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만 놓고 보면 <송포유>는 영리한 프로그램이었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성공했던 방식 그대로 노래라는 소재와 멘토-멘티의 관계가 있고, KBS <남자의 자격> '합창단 시리즈'가 증명했듯 함께 노력해 만들어내는 하모니의 감동은 폭발력이 있다.
▲ 이승철과 함께 한 성지고등학교 학생들. ⓒSBS |
하지만 같은 재료라도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요리가 되듯 방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지난 일주일간 <송포유>에 쏟아진 무수한 지적과 분노는 제작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뜨거웠지만 대부분 타당한 것이었다. <송포유>는 방송에 나온 학생들 중 일부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라는 점을 경솔하게 다루었다. 게다가 논란과 비난에 대한 제작진의 반응은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송포유> 제작진의 의도는 명백했다. 표면적인 의도는 노력이나 성취 같은 것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해 온 소위 문제아, 소외당한 아이들이 합창을 통해 지금까지 몰랐던 즐거움을 느끼고, 나아가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방송의 1차적인 목적은 이 과정을 보여주어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지만 나아가 학생들의 실질적인 변화와 성장까지 연결된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의도는 거칠고 다소 무섭기까지 한 학생들을 통해 이슈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역시 방송 프로그램으로서 사실상 당연한 의도이자 접근 방식이다.
문제는 제작진이 자신들에게는 명백하고 당연한 의도에 취해 야기될 수 있는 부작용을 간과했거나 알고도 묵인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송포유>만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 방송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Mnet <슈퍼스타 K> 시리즈와 같은 일반인 대상 오디션 프로그램, SBS <짝>, KBS <안녕하세요>, tvN <화성인 바이러스> 등의 일반인 참여 프로그램의 공통점 중 하나가 출연자의 사생활에 대한 논란이다. 일반인의 방송 참여 확대와 인터넷 환경의 발달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소위 '신상털이'는 사생활 침해와 폭력이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방송과 시청자가 맺는 관계의 변화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즉, 방송이 '진심'을 다루는 방식과 시청자가 방송에 기대하는 '진심'이 어디서 만나고 어떻게 빗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리얼리티 예능이 대세가 되면서 방송은 먼저 연예인들의 '진심'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가상 리얼리티'라는 모순된 표현 속에서 실제처럼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하고,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 실제로 스포츠에 도전하고, 실제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거나 육아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디까지가 대본이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미묘한 줄타기가 오히려 재미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거짓말 논란'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 엄정화와 함께 한 서울 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 학생들. ⓒSBS |
일반인이 예능에 출연하면서 이 줄타기는 더욱 아슬아슬해진다. 제작진은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어 좋고 시청자는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쉽고 편하게 공감한다. 동시에 방송에 익숙하지 않고 그 파급효과에 면역이 되지 않은 일반인들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거나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후폭풍과 대면하기도 한다.
<송포유>의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자신의 발언과 행동이 어떤 식으로 방송에 사용될지 충분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사려 깊게 조율하는 것이 제작진의 역할이었지만, <송포유>를 둘러싼 논란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비추어보건대 이는 지나친 기대였다. 행실이 나쁘다는 이유로 인성도 그럴 것이다 매도할 수 없다거나, 과거의 잘못이 평생의 주홍글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비난의 쟁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변명이다. 자극적인 설정과 변화와 성장이라는 탐나는 이야깃거리에 홀려 민감한 부분을 가벼이 다뤘다.
밥 먹듯이 지각하고 결석하고 담배 피고 술 마시고 폭행을 하는 학생들은 실제 존재하는 아이들이다. 문제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그들이 추억을 쌓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의도가 실효성이 있는가라는 의문 이전에, 이 학생들이 실제인 만큼 그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상처를 입은 학생들 역시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을 가벼이 여기거나 묵과한 것에서 논란은 이미 잉태되어 있었다.
점점 시청자는 '진짜'를 보고 싶어 하고,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진짜'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는 '만들어진 진짜'이다. 포장된 진심이요, 가공된 실제다. 연기고 거짓이라는 것이 약속된 콩트의 세계가 아닌 '리얼'을 표방하는 세계에서 '진심'이라는 조미료의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 조미료가 너무 과해 요리를 망치는 경우도 있고, 조미료 속 나쁜 성분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맛을 위해 집어넣을 수도 있다. 이미 조미료에 길들여져 무감각해졌을 수도 있고, 이 정도 조미료가 뭐가 나쁜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만드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는 조미료의 적정량은 얼마 만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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