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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뒤흔든 '사과꽃 스캔들'의 전모? 비밀은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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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뒤흔든 '사과꽃 스캔들'의 전모? 비밀은 화산!

[프레시안 books] <세계 문학 속 지구 환경 이야기>

소동은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영문학 고전 중의 고전인 제인 오스틴의 <에마>(윤지관·김영희 옮김, 민음사 펴냄)에 나오는 문장이다. '하지에 가까운 어느 날' 돈웰로 나들이 간 등장인물들이 '꽃이 만발한 과수원'을 감상했다는 것이다. 이때 과수원은 틀림없이 사과 과수원이다. 이것이 왜 문제일까.

ⓒ사이언스북스 제공
오스틴은 사과꽃이 '6월 하순인 하지 무렵 피었다'고 말한 셈인데 실제로 사과꽃은 보통 5월에 피어 여름 전에 져 버리기 때문이다. 오스틴의 오빠는 동생에게 "제인, 한여름에 꽃을 피웠다고 하는 너의 사과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구나."라고 놀렸다고 한다.

날씨에 집착하는 영국인들이 이 미스터리에 도전하지 않았을 리 없다. 과학자들까지 나서서 권위 있는 학술지 <네이처>에서 논의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우선 사과 품종을 짐작해 보았다. 그 결과, 재배 시기와 지역을 고려할 때 빅토리아 시대에 인기 있었던 '코트 펜듀 플랫'이 유력해 보였다. 과학자들은 다음으로 그 품종의 가장 이른 만개일과 가장 늦은 만개일을 기록에서 조사했다. 전자는 5월 9일이었고 후자는 6월 13일이었다. 기온에 따라 사과나무의 꽃 피는 시기가 한 달 이상 차이 날 수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오스틴이 <에마>를 썼던 1814~1815년에 실제로 그 품종이 늦게 개화했을까? 충분히 가능했다. 왜냐하면 1300~1850년은 '소빙기'라 불리는 세계적 한랭기였던 데다가 특히 1815년 전후로 세계 각지에서 화산 분화가 이어져 한랭 기후가 한층 심해졌기 때문이다. 1812년에는 카리브해와 인도네시아에서, 1813년에는 일본에서, 1814년에는 필리핀에서 화산이 터져 세계가 추워졌다. 큰 화산이 폭발하면 미세한 에어로졸 입자가 대기에 다량 분출되어 햇빛을 막기 때문에 이상 저온이 일어난다. 더구나 오스틴이 집필을 마친 1815년에는 폭발 규모가 원자폭탄의 1만3000배였다고 추정되는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터졌다. 1816년은 '여름이 없었던 해'로 역사에 기록되었고, 흉작과 기근이 뒤따랐다. 오스틴은 관찰력이 부족해서 제멋대로 사과꽃을 하지 즈음에 꽃 피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확한 관찰을 소설에 반영함으로써 독자들의 오해를 샀던 것이다!

▲ <세계 문학 속 지구 환경 이야기 2>(이시 히로유키 지음, 안은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이 이야기는 <세계 문학 속 지구 환경 이야기>(이시 히로유키 지음, 안은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2권에 나온다. 문학 작품에 언급된 기후 이야기에서 궁금증을 느껴 실제 당시의 기후를 조사한 사연이니 '기후 탐정'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기후 탐정'의 목적이 꼭 진위를 따지는 것만은 아니다. 추적 과정에서 화산 분출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 한랭화가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 추운 여름이 반영된 미술 작품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줄줄이 딸려 나온다. 이만하면 '세계 문학 속 지구 환경 이야기'라는 제목을 단 이 책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문학으로 지구를 읽고 환경으로 문학을 읽는다'는 부제는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짐작될 것이다. 이렇듯 문학 작품에서 발상을 얻어 지구 환경에 관한 과학적, 역사적 정보를 풀어낸 글 23편이 이 책에 실려 있다.

한여름에 핀 <에마>의 사과꽃 이야기가 워낙 매혹적이라 인용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그렇지, 사실 '기후 탐정 이야기'로 분류할 만한 글은 두어 편뿐이다. 성경 <출애굽기>에서 여호와가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기적이 아니라 화산 분출에 뒤이은 바닷물 적조 현상, 천연두 창궐, 사막의 모래 폭풍 따위로 풀이한 글이 그렇다. 나머지 글들은 문학의 환경 묘사가 정확했는지를 따지진 않는다. 문학 고유의 풍부하고 인상적인 표현을 마중물 삼아서 그보다는 좀 더 건조한 환경 이야기를 풀어낼 뿐이다.

대상 작품은 <그림 동화집>, <로빈 후드의 모험>과 같은 옛이야기에서 <모비 딕>, <레 미제라블>, <분노의 포도>와 같은 현대 고전까지 다채로운데, 이야기 주제는 주로 토양 훼손과 삼림 소실에 집중된다. 플라톤이 <크리티아스>를 썼던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대륙의 딸>에 묘사된 중국 마오쩌둥 시절까지, 인간이 숲의 귀중함을 모른 채 마구 나무를 베어 건설과 제철에 사용하다가 비옥한 토양을 사막으로 타락시킨 예는 찾자면 끝도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그 결과로 기근이 따르기 쉬웠으므로, 고통 받는 인간들을 긍휼히 여긴 문학가들이 그 모습을 많이 기록에 남겼다. 삼림과 토양 외의 주제로는 생물 멸종, 스페인 독감과 같은 지구적 전염병, 산성비, 수은 중독 등이다. 저자 스스로 '인간의 생명이나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주변 상황의 변화'라고 정의한 넓은 의미의 '환경 문제'를 두루 다루는 셈이다.

▲ <세계 문학 속 지구 환경 이야기 1>(이시 히로유키 지음, 안은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저자는 왜 문학을 끌어들여서 환경의 역사를 이야기했을까. 저자 이시 히로유키는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과학 기사를 담당한 후 국제연합 환경계획 고문, 도쿄 대학교 교수 등을 지낸 40년 경력의 환경 전문 베테랑 저널리스트로, 20년 전 사건이 계기였다고 말한다. 당시 저자는 유럽의 대기 오염 역사를 조사하던 중, 헨리크 입센의 극시 <브란트>에 영국에서 북유럽까지 날아온 대기 오염에 관한 생생한 묘사가 있음을 발견했다.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입센이 환경 보호 활동을 개척한 인물로도 평가 받는다는 사실, 또 다른 대표작 <인민의 적>에는 수질 오염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더구나 <브란트>가 쓰인 1866년에는 석탄 매연이나 산성비가 그토록 먼 거리를 날아서 온 유럽에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상태였다. 입센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혜안으로 어느 과학자보다 먼저 그 사실을 기록했던 것이다. 저자는 그런 작가들을 탄광 속에서 유독가스의 배출을 알려 경고하는 카나리아에 비유한다.

그러나 문학과 환경을 엮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구태여 거창한 의의를 들먹일 것까지도 없다. 이 책의 접근법은 지루할 것처럼 여겨지는 소재를 솔깃하게 소개한다는 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인류사를 환경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은 이제 낯선 시각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생태학이 학문으로 정립되고 고기후학과 고지질학이 수만, 수백만 년 전 지구 환경의 사정까지 밝혀내게 되면서, 이전까지 우리가 인간 활동의 연대기로만 기록했던 문명사가 실은 자연의 압도적인 영향력에 좌지우지된 역사였다는 사실이 많이 드러났다. 이른바 환경사의 관점을 기록한 책도 꽤 많다. 이시 히로유키가 참고한 책 중에서만 골라도 <녹색 세계사>(클라이브 폰팅 지음, 이진아 옮김, 그물코 펴냄), <문명의 붕괴>(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김영사 펴냄), <숲의 서사시>(존 펄린 지음, 송명규 옮김, 따님 펴냄),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남경태 옮김, 예지 펴냄) 등이 모두 추천할 만한 책이다. 히로유키의 전작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유아사 다케오·야스다 요시노리와 공저, 이하준 옮김, 경당 펴냄)도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세계 문학 속 지구 환경 이야기>는 문학 작품을 인용하여 흥미를 돋우는 전략 덕분에 위의 책들보다 훨씬 더 읽기 편하고 가뿐하다. 연대기적 서술이 아니고, 주제가 다양한 짧은 장들이 자유롭게 배열되었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주제만 골라 읽어도 된다. 자신이 읽어 본 책이 소개된 장을 먼저 읽어도 된다. 그런데 책에 언급된 작품들을 읽지 않았어도 문제는 전혀 없다. 저자가 각 작품의 줄거리, 저자 소개, 배경을 첫머리에 요약한 데다가 어디까지나 그것은 '마중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서야 소개된 책들을 찾아 읽을 마음이 들 수 있다. 다행히 3분의 2는 번역본이 나와 있다. 중국의 황사 문제를 이야기할 때 언급된 <낙타 샹즈>(라오서 지음, 심규호 옮김, 황소자리 펴냄), 지구 온난화 문제를 이야기할 때 언급된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경옥 옮김, 이광익 그림, 사계절 펴냄) 같은 책까지 번역되어 있는 것은 뜻밖의 발견이다.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저자는 일본판을 참고했으나 원래 영어판이 원서인 자료의 경우 옮긴이가 영어 제목과 저자를 병기해 두었다. 그것도 좋은 정보가 된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한 가지 어쩔 수 없는 문제는, 일본 문학 작품을 통해 일본 환경 문제를 이야기한 글 네댓 편은 읽기가 꽤 어렵다는 점이다. 그 책들이 번역되지 않아서도 그렇고, 저자가 당연히 더 깊이 있는 수준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것이 꼭 단점은 아니다. 과학적, 역사적 지식을 전방위로 갖추어 어떤 환경 문제에 대해서든 자국의 특수한 사정까지 술술 이야기할 수 있는 저술가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 부러워질 뿐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레 미제라블>을 '하수도가 주인공인 소설'이라고 선언하면서 서양 도시들의 위생 문제를 이야기한 뒤, 비슷한 시기 일본 에도 시대에는 그보다 훨씬 더 친환경적인 하수 집거 체계가 구축되어 있었다고 덧붙인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전투 사망자보다 사망자를 더 많이 낳았다고도 하는 스페인 독감을 살펴볼 때도 먼저 세계적으로, 다음에는 일본 내에서 살펴본다. 그리고 이 책의 접근법을 독자들이 저마다 활용해 보아도 좋겠다. 과학 선생님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이다.

나도 덕분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수시로 발생하여 큰 피해를 내는 산불은 자연재해인 동시에 인재라고 한다. 주거지를 자꾸만 더 삼림 깊숙이 들이는 것도 옳지 않고, 과거의 삼림 관리 기법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 문제의 심각성과 무서움을 생생하게 느낀 것은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서가 아니었다. 각각 1930년대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두 추리소설, <샴 쌍둥이 미스터리>(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 검은숲 펴냄)와 <지하인간>(로스 맥도널드 지음, 강영길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에서였다. 두 소설가는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이나 상징으로서 환경 파괴와 재해를 묘사했을지라도 그것에서 나는 의외의 정보를 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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