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지옥', '이것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실제상황입니다'라는 무시무시한 선전포고로 문을 연 SBS <심장이 뛴다>와 '다 큰 남자들의 가출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단 KBS <바라던 바다>가 정규 편성을 가늠하는 파일럿을 방송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최근 예능의 트렌드 안에서 태어난 일종의 아류작이라는 꼬리표를 먼저 달았다. 출연진이 4박 5일간 실제 소방 공무원으로 활동하는 <심장이 뛴다>는 MBC <일밤> '진짜 사나이'의 그늘이 짙다. <바라던 바다>는 가출을 꿈꾸는 남자들이 요트를 타고 바다를 여행한다는 콘셉트지만, KBS <해피 선데이> '1박 2일'을 비롯한 일련의 여행 버라이어티와 큰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 <심장이 뛴다>에서 소방관으로 변신한 조동혁, 장동혁, 박기웅, 전혜빈, 최우식.(왼쪽부터 차례로) ⓒSBS |
예능 프로그램이 스튜디오를 벗어나 야외로 나온 뒤 우리는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조어를 만났다. 그런데 이 '리얼'이라는 단어를,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단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다. 산과 들, 섬과 바다 나아가 오지의 정글을 찾고, 봅슬레이나 조정 같은 스포츠에 도전하고, 실제 부자가 출연해 함께 여행을 떠나고, 군인이 되어 실제 군사 훈련을 받는다. 이 모두가 리얼이지만 동시에 그 어느 것도 순도 100%의 리얼이 아니다. 게다가 동일한 프로그램에 대해 보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리얼의 정도 역시 각기 다르다.
그래서 리얼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각 예능 프로그램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살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관찰 예능, 체험 예능 등의 새로운 이름이 만들어졌다. 물론 고질적인 포맷 베끼기 관행으로 인해 차별성 없는 아류작이 생기는 문제도 있지만, 낭중지추는 있기 마련. 아직 보지 못 했던,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방식으로 새로움을 주는 프로그램들이 예능의 외연을 조금씩 넓히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비슷한 가운데 새로움을 애써 찾으려다 보니, 더 강한 자극을 위해 무리수를 두거나 빈약한 뼈대를 미처 가리지 못 한 채 항해에 나서기도 한다는 점이다.
<심장이 뛴다>는 '공포, 지옥, 신의 가호'와 같은 자막들과 함께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재 진압과 긴급 구조 등 위급한 상황을 관리하는 소방 공무원의 생활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이라기엔 뉴스의 자료화면 혹은 다큐멘터리 같은 장면으로 문을 연 <심장이 뛴다>는 이것이 정말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되뇌게 했다. 카메라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모른 척 하는 일종의 'CCTV 예능'이던 관찰 예능이 '진짜 사나이'나 <심장이 뛴다>에 이르러 출연진이 직접 몸에 카메라를 단 '스테디캠 예능'이 되어간다.
실제 소방대원들이 입는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수 십 킬로그램짜리 공기통을 메고 엄격한 지시를 따르는 연예인들. 마찬가지로 힘들지만 훈련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진짜 사나이'에 비해 실제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심장이 뛴다>는 더 위험하고 더 가혹하다. 거기서 비롯되는 자극 역시 더 강하다. 폭염 속에 훈련을 받던 전혜빈은 탈진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조동혁은 지나치게 강압적인 분위기에 불만을 표현했다.
결국 "너네가 하고자 하는 걸 얘기해 달라니까. 너희가 이걸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지를(알려 달라). 거기서 사람 열 받는 거 찍는 게 리얼이야?"라는 조동혁의 토로는 <심장이 뛴다>가 뚜렷한 기획 의도나 제작 방향을 갖지 못한 채 파일럿이라는 이름으로 시청자의 욕망 혹은 그것의 역치를 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 <바라던 바다>에 출연한 신현준, 남희석, 성규(인피니트), 정겨운, 이훈. ⓒKBS |
<바라던 바다> 역시 시청자의 눈치를 살핀다. 유부남과 가출, 요트와 바다라는 키워드를 통해 따라 하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 했지만, 정말 새롭거나 다르고 싶었다면 더 철저해야 했다. "가정사는 솔직히 좀 안 좋아요"라고 말하는 이훈의 정색한 표정을 보여준다고 가출을 꿈꾸는 남자라는 콘셉트가 설득력을 가지는 건 아니다. 바다 여행을 떠난 '1박 2일'이나 요트에 도전한 '남자의 자격'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설정을 단독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면, 적어도 실제 유부남만으로 구성한 출연진을 통해 더 좁지만 깊게 이야기를 만들어 밀고나가는 뚝심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성규와 정겨운을 통해 예능 유망주 아이돌과 예능 초보 배우라는 안정적인 캐릭터를 가져올 순 있을지 몰라도 결국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고로 보여주었듯이 요트 항해가 처음인 출연진이 바다 위에서 경험하는 난관을 통해 차별점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가혹한 상황에 놓인 연예인이라는 트렌드 안에서 본다면 그다지 새롭다고 할 수 없다.
<심장이 뛴다>와 <바라던 바다>가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의 현재는 결국 다시 시청자에게로 질문을 돌린다. 정색하고 냉랭하게 구는 소방대원 속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이 어색하게 앉아있는 연예인을 보는 것이 즐거운가? 캐릭터 구축을 위한 것인지 실제로 울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 출연진을 통해 리얼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한 상황을 유추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 즐거운가? 출연진을 통해 평소에 잊기 쉬운 소방 공무원들의 애환을 대신 경험하고 감사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즐거운가? 휜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요트를 타고 일상을 벗어나 바다 위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가? 가족에 의해 공인된 가출이 과연 유부남들에게 일탈의 스릴을 선사하고 나아가 보는 사람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유의미한 레토릭이 될 만큼 즐거운가?
가장 즉각적인 대답은 시청률 혹은 정규 편성이라는 방식으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계속된다면 점점 더 센 자극을 추구하는 동시에 닮아서 더 빈약한 뼈대를 감추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현재에 질문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물음표는 비단 제작진을 향한 것만은 아니다. 이것이 진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인가, 이 정도라도 우리는 봐줄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이 예능을 통해 바라는 자극에 대한 역치를 가늠해 결과적으로 새로운 예능에 대한 기준이 될 테니 말이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새로운 것을 보고 싶은 것일까.
전체댓글 0