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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맘때 생각나는 꽃 하나 시 한 편

[꽃산행 꽃글·77] 현호색 생각

추석, 이맘때쯤이면 생각나는 꽃 하나 시 한 편

두 해 전. 꽃 공부를 하겠다고 처음 들어간 곳은 서울 근교의 천마산이었다. 겨울을 막 빠져나왔지만 희끗희끗한 잔설이 보이고 꽃샘추위가 매서운 날씨였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처음으로 작정을 하고 본 꽃들이 있었으니 그중의 하나가 점현호색이었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며 계곡으로 눈길을 던지며 두리번거리다가 만난 꽃이었다.

봄이 오는 때를 알고 이를 따라 맞추어 피어나는 꽃들. 천마산은 야생화가 다양하다. 아마도 천마산은 봄을 견인하는 이 다종다양한 야생화 덕분에 봄이 먼저 오고 봄 향기도 오래 머무는가 보다. 산으로 점점 올라갈 때 복수초, 꽃다지, 만주바람꽃, 너도바람꽃, 노루귀, 피나물 등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정상 부근에서 앉은부채 옆에서 피어나는 현호색을 만났다. 현호색이 손바닥처럼 벌어진 녹색의 잎이 밋밋한 것에 비해 점현호색의 그것에는 뚜렷하게 흰 무늬가 있다. 마치 어린 아기의 엉덩이에 나타나는 청회색의 몽고반점처럼.

우리나라 산을 탐험할 때 현호색 종류를 만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만큼 널리 많은 곳에 분포한다. 경기도의 천마산 이후 전남의 백암산, 전북의 회문산, 강원도의 태백산 등지에서 어김없이 현호색 또는 왜현호색, 흰현호색 등을 보았다. 야생화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 어느 산엔 간들 현호색은 활짝 피어 있었다.

▲ 현호색. ⓒ이굴기

▲ 점현호색. ⓒ이굴기

태백산에 갔을 때 조금 특이한 현호색을 보았다. 갈퀴현호색이었다. 도드라진 꽃받침이 꽃의 엉덩이, 다시 말해 꽃통을 감싸고 있는 게 마치 갈퀴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경주의 토함산 자락에서도 목록을 하나 더했다. 날개현호색이었다. 꽃의 아래쪽 좌우측에 작은 날개처럼 톡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마치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올해 초봄의 일이었다. 나의 꽃동무들의 안내를 받아 대구 근교의 어느 숲으로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평지의 자연숲이었다. 이팝나무, 물푸레나무, 굴참나무, 왕벚나무, 느릅나무 등이 우람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나무들의 낙엽들을 밀치고 돋아나는 풀들이 봄을 힘겹게 밀어올리고 있었다. 그 풀들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쇠뿔현호색이었다. 꽃의 머리 부분이 소의 뿔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 갈퀴현호색. ⓒ이굴기

▲ 날개현호색. ⓒ이굴기

▲ 쇠뿔현호색. ⓒ이굴기

내처 근처에 있는 삼성산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여러 야생화들 틈에서 새로이 현호색의 종류를 하나 추가했다. 남도현호색이었다. 삼성산에는 봄의 지표가 되는 야생화가 여럿 어울려 있었다. 만주바람꽃, 노루귀, 꿩의바람꽃, 남산제비꽃, 현호색 등이었다.

현호색 종류의 꽃은 조금 특이하다. 줄기 끝으로 집합하면서 달리는 꽃들은 오리가 어미나 먹이를 찾아 떼로 모여드는 형국이다. 자세히 보면 꽃들은 하나하나 분리되어 공중의 어디로 떠나려는 것 같기도 하다. 줄기를 도움닫기로 하여 막 이륙하기 직전의 모습인 것이다. 꽃들은 지금 어디로 가려고 이렇게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일까.

뒤뚱거리며 달려와 줄기 끝에서 문득 멈춘 남도현호색 꽃을 보자니 떠오르는 한 편의 시가 있었다. 왕유(王維, 699?~759년)의 '九月九日憶山東兄弟 (구월구일억산동형제, 9월 9일 산동의 형제를 생각함)'이라는 시였다.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이다.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오늘의 우리로서는 추석이라 여기면 될 것이다.

그 시를 감안해서, 그리고 내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일부러 꽃이 네 개인 남도현호색을 골라 엎드려 사진을 찍었다. 내가 처음부터 현호색 종류를 주목한 것은 아니었다. 삼성산에서 남도현호색을 보면서 이제껏 본 현호색 종류의 꽃들과 시가 한 줄로 꿰어졌던 것이다. 키가 다른 꽃들은 차례를 지키며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북녘으로 떠나는 안항(雁行)처럼 꽃들은 위아래의 간격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혹 저 꽃의 형제들도 원래 다섯이었는데 하나가 빠진 것은 아니었을까?

▲ 남도현호색. ⓒ이굴기

올해 추석 연휴가 길었다. 연휴 마지막 날 몇몇 동무들과 달맞이하러 인왕산에 올랐다. 달은 그새 한쪽 귀퉁이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노랗게 떠서 잘 건너가고 있었다. 달이 남산쯤에 왔을 때 통인시장에서 산 깎은 알밤을 손바닥에 놓고 겨주어 보니 크기가 서로 비등비등했다. 보름달을 몸의 안방으로 맞이하는 기분으로 알밤을 깨물어 먹었다.

인왕산도 서울에서는 제법 높은 곳이다. 찬바람이 몹시 불었다. 달빛만으로는 모자라 이마에 쇠뿔처럼 랜턴을 달고 더듬더듬 내려왔다. 이제 야생화가 단풍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모두 문을 닫는 시기인 듯 했다. 이 산 어딘가에도 내년 봄을 기약하고 서둘러 지하로 들어간 현호색이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꽃 대신 시 한 편을 생각하면서 올해 추석을 보냈다.

獨在異鄕 爲異客 (독재이향위이객)
每逢佳節 倍思親 (매봉가절배사친)
遙知兄弟 登高處 (요지형제등고처)
遍揷茱萸 少一人 (편삽수유소일인)

홀로 타향에 살아 나그네 되니
매번 명절을 맞을 때마다 가족 생각 더욱 간절해진다
멀리서도 알리라, 형제들이 높은 곳에 올라
머리에 수유꽃을 꽂다가 문득 한 사람이 빠졌다는 것을

▲ 인왕산 달맞이. ⓒ이굴기

* 현호색은 한 종류가 아니다. 변이가 심해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현호색은 그 종류도 아주 많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KOREAN PLANT NAMES INDEX) 들어가 보았더니 현재까지 다음과 같은 이름이 수록되어 있었다. 내가 이제껏 육안으로 확인한 것은 점현호색, 현호색, 왜현호색, 흰현호색, 갈퀴현호색, 쇠뿔현호색, 남도현호색, 날개현호색.

이 말고도 종류가 더 있었다. 본 것보다는 보아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았다. 어떤 이는 작은 변이를 두고 이렇게 종을 달리하여 분류하는 것이 옳으냐는 의견을 가지기도 한다. 어느 세월에 다 볼 수 있을지 요원한 일이겠지만 언젠가는 다 보겠다고 작정하고 덤벼야할 꽃들이다.

흰왜현호색 선현호색 조선현호색 줄현호색 진펄현호색 수염현호색 좀현호색 흰좀현호색 섬현호색 흰갈퀴현호색 탐라현호색 털현호색 난장이현호색 각시현호색 들현호색 완도현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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