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있는 허리가 잘록한 물병. 저 병에 지금은 물이 들어 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독한 백주(白酒)가 들어 있었다. 물론 그 전에는 공장에서 주입된 청량음료가 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저 병은 며칠 만에 세 번의 변신을 거듭한 셈이다.
참 썩기 어렵다는 플라스틱 병이지만 이 무정물(無情物)에게도 그만의 일생이 있을 터. 처음과 나중은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병의 생(生)이었다. 병은 물의 전생(前生)이었던 백주의 삶이었을 때 비록 잠시였지만 나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바가 있었다. 다음은 그 술병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이다.
작년 말부터 9시 뉴스가 끝나고 일기예보를 할 때 챙겨보는 지점이 생겼다. 방송국에서는 그리 큰 섬이 아닌데도 우리나라 지도에 꼭 표시를 하였다. 그곳은 백령도였다. 그곳과 같은 관할인 대청도로 아들이 배치 받아 간 것이다. 그 어느 해안가에서 눈을 부라리며 아들은 보초를 서고 있을 것이었다. 내일의 날씨를 전해주는 아리따운 기상 캐스터의 어깨 너머로 소총을 멘 해병대 졸병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 먼 서해의 섬으로 우편엽서만을 보내다가 드디어 나에게도 파도를 헤치고 불안을 돌파할 기회가 왔다. 면회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여름휴가를 겸해서 백령도를 찾았다. 대청도에는 이렇다 할 시설이 없다면서 아들은 백령도에서 지내자고 했다.
혹 저곳이 인당수이려나. 마린 브릿지 호의 갑판에서 시퍼런 바다의 한 지점을 바라보며 심청가의 범피중류 한 대목을 떠올렸다. 바다를 미끄러지는 배의 꼬리에서 물보라가 휘몰이 장단처럼 퍼져 나와 가뭇없이 사라져갔다. 배는 소청도, 대청도를 차례로 들렀다가 백령도로 간다고 했다.
사나운 파도가 유능한 뱃사공을 만든다고 했지만 날씨가 너무 맑았고 배는 육중했다. 멀미 한 번 할 기회도 없이 인천을 떠난 지 네 시간 만에 멀리 섬들이 보였다. 소청도를 지나 드디어 대청도가 선명히 포착되었다. 배가 천천히 항구로 접안해 갈 때 부두에 점점이 박힌 것들이 점차 자동차, 파라솔, 짐 꾸러미의 모습으로 구별되고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갈매기같이 꾸물꾸물 하던 사물들이 점차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하더니 그 중에 하나가 드디어 인간 자식의 꼴을 갖추더니, 드디어 내 아들의 모습으로, 군복을 입은 채 내 눈으로 훌쩍 뛰어 들어왔다. 그 사이 상병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제 어미와 제 동생과의 상봉. 그렇게 보고 싶었지만 정작 만나서는 그냥 웃기만 했다. 르르르르. 배가 물위를 지나가듯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꿈결 같은 2박 3일. 군대 용어로 2.3초의 휴가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흘러가고 있었다.
아이는 군복으로 나는 긴 바지로 갈아입고 백령도를 떠날 준비를 하면서 짐정리를 할 때. 하마터면 백주를 그냥 개수대에 쏟아버릴 뻔 했다. 백령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내가 고기를 쟁일 때 나는 백주를 배낭에 챙겼다. 나름 독주를 좋아하는 녀석이기에 이럴 때 쓰려고 아껴 둔 것이었다. 오랜 병영 생활이 음주 습관을 바꾼 것인가. 아이는 한 모금 홀짝거리기만 하고 고기만 부지런히 먹었다. 마신다고 마셨지만 절반이나 남아 콜라병을 비우고 남은 백주를 따라두었던 것이었다.
유능한 술꾼이라도 술과 물을 육안으로 구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술에 유감이 많은 아내는 냄새로 알았다면 일부러라도 쏟아 버릴 태세였다. 그런 급박한 와중에 그 물병, 아니 술병은 극적으로 눈에 띄었고 그 술을 구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 마실 것도 아닌데 마개를 돌렸다.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던 것이다.
공간이 많이 빈 술병은 불면 소리가 제법 난다. 단소를 불듯 주둥이에 입술을 대고 소리를 냈다. 찰랑찰랑 미끄러운 소리가 일어났다. 아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 남은 술 마시면서 네 생각하마.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할래?"
아이는 농을 잘 받아주었다. 마이크처럼 잡고 랩으로 짧게 처리했다.
"아부지. 사랑함미데이."
"이 상병! 엄마와 동생한테도!"
"……"
아들은 쑥스러운지 큭큭큭 웃음을 여러 방울 술병 속으로 떨어뜨렸다. 나는 혹시라도 병 안의 것들-웃음소리,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알코올 분자-이 달아나갈까 싶어 재빨리 뚜껑을 닫았다. 매매 꼭꼭 닫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왔다. 늦은 저녁이었다. 냄새나는 빨랫감만 부려놓고 재빨리 술병을 찾았다. 떠날 때 물어보니 아들은 내일 새벽에 근무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세상 모르고 쿨쿨쿨 잘 때 아이는 보초를 설 것이다. 훤한 달이 우리 부자를 매개해 준다고 하나 나에게서 끊어질 게 뻔했다.
▲ 대청도. ⓒ이굴기 |
2. 대청부채
백령도를 여행하는 것은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군사적 긴장감이 늘 상존하는 곳을 구태여 파도와 네 시간 이상이나 싸우며 가려고 마음먹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 어려운 걸음도 해병이 된 아들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청도를 떠올리면 군인이 된 아들을 보는 것 말고 내심 염두에 둔 게 실은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대청도나 백령도의 바닷가에서만 산다는 귀한 식물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 식물의 이름은 대청부채. 나에게 그 식물을 처음으로 소개한 이는 사무실에 작은 화단을 가꾸는 분이었다. 어느 날 그의 사무실에 들러 대청부채 화분을 하나 얻기도 했었다. 이제 드디어 화면 속에서 손톱만한 지점으로 보이던 섬들이 점점 나에게 현실적으로 직접 가까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저 거뭇한 섬의 어느 지점에 내 아들과 대청부채가 있으려나.
대청부채(학명 : Iris dichotoma)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잎은 부챗살 모양을 하며 연한 보라색 꽃이 여름에 핀다. 대청부채는 대청도에서 1983년 처음 발견되었다. 현재는 대청도와 백령도 등 서해 5도 일부의 바닷가에만 서식하며, 꽃이 아름다워 원예 가치가 높은 멸종 위기 야생 식물이다. 밑동 줄기는 굵고 불규칙한 마디가 있으며, 꽃줄기는 곧게 서고 여러 갈레로 갈라진다. 여름에 연한 보라색 꽃이 3~5송이씩 모여 달린다. 꽃차례는 산형상취산화서이다. 포편은 피침형으로 막질이며 길이 2센티미터 정도이다. 외화피는 약간 타원형으로 펼쳐지고 밑 부분에 황갈색 무늬가 있다. 내화피는 난형으로 곧게 서며 끝이 오목하다. 암술대는 3갈래로 갈라지며 끝은 뾰족한 꽃잎 모양이며 자주색 반점이 있다. 하루 중 항상 15시를 전후해서 꽃을 피우기 시작해 16시에 만개하고, 점차 지기 시작해 22시면 완전히 꽃을 말아버린다. 옛날에는 대청부채 꽃을 보고 시간을 가늠해보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꽤나 정확하여 생물 시계라 한다. (<위키 백과>)
백령도에 체류하는 동안 나는 대청부채를 찾아 두리번거리기는 했다. 민박 주인에게 이야기했더니 정작 그는 대청부채를 모르고 있었다. 대신 뒷산에 가면 귀한 난(蘭)이 많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산으로는 가지 말라고 했다. 지금 햇빛에 몸을 말리러 독 오른 뱀이 잔뜩 나와 있다고 했다. 관광 지도를 보니 백령도에도 등산로가 몇 개 있기는 했다. 그러나 가족들을 두고 혼자서 산으로 갈 만큼의 꽃에 대한 애착을 나는 아직 가지진 못했다.
하긴 대청부채를 만나러 산으로 갈 일도 아니었다. 대청부채는 바닷가나 해안 절벽에 살고 있는 식물이 아닌가. 마지막 날 콩돌해안, 심청각, 물범바위 등을 둘러보고 석양 무렵에는 두무진 해안가를 산책했다. 짜장면을 꼭 먹고 싶다는 해병의 제안으로 백령도에서 가장 잘 한다는 중국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날 밤 나는 겨우 대청부채를 만날 수 있었다. 뜻밖의 장소요 뜻밖의 기회였다. 그곳은 오늘 늦게 가본 두무진 해안가이었다. 두무진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풍경이 볼만하다. 그리고 깍아지른 절벽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나는 전망대 바위 끝으로 올라 좀 더 나은 풍광을 즐기려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뾰쬭한 바위 끝에 해국 한 송이가 탐스레 피어 있었다. 그 꽃을 자세히 보겠다고 가까이 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아뿔싸, 발이 쭉 미끄러졌다. 무엇이라도 짚는다고 짚었지만 짚고 보니 허방이었다. 창졸간에 허공에 던져진 몸. 바둥거렸지만 아찔한 바위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비명이나마 한번 겨우 지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 순간도 손 쓸 새도 없이 지나가고 어느 새 아득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무심코 얼굴을 때리는 게 있었다. 바위 끝에 돋아난 풀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풀을 움켜쥐었다. 발 아래로 또 다른 한 무더기의 풀이 걸리는 것 같았다. 그것도 얼른 잡았다. 겨우 몸을 균형을 잡고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아, 그 풀은 대청부채가 아닌가!
깨고 보니 꿈이었다. 나에게 대청부채를 소개해 준 이는 대청부채는 대청도에서 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했었다. 맞는 말이었다. 결국 나는 대청도는커녕 백령도에서도 대청부채를 못 만날 뻔하였다. 대신 꿈속에서나마 대청부채를 겨우 면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백령도 두무진. ⓒ이굴기 |
3. 집에서 술병을 따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왔다. 늦은 저녁이었다. 냄새나는 빨랫감만 부려놓고 재빨리 술병을 찾았다. 떠날 때 물어보니 아들은 내일 새벽에 근무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세상 모르고 쿨쿨쿨 잘 때 아이는 보초를 설 것이다. 훤한 달이 우리 부자를 매개해 준다고 하나 나에게서 끊어질 게 뻔했다.
파도에 흔들릴 대로 흔들렸는지 주둥이에 손을 대자 백주의 알코올 기운이 제법 세게 나오는 것 같았다. 술병을 따면 아들이 흘린 웃음소리가 나올까. 야물게 보관해 둔 군인의 작별 인사가 따라 나올까. 수도권의 이 혼탁한 공기와 백령도산(産) 청정 공기가 잠깐 대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문지르듯 아조아조 천천히 마개를 마저 돌렸다. 꿈속에서 만난 대청부채를 떠올리는 가운데 혹 무슨 소리가 들릴까, 귀 기울이면서.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