 포기할지 아니면 확실히 가진 건지, 아니면 애매모호하게 가진 건지 등 그 시점에서의 북한 상태를 보고 군비통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전시작적권 환수와 평화체제의 상관성?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 때 가장 뜨거운 논란 중 하나가 전시작전권 환수문제였다.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맥락에서 전작권 환수가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인가? 전략적, 정책적 측면에서 전작권 환수가 평화체제와 어떤 관계였나? 전작권 환수가 평화체제로 가는 필수적 과정이었나?
이종석 : 참여정부 때 전작권 문제를 이야기했을 때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것은 부차적이었다. 사실 정상적인 주권 국가라면 자기 능력으로 자기 나라를 지켜야 하지 않나? 그러기 위해 능력이 된다면 전작권을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가주권의 상징 중의 하나가 군사주권 아닌가.
전작권 환수는 나라가 제대로 서기 위해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봤다. 또 우호적이고 균형적인 한미동맹 관계를 갖는 것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지나치게 대미 의존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우리 목소리를 내면서 동맹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작권 환수가 자꾸 늦춰지는 것이 유감스럽다.
노 전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를 임기 내에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는 군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전작권을 환수하기 위해 대북 억제력을 갖출 수 있는 시간이 언제냐고 물었다. 이 때 나오게 된 결론이 2012년에 해도 좋겠다는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전작권을 찾아와서 국가주권의 기본요소인 군사 주권을 갖는 것 자체가 국방비를 높이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의 과제가 많다고 봤는데 군사 주권을 가져오는 것이 국방비가 좀 늘어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DJ-노무현 정부 10년간 국방비가 정확히 2배가 늘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 때 국방비 증가율이 떨어지는 모습도 보게 됐다. 북핵을 해결하려면 군축에 대한 적극적인 사고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결국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억제도 가져야 하고 군축도 해야 하는 딜레마적인 상황이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이종석 : 딜레마가 있는 건 사실이다. 참여정부 때 국방비를 크게 늘렸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포용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수파의 반발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한편으로는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자주국방 의지였다.
노 전 대통령은 대북 문제와 별도로 자주국방 의지가 강했다. 우리 몸집에 맞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이 가장 싫어했던 말이 '인계철선(引繼鐵線, 원래 의미는 폭탄에 연결돼 건드리면 터지는 가느다란 철사를 뜻하는 것이었으나 오랜 시간 동안 한강 이북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존재를 비유하는 데 쓰였다.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위해 남겨둔 군대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이었다. 미군의 생명을 담보로 우리 안보를 지키자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대북 억제와 관련해 우리가 억제력을 강화하면서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모순적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과도기다. 대화와 억제를 병행하면서 지혜로운 방향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국내 정치적 요소들에 의해 남북관계가 좌지우지되는 측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방향성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대북 억제력과 남북화해가 증진됐을 때, 이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적 요소들이 치고 들어와 안보 문제가 지나치게 정치 논란으로 비화되면서 어려움이 커졌다.
남북관계라는 요소만 갖고 이야기를 단순화시켜서 본다면 결국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러니까 전작권 환수가 되는 시점이 지나면, 그 때부터는 대북 억제력 강화가 아니라 억제력의 재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GP를 철수하는 것, 휴전선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는 병력을 재조정하는 방식 등을 통해 상호간 신뢰와 안전장치가 남북한 사이에 들어옴으로써 억제력으로 버텨왔던 휴전선을 안전장치와 신뢰로 대체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으로 논의가 더 어려워지긴 했지만, 이에 대한 고민은 계속 필요하다.
대북정책, 국내정치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프레시안 : 대북정책의 가장 큰 변수로 국내 정치가 되고 있고 이러한 경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라도 북한에 대한 사람들의 확고한 인식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북한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나?
이종석 : 북한은 우리한테 적이자 형제인 두 가지 모습으로 다가와 있다. 이 두 가지의 모습은 전통적인 북한의 모습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협력하고 함께해야 할 파트너가 북한이라는 점이다. 또 우리 삶의 불안정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의 공간을 함께 갖고 있는 파트너가 북한이라는 것이 인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협력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한테 주는 의미가 있다. 남한 같은 경우는 삼면이 바다인 상황에서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다. 가장 중요한 육지가 봉쇄된 상태에서 여기까지 왔다. 그럼 봉쇄된 육지가 터지면 엄청난 전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북한이라는 상대를 생각할 때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엄청난 공간이 열리고 기회가 생긴다고 바라봐야 한다. 북한 역시 휴전선이 있기 때문에 그들 양쪽으로 나온 바다도 별로 쓸모없게 됐다. 따라서 그들 입장에서도 남한은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북한에 대해 생각할 때, 나에게 북한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 이익이 되면 안 된다는 사고가 있는데, 즉 북한이 얼마나 손해를 보는지, 창피를 당하는지, 얻어맞는지 등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정말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뭐가 좋고 이익이 되는 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
개성공단 같은 경우 우리가 훨씬 이익이 많다. 그런데 북한에 들어가는 이익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이익만 생각하지, 우리가 개성공단으로부터 얻는 이익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편향성을 극복해야 한다.
프레시안 :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중대 전환기에 접어들었을 때 이명박 정부가 등장했다. 그리고 MB 정부는 역사적 기회를 유실했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 여부도 너무나도 중요한데, 아직까지는 너무 부족한 것 같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는 측면에서 조언을 한 마디 해주신다면?
이종석 : 4월까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나 여러 가지 전망에 대해 인터뷰조차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기 전부터 과거 정부를 아주 욕보이고 부정하면서 출발해서 대응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전직 장관으로서, 다음 정부가 출범하면 일정 기간 동안은 입 다물고 하는 것을 보고 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저변에는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는 달라지기를 기대하고 또 성공하기를 바라는 심정이 있었다.
그런데 그 뒤에 입을 열게 됐다. 지금 이 상황에서, 특히 정상회담 대화록까지 공개하면서 국내 정치적으로 남북관계를 악용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게 무슨 덕담을 할 수 있겠나 라는 심정마저 든다. 물론 그들이 대북정책이나 외교정책에 있어서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비합리적인 것이 한두 개가 아니지 않나. 대화를 위한 대화는 북핵을 고도화시킬 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대화를 위한 대화도 하지 않았을 때 북핵이 더 고도화되는 현 상황을 누가 박 대통령에게 이야기하고 있나.
남북한 회담에서 격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는데, 정말 기준이 없다. 박 대통령이야말로 중국에서 특사로 외교부 상무부부장을 보냈는데, 그 특사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한 화답으로 정권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김무성 의원을 특사로 보냈다. 이건 격에 맞는 특사였나? 그러나 누구도 이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일관성, 원칙, 신뢰를 이야기하지만 따지고 보면 일관된 것이 없는 거다. 이런 것들이 많이 쌓여있다.
대일 외교에도 문제가 있다. 일본을 이렇게 놔둬도 되나. 더욱이 역대 대통령들이 일본을 먼저 방문했던 관성도 있다. 물론 중국은 앞으로 우리와 아주 오랫동안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중국에서 여러 기회를 포착할 것이고. 한국 경제나 한국 사람들 삶에 훨씬 더 많은 부분이 중국과 상호의존적인 측면으로 변할 것이다. 이 와중에 우리도 모르게 의존하는 측면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의 대(對)한반도 영향력이 과도하지 않도록 견제해야 한다. 한미동맹에 대한 재평가도 이런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균등한 한미 관계를 추구해 나가면서도 동맹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보다 냉철한 머리로 한일관계를 들여다보면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한일 양국이 이야기를 해보기도 전에 너무나 엉클어져 있어서 걱정이다. 게다가 일본, 북한이라는 국가는 정치인들에게는 정치적으로 활용 가능한 측면이 많다. 대일문제에 대해 강경 일변도로 나가서 싫어할 국민들이 별로 없다. 북한에 대해서도 원칙을 강조하고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북한과 일본 문제를 우리 지도자들은 절제해서 다뤄야 하는데 이 문제들이 절제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어떤 도발을 했으면 우리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정도의 일이 발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일본과 북한에 대해서는 지도자의 절제된 정책과 태도가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국민들한테 잘한다는 소리 들을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되면 실책이 하나하나 쌓여서 한 번에 잘못될 수도 있다. 북한이든, 일본이든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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