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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밀양 송전탑 못 뽑으면 이명박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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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밀양 송전탑 못 뽑으면 이명박 된다"

[안종주의 '건강 사회'] 국민은 왜 밀양 편인가?

모든 정책은 그 정책의 수요자, 즉 국민의 눈높이에서 소통하며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정책 시행 과정에서 지역 주민이나 국민과 심각한 갈등이나 마찰이 빚어졌을 경우 반드시 그 갈등요인을 민주적이고도 합리적으로 해소하고 난 뒤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하는 사회는 건강 사회요 그렇게 하지 않는 사회는 불통 사회이며 위험 사회이다.

요즘 밀양에서 들려오고 보는 사태는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누가 칠팔십 잡수신 어르신들을 쇠사슬로 묶게 만들었는가. 누가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로 하여금 무덤구덩이를 파게 만들었는가. 이들이 낸 세금으로 녹봉을 받고 있는 경찰이 이들을 폭압적인 방법으로 다뤄 쓰러지거나 병원으로 실려 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니 없던 갈등마저 생기고, 있던 갈등은 증폭되는 것이 아닌가. 꼬인 실타래는 차분히 한 올씩 풀어가야 하는데 더욱 배배꼬고 있으니 밀양 사태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 드리울 그림자는 더욱 짙어만 가 안타깝다.

요즘 매스컴과 사람들의 입길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도시는 서울과 부산 등이 아니라 밀양이 아닐까 싶다. 어릴 때 종고모 댁에 들르느라 김해 한림에서 나룻배로 낙동강을 건너 밀양을 간 적이 있다. 40년 전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입시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휴일 표충사에 들르고 천황산을 오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몇 년 전에는 밀양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석면 추방'이란 구호를 적은 셔츠를 입고 완주하기도 했다. 지난 8월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환경 조사를 위해 인터뷰를 하느라 잠시 들르기도 했다.

밀양은 이처럼 내 인생 유년기, 청소년기, 중·장년기에 가끔 인연을 맺은,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도시다. 위험 소통 전문가 또는 건강 디자이너란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나에게 요즘 밀양은 꿈에서도 등장하는 도시가 돼버렸다. 송전탑 건설을 저지하려는 마을 주민들을 경찰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마구 연행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다치고 있다는 소식을 요 며칠 사이 전해들을 때마다 올 봄 서울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놓고 '765 송전탑 반대' 자작 노래를 힘차고 구성지게 불렀던 '밀양 아지매 삼총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혹 다치지는 않았는지, 잠 못 이루는 날이 계속되지는 않은지, 불안과 공포에 떨며 몸과 마음이 크게 상해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현대 사회에서, 그 사회가 선진 사회라 할지라도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부부 간, 부모와 자식 간, 형제 간, 친구 간, 직장 동료 간에도 갈등이 있다. 또 지역 간에도, 도농 간에도, 주민 간에도 갈등이 있을 수 있으며 기업과 주민, 정부와 주민 간에도 갈등이 존재한다. 문제는 갈등의 유무가 아니라 갈등이 자주 생기는가와 증폭되는가이다. 그리고 갈등이 생기면 얼마나 신속하게, 합리적이고도 민주적으로 이를 풀어내느냐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최근의 밀양 송전탑 사태를 보노라면 정부와 지역 주민, 한국전력과 지역 주민 간 갈등이 위험 수위를 넘었으며 우리 사회가 합리적으로 풀어가기 어려운 정도까지 가고 있는 것 같다.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성적인 해결을 위해 잠시 폭압적 해결과 대립을 중단하고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가야 할 때이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 미국 산 쇠고기 수입 협상 문제와 관련해 국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고 초지일관 일방적인 소통으로 정권의 위기까지 겪은 바 있다. 여기에다 집권 내내 4대강 개발 등을 밀어붙여 불통 정부라는 쓴 소리를 들어야 했다. 정권이 끝난 뒤에도 그 후유증은 막대해 많은 국민들이 4대강 녹조 등으로 계속해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를 이어받아 사실상 정권 연장을 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 또한 이명박 정부 못지않은 불통정권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폭발과 대규모 방사능 물질 유출로 빚어진 우리 식탁 방사능 오염을 우려하는 국민들의 불안을 보듬지 않고 안전하다며 일본산 수입 수산물에 대한 검역 강화와 수입 규제를 느슨하게 두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애꿎게도 국산 수산물마저 팔리지 않게 되자 뒤늦게 두 손을 들고 전향적인 수입 규제 확대 정책을 폈다. 제 2의 촛불 집회가 벌어지지 않을까 판단해 나온, 박근혜 정부의 내키지 않은 결정인지도 모른다.

이는 그나마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외양간까지 진정으로 고친 것은 아닌 것 같다. 밀양 사태에 대응하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밀양 사태는 건강 위험과 재산권, 소통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진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왜 이들이 건강 위험을 느끼게 됐는지, 그동안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지,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송전선 전자기장의 위험학

고압 송전선로 주변에는 극저주파 자기장(ELF EMFs)이 만들어진다. 이 자기장의 세기는 송전선에서 가까울수록 커진다. 흔히들 전자기장이란 말을 전자기파란 말과 동의어로 많이 쓴다. 물론 같은 동의어는 아니다. 장(場)과 파(波)가 같은 뜻은 아니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 2개의 장은 같이 발생하며 전자기파로 같이 전파된다. 전기가 흐르는 곳이면 전자기장이 생기며 전자기파도 나온다는 것이다. 전자기장이 세면 그만큼 전자기파도 세게 나오게 된다. 고압 송전선로 주변에는 강력한 전자기장이 만들어진다. 전기장과 자기장은 바늘과 실처럼 늘 붙어 다닌다고 보면 된다.

이 가운데 과학자들과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자기장이다. 우리는 그동안 고압 송전로에서 나오는 전자기장(더 정확하게는 극저주파 전자기장이며 이 가운데 인체 유해성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자기장임)이 소아 백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발암 가능 물질이란 이야기를 들어왔다. 이를 뒷받침하는 스웨덴, 영국, 캐나다 등 여러 선진국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발표도 있었다.

자기장은 자석의 주위나 전류가 지나는 도선(導線), 즉 전선 주위에 생기는, 자기력이 작용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 안의 자기력은 자극에 가까울수록 크고 멀어질수록 작아진다. 자기력은 흔히들 가우스(G)란 단위를 사용하는데 전자기학 발전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19세기 초·중반 독일의 뛰어난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였던 가우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고압 송전선로에서 만들어지는 전자기장 노출과 어린이 백혈병의 관련성은 1979년 처음 나온 뒤 영국, 캐나다, 스웨덴 여러 선진국에서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물론 어떤 연구에서는 관련성이 없다는 결과도 나오고 있다. 암 발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오는 자기장의 세기는 3~4밀리가우스 이상이다. 암 발생 상대 위험도는 1.7~2배 정도였다.

세계보건기구에 딸린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2001년 극저주파 자기장을 그룹 2B, 즉 인체 발암 가능 요인(possible carcinogen)으로 분류했다. 이 그룹에는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라디오파와 커피 등이 들어있다. 이 그룹은 명백한 발암 물질(human carcinogen)인 그룹 1과 그룹 2A인 발암 추정 물질(probable carcinogen)보다는 인체 발암성 증거가 약하다.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다(소아 백혈병)는 제한된 증거가 있고 동물 실험에서 발암성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부족한 경우 우리는 그룹 2B에 넣고 있다.

밀양 주민들이 자신들의 삶터에 송전선로를 건설하려는 것에 격렬하게 반대하자 한국전력과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보수 언론 등은 이들이 반대하는 유해성 근거가 희박하고 외부 세력, 특히 종북 세력의 힘을 빌려 우리 사회에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그들을 비난하고 있다. 심지어는 돈을 타내기 위한 저항이라거나 님비 현상 또는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붙이며 이들을 폄훼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지역 주민 갈라놓기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밀양 송전탑 주민들의 저항 목소리는 홀로 외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많은 국민들이 소리 없는 외침을 이들에게 보내고 있다. 일부 시민 단체와 지식인들은 함께 소리치며 동참하고 있다. 국민들 가운데 3분의 2가 밀양 주민들이 암 위험 등 건강과 경관 악화, 재산권 침해 등을 근거로 지상 송전선로 건설을 반대하는 데 대해 일리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환경운동연합, 서울대학교 직업환경건강교실과 함께 국내 한 전문 여론 조사 기관에 맡겨 지난 8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출 자동 응답 방식으로 밀양 사태와 관련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10일 발표했다.

이 결과를 보면 자신의 집 근처에 송전탑이 들어설 경우 반대하겠다는 사람이 53.9%였으며 찬성은 19.1%에 그쳤다. 또 고압 송전선로 전자파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세계보건기구의 발표를 알고 있는 응답자는 62.9%였으며 모르는 사람도 30.5%였다. 핵발전소와 같은 대형 발전소를 세워 이를 멀리까지 보내는 송전 시스템 때문에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는 사람은 49.3%였으며 이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31.2%였다. 국민 대부분인 84.9%가 전자파가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63.4%가 비용과 시간이 더 들어가더라도 송전선로를 지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리고 80.4%가 전자파를 환경오염 물질로 지정해 규제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번 여론 조사는 자그마한 시민 단체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이런 조사는 많은 돈을 사용할 수 있는 정부가 진작 했어야 할 성격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여론을 바탕으로 밀양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에너지 정책을 펴고, 송전선로 건설 방식 등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근혜 정부가 정상 정부, 소통 정부였다면 분명 이런 방식으로 이번 밀양 사태에 접근했을 것이다. 늦기는 했지만 송전탑 건설 문제는 서두를 것이 아니라-서두를 하등의 이유도 없다-차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위험 소통의 원칙을 잘 지켜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할 부분은 수용하고 소통 미흡으로 생긴 앙금이나 오해는 풀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갈등 과정에서 빚어진 불미스러웠던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한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국정 책임자 차원에서 약속해야 한다. 이런 씻김굿과 같은 행위가 있게 되면 응어리진 밀양 주민의 가슴과 이를 안타까워하며 바라본 많은 국민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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